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틴어로 ‘데 오프레소 리베르(De Oppresso Liber)’, ‘억압받는 자를 해방하라’라는 구호를 가진 미군 부대가 있습니다. ‘그린베레(Green Beret)’로 더 잘 알려진 육군 스페셜 포스(Special Forces)인데요. 구호가 말해주듯, 단순히 적을 제압하는 것을 넘어 현지 민간인들과 반군들까지 우군으로 끌어들이고 훈련시켜 판세를 뒤집는, 비대칭전의 대가들입니다. 이렇게 까다로운 임무를 수행하는 그린베레들은 누구인지, ‘미국 군사·안보 백브리핑’에서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오종수 기자 나와있습니다. 안녕하세요?
기자) 네, 안녕하세요?
진행자) 지난 방송에서 황토색, ‘탠베레(Tan Beret)’를 쓰는 ‘레인저’ 요원들을 소개해드렸는데, 그린베레 이야기를 또 안 할 수가 없죠.
기자) 네, 그린베레야말로 특수부대의 대명사입니다. 조직의 명칭이 바로, ‘특별한 무력’, ‘특수 병력’을 뜻하는 스페셜 포스(U.S. Army Special Forces)이기 때문인데요. 그린베레 본부가 있는 노스캐롤라이나주 포트 브래그에 ‘존 F. 케네디 특수전 박물관’이 있습니다. 그 입구에, 조직의 기원을 설명한 자료가 게시돼 있는데요. 일반적인 군 부대의 기원과는 사뭇 다른 이야기가 들어있습니다. “(스페셜 포스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적진 뒤편에서 유격전을 벌이던 OSS(전략사무국)의 유산을 이어 1952년 창설됐다”고 명시돼 있습니다.
진행자) ‘적진 뒤편’, 그리고 ‘전략사무국’이라는 말이 기원 설명에 들어있는데, 그린베레의 역할과 관련 있는 거겠죠?
기자) 맞습니다. 전략사무국, OSS(Office of Strategic Service)는 2차대전 당시 각종 비밀 공작을 벌이던 조직입니다. 또한 독일에 대항하는 레지스탕스를 돕고, 훈련하고, 일본에 맞선 한국의 광복군을 지원하기도 했는데요. 이런 기능을 물려 받은, 현재 그린베레의 임무와 역할도 크게 두 가지 축으로 구성됩니다. 하나는 ‘비정규전(Unconventional Warfare, UW)’입니다. 다른 하나는 ‘현지 인원 훈련’인데요. 이 두 가지 모두 전선의 표면에서 이뤄지는 일들이 아닙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은밀한 작전(clandestine operations)을 벌이는 건데요. 실제로 그린베레가 투입돼서 작전을 수행하는 것은 보도되는 일도 드물고, 당국자들도 잘 확인해주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린베레 활동이 성공하면 어떤 분쟁이나 지역적 문제라도 흐름이 크게 바뀌게 됩니다.
진행자) 그러니까, ‘탠베레’ 레인저는 전면에서, ‘그린베레’ 스페셜 포스는 이면에서 활동하는 정예 병력인 거네요.
기자) 그렇습니다. 그린베레는 비정규전을 담당하는 부대 특성상, 보이지 않는 곳에서 활동하는 게 피할 수 없는 숙명인데요. 그린베레가 거둔 성과의 대표적인 예가 지난해 1월 베네수엘라 수도 카라카스에서 진행된 니콜라스 마두로 당시 대통령 체포 작전입니다. 그린베레 요원들로 구성된 ‘델타포스(Delta Force)’가 마두로 당시 대통령을 생포해, 관계 당국에 넘겨 미국으로 데려오도록 했는데요. 이 일을 어떤 부대가 한 건지 처음엔 알려지지 않았다가, 언론의 취재가 계속되자 나중에 미 당국자가 확인해 줬습니다.
진행자) 국제 정세의 물줄기를 바꾸는 일을 조용하게 해 낸 게 인상적이었습니다.
