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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 대학생들 “한국전 유해 발굴 통해 자유와 평화 소중함 깨달아”


남북한 대학생들이 지난 21~22일 한국전쟁 전사자 유해 발굴 캠프에 참가했다. 사진제공=비욘드더바운더리(BTB:beyond the boundary).
남북한 대학생들이 지난 21~22일 한국전쟁 전사자 유해 발굴 캠프에 참가했다. 사진제공=비욘드더바운더리(BTB:beyond the boundary).

남북한 출신 대학생들이 4년째 한국전쟁 전사자 유해 발굴 캠프에 참여하며 자유와 평화의 소중함을 체험하고 있습니다. 전쟁의 상흔을 고스란히 간직한 유해 발굴 현장에서 전사자들의 희생을 돌아보면서, 당연한 것으로 여겼던 자유와 평화에 대해 다시 생각하는 계기가 됐다고 말합니다. 김영권 기자가 7·27 정전협정 67주년을 맞아 캠프 참가자들의 얘기를 들어봤습니다.

지난 2014년 아버지와 서해에서 헤엄쳐 한국으로 망명한 뒤 서울의 명지대학교에 다니는 한설송(가명) 씨는 한국전쟁 전사자 ‘유해 발굴 캠프’에 3년째 참가하고 있습니다.

[녹취: 한설송 씨] “유해 발굴을 하면서 제 정체성을 더 확립했습니다. 죽는 것보다 더 싫어서 탈출한 곳과 탈출해서 정착한 곳의 접경 지역에 가서 유해 발굴 체험하지 않습니까? 그래서 그 분들의 노력이 없었으면 지금 우리가 누리고 있는 이 평화도 참 힘들었을 것이다…”

자신은 자유를 찾아 북한을 탈출해 한국으로 왔고, 70여 년 전 자신의 나이와 비슷한 청년들은 그 자유를 지키기 위해 자신을 희생했기 때문에 그 감회가 남다를 수밖에 없다는 겁니다.

[녹취: 한설송 씨] “저는 탈출해서 찾아온 자유죠. 그런 자유와 글쎄요 비교가 될까요? 그 분들은 70년 간 그 곳에 방치됐는데, 그 분들이 그런 희생을 마다하지 않고 지켜낸 자유! 그래서 그런 희생으로 더 값진 자유가 이 곳에 생기게 됐다고 생각합니다.”

한국의 민간단체인 ‘비욘드더바운더리’(Beyond The Boundary)가 지난 2017년부터 시작한 ‘소통캠프-유해발굴캠프’가 지난 20~21일 비무장지대(DMZ)에서 가까운 강원도 인제군 고성재에서 열렸습니다.

탈북 대학생과 남한 출신 대학생 40명이 참가해 해마다 1~2차례 사흘 일정으로 캠프를 열었지만, 올해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여파로 일정을 이틀로 줄이고 인원도 1, 2차 각각 25명으로 제한했습니다.

이 단체 이영석 사무국장은 젊은이들이 역사의 현장에서 유해 발굴을 직접 체험하면서 느끼는 소중한 것들이 있기 때문에 캠프를 4년째 열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이영석 국장] “그냥 전쟁이 위협이다, 평화의 소중함 이런 것을 책으로 배우기보다 역사의 현장에 가서 전쟁의 비극적 상황을 보고 유해 현장을 체험하면서 호국영령에 대한 감사한 마음도 갖고, 무엇보다 참가한 친구들이 스스로 평화를 유지하고 조국을 지키기 위해서 자기가 어떤 일을 할 수 있는지 생각하는 데 초점을 둬서 캠프를 진행합니다.”

올해는 짧은 일정 때문에 취소됐지만, 학생들은 유해 발굴 작업 전에 육군과학화전투훈련단의 지원 속에 직접 전투복을 입고 가상전투에 참여하며 전쟁의 참상을 간접적으로 체험합니다.

이후 깊은 산 속에 있는 유해 발굴 현장으로 이동해 한국 군 유해발굴감식단 소속 장병들과 직접 삽과 장비를 들고 작업에 참여합니다.

