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업용 위성사진 등을 이용한 민간단체들의 정보활동이 국가의 정보 독점에 도전을 제기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왔습니다. 전문가들은 민간 차원에서 정부의 전유물로 여겨져 온 자료들에 접근할 수 있게 된 것은 긍정적이지만 세심한 주의가 필요하다고 지적합니다. 함지하 기자가 보도합니다.
지난 2019년 2월 북한 동창리 미사일 발사장에서 작은 움직임이 관측됐습니다.
민간업체인 `플래닛 랩스'의 일일 단위 위성사진 서비스를 통해 발사장 내 미사일 조립건물 앞에 하얀색 물체가 놓였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하는 장면이 확인된 겁니다.
이 조립건물은 미-북간 첫 정상회담 직후인 2018년 7월 해체작업을 위해 발사장 중간지점으로 이동해 있는 상태였는데, 미-북 2차 정상회담을 며칠 앞두고 새로운 움직임이 포착되면서 큰 관심을 끌었습니다.
결국 며칠 뒤인 3월6일 이 건물은 재조립돼 해체 이전에 있던 자리로 이동했습니다.
이 모든 과정은 ‘플래닛 랩스’와 ‘디지털 글로브’ 등 상업용 위성사진에 촬영돼, VOA와 북한전문 매체 ‘38 노스’,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의 한반도전문 웹사이트 ‘분단을 넘어’ 등을 통해 일반에 공개됐습니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군사기밀로 다뤄졌던 내용이지만 상업용 민간 위성서비스가 발달하면서 언론매체와 연구기관은 물론 일반인들까지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정보가 된 겁니다.
상업용 위성사진처럼 공개된 출처를 통해 수집되는 정보는 ‘오픈 소스 인텔리전스’, 줄여서 ‘오신트(OSINT)’로 불립니다.
영국의 매체 ‘이코노미스트’는 5일 ‘오픈 소스 인텔리전스가 국가의 정보 독점에 도전하다’는 제목의 기사를 통해 민간 차원에서 이뤄지고 있는 정보 수집활동들을 조명했습니다.
‘이코노미스트’는 민간 차원의 정보 수집과 분석이 크게 늘었다면서 ‘제임스 마틴스 비확산센터’ 등 위성사진을 통해 북한의 핵 관련 시설 등을 분석하는 단체들과 실제 사례들을 소개했습니다.
가령 북한의 미사일 궤적이 촬영된 위성사진이 이들 기관을 통해 공개되고, 평범한 대학생이 중국 서부 지역에 건설되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용 사일로를 위성사진 서비스를 통해 찾아냈다는 겁니다.
특히 위성사진 자료뿐 아니라 항공기와 선박 등의 이동 경로를 보여주는 민간 웹사이트 등도 ‘오신트’의 영역에 포함된다면서, 온라인 상에 방대한 데이터베이스가 구축된 상태라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실제로 ‘마린트래픽’ 등 선박의 실시간 위치정보를 보여주는 웹사이트를 통해 과거 제재 대상 북한 선박들의 이동경로가 포착되고, 각국의 선박 입출항 현황 정보에서도 대북 제재 위반 선박이 드나드는 내용 등이 일반에 공개된 바 있습니다.
미 중앙정보국(CIA) 분석관 출신인 브루스 클링너 해리티지재단 선임연구원은 이 매체에 “내가 보안시설에서 얻어야 했던 것과 같은 양질의 정보를 사람들이 개인전화기를 통해 얻을 수 있게 됐다”고 말했습니다.
‘이코노미스트’는 ‘오신트’가 국가 정보 독점권을 약화시키면서, 국가 차원의 분석에 도전을 제기하는 경우도 생기고 있다고 소개했습니다.
그러면서 ‘제임스 마틴스 비확산센터’와 다른 ‘오신트’ 단체들은 북한의 핵 역량에 대해 미국 정부보다 더 현실적인 분석을 지속적으로 제공해 왔다고 지적했습니다.
미국 정부는 북한이 핵 역량을 개발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겠다고 계속 주장해 왔지만, ‘오신트’의 증거들은 북한이 그런 역량을 이미 갖췄다는 것을 보여줬다는 겁니다.
‘오신트’의 부정적인 면도 소개됐습니다.
군사적으로 민감할 수 있는 내용들이 쉽게 공개되면서 자칫 미국의 군사활동에 부정적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우려가 그 중 하나입니다.
제임스 마틴스 비확산센터의 제프리 루이스 동아시아 담당 국장은 이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우리는 종종 (정부의) 전문적인 위성사진 분석가들로부터 자신들의 기법이 일반에 노출되는 걸 보길 원치 않는다는 불만을 듣는다”며, “그들은 이런 것들이 적을 도울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말했습니다.
원어스퓨처 재단의 멜리사 해넘 국장도 자신의 ‘오신트’ 활동을 통해 북한의 잠수함 발사 탄도미사일이 왜 실패하는지에 대한 이론을 얻었지만, 이것이 미사일 발사자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이유 때문에 공개하지 않았던 사례를 소개했습니다.
실제로 위성사진 분석 전문가들은 무분별한 ‘오신트’ 활용에 우려의 입장을 보이고 있습니다.
1960년대부터 미 육군 등에서 위성사진 분석가로 활동했던 닉 한센 미 스탠포드대학 국제안보협력센터 객원연구원은 5일 VOA와의 전화통화에서 정부기관의 분석처럼 민간 차원에서도 좀 더 책임이 있는 분석이 이뤄져야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녹취: 한센 연구원] “You're looking in something that you're hundreds of miles away and you're looking at resolutions that are in some cases not very good and you're trying to come up with answers and sometimes you guessed wrong, you know, it's as simple as that.”
수 백 마일 떨어진 곳에 있는 특정 지점을 화질이 매우 낮은 사진을 통해 볼 땐 그 분석이 틀릴 수 있다는 겁니다.
한센 연구원은 민간단체들이 위성사진 분석에 경쟁적으로 뛰어들면서 ‘아니면 말고’ 식 발표가 이뤄지는 경우도 점점 늘고 있다고 비판했습니다. 이들이 정확성 보다는 신속성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겁니다.
[녹취: 한센 연구원] “I think that should be peer reviewed by people who know something about the place as opposed to some of these guys who really don't.”
한센 연구원은 관련 업계에 있는 사람들이 서로 분석을 검토해 주고, 때로는 해당 지역을 방문한 사람을 통해 검증을 하는 등의 작업이 뒤따라야 한다고 조언했습니다.
위성사진을 통해 북한의 활동을 분석하는 데 따른 한계에 대한 지적도 제기됐습니다.
한미연합사령부 작전참모 출신인 데이비드 맥스웰 민주주의 수호재단 선임연구원은 북한의 ‘기만술’에 유의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맥스웰 연구원] “We must remember that North Korea is masterful at denial and deception. So everything we see, we have to assume they want us to see and we should consider what is it that we are not see it, you know, that they are hiding from us.”
북한은 특정 사실에 대한 ‘부인’과 ‘속임수’에 능하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는 겁니다.
맥스웰 연구원은 “우리가 보는 모든 건 북한이 우리가 보기를 원하고 있다고 가정해야 하며,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 숨기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고려해야 한다”면서, 아무 것도 일어나지 않고 있는 곳에서 오히려 모든 일이 벌어지고 있을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VOA 뉴스 함지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