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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인들 북한 상대 민사 승소액 37억 달러...향후 미북관계 과제"


지난 1968년 1월 23일 북한에 납치된 미 해군 정보수집함 푸에블로호 승조원들. 당시 북한 관영매체가 공개한 사진이다.
지난 1968년 1월 23일 북한에 납치된 미 해군 정보수집함 푸에블로호 승조원들. 당시 북한 관영매체가 공개한 사진이다.

최근 북한 정권을 상대로 한 미국인들의 민사소송이 크게 늘어난 가운데 앞으로 이 문제가 미-북 관계의 과제로 떠오를 것이란 전망이 나왔습니다. 비핵화와 제재 완화 등 양국간 산적한 현안 가운데 수 십 억 달러에 달하는 손해배상금도 무시 못할 문제라는 겁니다. 함지하 기자가 보도합니다.

워싱턴의 민간단체인 전미북한위원회(NCNK) 대니얼 워츠 수석고문이 최근 위원회 웹사이트에 ‘대북 소송’과 관련한 장문의 보고서를 올렸습니다.

올해 2월 미 해군 푸에블로호 승조원들이 북한에 대한 민사소송에서 23억 달러에 달하는 승소 판결을 받고, 또 북한 정권에 억류 피해를 입었던 케네스 배 씨가 지난해 소장을 제출하는 등 북한을 상대로 한 소송이 최근 늘어난 데 따른 것입니다.

워츠 고문은 푸에블로호 승조원들과, 북한에 억류됐다 송환된 뒤 숨진 미국인 대학생 오토 웜비어의 부모, 북한 공작원에 의해 납치된 뒤 숨진 것으로 알려진 김동식 목사의 유족 등 북한 정권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해 최종 승소 판결을 받은 원고들의 배상액 규모가 37억 달러가 넘는다고 밝혔습니다.

게다가 아직 진행 중인 소송까지 더해지면 배상액 규모는 앞으로 더 커질 것으로 전망했습니다.

그러면서, 앞으로 미국과 북한의 “관계정상화에 있어 어떤 식으로든 해결해야 될 많은 사안 중 하나”라고 밝혔습니다.

북한 핵 문제와 제재 완화, 인권, 주한미군 등 여러 외교 의제들과 비교할 때 배상금은 부차적 문제지만, 미-북 협상이 진전되면 이 사안이 어려우면서도 민감한 주제가 될 수 있다는 겁니다.

실제로 워츠 고문은 이와 유사한 문제에 직면했던 다른 나라들의 사례를 소개했습니다.

특히 지난 2003년 핵 폐기를 놓고 미국과 협상을 벌였던 리비아의 무아마르 가다피 정권의 경우, 정권이 지원했던 과거 테러 사건의 피해자들에 대한 보상 문제가 미국과의 관계 회복에 큰 걸림돌로 작용했었다고, 워츠 고문은 지적했습니다.

리비아는 1986년 서독 폭탄 테러와 1988년 팬암 항공기 폭파 사건 등으로 미국 정부에 의해 테러지원국으로 지정된 상태였고, 이에 따라 다른 나라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할 수 없도록 하는 ‘면책특권’이 사라지면서 사건 피해자들에 대한 거액의 배상 의무가 발생했습니다.

워츠 고문은 2008년 미 의회가 대통령의 협상 권한을 부여하는 법안을 통과시키는 등의 노력을 했다면서, 이에 따라 미국 정부는 리비아의 면책특권을 회복시키는 대신 리비아가

피해자들에게 15억 달러를 보상하도록 하는 내용에 합의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습니다.

또 지난해 미국 정부의 ‘테러지원국’ 해제 결정을 받은 아프리카 나라 수단 역시 1998년 미 대사관 폭파 사건 피해자들에게 3억 3천 500만 달러를 보상하기로 합의했다고 소개했습니다.

배상금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미국과의 관계 회복에 나선 나라도 있었습니다.

워츠 고문은 쿠바는 지난 2015년을 전후해 오바마 전임 행정부와 관계를 복원했지만 이 때 40억 달러에 달하는 미 법원의 배상 명령액과 관련된 내용은 두 나라 사이에 다뤄지지 않았다고 전했습니다.

하지만 쿠바는 2016년 미국과 쿠바 사이의 항공직항로가 열린 뒤에도 정부 소유 여객기가 절대 미국 땅을 밟지 못하도록 했는데, 이는 자칫 해당 여객기가 미 법원에 의해 압류될 수 있었기 때문이라고, 워츠 고문은 설명했습니다.

결국 북한도 미국과의 관계정상화 과정에서 미국인에 대해 배상금을 지급해야 할 수 있고, 만약 해결하지 못하면 미 법원에 자국 자산이 압류될 위험성을 안아야 한다는 지적입니다.

다만 워츠 고문은 북한이 배상금을 지급하는 대신 미 법원에서 판결을 뒤집거나, 제재로 인한 경제적 피해를 근거로 미국에 배상금을 요구하는 방식으로 협상에 나설 가능성도 제기했습니다.

실제로 2019년 수단 정부는 과거 미 법원이 외교부가 아닌 수단대사관에 소송 내용을 통보했다는 이유를 들어 해당 판결을 되돌린 사례가 있습니다.

워츠 고문은 미국과 북한이 배상금을 놓고 합의를 이룰 가능성은 희박하다면서도 “향후 몇 년 혹은 수 십 년의 상황 변화에 따라 배상금 청구 문제와 관련한 정치적 영향력은 매우 커질 수 있다”고 분석했습니다.

현재 미국 법은 다른 나라 정부에 대한 소송을 금지하고 있지만, 미국이 테러지원국으로 지정한 나라에 대해서는 ‘외국주권면제법(FSIA)’에 의거해 예외로 하고 있습니다.

미국은 지난 1988년 북한을 테러지원국으로 지정한 뒤 2008년 해제했지만, 전임 트럼프 행정부는 웜비어 사망 사건을 계기로 2017년 북한을 테러지원국으로 재지정했습니다.

VOA 뉴스 함지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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