캠프 참가 대학생들이 유해발굴 현장으로 이동하고 있다. 사진제공=비욘드더바운더리(BTB:beyond the boundary)
캠프 참가 대학생들이 유해발굴 현장으로 이동하고 있다. 사진제공=비욘드더바운더리(BTB:beyond the boundary)

올해 처음으로 캠프에 참가한 연세대학교 김현수 씨는 전쟁의 참상과 평화의 소중함을 새롭게 깨닫는 소중한 시간이었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김현수 씨] “저는 그렇게 산속 첩첩산중 속을 걸어본 적이 없었던 것 같아요. 그냥 정해진 등산길만 가봤지. 그래서 그렇게 길을 따라 계속 걷고, 거기에서 돌아가신 분의 유해도 보고, 탄알도 보니까 그 (전쟁) 상황에서 얼마나 (참전용사들이) 긴장됐고 두려웠을지. 우리 나이 또래였을 텐데. 그런 전쟁 상황에 대한 현장감을 많이 느꼈던 것 같아요.”

설송 씨는 현장 주변에 총과 포탄 파편이 너무 많아 놀랐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한설송 씨] “금속탐지기는 금속이 조금만 있어도 소리가 나지 않습니까? 그런데 총포탄 파편이 모두 금속이다 보니 온 산에 그런 파편들이 널려 있어서 금속탐지기로는 제대로 탐사가 이뤄지지 않았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만큼 그 날에 얼마나 총포탄이 비 오듯 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유해가 발굴 중 쉽게 손상될 수 있기 때문에 학생들은 삽과 호미 등으로 흙을 조금씩 긁어 가면서 조심스럽게 작업을 진행했다고 말했습니다.

현수 씨는 이를 “매우 엄중하면서도 아름다운 체험”이었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김현수 씨] “그 잔해가 있고 역사의 흔적들이 그냥 있는 게 아니라 그 것들을 다시 찾고, 조국을 위해 열심히 몸을 바치신 분들을 우리가 후손으로서 다시 찾으려고 한다는 게 일을 하다가 잠깐잠깐 허리를 들어서 옆에서 삽질을 열심히 하고 있는 분들을 보니까 정말 아름다웠습니다.”

대학생들이 직접 유해 발굴을 위한 땅을 파고 있다. 사진제공=비욘드더바운더리(BTB:beyond the boundary).
대학생들이 직접 유해 발굴을 위한 땅을 파고 있다. 사진제공=비욘드더바운더리(BTB:beyond the boundary).

한국 국방부에 따르면 한국전쟁 중 전사한 한국군은 16만 2천여 명으로, 이 가운데 13만여 명이 여전히 실종된 상태입니다.

군사정전위원회 자료에 따르면 북한군 사망자는 52만 명으로 한국군보다 훨씬 많지만, 한설송 씨 등 탈북민들은 북한에 있을 때 북한군 유해 발굴 얘기는 들어보지 못했다고 말했습니다.

한 씨는 그러면서 한 명이라도 더 찾아내 가족의 품으로 돌려보내려는 한국과 미국 당국의 노력에 또 다른 감동을 받는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한설송 씨] “유해 현장에서는 국군 유해만 발견되는 게 아니고 미군 유해부터 연합군 군인들의 유해도 발굴된다고 들었습니다. 사진도 봤고요. 국경을 떠나서 자유를 사랑하는 온 인류의 마음이 합해져서 자유를 사수한 현장이란 곳도 알게 됐습니다. 또 그 분들을 끝까지 찾는 노고도.”

미 국방부에 따르면 한국전쟁 미군 실종자는 북한에 5천 300여 구, 한국에 930여 구가 있으며, 미국은 지난 1996~2005년까지 북한에서 유해 발굴 작업을 하다 미-북 관계 악화로 중단했고, 한국은 전문 분석요원들을 파견해 작업을 지속하고 있습니다.

