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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풍경] 미군 한국전 참전용사들을 사진으로 기록하는 한국인 사진작가 


사진작가 라미 현이 촬영한 한국전 참전용사 살 스칼라토 씨. 사진=라미 현.
사진작가 라미 현이 촬영한 한국전 참전용사 살 스칼라토 씨. 사진=라미 현.

매주 금요일 북한 관련 화제성 소식을 전해 드리는 ‘뉴스 풍경’입니다. 한국전쟁 참전용사들의 사진을 찍어 감사의 마음을 전하는 한국인 사진작가가 있습니다. 이 작가는 지금까지 800명이 넘는 미군 참전용사를 만났습니다. 장양희 기자가 전해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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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미 현 씨는 미국에서 2003년부터 7년 간 유학생활을 하며 사진을 공부한 한국인 사진작가입니다.

2013년, 평소 대단치 않게 여겼던 직업군인들의 삶을 우연히 듣게 된 현 씨는 자신뿐 아니라 가족의 삶까지 희생하며 나라와 국민을 지키는 군인들에 대한 존경과 감사의 마음을 갖게 됐습니다.

이를 표현할 목적으로 카메라를 든 현 씨는 군인들의 가족, 군복, 군 관련 단체 등의 사진을 찍어 전시회를 열었습니다.

현 작가가 미국인 한국전 참전용사를 처음 만난 건 2016년 한국에서 열린 사진전시회에서 였습니다.

[녹취: 라미 현] “한국전 참전용사를 처음 만나게 된 거죠. 티비나 뉴스에서 신문에서 봤던 참전용사인데 직접 본 건 처음이었거든요. 그 때 좀 남달랐었죠. 눈에서 광채가 나고 자부심이 그렇게 대단한 사람은 처음 봤거든요.”

제복 차림의 노병은 살바토르 스칼라토 씨였고, 현 작가는 인화한 사진 속 그의 눈빛에서 다시 같은 감정을 느꼈습니다.

한국을 방문한 다른 참전용사들에게서도 스칼라토 씨와 같은 자긍심을 발견한 현 작가는 그 이유가 무엇인지 찾아보기로 결심합니다.

라미 현 사진작가(오른쪽)가 미국인 한국전 참전용사와 대화하고 있다. 사진='Project Soldier KWV' 유튜브 캡쳐.
라미 현 사진작가(오른쪽)가 미국인 한국전 참전용사와 대화하고 있다. 사진='Project Soldier KWV' 유튜브 캡쳐.

유학 후 패션사진 작가로 활동하다 한국 군인을 만나면서 생긴 현 작가의 관심은 이후 미국인 노병을 계기로 확대되면서 ‘프로젝트 솔져 KWV(Korean War Veterans)’를 출범하게 됩니다.

이 프로젝트는 현 작가가 유엔 참전국 22개 나라의 퇴역군인들을 만나 사진을 찍고 액자에 담아 감사의 뜻을 직접 전하는 보훈활동입니다.

이를 위해 현 작가는 2017년부터 미국과 영국을 40여 차례 오갔고, 지난해에는 8개월 간 미국에 머물며 마스크를 쓰고 참전용사들을 방문했습니다.

현재까지 만난 총 1천420여 명의 참전용사 가운데 미국인은 800-900 명으로, 이들과의 만남을 통해 자신의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았다고 말합니다.

현 작가는 2차 세계대전 이후 어느 때보다 자유와 민주주의 가치에 대한 인식이 높았고, 당시 미국의 청년들은 그런 시대의 부름에 응했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녹취: 라미 현] “아버지나 삼촌 형들이 다 참전용사였어요. 그리고 그들이 유대인을 해방하고 자유와 민주주의를 뿌리내렸다는 것에 엄청난 자부심이 있었고, 나도 우리 아버지처럼, 나도 형들처럼 군복을 입고 총을 들고 자유를 전파했지. 그 당시에는 자유인의 의무가 있는데 다들 자유를 뺏기거나 자유가 없는 사람들한테 그쳤고 지켜주는 게 그들의 사명이었다고 했어요…”

한국전쟁은 정전협정에 머물렀고 미국사회가 주목하지도 않았지만 자유와 민주주의가 뿌리내린 모습을 본 것은 이들에게 자긍심이 됐다고 설명합니다.

