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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멘터리 사건 다시 보기] 푸에블로호 나포 사건 (7)


(해설) 안녕하십니까, ‘다큐멘터리 – 사건 다시 보기’의 김정우입니다. 미국과 북한이 나포된 푸에블로호를 석방시키기 위해서, 6. 25 전쟁이 끝난 후 처음으로 양자회담을 벌인 1968년 2월 2일, 윌리엄 포터 주한미국 대사는 이 회담이 끝난 후 국무부에 다음과 같은 내용의 전문을 보냅니다.

(낭독 – 포터 주한 미국 대사) 북한 대표인 박청국은 이번 회담에서 미국을 약 올리려는 의도를 분명히 했습니다. 하지만 박청국은 이와 동시에 우리 미국이 원하는 정보를 슬쩍 흘리거나 또 다음 회담에 대한 기대도 내비쳤습니다. 이런 태도를 볼 때, 북한은 이번 사건을 다양하게 활용하려는 의지가 엿보입니다. 또 앞으로 열릴 회담에서 북한은 미국과 한국 정부를 이간질하려는 시도를 할 것으로 보입니다.

(해설) 이 같은 내용을 담은 포터 대사의 전문이 도착할 즈음 미국의 린든 존슨 행정부는 백악관 회의실에 모여 판문점에서 열린 미-북 1차 회담의 결과를 논의하고 있었습니다.

(린든 존슨 미국 대통령) 러스크 국무장관! 북한 대표 박청국이 회담에서 비교적 정중한 태도를 보였다면서요?
(러스크 국무장관) 그렇습니다, 대통령님! 예상과는 달리 북한 측이 협조적인 자세로 나온 것은 사실입니다. 그렇다면….현지 보고와 북한 측의 자세를 고려해 볼 때, 분위기가 그리 나쁘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조심스럽긴 하지만, 문제가 쉽게 해결될 가능성도 있습니다.
(린든 존슨) 하지만, 북한은 도대체 예측을 할 수 없는 상대요. 협상이 결렬될 경우를 대비해야 하지 않겠소?
(러스크) 물론입니다, 준비를 해야죠. 저희 국무부에서는 북한과의 협상이 완전히 실패할 경우, 다음과 같은 6가지 군사적 조치를 취할 것을 권고합니다.
(린든 존슨 – 놀란 어조로) 군사적 조치라고?

(해설) 러스크 국무장관은 1차 회담 직후 협상 결렬에 대비해 군사적 조치를 언급합니다. 군사적 조치의 위험성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던 러스크 장관이었지만, 협상이 어떻게 풀려나갈지 모르는 상황에서 국무부는 다음과 같은 여섯가지 권고사항을 제시합니다.

(낭독-단호한 어조로) 첫번째, 북한에 대한 공중정찰을 강화한다. 두번째, 푸에블로호가 나포된 것으로 추정되는 해상에 또 다른 정보수집함인 베너호를 파견한다. 세번째 북한 측 선박을 공해상에서 나포한다. 네번째, 북한 해군 함정의 해상 출입을 제한적으로 봉쇄한다. 다섯번째 다른 나라 깃발을 단 북한 선박을 나포한다. 여섯번째, 북한에 직접적인 군사보복을 가한다.

(해설) 러스크 국무장관은 이 같은 6가지 군사적 조치가 위험부담이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러스크 장관은 국무부는 위험도가 가장 적은 1안과 2안을 선호한다고 밝혔고, 직접적인 군사적 충돌을 의미하는 5안과 6안은 충분하게 검토하지 않았다고 밝힙니다. 러스크 장관은 또 당시 상황에서 가장 효과적인 군사적 조치는 정보수집함 베너호를 출동시키는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해설) 미국과 북한의 협상이 시작되자, 소련의 움직임도 분주해지기 시작합니다. 미국과 북한과의 첫번째 회담이 끝난 직후인 1968년 2월 3일, 그로미코 소련 외무부 장관은 소련주재 미국 대사인 톰슨을 호출합니다.