이영석 국장은 유해 발굴 캠프 참석 전후에 학생들의 생각과 자세가 많이 바뀌는 모습을 보며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이영석 국장] “대부분의 친구들은 6·25전쟁, 북한과 남한, 이런 식으로 가볍게 생각했던 것들, 영화상으로만 봤던 것들을 유해 발굴을 위해 산으로 올라가면서 친구들끼리 하는 얘기가 왜 여기를 총을 들고 뛰어왔을까요? 라는 얘기를 많이 합니다. 너무 힘들기도 한데 아무 것도 없는 이 곳에 왜 뛰어왔나? 그런데 그렇게 막연하게 툴툴거리다가도 정말 말이나 영화로 그 무엇으로도 표현할 수 없는 유해 현장에서만 느낄 수 있는 느낌이란 게 있어요. 현장감! 그 것을 본인들이 직접 느끼고 나면 떠드는 사람이 없습니다.”

그런 숙연함 속에서 “역사와 자기 자신을 돌아보고, 아무 생각 없이 누렸던 자유가 누군가의 희생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란 데 대한 고마움을 스스로 느낀다”는 겁니다.

실제로 캠프 뒤 학생들이 나눈 대화록과 후기를 보면 진지함과 감사의 마음을 엿볼 수 있습니다.

“6·25 전쟁 전사자 분들의 헌신과 희생이 오늘날의 평화와 자유를 가져다주었음을 깊게 깨달았다.”(국민대 김00 씨),

“직접 현장에서 6·25 전쟁 전자사 분들의 유해와 유품을 보며 무섭고 긴박한 상황에서 조국을 위해 목숨을 바쳐 피 흘리며 싸우신 영웅 분들의 모습이 떠올라 숙연한 마음과 함께 존경심과 감사함이 들었다.”(숙명여대 박00 씨),

“평화는 누군가의 생명을 담보로 지켜진다는 것을 알게 됐다. 평화의 소중함이 익숙함이 되어 나도 모르는 사이 고마움을 잃어가지 않게 노력해야겠다는 생각을 갖게 됐다.” (건국대 양00 씨)

현수 씨는 이런 전쟁의 현장을 탈북 대학생들과 함께해서 감회가 더 새로웠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김현수 씨] “감회가 새로웠던 게 전쟁 당시에는 적이라고 여겨진 사람들과 같이 그 현장을 찾은 거잖아요. 그렇게 생각하니까 다시 평화의 의미에 대해 함께 나누는 계기도 됐고. 저는 딱히 큰 차이를 느끼지 못했던 것 같아요. 그냥 사람 대 사람으로 만났는데 알고 보니 탈북 대학생이다. 아 그렇구나. 사람을 알아가는 데 그런 배경이 있었구나. 그런데 우리는 지금 여기 모여서 즐겁게 담소를 나누고 의미 있는 활동도 하고 있지. 그런 만남이었던 것 같아요.”

남북 대학생들은 이번 캠프에서 머리부터 등까지 온전한 형태의 유해 1구를 발견했습니다.

학생들은 유해 앞에 국화꽃을 하나씩 놓으면서 전몰 장병에게 70여 년이 지나서야 빛을 보게 해드린 데 대한 미안함과 감사함이 밀려와 많이 울컥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이런 뜻깊은 유해 발굴 캠프에 더 많은 친구들을 초대하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김현수 씨] “군인 분들, 북한 학생들, 남한 학생들, 새로운 좋은 사람들을 만나서 의미 있는 일을 할 수 있는 굉장히 좋은 경험입니다. 요즘 친구들 해외봉사 많이 나가려고 하는데, 그 어떤 해외봉사보다 더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녹취: 한설송 씨] “제가 캠프를 3년째 오는 이유는 자유에 대한 초심을 잃지 않으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각자의 삶에 치우쳐서 바쁘게 사는 사람들이라도 자유를 누리는 사람들이라면 꼭 알아야 할 그런 것을 가르쳐주는 현장이라고 저는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VOA 뉴스 김영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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