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행자) 북한 주요 뉴스의 배경과 의미를 살펴보는 ‘쉬운 뉴스, 흥미로운 소식, 뉴스 동서남북’입니다. 최원기 기자와 함께합니다. 최 기자, 오늘은 어떤 소식이 있습니까?
기자) 오늘은 10월 10일 노동당 창건 81주년을 계기로 북한은 왜 경제 개방에 실패했는지 살펴보겠습니다.
진행자) 평양은 노동당 창건 81주년을 맞아 떠들썩한 분위기군요?
기자) 네, 북한은 노동당 창건 81주년을 앞두고 각종 행사를 열어 경축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습니다. 관영 ‘노동신문’에 따르면 농업근로자동맹(농근맹)은 7일 평양에서 경축 모임을 가졌고, 각종 예술 행사도 열렸습니다. 또 ‘노동신문’은 1면에 ‘인민을 위한 역사’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당의 위대한 80여 년의 역사를 보다 영광스럽고 긍지 높은 위대한 역사로 이어가자면 창당의 첫 기슭에서 내세운 이념과 정신을 굳건히 계승해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진행자) 현재 아시아에서는 공산주의 정당이 집권한 나라가 북한, 중국, 베트남 등 3개국인데, 중국과 베트남 공산당은 북한 노동당보다 먼저 창건됐죠?
기자) 그렇습니다. 중국 공산당은 1921년, 베트남 공산당은 1930년에 창건됐습니다. 북한이 노동당 창건일로 기념하는 1945년을 기준으로 보면 북한은 올해 81주년, 중국 공산당은 105주년, 베트남 공산당은 96주년을 맞습니다. 세 당 모두 장기간 집권했지만 경제 발전 경로와 경제 수준은 크게 다릅니다.
진행자) 중국, 베트남, 북한의 경제는 얼마나 차이가 납니까?
기자) 세계은행에 따르면 2024년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중국이 1만 3천303달러, 베트남이 4천717달러입니다. 중국이 베트남의 약 2.8배입니다. 북한은 자체적으로 국내총생산(GDP) 통계를 공개하지 않아 한국은행이 추정하는데, 2025년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1천300달러입니다. 단순 계산하면 베트남은 북한보다 약 3.6배 잘사는 것이고, 중국은 북한보다 약 10.2배 잘사는 셈입니다.
진행자) 80여 년 전에는 북한, 중국, 베트남 모두 가난한 공산주의 국가였는데, 오늘날은 왜 이렇게 큰 차이가 나는 것일까요?
기자) 큰 갈림길은 자본주의 시장경제를 받아들이고 경제 개방에 나선 시점과 방식에 있습니다. 중국은 덩샤오핑 집권기인 1978년 개혁·개방을 시작했고, 베트남은 1986년 ‘도이머이(쇄신)’ 정책을 시작했습니다. 두 나라는 계획경제의 틀을 완화해 시장 기능을 확대하고, 외국 자본과 기술을 유치해 수출 제조업을 키웠습니다. 또 중국은 경제특구를 개혁·개방의 실험장으로 삼았고, 베트남도 외국인 투자를 끌어들여 수출 산업을 확대했습니다.
진행자) 개혁·개방을 해서 경제가 발전했나요?
기자) 네, 베트남과 중국을 보면 개방이 경제 성장에 큰 도움이 됐습니다. 세계은행에 따르면 베트남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도이머이 개혁을 시작한 1986년 약 436달러에서 2024년 약 4천717달러로 늘었습니다. 약 10.8배 증가한 겁니다.
중국도 마찬가지입니다. 세계은행은 중국이 개혁·개방을 시작한 1978년 이후 국내총생산(GDP)이 연평균 9% 넘게 성장했고, 약 8억 명이 극빈 상태에서 벗어났다고 평가합니다. 그 결과 중국은 현재 미국에 이어 세계 2위 경제 대국이 됐습니다.
진행자) 그렇다면 비슷한 처지였던 북한은 왜 개혁·개방을 하지 못한 것일까요?
기자) 전문가들은 크게 세 가지 이유를 들고 있습니다. 첫째는 체제 유지에 대한 북한 수뇌부의 우려입니다. 둘째는 3대 세습입니다. 셋째는 핵 개발로 인한 미국과의 관계 개선 실패입니다. 이런 요인들이 겹치면서 북한은 개방에 나서지 못했고, 경제는 세계 최빈국 수준에 머물러 있습니다.
진행자) 하나씩 짚어보죠. 체제 유지에 대한 북한 수뇌부의 우려 때문에 개방에 나서지 못했다는 것은 무슨 얘기입니까?
기자) 개방을 하면 한국을 비롯한 외국 기업과 자본이 들어오고, 주민들은 외국 상품과 정보를 접하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주민들은 현실을 깨닳고 국가의 배급이나 노동당의 지시에만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시장에서 돈을 벌고 스스로 생계를 꾸리게 됩니다. 문제는 북한 수뇌부가 이런 변화를 자신의 정치적 통제력을 약화시킬 수 있는 요인으로 보고 개방을 꺼렸다는 것입니다.
진행자) 북한의 3대 세습도 경제 개방을 막는 요인이 됐을까요?
기자) 중국과 베트남도 공산당 일당 지배 체제이지만, 북한처럼 최고지도자 자리를 아버지에서 아들로 세습하는 체제는 아닙니다. 중국과 베트남에서는 새로운 지도부가 기존 정책의 문제점을 인정하고 개혁·개방 등으로 정책을 전환할 수 있습니다. 반면 북한처럼 김일성·김정일·김정은으로 이어지는 3대 세습 체제에서는 선대와 다른 정책을 추진하기가 상당히 어렵습니다. 여기서 한국의 국책연구기관인 통일연구원의 조한범 석좌연구위원의 말을 들어보시죠.
조한범 / 통일연구원의 석좌연구위원
“가정이지만 김일성은 문제 해결을 시도하려고 했다. 김정일도 2000년, 2007년 남북정상회담을 개최해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을 중심으로 남북 경협의 시대를 열었습니다. 김일성과 김정일은 중국과 베트남의 초기 모습을 닮아가려는 시도를 했습니다. 그러나 김정은은 집권 후 핵무기 개발에 몰두했고, 그 이후 자력갱생을 외치며 신냉전 외교로 돌아섰기 때문에, 북한의 3대 세습과 김정은 정권의 전략적 실패가 북한 개혁·개방의 구조적 한계가 됐습니다.”
진행자) 핵 문제로 미국과 관계를 개선하지 못한 것도 큰 요인 아닌가요?
기자) 그렇습니다. 중국과 베트남을 보면 미국과의 관계 개선이 경제 발전에 유리한 국제적 환경을 조성했습니다. 반면 북한은 핵 문제로 인해 미국과의 관계 개선에 실패했는데요. 다시 조한범 석좌연구위원의 말을 들어보시죠.
조한범 / 통일연구원의 석좌연구위원
“베트남과 중국은 미국과의 관계 개선이 개혁·개방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1970년대 중국의 핑퐁 외교와 닉슨 대통령의 방중 등이 대표적입니다. 그러나 북한은 미국과의 관계 개선에 실패했기 때문에 세계경제에 편입될 기회를 놓쳤습니다.”
진행자) 뉴스 동서남북, 오늘은 북한이 왜 경제 개방에 실패했는지 살펴봤습니다. 최원기 기자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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