기자) 그렇습니다. 전시가 아닌 때에, 특정 국가 수도 한복판에서, 겹겹이 쌓인 경호망을 뚫고 국가 원수를 체포하는, 영화나 소설에 나올만한 이야기를 현실로 이뤄낸 건데요. 마두로 전 베네수엘라 대통령은 미국에서 마약 밀매와 테러 공모, 부패 혐의 등으로 기소돼 재판 절차를 밟고 있습니다. 그러는 사이, 베네수엘라 정부는 델시 로드리게스 임시 대통령 체제를 안정화하고 있고요, 미국과 베네수엘라는 에너지 협력 합의를 체결했습니다.
진행자) 그린베레의 임무에 ‘현지 인원 훈련’도 있다고 했는데, 구체적으로 어떤 내용인가요?
기자) 적국이나 분쟁 지역에 소수 팀으로 은밀히 침투해, 현지 저항 세력이나 친미 반군을 포섭하고, 이들을 훈련시켜 전투 집단으로 만드는 겁니다. 중동에서 이런 일들이 주로 벌어졌던 것으로 알려졌고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초기에, 그린베레 병력이 우크라이나군을 훈련시켰던 사실이 일부 공개되기도 했습니다. 즉, 비정규전에서 고난도 임무를 수행하는 전사인 것은 물론이고, 현지인을 훈련시키는 교관, 그리고 현지 여론을 상대하는 외교관의 역할을 동시에 수행한다고 말씀 드릴 수 있습니다.
진행자) 분쟁지역에서 현지인들을 모아 훈련시켜야 한다면, 깊게 교류하는 게 필요할테고, 그러려면 언어와 문화에 대한 이해가 필수적이겠네요.
기자) 제대로 보셨습니다. 그린베레 요원은 사격이나 폭파 기술같은 전투역량뿐 아니라 언어 구사능력을 포함한 ‘지역 전문성(regional expertise)을 다지는 게 필수입니다. 이건 레인저 대원들이 다루지 않는 영역인데요. 그린베레 훈련 과정에서 중동, 아시아, 남미, 유럽 등 담당 지역 언어를 수개월 동안 집중적으로 교육받습니다. 또한 현지 종교, 부족 간 갈등, 문화적 금기 사항 같은 것들까지 정밀하게 학습합니다. 실제로 2001년 아프가니스탄 전쟁 초기, 그린베레 요원 단 12명으로 구성된 ‘ODA 595팀’이 말을 타고 아프간 현지 부족들과 동맹을 맺어 다스탄 전투를 승리로 이끌고 탈레반을 축출했던 일화는 그린베레 작전의 진수를 보여준 사례로 전사에 기록돼 있습니다.
진행자) 아프가니스탄 현지 부족에게는 그린베레 요원들이 고마운 존재였겠네요.
기자) 그렇습니다. 아까 말씀드린, 포트 브래그에 있는 ‘존 F. 케네디 특수전 박물관’에 가보면, 인상적인 전시물이 있는데요. 아프가니스탄에서 만든 거대한 카펫(양탄자)인데, 그 문양이 특별합니다. 카펫을 세로 방향으로 볼 때 제일 위에 예수가 있고, 가운데 성조기 2개가 있는데, 그 앞에 조지 W.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아프간 현지주민들이 그린베레 대원들에게 선물한 건데요. “우리를 해방시켜준 미국에 감사한다”는 의미를 담았습니다.
진행자) 그린베레의 기본적인 작전 단위가조금 전에 이야기한 12명 팀인가요 ?
기자) 그렇습니다. 이 팀 단위가 ‘ODA(Operational Detachment Alpha)’, 흔히 ‘A-팀(Team)’이라고 부르는 12인 체제인데요. 1980년대 인기가 높았던 미국 TV 드라마 ‘The A-Team(1983년 첫 방송)’의 제목도 여기서 따온 겁니다. ‘A 특공대’라는 이름으로 한국에서도 방송됐습니다.
진행자) 그린베레 12명 팀의 역할을 각자 어떻게 됩니까?
기자) 팀장과 부팀장을 맡는 장교 2명, 그리고 부사관 10명으로 구성됩니다. 이 10명이 아주 정밀하게 병과별로 짝을 이루는데요. 작전·작전지원 2명, 무기 전문가 2명, 공공·토목·폭파 전문가 2명, 의료 전문가 2명, 통신 전문가 2명입니다. 한 분야의 전문가 1명이 쓰러져도 다른 전문가 1명의 전문가가 남아 팀 전체 임무를 지속할 수 있도록 ‘투 트랙 보완(redundancy)’ 구조로 설계돼 있습니다.
