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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멘터리 사건 다시 보기] 푸에블로호 나포 사건 (14)


(해설) 안녕하십니까, ‘다큐멘터리 – 사건 다시 보기’의 김정우입니다. 1968년 1월 23일, 미국 해군의 전자정보 수집함 푸에블르호가 나포되자 당시 딘 러스크 미국 국무장관은 기자회견을 열고, 방금 들으셨다시피, 북한이 공해상에서 미군 함정을 나포한 행위는 용납할 수 없다고 비난했습니다. 이렇게 시작된 푸에블로호 사건은 발생한 지11개월 만에 승무원들이 석방될 때까지, 미-북 관계에 파란을 몰고 왔는데요, 오늘 ‘다큐멘터리-사건 다시 보기’ 시간은 푸에블로호 나포 사건 마지막 편으로, 푸에블로호 승무원들의 이야기를 해드리려고 합니다.

/// Act 2 Pete Bucher 푸에블로호 함장 – 한국어 더빙: 풀이 죽은 어조로/// “나는 푸에블로호 함장 피트 부처입니다. 나는 미국 네브라스카주 링컨 출신으로 올해 39살입니다. 푸에블로호는 북한 영해에서 전자파를 수집했습니다. 우리는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의 레이다 정보와 군사활동을 감시하는 임무를 수행했습니다.”

(해설) 푸에블로호의 피트 부처 함장은 나포 후 북한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푸에블로호가 북한 영해를 침범해 간첩행위를 했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이 같은 진술은 북한이 승무원들에게 강압과 폭력을 행사해 얻어냈던 것입니다. 부처 함장은 귀환 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북한에서의 생활을 이렇게 증언했습니다.

/// Act 3 Pete Bucher – 한국어 더빙: 우울한 어조로/// “저는 억류 기간 중에 여러 번 구타를 당했습니다. 그리고 제일 무서웠던 것은 내가 이곳에서 살아 나갈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이었어요. 전 11개월 내내 독방에 구금돼 있었는데, 어떤 때는 정말 견디기가 힘들더군요. 억류 기간 내내 많은 생각을 했는데, 북한에서 내가 겪었던 일들은 앞으로도 이해를 못할 것 같습니다.”

(해설) 푸에블로호에서 통신 요원으로 근무했고, 나포 당시 24살이었던 랄프 맥클린톡 씨는 푸에블로호 나포 40주년이었던 지난 2008년, 미국의 소리 방송과의 회견에서, 당시 억류생활을 이렇게 회고했습니다.

/// Act 4 Ralph McClintock – 전 푸에블로호 승무원/// “글쎄요, 갇혀 있던 동안 우리들은 매일 목숨이 위험하다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그런 순간들이 오랫동안 계속됐지요. 사실 우리는 석방되기 하루 전에도 우리가 석방될 것이란 사실을 모르고 있었어요. 특히나 석방되기 열흘 전부터 석방되는 날까지 북한 정부는 우리를 엄청나게 괴롭혔습니다. 그래서 우린 그 기간을 지옥같았던 주라고 불렀습니다.”

(해설) 북한은 푸에블로호 승무원들을 억류하면서 이들을 때로는 협박하고 때로는 이들에게 폭력을 가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북한 당국은 이런 강압적인 방법을 통해서 당시로서는 최첨단 전자정보 수집함이었던 푸에블로호가 가지고 있던 비밀 장비들이나 문서 등, 정작 가치가 있는 정보를 얻는데는 거의 관심이 없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즉 북한은 심문을 통해 정보수집보다는 승무원들로부터 푸에블로호가 북한 영해에서 간첩활동을 했다는 진술을 받아내는데 몰두했다는 주장인데요, 푸에블로호의 에드워드 머피 부함장은 이와 관련해 당시 상황을 이렇게 증언합니다.

