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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속 오늘] 7월 31일


1790년 7월31일 오늘

신생 미 합중국이 최초로 특허 등록증을 발급합니다.

사업가 사무엘 홉킨스의 탄산칼륨의 제조과정에 관해서 연방 정부가 특허를 인정한 것입니다.

미국의 특허제도는 과학자들의 발명의욕을 북돋아주는 동시에 연방정부의 경제정책에 힘을 실어줬습니다.

특허제도가 확립된 것은 1623년 영국의회가 전매조례라는 법률을 제정하면서부터입니다.

그러나 영국의 제도는 그 절차가 복잡하고 비용도 매우 비쌌습니다.

이에 반해 신생 미국이 선보인 특허제도의 특징은 저렴한 비용과 간편한 절차였습니다.

당시 홉킨스가 부담했던 특허등록비는 3달러. 같은 시기 영국에서는 회사원의 연봉에 해당하는 비용이 필요했습니다.

나날이 커가는 미국 경제의 숨은 힘이 특허제도에 있다는 사실을 간파한 영국은 1852년 특허제도를 고치고 서둘러 추격에 나서지만 미국의 우위를 되돌리지는 못합니다.

생텍쥐페리 실종, 7월 31일

2차 세계 대전이 막바지에 이르던1944년 7월 31일 오늘

소설 ‘어린 왕자’로 유명한 프랑스의 작가이자 비행사인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가 실종됩니다.

이날 정찰 임무를 위해 코르시카섬의 미 공군기지를 떠난 생텍쥐페리는 영원히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1900년 프랑스의 리옹에서 태어난 생택쥐페리는 어렸을 적부터 비행에 큰 관심을 가졌습니다.

스물 두 살이 되자 생택쥐페리는 공군에 입대하고, 결국 조종사가 됩니다.

이후 생택쥐페리는 우편 비행, 항공 회사 근무등 하늘을 나는 일이면 무엇이든 마다하지 않게 됩니다.

그리고 이러한 경험을 바탕으로 생택쥐페리는 남방 우편과 아갼 비행, 전투 조종사, 어린 왕자등을 발표해 세계적인 명성을 얻게 됩니다.

이후 나이 제한으로 조종사 자격이 박탈됐지만 하늘을 나는 꿈을 포기할 수 없었던 생텍쥐페리는 결국 1944년 정찰 비행에 나섰다가, 지중해 상공에서 사라지게 됩니다.

생텍쥐페리의 잔해가 발견되지 않아 그의 실종을 둘러싼 소문이 무성했습니다.

비행기 잔해는 이후 2004년 3월 프랑스 수중탐사팀에 의해 마르세유 근해에서 발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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