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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기획: 6.25전쟁 62주년] "아직도 생생한 전쟁" 백발의 참전용사들


미국 워싱턴의 미군 참전용사들을 위한 은퇴 아파트.
미국 워싱턴의 미군 참전용사들을 위한 은퇴 아파트.

저희 `미국의 소리’ 방송은 6.25 전쟁 62주년을 맞아 한국전쟁의 전세를 극적으로 바꿔놓은 유엔군사령관 더글러스 맥아더 장군의 인천상륙작전을 되돌아보는 세 차례 특집기획을 보내드렸습니다. 오늘은 특집기획 네 번째, 마지막 순서로 워싱턴의 한 은퇴병사 마을에 거주하는 참전용사들의 얘기를 전해 드립니다. 이은경 기자입니다.

은퇴한 미군 참전용사들이 모여 사는 미국의 수도 워싱턴 서북쪽의 한 주거단지. (Armed Forces Retirement Home). 백발이 성성한 노인들이 열심히 볼링공을 던지고 있습니다.

[녹취 1] “사람들이 한국전쟁을 잊혀진 전쟁이라고 합니다. 2차 세계대전은 말 그대로 세계 전쟁이었고, 베트남전쟁은 방송이 떠들썩하게 보도를 했지만 한국전쟁은 그렇지 않았죠. 하지만 이 곳에선 아닙니다. 우리가 사는 이 곳에선 아무도 한국전쟁을 잊지 않았습니다.”

미국에서 흔히 잊혀진 전쟁으로 불리는 6.25 전쟁, 그러나 기자가 방문한 참전용사 주거단지의 노인들은 전쟁이 발발한 지 62년이 지금도 6.25 전쟁의 기억을 생생히 간직한 채 살아가고 있습니다.

프레드 맥 씨. 한국전 참전 기념모자에 '퍼플 하트' 무궁훈장을 달았다.
프레드 맥 씨. 한국전 참전 기념모자에 '퍼플 하트' 무궁훈장을 달았다.
[녹취2] “1950년 11월에 나는 북한에 있었어요. 정찰병이었는데, 그 치열했던 장진호 전투에서 살아남았죠.”

프레드 맥 씨는 미군 전사에서 가장 뼈아픈 패전으로 기록된 장진호 전투 생존자입니다.

[녹취] “신께 기도했어요. 제발 살려달라고, 적들이 나를 보지 못하게 해달라고. 시체 옆에 죽은 척 있은 덕에 살아남았어요. 많은 전우들이 중공군에게 처참히 당했죠. 밤중에 갑자기 공격해 오는 중공군에 우리 부대원들이 거의 다 목숨을 잃었어요. 나와 몇몇 전우들만 간신히 살아 남았습니다.”

정찰병이었던 프레드 맥 씨는 한국 하면 눈과 추위, 그리고 나무 없는 언덕들이 생각난다며, 한국의 강추위와 칼바람은 끔찍했다고 말합니다. 맥 씨는 현재 외상후 스트레스장애를 앓고 있습니다. 생명의 위협을 받은 사고에서 정신적인 충격이 있은 뒤에 나타나는 증상입니다. 이 때문에 우울증약부터 시작해 관절약, 고혈압 치료제 등 10개가 넘는 약을 복용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육체적인 고통 이상으로 견딜 수 없는 것은 아직도 밤마다 계속되는 악몽입니다.

[녹취] “아내가 그러더군요. 밤마다 자면서 소리를 지르고 허공에 주먹질을 하는 나와 같이 잘 수가 없다고.”

맥 씨는 지금도 한반도에서 벌어졌던 전쟁의 기억 때문에 이렇게 밤마다 힘든 싸움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또다른 장진호 전투 생존자 제임스 웹스터 씨. 흥남부두 철수 작전을 얘기하며 흐느낍니다.

웹스터 씨는 장진호 전투와 흥남철수 작전 직후인 1950년 12월30일, 감격적인 소식 하나를 듣습니다. 자신이 첫 아이의 아빠가 되었다는 소식이었습니다. 전우들을 대부분 잃고 너무 괴로워 할 때 새 생명의 탄생에 감격해 했던 때를 웹스터 씨는 지금도 생생히 기억합니다. 그 때의 감동을 말하려다 목이 메입니다. 전투 당시의 처절함은 얘기하고 싶지도 기억하고 싶지도 않습니다.

“어머니가 날 많이 말렸어요. 그러나 내 고집을 꺽을 순 없었지요. 한번도 군 입대 한 걸 후회 한 적이 없습니다.”

생사를 오가는 처절한 경험을 한 또 한 사람. 빌 우즈 씨. 처음 한국 땅을 밟은 건 1947년이었고, 이후 20살 되던 1951년에 다시 한국 땅을 밟았습니다. 부모님의 반대를 무릅쓰고 군에 입대해 6.25 전쟁에 참전한 것입니다.

빌 우즈 씨.
빌 우즈 씨.
“한국의 겨울은 정말 추웠어요. 그런데 파리가 어찌 그리 많은지, 세상에 있는 모든 파리들이 한꺼번에 시체로 모여드는 장면은 지금도 잊을 수 없어요. 끔찍한 광경이지요. 한번은 사람이 죽어서 땅에 그냥 버려져 있었는데 팔 하나가 하늘을 향해 뻗어 있었어요. 꼭 하늘을, 천국을 가리키고 있는 것 같더라구요. 그 때 나도 처음 하늘을 올려다 본 것 같아요. 항상 앞뒤 주변만 경계하며 살피다가.”

빌 우즈 씨는 처음 본 전쟁포로의 모습을 지금도 또렷합니다. 미군들에 비해 유난히 체격이 작았던 중공군과 인민군. 마치 10살 밖에 안된 어린이 같았다고 회고합니다.