(낭독 1) 우리가 고문을 받은 것은 사실입니다. 그런데 특이한 것이 북한은 그 고문을 통해 우리에게 오직 푸에블로호가 북한 영해에 들어갔고, 그곳에서 간첩활동을 했다는 것을 인정하라고 강요한 점이에요. 고문을 동반한 심문은 일정한 시간 간격을 두고 계속됐어요. 하지만 북한 심문 요원들은 우리들이 가지고 있던 비밀 정보 같은 곤란한 내용을 묻는 질문들을 하지 않았습니다.

(해설) 푸에블로호 승무원이었던 스킵 슈마허 씨도, 한 언론과의 회견에서 북한 측은 승무원들로부터 군사정보가 아닌 다른 것을 원했다고 증언했습니다.

/// Act 5 Skip Schumacher - 전 푸에블로호 승무원 /// “사실 북한은 우리들에게서 귀중한 군사정보를 얻으려 하지는 않았어요. 대신 그들은 우리들을 대내외적으로 선전할 거리로 만들었습니다.”

(해설)평양 대동강변으로 옮겨져, 현재는 평양을 찾는 관광객들을 맞이하고 있는 푸에블로호에서 흘러 나오는 선전물의 음성입니다. 이 선전은 푸에블로호는 북한이 미국에 대해 거둔 승리의 상징이고 미국은 모든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했다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북한은 이렇게 명확하게 미국의 책임을 주장했지만, 미국에 돌아온 승무원들은 이 같은 책임공방에서 자유롭지 못했습니다.

(해설) 승무원들이 송환된 후 미국 국방부는 함장을 비롯한 몇몇 승무원들을 군사법정에 세울 것을 고려했습니다. 하지만 해군성 장관의 명령으로 이들에 대한 군사법정 기소건은 기각됐습니다. 푸에블로호 사건이란 책을 쓴 오하이오 대학의 미쳴 러너 교수는 송환된 푸에블로호 승무원들이 부당한 대접을 받았다고 주장했습니다.

/// Act 6 Mitchell Lerner/// “푸에블로호 승무원들은 해군으로부터 사실 푸대접을 받았습니다. 승무원들은 영웅이 아니고 항복하지 말아야 할 상황에서 적에게 투항한 군인들로 취급받았어요. 또 이들은 사실이 아닌 문서에 서명을 했다는 비난도 받으면서, 그럴 바에야 차라리 배와 함께 바다 밑으로 가라 앉아야 했다는 그런 격한 말도 들어야 했습니다.”

(해설) 이와 같은 비난에 대해 푸에블로호의 함장, 피트 부처 씨는 세상을 떠나기 전 한 언론과 가진 회견에서 복잡한 심경을 드러냈습니다.

/// Act 7 Pete Bucher/// “사실 푸에블로호는 혼자 힘으로 함정을 방어할 능력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뭔가 잘못됐을 때, 정부와 해군이 우리를 보호해 줘야 하는데, 사실 그러질 못했어요.”

(해설) 자신이 지휘하던 함정이 적국에 나포됨으로, 해군 지휘관으로서의 경력도 끝이 났던 부처 함장. 부처 함장은 이렇게 미국이 자신들을 제때에 보호해 주지 못했지만, 모든 책임은 결국 자신에게 있다고 말했습니다.

/// Act 8 Pete Bucher /// “제가 그 배의 함장이었습니다. 그렇다면 당시 무슨 일이 있었든 책임은 저에게 있다고 봅니다. 전 아마도 죽을 때까지 이런 생각을 가지고 살 것입니다.”

(해설) 군인답게 모든 책임을 떠맡겠다고 말한 피트 부처 함장. 이 피트 부처 함장은 지난 2004년 여름, 향년 76살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해설) 냉전이 한창이던 1968년에 발생한 푸에블로호 사건이 종료되고 70년대로 넘어가면서 한반도는 새로운 상황에 처하게 됩니다. 바로 미국과 중국의 수교로 상징되는 데땅뜨라고 불리는 예상치 못한 변화인데요, ‘다큐멘터리 – 사건 다시 보기’, 다음 주 이 시간부터는 미-중 수교로 인해 다시 요동치게 되는 미-북 관계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많이 기대해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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