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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로이드 살해 경관, '2급 살인' 등 유죄 평결…백악관, 워싱턴 DC 주 승격 지지 


20일 데릭 쇼빈 전 경관 유죄 평결 발표 직후, 조지 플로이드 씨 동생 필로니스(왼쪽 두번째) 씨와 벤 크럼프(오른쪽) 변호사 등이 손을 들어 환호하고 있다.
20일 데릭 쇼빈 전 경관 유죄 평결 발표 직후, 조지 플로이드 씨 동생 필로니스(왼쪽 두번째) 씨와 벤 크럼프(오른쪽) 변호사 등이 손을 들어 환호하고 있다.

생생한 미국 뉴스를 전해 드리는 ‘아메리카 나우’ 시간입니다.

진행자) 오늘은 어떤 소식들이 있습니까?

기자) 지난해 흑인 남성 조지 플로이드 씨를 사망에 이르게 한 데릭 쇼빈 전 경관이 ‘2급 살인’ 등 세 가지 혐의 모두 유죄 평결을 받았습니다. 조 바이든 대통령은 유족에게 전화를 걸어 위로했는데요. 자세한 내용 살펴보겠습니다. 수도 워싱턴 D.C.를 51번째 주로 승격시키는 법안에 백악관 예산관리국이 지지를 나타냈습니다. 이어서, 월터 먼데일 전 부통령 타계 소식 전해드리겠습니다.

진행자) ‘아메리카 나우’ 첫 소식입니다. 지난해 흑인 남성 조지 플로이드 씨가 경찰 체포 과정에서 숨졌는데요. 당시 플로이드 씨를 목누르기로 제압한 데릭 쇼빈 전 경관이 유죄 평결을 받았군요?

기자) 네. ‘2급 비의도적 살인’과 ‘3급 살인’, ‘2급 고살(manslaughterㆍ고의적이 아닌 인명 살상)’ 등 데릭 쇼빈 전 경관에게 적용된 세 가지 혐의 모두 유죄로 평결됐습니다. 20일 미네소타주 헤네핀 카운티 법원에서 담당 판사가 이런 평결 내용을 발표했는데요. 미국 전역에 생중계됐습니다. 발표 직후, 조 바이든 대통령과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이 백악관 연설을 통해, 평결에 관한 입장을 밝혔습니다.

진행자) 바이든 대통령이 뭐라고 말했습니까?

기자) 이번 평결은 “중요한 변화의 순간”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우리는 이제 (인종 문제에 관해) 이 나라의 궤적을 바꾸는 기회를 가졌다”고 강조했는데요. “누구도 법 위에 있을 수 없다는 메시지를 오늘 평결이 내놨다”고 바이든 대통령은 덧붙였습니다. 해리스 부통령은 “스마트폰 덕에, 인종적 불평등이 즉각적이고 구체적으로 알려지는 세상이 됐다”고 말했는데요. 앞으로 경찰개혁과 보건개혁, 교육개혁 관련 입법과 정책을 통해 정부와 정치권에서 할 일을 해나가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진행자) 해리스 부통령이 ‘스마트폰’ 이야기를 했는데, 무슨 의미인가요?

기자) 스마트폰으로 촬영한 동영상을 통해 조지 플로이드 씨 사건이 알려졌기 때문입니다. 작년 5월 25일 미네소타주 주요 도시 미니애폴리스 시내에서 ‘위조지폐 사용’ 신고를 받고 경찰이 출동했는데요. 경찰관 세 명이 플로이드 씨를 현행범으로 붙잡았습니다. 땅바닥에 엎드리게 한 뒤 무릎으로 목을 눌러 제압했는데요. 플로이드 씨는 그날 밤 사망했습니다. 당시 목격자가 이 장면을 스마트폰으로 촬영했습니다.

진행자) 그래서 사건 상황이 대중에게 상세히 공개됐던 거군요?

기자) 맞습니다. 플로이드 씨가 목을 눌린 채 “숨을 쉴 수 없다”고 여러 차례 호소하는 동영상이 다음 날 온라인에 퍼지면서 파문이 커졌는데요. 이후 ‘조직적 인종 차별’과 ‘경찰력 과잉 집행’에 항의하는 시위가 전국에서 벌어졌습니다. 이 문제가 11월 대선 국면까지 쟁점으로 이어졌는데요. 아울러 ‘흑인의 목숨도 소중하다(Black Lives Matter)’ 운동이 각계각층으로 확산했습니다.

진행자) 플로이드 씨의 목을 눌러 제압한 당사자가 쇼빈 전 경관이었던 거죠?