제2차 세계대전과 한국전쟁, 그리고 베트남전쟁에 참전했던 퇴역 군인 507명이 노년을 보내는 이곳. 6.25전쟁에 참전했던 노병은 220명입니다. 혼자서도 생활이 가능한 사람들과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이 거주하는 건물로 구분돼 있습니다. 찾아오는 이도 별로 없는 이곳은 항상 조용합니다. 잔디를 깎고, 정원을 청소하는 소리만이 적막을 깨웁니다.

이 주거단지의 참전용사들은 거의 대부분 배우자와 사별하거나 이혼해 홀로 살고 있습니다. 평균 나이가 83살로 노령이어서 의사와 간호사를 비롯한 300여 명의 직원들이 상주하며 돌보고 있습니다.

이 곳에서 함께 사는 사람들은 모두 참전용사들입니다. 그래서 쉽게 친구가 됩니다. 노병 몇몇이 맥주를 마시고 있습니다. 한국전 참전용사냐는 질문에 아니라며 한마디 합니다.

[녹취] “나는 베트남전 참전용사예요. 한국전에 참전했을 만큼 늙지 않았어요. 그러나 1968년과 1969년 한국에 가서 비무장지대 DMZ에서 근무했습니다.”

입주한 지 1년 됐다는 캐롤 콜린스 씨, 휠체어에 앉아 있다 한국전쟁 때 공로로 받은 표창장을 보여줍니다. 얼마나 소중히 간직했는지 60년 전에 받은 것으로 믿겨지지 않을 만큼 보관 상태가 좋습니다. 기자에게 주기 위해 여분의 복사본까지 만들어왔습니다. 콜린스 씨는 1950년에 일본에 있다가 전쟁이 발발하자 보병 2연대 정보요원으로 한국에 파병됐습니다.

자신의 이름 Collins를 당시 한국인들의 발음으로 말합니다. 뜻을 알 순 없어도 한글도 읽을 수 있다며 기자가 이름을 쓰자 쉽게 읽습니다.

이제는 귀도 잘 안 들리는 노병들이지만 한국의 발전하는 모습에는 모두들 흐뭇하다는 표정입니다.

[녹취] “작년에 한국에 다녀왔지요. 한국전이 끝나갈 무렵, 1953년에 타자수로 참전한 이후 처음 한국을 방문한 겁니다.”

해리 퍼거슨이라고 자신을 소개하며 기자에게 명함까지 건넨 이 참전용사는 한국까지 비행 시간이 너무 길어 힘들었던 걸 빼고는 뜻깊은 여행이었다며 얘기를 이어갑니다.

[녹취] “버지니아 주에 있는 한 한인 교회에서 우리들의 한국 방문을 주선해 줬어요. 놀랍더군. 세상에 아파트가 그렇게 많아요. 고층건물이 너무 많아서 정말 깜짝 놀랐지요. 판문점에도 갔었는데, 남북한을 밤에 찍은 위성사진을 봤어요.”

[녹취] 남한은 불빛으로 환한데, 북한은 깜깜하더군요. 내가 치룬 싸움에 보람을 느꼈어요. 자유를 위해 싸우는 자가 진정 승자라는 것을 알 수 있는 거지요. 남북한의 현재 경제 사정을 보면 알 수 있잖아요.”

제임스 웹스터 씨는 60년 전 죽을 고비를 넘기며 지킨 자유 민주주의를 현재 한국인들이 누리고 있는 데 대해 보람을 느낀다고 말합니다.

[녹취] “우리는 많은 나라를 도왔지만 고맙다고 진심으로 말하는 사람들은 한국 사람들 밖에 없어요. 고마움을 아는 한국 사람들에게 오히려 감사한 마음이 들어요.”

한국에서 자랐다는 이 노병은 빌 우즈 씨입니다. 한국에서 젊은 청춘을 보냈기 때문에 한국에서 성장했다고 얘기합니다. 한국에는 6.25 전쟁이 터지기 전인 17살 때 처음 갔었고, 전쟁이 발발하면서 다시 한국으로 파병됐습니다.

우즈 씨는 한국 사람들이 고집이 세고, 열심히 일하면서 힘든 전쟁터에서의 삶을 잘 견뎌냈다며 동양의 아일랜드인들이라고 말합니다.

참전용사들은 이제 60여 년 전의 모습과는 천지 차이가 나는 한국의 발전된 모습에 놀라워 합니다.

[녹취] “지금의 한국을 생각해봐요. 얼마나 발전했는지. 발전된 한국엔 가 보지 못했어요. 기회가 없었어요. 그러나 뉴스를 통해서, 사진들을 통해서 한국이 얼마나 발전했는지 봤습니다. 나도 기여를 한 겁니다. 지금도 한국이 공산당과 전쟁을 한다면 나는 총을 들고 한국을 도울겁니다.”

빌 우즈 씨의 얼굴에는 결연함이 묻어납니다. 나이를 묻는 질문에는 웃을 뿐 대답이 없습니다.

한국전쟁을 잊지 못하는 사람들, 잊고 싶어 몸부림쳐도 떨굴 수 없는 기억을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 그리고, 한국의 발전상에 큰 자부심을 느끼는 사람들.

세계대전과 베트남전 사이에 끼여있는 6.25 전쟁. 흔히 잊혀진 전쟁으로 불리기도 하지만 이 마을에 사는 노병들에겐 아직도 생생한 기억으로 살아있습니다.

인터뷰를 마치고 돌아서는 기자를 바라보는 노병들의 얼굴에 아쉬움이 묻어납니다. 노병들은 또 언제 오느냐고 묻습니다. 식당 구석에 앉아 기자를 바라보며 부르는 한 노병의 군가가 마음을 울립니다.

미국의 소리 이은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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