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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반공 유격대, 공산정권에 맛서 용감히 싸워” 전역 미군 유격대 고문 증언


6.25 전쟁에 참전했던 미군 장교가 최근 미 전역을 돌며 6.25에 대한 강연 활동을 벌이고 있어 관심을 끌고 있습니다. 북한 적진 내부에서 북한 출신 반공 유격대원들을 훈련하고 유격전을 지휘했던 벤 말콤 예비역 대령은 지난 1997년, 6.25 전쟁 당시의 유격전 경험을 생생하게 증언한 `백호들: 북한에서의 나의 비밀 전쟁’이라는 책을 펴낸 바 있습니다. 유미정 기자가 벤 말콤 씨를 전화로 인터뷰했습니다.

문 ) 말콤 대령님, 안녕하십니까. 먼저 6.25 전쟁 당시 북한 지역에 북한 출신 반공 유격대가 어떻게 생겨나게 된 것인지 설명해 주십시요?

답) 1950년 10월 25일 중공군이 20만 명의 병력으로 압록강을 넘어 전쟁에 참전하자 압록강까지 진군했던 유엔군은 1951년 1월 25일 서울 이남 50마일까지 후퇴하게 됐습니다. 이 때 많은 북한 주민들이 유엔군을 따라 남하했지만, 북한에 남은 사람들도 많았습니다. 이 무렵 한국 해군이 서해 장산곶 반도 근처에서 순찰 도중, 북한 자원자 1만 여 명이 북한 인민군에 맞서 싸우고 있는 사실을 알게됐습니다. 이들은 북한에 공산주의 정권이 들어선 것에 반대해 1947년부터 투쟁을 전개해 오고 있었는데요, 미 8군에 이 같은 정보가 접수됐고, 이후 이들을 접촉한 미군이 무기와 통신 장비 등을 지원하고 훈련을 제공하면서 북한에 대항한 유격 작전을 수행하도록 한 것입니다.

문) 북한 내 반공 유격대의 규모는 얼마나 됐었나요?

답) 제가 소속됐던 극동사령부 미 8군 제 8240 부대는 5개의 전투 부대로 구성됐습니다. 압록강에서부터 서해안 옹진반도까지는 5천 명의 전투대원과 11개 소 전투부대를 갖춘 레오파드 부대가 작전을 펼쳤고, 서해안의 약 4백 개 섬을 장악했습니다. 레오파드 부대 남쪽으로는 전투대원 5천 명과 10개 소 전투부대 규모를 갖춘 울팩 부대가 활약했구요, 또 북한군으로 위장해 북한에 다시 투입하는 이른바 전술 연락장교 임무도 수행했습니다. 동해안에는 전투대원 약 3백 명과 섬 3곳을 장악한 커크랜드 부대가 활약했습니다. 마지막으로 베이커는 서해안과 동해안에서 도달할 수 없는 북한 내부 깊숙한 지역에 낙하산 부대를 투하하는 공수작전을 전개했습니다.

문) 그러면 선생님께서 맡았던 임무는 구체적으로 무엇이었습니까?

답) 저는 레오파드 부대 내 소부대 가운데 하나로 동키-4, 즉 당나귀-4라고도 불렸던 백호(White Tigers)부대의 고문관 겸 지휘관 임무를 맡았습니다. 저는 1년간 백호부대 유격대장이었던 박철과 그가 이끄는 8백 명의 전투대원들을 훈련하고 이들과 유격 작전을 전개했습니다.

문) 전선 후방에서 펼친 반공 유격대의 활약상과 성과를 자세하게 말씀해주시겠습니까?

답) 많은 공격을 펼쳤습니다. 미8군 보고에 따르면 반공 유격대가 북한에서 수행한 유격 작전은, 3~4명이 탄약집적소를 파괴 등의 소규모 작전을 포함해 모두 4천 4백 45회에 이릅니다. 저희는 9백 50명의 북한군 포로를 체포해 이들을 제주도로 수송하기도 했습니다. 또 북한 전역에 공습과 기습으로 6만 9천 명의 사상자를 내고, 5천 개 이상의 무기를 압류하며, 80개 이상의 교량을 파괴하는 등 적을 공격했습니다.

문) 당시 가장 아찔했던 작전이 있다면 하나 소개해 주시겠습니까?

답) 1952년 7월 14일, 저희는 약 70명의 북한군이 몸을 숨기고 76mm 포 공격을 가하는 인근 섬의 동굴에 대규모 기습 공격을 가했습니다. 저는 훈련시킨 1백 20명의 유격대에 동굴을 공격할 것을 지시했습니다. 저희는 월내도에서 4척의 범선을 이끌고 한 밤 중에 동굴의 후방 쪽에 상륙해서 동이트자 공격을 시작했습니다. 미국인은 저 혼자였는데요, 기습 공격으로 63명의 북한군을 사살한 반면 6명의 유격대원을 잃었습니다. 그런데 다시 북한군의 반격으로 저희들은 범선이 정박해 있는 해안가로 밀려가게 됐습니다. 이 때 피난을 원하는 마을 주민 40명이 저희를 따라왔습니다. 열악한 범선으로는 40명을 전부 태울 수가 없어서, 노령자를 우선으로 해서 10명을 선발했습니다. 마지막 범선에는 이들이 갖고 나온 황소 60마리를 싣고 섬을 빠져나왔습니다.

문) 전쟁이 끝나고 북한 반공 유격대원들은 어떻게 됐나요? 특히 백호부대 유격대장이었던 박철 씨는 어떻게 됐는지 궁금합니다.

답) 2만 2천 명의 반공 유격대 가운데 약 5천 명이 살아서 북한을 빠져나왔습니다. 대부분은 남한으로 향했고, 일부는 북한으로 다시 돌아갔습니다. 백호부대의 경우 8백 명 가운데 3백 50명 정도가 북한을 탈출해 남한에 정착했는데요, 일부는 아주 성공적인 기업인이 됐습니다. 이 분들이 제 책이 출간된 것을 알고 1998년 무렵 출판사를 통해 연락을 취해왔습니다. 이들은 한국에 백호부대 전우회를 조직하고 있는데요, 이후 저와 자주 연락을 하고 있습니다. 저와 좋은 관계를 유지했던 유격대장 박철 씨는 북한을 탈출해 한국에서 살다가 1994 무렵에 사망해서, 그 자신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수록된 제 책의 출판을 보지 못했습니다.

문) 북한에서의 유격전을 회상해 볼 때 아쉬웠다거나 실망스러웠던 점이 있다면요?

답) 미군으로부터 충분한 지원을 받지 못한 것일 겁니다. 일선 장군들은 게릴라 전투가 후방에서 얼마나 성공적으로 수행되고 있는지 이해하지 못했죠. 우리는 작전에 필요한 물자의 25% 밖에 공급받지 못했습니다. 만약 더 많은 탄약과 무기 지원이 있었고 유격부대 증원이 승인됐더라면 훨씬 더 큰 성공을 이끌어 낼 수 있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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