진행자) 12명의 정예 요원이 각자 완벽한 자기 분야의 전문가인 셈이네요. 그린 베레가 되기 위한 선발과 훈련 과정은 어떻게 진행되나요?
기자) 험난한 ‘스페셜 포스 자격 코스 (SFQC·Q-코스)’를 통과해야 합니다. 최소 1년이 걸리는데요. 의무 병과의 경우 2년 가깝게 소요됩니다. 체력 측정과 독도법, 극강의 생존 훈련은 기본이고요, 최고 난도의 생존·전회·저항·탈출(SERE) 훈련을 거칩니다. 그리고 Q-코스의 최종 관문으로 ‘로빈 세이지(Robin Sage)’라는 전설적인 종합 평가 훈련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진행자) 로빈 세이지 훈련은 어떤 식으로 진행되나요?
기자) 노스캐롤라이나주 15개 카운티에 훈련 목적으로 구성된 거대한 민간 지역을 가상의 적국 ‘파인랜드(Pineland)’로 설정하고 펼쳐지는 대규모 비정규전 실전 훈련입니다. 지원자들은 야간 야전 침투를 시작으로 가상의 저항세력을 만나는데요. 저항 세력은 전직 그린 베레, 또는 육군 특전사(USASOC) 구성원들을 비롯한 군인들 외에, 실제 현지 주민들과 연기자들이 맡습니다. 그린베레 지원자들은 이들을 설득해 우군으로 만들고, 사격과 전술을 가르친 뒤 가상의 적 정부군을 상대로 습격과 파괴 작전을 성공시켜야 합니다. 단순히 총을 잘 쏘는 게 아니라 현지 민간인의 마음을 얻는 정치력과 리더십을 검증받는 최종 테스트인 셈입니다.
진행자) 가상 국가 ‘파인랜드’를 해방시키는 마지막 시험까지 거쳐야 비로소 녹색 베레모를 쓰게 되는군요.
기자) 그렇습니다. 이 훈련을 마친 교육생들은 비로소 포트 브래그에서, 어깨에 붙이는 ‘스페셜 포스’ 탭과 함께 초록 베레모를 수여받고 정식 그린베레로 거듭납니다. 미 육군은 그린베레를 단순한 무력 집단이나 전투 단위가 아닌 ‘무장한 지성인(Armed Intellectuals)’으로 정의하는데요. 압도적인 화력에 더해, 현지인과의 깊은 신뢰 관계가 전쟁의 승패를 가른다는 점을 증명하는 미군의 독보적인 비대칭 전략 자산입니다.
진행자) 아까 특수전 박물관 이야기가 두 차례 나왔는데, 박물관 명칭에 존 F. 케네디 전 대통령 이름이 붙은 이유는 뭔가요?
기자) 그린베레와의 특별한 인연 때문입니다. 케네디 대통령 재임 시절은 소련과의 냉전으로 미군 수뇌부가 핵전력과 대규모 정규전 전략 전술 수립에 몰두할 때였는데요. 케네디 당시 대통령은 전면전보다는 소수 정예 특수작전이 미래 전쟁의 핵심 형태가 될 것이라고 판단해, 특전부대 육성에 힘을 실어준 것으로 미 육군 자료에 기록돼 있습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1961년, 녹색 베레모 착용을 공식 허가한 인물이 케네디 당시 대통령이었습니다. 케네디 대통령 서거 직후인 1963년 말부터 미 육군은 포트 브래그에 있는 특수전 학교와 박물관을 ‘존 F. 케네디 특수전 센터· 학교(USAJFKSWCS)’와 ‘JFK 특수전 박물관’으로 명명했습니다.
적진 한가운데 침투해 현지인들의 마음을 얻고 전세를 바꾸는 미 육군 비정규전 부대 그린베레의 세계, ‘미국 군사·안보 백브리핑’에서 살펴봤습니다. 오종수 기자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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