[녹취: 라미 현] “그러니까 많은 사람들이 한국에서 이 분들이 대가 없이 왔다고 생각하는데, 그 분들이 원한 대가는 이 땅의 자유와 민주주의를 지키는 거였어요. 그걸 보고 오신 거고 그게 당장은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70년, 50년 뒤에 봤더니 지금은 완벽하게 경제성장뿐 아니라 자유와 민주주의가 탄탄한 한국사회가 됐고 그게 어렸을 때 봤던 가장 이상적인 나라가 지금 한국이기 때문에 그 분들의 자부심이었던 것이었어요.”

장병들의 희생을 기리고 감사의 마음을 전하는 활동은 동영상 공유 사이트의 유튜브 ‘Project-Soldiers (KWV)’ 홍보영상을 통해 소개되고 있습니다.

▶ 'Project Soldier KWV' 유튜브 채널 바로 가기

60여 개 영상에는 영국, 미국 내 참전용사와의 일대일, 그룹 영상, 현지 한인 후원자, 미디어 인터뷰 등 다양한 내용이 담겼습니다.

이번 여정에 불씨를 지핀 스칼라토 씨의 영상에서는 한국전 참전용사인 그가 수집한 물건들이 방 하나를 가득 채웠는데, 현 작가가 직접 소개합니다.

[라미 현] “박물관이 아니라 집에 있는 지하실입니다. 그동안 모으셨던 사진, 메달, 시계, 훈장, 동전.. 해병 모자, 인형, 엄청나죠? 장진호 전투에서 활약하셨거든요. 부상을 입으셔서 퍼플하트 훈장도 받으시고…”

한국전 당시 한국군으로부터 받은 하얀 스카프에는 오래된 태극기가 그려져 있고 한글로 적은 메시지가 희미하게 남았습니다.

[라미 현] “이건 한국전쟁 당시에 한국 해병대와 바꿨던 겁니다. 보시면, 우리의 전우 국군의 아들딸 죽음으로써 나라를 지키자..”

올해 88세로 뉴욕주 한국전참전협회 회장인 스칼라토 씨는 1952년 4월에 참전했는데, 중공군이 휘두른 칼에 목이 찔리고 다리에 수류탄 파편이 박히는 부상을 입고 이듬해 4월 임무를 마쳤습니다.

현 작가는 인터넷 블로그(2019년)에서 “다섯 번을 만났지만 자신의 이야기를 처음 꺼내놓으셨다”면서 “선생님의 눈을 바라보며 이미 68년 전 한국전쟁 한복판으로 가 있는 것이 느껴졌다.”라고 적었습니다.

“전투가 나기 며칠 전, 진지 밖으로 나간 그와 정찰조는 순간 발각돼 사방에서 포탄이 떨어졌고, 폭격이 멈춘 후 폭격 당한 근처 초가집을 발겼했습니다. 이미 숨을 거둔 부모 옆에 손이 잘린 아이가 울고 있었고, 그는 아이의 손목을 상의 주머니에 넣고 부대로 뛰었습니다. 공포에 사로잡힌 아이의 다른 손은 병사의 목을 잡고 놓지 않았습니다. 군의관이 아이를 받은 후 1-2분 늦게 손을 건내준 그는 자신이 좀 더 빨리 뛰었다면 아이가 살 수 있었을거라는 생각에 평생 정신치료를 받아야했습니다.”

아이의 손길을 아직고 느낀다고 눈물을 흘리는 노병을 설명하는 현 작가 는 전쟁 후 아내와 한동안 한 침대에서 잠을 잘 수도 없었다는 살바토르 씨를 위해 고인이 된 아내 사진을 들고 있는 그의 전신 사진을 찍어 액자에 담아 전했습니다.

