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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일 북송 일본인 아내, 책 출간


일본 내 친북단체인 조총련의 북송 귀환사업 때 재일 한인 남편을 따라 북한으로 갔던 일본인 여성이 이달 초 일본에서 자서전을 펴냈습니다. 북한에서 보낸 40년의 잃어버린 세월을 자녀들에게 알려주고, 아직 북한에 남아 있는 다른 일본인 처들에 대한 관심을 촉구하기 위해 글을 썼다고 하는데요, 김영권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그 사람들(조총련)이 3년 있으면 일본에 돌아갈 수 있다는 그 소리만 안 했어도 정말 우리 (북한에) 아니갔을 겁니다. 정말입니다.”

후회와 절망의 40년 이었습니다. 22살 꽃다운 나이에 남편을 따라 엉거주춤 따라나선 길. 돌을 갓 넘은 딸 때문에 가족이 헤어질 수 없어서. 3년 안에 다시 일본에 돌아올 수 있다는 조총련의 거짓 선전만 없었어도. 인생의 절반 이상을 잃어버린 그 곳으로 가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지난 4일 ‘북조선에서 처자로 지낸 40년’ 이란 제목의 자서전을 펴낸 일흔 살 노인 사이토 히로코 씨의 고백입니다.

네 명의 자녀들에게 평소 말로 못다한 엄마의 한 많은 인생사를 들려주고 싶어 조금씩 글을 쓴 게 책으로까지 나오게 됐다는 사이토 씨.

“책이라고 나는 쓰자고 해서 쓴 게 아니고 일본에 와서 아이들도 있고 그러니까 내가 죽은 다음에라도 조선에서의 이런 경험이 지난 일이지만 이따가도 읽어봤으면 해서 썼어요. 사람마다 다 지나가는 인생이 다르니까. 엄마는 이런 인생을 지나갔구나 하는 것을 생각했으면 해서 썼어요.”

1961년 북송선을 탄 사이토 씨는 40년만인 지난 2001년 일본에 입국했습니다. 중국으로 탈출한 뒤 일본 외교공관의 도움을 받아 조국으로 돌아올 수 있었던 겁니다.

사이토 씨의 눈물을 담은 한 많은 북조선 여행의 기억은 1961년 함경북도 청진 앞바다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삼일 만에 청진 앞바다에 도착을 했단 말입니다. 그 때 배 위에서 조선쪽을 보니까, (그 곳) 사람들을 보는 순간 야 이건 잘못 왔구나 하는 게 벌써 느껴지더라구요. 옷 이랑 그런 것 보니까. 배 위에서 모두 야 이거 잘못 왔다 해서 막 우는 사람도 있고 되게 많았어요. 도로 보내달라는 사람도 있고 아니 내리겠다고 막 야단치는 사람이 있어도 뭐 어쩌지 못하고.”

함흥에 집결한 뒤 당국의 지시로 정착한 북부의 한 도시. 집과 동네, 일터 모두 실망과 후회의 연속이었지만 더 야속했던 건 평생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 건네지 않은 남편이었습니다.

“속으로는 생각하고 있었는지 모르겠지마는 내 앞에서는 잘못왔다는 소리는 한 마디도 아니했어요. (허탈한 웃음소리) 나도 그렇지만은 거기 가면 할 수 없단 말입니다. 반대할 수도 없고 뭐 하지도 못하고 고저 나라에서 하라는 대로 하니까 뭐 제간이 없죠 뭐.”

겉으로 표현을 잘 못하는 조선 남성의 특성 때문인지 남편은 사과대신 가족을 위해 열심히 일했다고 합니다.

첫 3년은 일본에 돌아갈 수 있다는 희망으로 버텼다는 사이토 씨. 하지만 북송사업을 잘하는 조총련 간부들의 일부 가족들만 일본 방문의 특혜를 누렸고 대부분의 처들은 불평도 하지 못한 채 북한 여성들의 삶에 적응해야 했습니다. 사이토 씨는 북한의 여성들이 참 불쌍하다고 말합니다.

“조선에 있는 여자들이 불쌍해요. 하나부터 열까지 다 자기 손으로 아이들 먹이고 그래야 하니까. 정말 여자들이 정말 불쌍해요.”

그 낯선 이국 땅에서 그나마 사이토 씨에게 위로와 힘이 됐던 것은 북한 주민들의 따뜻한 정이었습니다.

“아무 것도 없지만은 그러나 조선사람은 정말 인정이 있고 정말 사람과 사람 관계가 정말 좋죠. 조금 먹을 게 있으면 옆에 사람 못 먹으면 같이 나눠먹고 그런 게 있단 말입니다. 그러나 일본에 와 보니까 아이 그렇더만요.”

1959년부터 1984년까지 계속된 조총련의 재일 한인 귀환사업. 총186회에 걸쳐9만 3천여 명이 북송선에 올랐고 그 가운데 일본인 처 1천 831명이 포함돼 있습니다.

일본의 지식인들과 민간단체 관계자들은 재일 한인들에 대해 정치적, 경제적 부담을 가진 일본 정부와 외화 획득, 선전 선동, 노동력 확대를 노린 북한 정부의 계산이 맞아떨어져 북송사업이 확대됐다고 지적합니다.

그러나 일본인 처 등 북송 귀환사업 문제는 국가적 관심사인 납북자 문제와 달리 일본에서 큰 주목을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오사카 대학의 야마다 후미야키 교수는 과거 ‘미국의 소리’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일본인 처들은 스스로 북한에 들어갔기 때문에 자신들이 책임을 져야 한다는 생각이 일본 지도자 사회 안에 팽배해 있다고 말했습니다.

사이토 히로코 씨는 그러나 자신들은 거짓 선전의 피해자들이라고 말합니다.

“자기 지발로 가가지고 이제 와서 그런다고 하지만 우리는 조총련의 말을 듣고 갔으니까. 그 걸로 말을 하고 싶은데. 조총련도 일본 정부도 아직 인정하지 않고 있으니까. 증거 문건이 없다고. 그게 맘대로 아니되더만요.”

40년 만에 돌아온 낯선 조국에서 적응을 제대로 못해 한동안 애를 먹었다는 사이토 씨. 8년간의 식당보조 일을 그만두고 지금은 오사카에서 북한에서 건너 온 손자와 손녀를 돌보고 있습니다.

재일 한인 북송 귀환사업 51주년에 즈음해 40년의 눈물을 책으로 펴낸 사이토 씨. 이 백발의 노인이 일본과 북한 정부에 바라는 마지막 소원은 단 한가지입니다.

“이제 조선에 일본 아주마이들이 아직 남아 있습니다. 난 그저 다른 건 필요 없어요. 내처럼 일본 사람들이 단 한번이라도 자기 나라에 와서 친척과 가족 형제들과 단 하룻밤이라도 같이 살았으면 하는 그 것 밖에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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