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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대북 전단 조치 안 하면 남북 군사합의 파기”…한국 “규제법 추진”


지난 2014년 한국 경기도 파주에서 탈북자 단체 관계자들이 북한 김정은 정권을 비판하는 내용의 전단을 실은 풍선을 북으로 날려보내고 있다. (자료사진)
지난 2014년 한국 경기도 파주에서 탈북자 단체 관계자들이 북한 김정은 정권을 비판하는 내용의 전단을 실은 풍선을 북으로 날려보내고 있다. (자료사진)

북한이 한국 내 탈북민들의 대북 전단 살포 행위를 한국 정부가 막지 많으면 남북 군사합의를 파기할 수 있다고 위협했습니다. 한국 정부는 접경 지역 주민들의 생명과 재산 보호 차원에서 대북 전단 살포 행위를 규제하는 법 제정을 추진 중이라고 밝혔습니다. 서울에서 김환용 기자가 보도합니다.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여동생인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은 4일 담화를 내고 한국 내 탈북민들의 대북 전단 살포 행위를 한국 정부가 막아야 한다며, 이를 방치할 경우 최악의 국면까지 내다봐야 할 것이라고 위협했습니다.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에 따르면 김 제1부부장은 담화에서 “남한 당국이 응분의 조처를 세우지 못한다면 금강산 관광 폐지에 이어 개성공업지구의 완전 철거가 될지, 남북 공동연락사무소 폐쇄가 될지, 있으나 마나 한 남북 군사합의 파기가 될지 각오해야 할 것”이라고 경고했습니다.

김 제1부부장은 지난 2018년 4.27 판문점 선언에 담긴 남북 정상 간 합의 사항 중 군사분계선 일대에서의 모든 적대행위를 금지하기로 한 내용을 언급하며 대북 전단 살포를 저지할 법을 만들거나 단속에 나서라고 구체적인 요구를 내걸었습니다.

앞서 한국 내 탈북민 단체인 자유북한운동연합은 지난달 31일 김포에서 대북 전단 50만장과 소책자 50권, 1달러 지폐 2천장, 메모리카드 1천개를 대형 풍선에 매달아 북한으로 날려 보냈습니다.

전단에는 ‘7기 4차 당 중앙군사위에서 새 전략 핵무기로 충격적 행동하겠다는 위선자 김정은’이라는 문구 등이 실렸습니다.

한국 정부는 김 제1부부장의 담화에 대해 “접경 지역 국민의 생명과 재산에 위협을 초래하는 행위는 중단돼야 한다”며 대북 전단 살포 중단을 강제하기 위한 법 제정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습니다.

여상기 통일부 대변인은 “대북 전단 살포가 접경 지역의 긴장 요소로 이어진 사례에 주목해 여러 차례 전단 살포 중단에 대한 조치를 취해왔다”며 “실제로 살포된 전단의 대부분이 국내 지역에서 발견되고 접경 지역의 환경오염, 폐기물 수거 부담 등 지역주민들의 생활 여건을 악화하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녹취: 여상기 대변인] “정부는 이런 상황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접경 지역에서의 긴장 조성 행위를 근본적으로 해소할 수 있는 실효성 있는 제도 개선 방안을 이미 검토하고 있습니다.”

여 대변인은 대북 전단 문제가 판문점 선언 관련 사항이었던 만큼 한국 정부가 판문점 선언 이행 차원에서 김 제1부부장의 이번 담화가 나오기 전부터 법 정비를 준비해 왔다고 설명했습니다.

여 대변인은 정부 입법으로 추진될 가능성이 크다면서도 법안 발의 시기나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서는 “종합적으로 검토 중”이라고만 답변했습니다.

청와대도 대북 전단 살포가 안보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기자들과 만나 “전단 살포는 백해무익한 행동”이라며 “안보에 위해를 가져오는 행위에는 정부가 단호히 대응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 관계자는 또 “청와대는 4·27 판문점 선언과 9·19 군사합의가 지켜져야 한다는 입장에 변함이 없다”고 강조했습니다.

북한은 그동안 최고지도자를 비난하는 내용의 대북 전단에 민감한 반응을 보여왔지만 이번엔 김 제1부부장 명의의 담화를 통해 남북교류 확대를 추진하고 있는 한국 정부를 압박하고 있다는 분석입니다.

한국 국가정보원 산하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조성렬 박사는 김 제1부부장이 담화를 낸 것은 지난 4월 한국 총선에서 당선된 탈북민 출신 국회의원들의 임기가 최근 시작되면서 탈북민들의 반 김정은 캠페인에 대한 우려가 커진 때문으로 보인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조성렬 박사] “전단 자체보다도 북한이 이것을 그냥 방치할 경우 지금 국회에 미래통합당의 국회의원이 둘 들어왔잖아요, 탈북자들이. 그래서 이것을 방치하면 앞으로도 계속해서 예를 들면 국회의원들이 나서서 대북 전단을 살포할 수도 있는 것이고, 이게 정치적으로 더 커질 수 있다고 보는 거죠.”

하지만 한국 정부의 대북 전단 규제법 제정 추진은 논란을 빚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과거에도 이른바 ‘대북 전단 살포 금지법’을 제정하는 방안이 거론됐지만 표현의 자유를 보장한 헌법에 위배된다는 반론에 직면하곤 했습니다.

지난 2018년엔 대북 전단 살포 때 미리 통일부 장관의 승인을 받도록 하는 내용의 남북교류협력법 개정안이 발의됐지만, 통과되지 못했습니다.

한국 정부는 법으로 금지하는 게 어렵자 예고하고 진행되는 공개적인 대북 전단 살포에 대해선 주민 보호를 명분으로 경찰력을 동원해 제지하기도 했습니다.

실제로 2014년 10월 북한이 한 탈북민 단체가 경기도 연천에서 날린 대북 전단 풍선을 향해 고사총을 발사하고 이에 한국 군이 응사하면서 군사적 긴장이 크게 고조돼 접경 지역 주민들이 크게 불안해 한 일이 있었습니다.

오랫동안 대북 전단 보내기 운동을 펴온 탈북민 출신의 이민복 북한동포직접돕기운동본부 대북풍선단장은 공개적인 대북 전단 살포는 접경지 주민들을 불안하게 하는 문제점이 있는 게 사실이라면서도, 비공개 활동까지 막는 것은 위헌 소지가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녹취: 이민복 단장] “표현의 자유는 헌법에 있는 건데 정부와 정부 간 약속이라고 해서 정부끼리는 안 하는 게 맞지만 민간까지 어떻게 이걸 적용해요?”

자유북한운동연합 박상학 대표는 북한이 지난해 11월 남북접경인 창린도에서의 해안포 사격과 최근 북한군의 남측 감시초소(GP) 총격 사건으로 남북 군사합의를 위반한 데 대해 아무런 사과도 없는 상황에서 대북 전단 중단 요구를 받아들여선 안 된다고 반박했습니다.

박 대표는 그러면서 한국전쟁 70주년을 맞는 오는 25일 즈음에 대북 전단을 또다시 보내겠다고 밝혔습니다.

[녹취: 박상학 대표] “바람 따라 하는 일이라 그날 가겠는지 그 전날에 가겠는지 아마 6월25일 전에 풍향 좋은 날을 선택해서 하려고 합니다.”

여상기 통일부 대변인은 “해당 단체의 계획에 대해 관계기관과 협의 하도록 하겠다”며 대응책을 마련하겠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서울에서 VOA 뉴스 김환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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