기자) 그렇습니다. “숨을 쉴 수 없다”고 플로이드 씨가 호소하는 와중에도 9분 25초 동안 제압 행위를 계속했던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하지만, 쇼빈 전 경관 측 변호인은 이번 공판 내내, ‘경찰 훈련 과정에서 배운 대로 정당한 임무 수행을 했다’고 변론했습니다. 또한 제압 행위가 직접적 사인이 아니라고 강조했는데요. 배심원단은 이런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고 유죄로 판단한 겁니다.

진행자) 이번 유죄 평결에 관해, 유족 측 반응은 어떻습니까?

기자) “다시 숨을 쉴 수 있게 됐다”고 플로이드 씨 남동생 필로니스 씨가 밝혔습니다. 이날(20일) 활짝 웃으면서 기자회견을 열었는데요. “이제야 약간 안도를 느끼고, 조금이라도 잠을 잘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수많은 날 동안 그(쇼빈 전 경관)의 유죄가 입증되도록 기도하고, 희망하며, 믿음을 잃지 않았다”고 설명했는데요. 이번 공판이 진행되는 내내, 1955년 사망한 에밋 틸(Emmett Till)을 떠올렸다고 덧붙였습니다.

진행자) 에밋 틸이 누굽니까?

기자) 60여 년 전 미국 남부 미시시피주에서 백인의 폭력에 희생된 흑인 소년입니다. 1955년 당시 14살이었는데요. 백인 여성을 붙잡고 휘파람을 불었다는 이유로 폭행당해 숨졌습니다. 이 사건은 미국 전역에 충격을 줬는데요. 대대적인 민권운동의 기폭제가 됐습니다. “그(틸)가 첫 번째 조지 플로이드였다”고 필로니스 씨는 이날(20일) 강조했는데요. 흑인들이 부당하게 죽임당하는 역사적 맥락이 오늘날까지 이어져 온 것이라면서, 결국 울음을 터뜨렸습니다.

진행자) 바이든 대통령이 이날(20일) 유족에게 전화를 걸어 위로했다고요?

기자) 네. “이제야 기분이 좀 낫다”고 바이든 대통령이 이날(20일) 유족과의 통화에서 말했습니다. 플로이드 씨가 살아있는 게 아니기 때문에 “아무것도 (유족들의 기분을) 낫게 만들 수는 없지만, 그래도 최소한의 정의가 오늘 나타난 것”이라고 바이든 대통령은 말을 이어갔는데요. 이번 평결이 앞으로 변화의 시작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습니다. 이어서, 모든 과정을 견뎌온 유족들을 치하했는데요. “믿을 수 없는 가족”이라면서, “지금 이 순간 내 팔로 여러분을 안아주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진행자) 유족들은 뭐라고 답했습니까?

기자) 경찰 개혁 법규인 ‘조지 플로이드 정의 법안(George Floyd Justice in Policing Act)’이 통과하는 계기가 되길 희망한다고 말했습니다. 의회에서 조만간 이 법안을 채택하고, 대통령이 서명하길 바란다고 유족 대표가 밝혔는데요. 바이든 대통령은 “알겠다”면서, “그것보다 더 많은 일을 해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진행자) 재판으로 다시 돌아가죠. 세 가지 혐의 모두 유죄 평결을 받은 쇼빈 전 경관은 어떤 처벌을 받게 됩니까?

기자) 그건 좀 더 지켜봐야 합니다. 이번에 나온 평결은 일반 시민들로 구성된 배심원단의 판단이고, 판사가 선고하는 최종 판결이 아니기 때문인데요. 판결은 앞으로 약 8주 안에 나올 전망입니다. 최고 40년까지 징역형을 받을 수 있는데요. 그동안 보석 상태에서 공판에 임했던 쇼빈 전 경관은 이날(20일) 평결 발표 직후 법정 구속됐습니다. 만일 최종 판결 이후, 쇼빈 전 경관 측이나 검찰 측이 불복하면, 상급심으로 사건이 올라가게 됩니다.

21일 미국 수도 워싱턴 DC의 연방의사당 주변에서 주 승격을 지지하는 집회가 열렸다.
21일 미국 수도 워싱턴 DC의 연방의사당 주변에서 주 승격을 지지하는 집회가 열렸다.

진행자) 아메리카 나우, 다음 소식입니다. 워싱턴 D.C.를 주로 승격하는 법안에 정부 당국이 지지 입장을 밝혔다고요?

기자) 네. 미국 수도로서 특별행정구인 워싱턴 D.C.를 주로 승격시키는 움직임이 탄력을 받게 됐습니다. 현재 관련 법안(H.R. 51)이 하원에 계류 중인데요. 백악관 예산관리국(OMB)이 20일 이 법안에 공식 지지 의사를 발표했습니다. 법안이 앞으로 상ㆍ하원을 통과하고, 대통령이 서명하면 현재 50개인 미연방 소속 주가 51개로 늘어나게 됩니다.

