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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멘터리 사건 다시 보기] 푸에블로호 나포 사건 (8)


/// Act 1 고려대학교 일민국제관계연구소 정성윤 교수/// “ 북한은 협상 초기부터 미국 측 대표들에게 이 협상이 북한과 미국 간에 국가 대 국가로서의 직접적인 협상임을 명확하게 하려고 했다. 이는 한국전쟁 이후에 공식적으로 미국이 북한을 국가로 인정하지 않고 있던 미국에게 국제사회가 지켜보는 역사적 현장에서 이 사실을 미국 스스로가 부인하게 만드는 그런 전술적인 책략이었다.”

(해설) 안녕하십니까, ‘다큐멘터리 – 사건 다시 보기’의 김정우입니다. 고려대학교 일민국제관계연구소 정성윤 교수의 말처럼 북한 측 대표단들은 푸에블로호 석방 협상이 국가 대 국가 간의 협상임을 명확히 하며 회담장에 들어섰습니다. 그런데 회담 초기, 핵심 쟁점들을 놓고 팽팽하게 맞서던 양자 회담은 1968년 2월 10일, 5차 회담에서 미국 정부가 진전한 협상안을 제시하면서 새로운 전기를 맞게 됩니다.

(미국 대표 스미스 제독) 자, 5차 협상을 시작하겠소. 오늘 미국 정부는 귀국에 좀더 진전된 협상안을 제시하고자 하오. 만일 푸에블로호가 북한 측이 주장하는 12해리 영해를 침범한 사실이 확인된다면, 미국 정부가 북한 측에 유감을 표시할 수 있다는 그런 제안이오.
(북한 대표 박청국 장군) 스미스 제독. 우리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은 미국 측의 제안을 거절합니다. 당신네들이 진정으로 승무원들의 신속한 귀환을 원한다면, 다음과 같은 세가지 요구를 받아들여야 할 것이요. 먼저 미국이 북한 영해에 침입해 첩보활동을 한 것을 인정하시오. 그리고 이를 공식적으로 사과하고 다시는 이런 범죄 행위를 저지르지 않겠다는 보장을 하시오. 알겠습니까?

(해설) 만일 푸에블로호가 북한 영해를 침범했다는 것이 사실로 확인된다면, 미국 정부는 그때 가서 유감을 표시할 수 있다는 그런 말입니다. 하지만 북한 측은 이런 제안을 거부하고 미국 측에 소위 ‘세가지 A’를 요구합니다. 바로 범죄 사실을 인정하고 사과하며, 또 이의 재발방지를 보장하라는 것입니다. 영어로는 인정한다는 ‘Admit’, 또 사과한다는 의미의 ‘Apology’, 그리고 보장한다는 뜻이 담긴 단어가 ‘Assurance’기 때문에 이 영어 단어들의 머리말 A를 따 이른바 ‘3가지 A’ 라고 부르는데요, 일민국제관계연구소 정성윤 교수는 북한은 미국과 벌였던 협상의 처음부터 끝까지 이런 입장을 고수했다고 지적합니다.

/// Act 2 정성윤 교수 /// “ 양자 간 핵심 쟁점은, 얼핏 보면 수많은, 적지 않았던 협상과정보다는 명료한 편이다. 북한은 미국이 푸에블로호가 첩보행위를 했다는 것을 시인하고 자국의 영해를 침범했음을 사과하는 동시에 향후 재발 방지를 공식적으로 약속한다면 미국의 요구에 응할 수 있음을 협상 초기부터 강력하게 주장했고, 11개월 후에 승무원들을 송환할 때까지 이런 입장은 변함이 없었다.”

(해설) 무조건 사과하라. 이것이 북한이 미국 측에 일관되게 요구한 점이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미국 정부는 북한 정부의 이 같은 요구에 어떻게 반응했을까요? 2월 26일 개최된 제 9차 협상에서 국무부의 훈령을 받은 미국 측 수석 대표는 다음과 같은 입장을 밝힙니다.