미주 한인의 후원으로 출간된 사진집.
미주 한인의 후원으로 출간된 사진집.

현 작가는 VOA에 가족들에게 한국전 참전 사실을 말하지 않는 용사들도 많다며, 너무 무섭고 고통스러우며 감당할 수 없기 때문이라며 또 한 명의 미국인 노병의 이야기를 꺼냅니다.

[라미 현] “사우스 캐롤라이나 갔을 때 로버트란 분이 계셨는데, 특히 크시고 되게 멋있는 분이. 전쟁 이야기를 하면서 떨고 우셨어요. 여전히 두렵다고 그러면서. 참호 기관총 사수였는데 끝까지 참호를 사수하다가 적에 넘어가면서 포로가 됐는데, 탈출하고 어린 나이에 이제 미국에 돌아오셔서 적응을 못했어요. 거의 10년을 한 달 이상 한 곳에서 잡을 가져본 적이 없고 도시를 떠돌았다고…”

현 작가는 총성은 멎었지만 그들의 머릿 속에서는 여전히 전쟁이 진행 중이라고 말합니다.

한국전 당시 오른쪽 팔과 다리를 잃은 올해 96세 윌리엄 웨버 예비역 육군 대령은 영상에서 “한국이 분단된 것에 대한 매우 큰 아쉬움이 있다"며 "한국이 경제, 군사 발전을 이뤘지만 이는 한국의 절반인 것이며 통일된다면 태평양의 거인이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윌리엄 웨버]” And a military force that it has become, and that is only 50 percent of..”

지난해 2월 미국 방문 때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팬데믹의 여파로 50여 가구를 방문하는데 그쳤다는 현 작가는 오는 9월 다시 미국을 방문할 계획입니다.

올해는 워싱턴 시애틀, 푸에르토리코, 조지아, 텍사스, 애리조나, 하와이 등지에서 참전용사들을 만날 계획입니다.

[라미 현] “사진이라는 게 겉모습을 찍지만 사실 내면까지 들어 있죠. 그런데 본인이 사진을 보면서 비로소 자기가 한국전 참전용사, 우리가 생각한 영웅임을 느끼시거든요.대부분은 본인이 겁쟁이라고 생각하세요.진짜 영웅은 거기서 죽은 사람들이라고.사진 찍을 때 그들이 누구누구의 아버지나 회장이 아니라 한국전 참전용사로 찍히고 싶거든요. 나는 좀 있으면 이 세상을 떠나지만. 어떤 형식으로 내 이야기라든가 내 모습이 가족에게 남겨지잖아요. 그게 좋으신 것 같더라고요.”

이번 프로젝트는 미국 내 한인의 후원으로 최근 사진집으로도 출간됐습니다. 책에는 300여 명의 인물사진과 단체, 미국 내 한국전 참전비와 후원자들의 메시지와 사진이 담겼습니다.

유튜브 홍보영상에는 현지 참전용사들을 직접 찾아가 감사 인사를 전하고 현 작가의 활동을 후원하는 한인들의 메시지도 실렸습니다.

[한인 후원자] ”한국 사람으로서 그동안 나는 얼마나 생각했었나…어떻게든 해야겠다. 알면 알수록 미국에 180만 이상의 미군들이 참전했었고 하루에도 400분 이상이 돌아가시는데 있다 해야 할 일이 아니더라고요..”

라미 작가는 미 전역에 25만여 명의 한국전 참전용사들이 생존해 있다며, 한인들이 이들에게 감사의 메시지를 보내기를 희망했습니다.

생존자들을 모습을 사진으로 기록하며 감사를 전하는 이번 프로젝트는 한국전쟁 정전 70주년을 맞는 오는 2023년까지 계속됩니다.

VOA 뉴스 장양희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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