진행자) 예산관리국 발표 내용, 구체적으로 들어보죠.

기자) “70만 명 넘는 워싱턴 D.C. 주민들이 오랫동안 미 의회에서 대표권을 박탈당해 왔다”고 OMB 측은 지적했습니다. “이렇게 대표권 없이 세금만 내고, 자치권마저 부정당한 것은 민주적 가치에 대한 모욕”이라고 강조했는데요. 이런 현실은 “우리나라(미국)가 설립된 기반”과 맞지 않는다고 덧붙였습니다. 따라서 “워싱턴D.C. 주민들을 위해, 신속하고 질서 정연한 주 정부 전환 근거를 제공할 것을 (연방의회에) 요구한다”고 밝혔습니다.

진행자) 워싱턴 D.C. 인구가 70만 명이 넘는 겁니까?

기자) 그렇습니다. 62만 명가량인 버몬트주, 약 58만 명인 와이오밍주보다도 많은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민을 대표할 상ㆍ하원 의원을 연방 의회에 보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앞으로 근거 법규 제정을 통해 주가 되면, 주마다 동일하게 배정되는 연방 상원의원 두 명, 그리고 인구 비례로 배정되는 하원의원 한 명을 가질 수 있게 됩니다.

진행자) 하원에 계류 중인 근거 법안 처리는 어디까지 진전된 상태인가요?

기자) 지난주 소관 상임위원회인 정부 감독ㆍ개혁 위원회를 통과했습니다. 민주당 의원들은 전원 찬성하고, 공화당 의원들은 모두 반대했는데요. 이번 주에 본회의 표결을 앞두고 있습니다.

진행자) 본회의에서 채택될까요?

기자) 네. 하원에서는 무리 없이 채택할 전망입니다. 민주당은 지난해 대선 국면부터 줄곧 워싱턴 D.C. 주 승격을 지지해왔고, 현재 하원 다수당이기 때문인데요. 하지만 상원 처리 전망은 불확실합니다. 민주-공화 양당의 상원 의석수가 50대 50인데요. 무제한 토론으로 의사 진행을 방해하는 ‘필리버스터(filibuster)’를 넘으려면, 60표가 필요합니다. 따라서, 민주당 상원의원 전원이 찬성하더라도, 공화당에서 열 명을 끌어와야 하는 겁니다.

진행자) 공화당은 워싱턴 D.C.를 주로 승격하는 데 반대하고 있는 겁니까?

기자) 그렇습니다. 공화당 대다수 의원이 해당 법안에 부정적 입장을 밝히고 있는데요. 진보적인 워싱턴 D.C. 민심을 기반으로, 민주당이 의석수를 늘리려는 시도라고 비판하고 있습니다. “D.C.를 주로 만드는 것은 극렬 좌파가 내세우는 의제의 핵심 요소”라고 제임스 코머 하원의원이 지난달 관련 청문회에서 주장했습니다.

진행자) 이번 백악관 예산관리국의 지지 발표에 관해, 워싱턴 D.C. 측의 반응은 어떻습니까?

기자) 적극 환영 입장을 밝혔습니다. 연방 하원에서 워싱턴 D.C.를 위해 활동하는 일리노어 홈스 노턴 대의원이 성명을 발표했는데요. “우리나라 수도에 사는 주민들은 (연방의회) 투표 권리와 함께, 완전 자치권이 있는 지역 정부를 가질 자격이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이번 주에 H.R. 51 법안이 하원 본회의를 통과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에, “주 승격에 이 만큼 가까워진 적이 없다”고 기대감을 밝혔는데요. 노턴 대의원은 이 법안을 발의한 사람입니다.

진행자) 노턴 대의원이 법안 발의자라면, 이미 연방 의회에서 워싱턴 D.C.를 위해 활동하는 사람이 있는 거네요?

기자) 대의원은 하원에서 활동하지만, 표결에 참가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연방 의원과는 권한과 처우 등에서 크게 다른데요. 현재, 워싱턴 D.C.를 포함해 푸에르토리코 등 여섯 지역을 대표하는 대의원이 있습니다.

월터 먼데일 전 부통령.
월터 먼데일 전 부통령.

진행자) 아메리카 나우 한 가지 소식 더 보겠습니다. 미국 정치계의 거목이 세상을 떠났군요?

기자) 네. 지미 카터 전 대통령 재임 기간 부통령을 지낸 월터 먼데일이 19일, 93세를 일기로 타계했습니다. 유가족은 먼데일 전 부통령이 고향인 미네소타주 미니애폴리스에서 자연적인 이유로 평화롭게 숨을 거뒀다고 전했는데요. 민주당을 대표하는 정치인인 가운데 한 명이었던 먼데일 전 부통령의 타계 소식에 미 언론은 ‘진보의 상징’ 또는 ‘진보주의 정치의 챔피언’이 세상을 떠났다고 전하고 있습니다.