(낭독- 스미스 제독) 우리 미국 정부는 승무원들이 석방되기 전에는 결코 사과하는 일은 없을 것이요. 승무원들이 석방되기 전까지 북한이 제시하는 증거들은 확인되지 않은 것으로 간주합니다.

(해설) 승무원들을 풀어주기 전에 미국은 결코 사과할 수 없다. 일민국제관계연구소 정성윤 교수는 승무원 석방과 사과 문제를 둘러싼 미-북 양측의 이 같은 대립이 협상을 장기화시켰다고 지적합니다.

/// Act 3 정성윤 교수 /// “사건 초기 존슨 미국 대통령이 천명했듯이, 미국의 정책 목표의 최우선 순위는 승무원들의 무사귀환이었고요, 따라서 소련을 위시한 국제사회의 적당한 압박과 동시에 미국의 군사적 무력시위가 같이 진행된다면 사건이 오래지 않아서 해결될 것이다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하지만 북한과의 직접 협상 국면으로 국면이 전환되면서 대북 압박은 점점 느슨해지게 되었고, 당시 협상 결과를 낙관적으로 전망하고 있었던 존슨 행정부의 정책 결정자들은 협상과정에서 자국의 위신을 현저하게 저해할 수 있는 북한 측의 요구사항을 거절하게 되고, 그렇게 되면서 협상이 예기치 못하게 장기 국면으로 빠져들게 됩니다.”

(해설) 푸에블로호가 나포된 지 한 달이 지나도 구체적인 결과가 나오지 않자 미국 정부는 조금씩 다급해지기 시작합니다. 존슨 행정부는 9차 협상에서 푸에블로호의 위법 행위에 대한 조사를 실시하되 조사가 끝날 때까지 승무원들을 제3의 중립국으로 보내달라는 다소 진전된 내용의 협상안을 제시하지만 북한 측은 이 제안도 거부합니다. 린든 존슨 미국 대통령은 협상 교착 상태를 보고 점점 지쳐갔고, 결국 협상 결과에 대해 비관적인 생각을 하게 됩니다.

(존슨 대통령) 자, 기자 회견을 마치기 전에 한가지 질문만 더 받겠소.
(기자) 대통령님! 지금 푸에블로호 석방 협상이 지지부진한데….대통령께서는 푸에블로호와 승무원들을 되찾을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존슨 대통령 – 머뭇거리는 어조로) 아닙니다.

(해설) 북한의 완강한 자세에 사면초가 상태에 빠진 미국 정부. 미국 행정부가 직면한 이 같은 난처한 상황은 골드버그 주 유엔 미국 대사가 백악관에 보낸 전문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낭독 – 골드버그 대사) 대통령님, 솔직히 이번 사태를 해결할 다른 방법이 떠오르지 않습니다. 현재로선 우리가 지치기 전에 북한이 지치도록 협상을 계속하는 수밖에 대안이 없습니다. 어찌됐든 전쟁보다는 이 방법이 낫기 때문입니다.“

(해설) 이처럼 미국이 북한과의 협상에 대해 비관적이 되어 가고, 양측간 서로의 입장이 너무 다르다는 것이 알려지면서 협상의 빈도수도 점점 줄어들게 됩니다. 사건 발생 후 2달 동안 13차례 협상이 이뤄진 반면, 나머지 13차례 협상은 265일 동안 개최됩니다. 4월에 2번, 5월에 2번 그리고 6월부터 8월까지는 회담이 각각 한차례씩만 열리는 등 양자 간의 접촉이 줄어듭니다. 이렇게 협상이 지지부진해지자, 협상 초반 절제되고 유연한 태도를 보였던 북한 측은 드디어 특유의 벼랑끝 전술을 구사하기 시작함으로써, 파란이 일게 됩니다.

(해설) 1968년 10차 협상 때부터 북한이 강경한 자세로 나오면서 푸에블로호 석방 협상은 한치 앞을 내다보기 어려운 상황에 빠져 드는데요, 이에 대한 이야기는 ‘다큐멘터리 – 사건 다시 보기’, 다음 주 이 시간에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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