진행자) 먼데일 전 부통령이 우선 정치인으로 어떤 길을 걸었는지 살펴볼까요?

기자) 네. 1928년 미네소타주 작은 마을인 실론에서 태어난 먼데일 전 부통령은 20대부터 정치 활동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고요. 1960년, 32세의 나이로 미네소타주 법무장관으로 지명되면서 공직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1964년에 휴버트 험프리 미네소타주 연방 상원의원이 부통령에 당선되자, 험프리 상원의원의 승계자로 지명되어 미국 중앙 정치 무대에 등장하게 되는데요. 1966년에 상원의원 선거에서 당선된 데 이어 1972년에 재선에도 성공했습니다.

진행자) 그리고 부통령 자리에까지 오른 거군요?

기자) 네. 1976년 대선에서 카터 전 대통령의 러닝메이트로 출마해 부통령에 당선됐는데요. 먼데일 전 부통령은 대통령을 대신해 외교 순방도 다니고, 국내외 정책에 있어 대통령에게 적극적으로 조언하는 부통령이었습니다. 또 대통령과 사적인 친분도 깊었고요. 백악관에 부통령 집무실이 생긴 것도 바로 먼데일 전 부통령 때였습니다. 하지만, 4년 후 선거에서 공화당의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과 조지 H. W. 부시 부통령 후보에게 패했습니다.

진행자) 먼데일 전 부통령이 대통령 후보로 출마한 적도 있다고요?

기자) 네. 1984년 선거 때 민주당 대선 후보 지명을 받았습니다. 먼데일 전 부통령은 특히 러닝메이트로 제럴딘 페라로 당시 연방 하원의원을 지명하면서 미 역사상 주요 정당의 첫 번째 여성 부통령 후보를 탄생시켰는데요. 하지만 재선을 노리는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의 높은 인기를 넘지 못했습니다. 수도 워싱턴 D.C.와 고향 미네소타주를 제외하고는 선거인단을 얻지 못해 선거인단 수가 525대 13이라는, 기록적인 참패를 하고 말았습니다.

진행자) 왜 이렇게 기록적인 참패를 했을까요?

기자) 재정 적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대통령에 당선되면 세금을 올리겠다고 공언한 것이 패배의 원인이었다는 평가가 뒤따랐습니다. 당시 레이건 대통령은 감세를 통해 경제를 재건하는 이른바 ‘레이거노믹스’를 내세웠습니다. 먼데일 전 부통령은 선거 직후 대선 참패의 원인을 TV를 잘 받지 않는 탓으로 돌렸는데요. 몇 년 뒤엔 세금 인상 정책이 인기는 없었지만, 올바른 정책이었다는 점을 역사가 증명했다고 주장했습니다.

진행자) 대선 패배 후에는 어떤 행보를 보였나요?

기자) 먼데일 전 부통령은 이후 빌 클린턴 대통령 재임 시절인 1993년~1996년 주일 대사로 봉직했는데요. 당시 자동차와 손전화 등 미국 상품의 일본 시장 진출을 위해 노력했습니다.

진행자) 먼데일 전 부통령이 진보의 상징이라고 했는데, 어떤 정책을 추진했었는지도 살펴볼까요?

기자) 네. 미네소타주 법무장관 재임 시절엔 민권 향상과 독과점 금지, 소비자 보호에 나섰는데요. 소비자 보호를 공약으로 내건 첫 번째 미네소타주 법무장관 후보이기도 했습니다. 또한, 상원의원으로 재직할 때는 교육이나 주택공급, 이민 노동자 등의 사회 문제에 관심을 뒀는데요. 특히 먼데일 전 부통령은 자신의 정치적인 멘토였던 험프리 전 부통령과 마찬가지로 민권 문제에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진행자) 그렇다면, 먼데일 전 부통령을 정치적 멘토로 삼은 정치인은 누가 있을까요?

기자) 바로 조 바이든 대통령을 꼽을 수 있습니다. 바이든 대통령은 부통령 시절인 지난 2015년 미네소타대학이 주관하는 먼데일 전 부통령 기념행사에서 먼데일 전 부통령은 자신이 부통령직을 잘 수행하도록 로드맵을 제시했다고 밝힌 바 있는데요. 바이든 대통령은 19일 먼데일 전 부통령이 부통령직을 대통령의 진정한 동반자로 격상시킨 인물이라고 애도하면서, 백악관과 관공서에 조기 게양을 지시했습니다.

진행자) 아메리카 나우, 오늘은 여기까지 듣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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