(그로미코 소련 외상) 어서 오시요, 톰슨 대사.
(톰슨 대사) 안녕하십니까, 그로미코 장관님.
(그로미코) 톰슨 대사, 아시다시피 우리 소련은 미국이 동해에 해군 함정을 배치한 것을 우려하고 있습니다.
(톰슨) 장관님, 현재 미국 해군 함정들은 북한 영해가 아니라 한국 측 영해에 있습니다. 그리고 사실, 문제는 우리가 배치한 함정들이 아닙니다. 북한은 최근에 남한 대통령을 목표로 무장공비를 남파했고, 공해상에 있던 미군 함정까지 나포해 갔어요. 이 사건들로 한국 국민들의 신경이 날카로워져 있음을 아셔야 할 것입니다.
(그로미코) 이것 보시오 대사, 한반도에서 생기는 문제는 쌍방 간에 책임이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리고 항공모함을 북한 근처에 배치하는 것은 아무런 쓸모가 없는 행위입니다. 미국이 추가로 긴장을 조성하는 조치를 취하지 않는다면 이 사건은 원만하게 해결될 수 있을 것이요. 하지만 한가지 명심해야 할 것은 북한은 미국으로부터 사과를 받기 전에는 이 문제를 해결하려 들지 않을 것이란 점입니다. 이 점을 꼭 명심하시오, 톰슨 대사.

(해설) 첫 협상이 열린 뒤 이틀 뒤인 1968년 2월 4일. 판문점에서는 미-북 2차 협상이 열립니다. 이 2차 회담에서 북한 측 대표 박청국 장군은 미국 측 대표 스미스 제독에게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합니다.

(낭독-박청국 장군) 스미스 제독, 지금 이 회담이 우리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과 미합중국 양자간의 문제를 논의하는 것으로 이해해도 되겠소?

(해설) 북한의 이 같은 질문을 받은 스미스 제독은 2차 회담 후, 다음과 같은 내용의 전문을 국무성에 보냅니다.

(낭독-스미스 제독) 북한이 이 같은 질문을 한 것은 이번 회담을 격식을 갖춘 정부 대 정부의 협상으로 만들려는 목적이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해설) 푸에블로호 석방 협상은 정부 대 정부의 공식적인 협상이다. 고려대학교 일민국제관계연구소 정성윤 교수는 협상의 주체가 누구인가를 규정하는 문제가 북한에 중요했던 이유를 이렇게 설명합니다.

/// Act 1 고려대학교 국제관계연구소 정성윤 교수/// “ 북한은 협상 초기부터 미국 측 대표들에게 이 협상이 북한과 미국간의 국가 대 국가로서의 직접적인 협상임을 명확하게 하려고 했다. 이는 한국전쟁 이후에 공식적으로 미국이 북한을 국가로 인정하지 않고 있던 미국에게 국제사회가 지켜보는 역사적 현장에서 이 사실을 미국 스스로가 부인하게 만드는 그런 전술적인 책략이었다.”

(해설) 북한은 미국으로 하여금 북한과의 양자 협상에 응하게 함으로써 미국이 북한을 하나의 국가로 인정하는 결과를 기대했다는 말입니다. 또 북한은 이를 이용해 미국의 대표가 북한과의 협상을 위해 판문점에 나타난 사실을 대대적으로 내부에 선전하고 나섭니다. 2차 회담이 끝난 후 평양 라디오 방송은 다음과 같은 방송을 합니다.

(낭독-북한 여자 아나운서) 우리 공화국은 미국 측 대표인 존 스미스 장군의 거듭되는 요청을 받아들여 정전위원회의 공화국 대표들이 지난 2일과 4일 판문점에서 미국 측 대표들을 만났다.

(해설) 미국 측의 거듭된 요청으로 미국과 협상을 벌이고 있다! 북한 정부는 이 같은 주장을 통해 미국이 북한에 굴욕적인 자세를 보이고 있다고 북한 주민들에게 선전했습니다. 그리고 이런 북한의 태도를 파악한 미국 정부는 북한과의 협상을 빨리 마무리지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협상에 박차를 가하게 됩니다.

(해설) 푸에블로호 송환을 둘러싸고 1, 2차 협상을 벌인 미-북 양국은 2월 10일 5차 협상부터 본격적인 밀고 당기기를 시작합니다. 이에 대한 이야기는 ‘다큐멘터리 – 사건 다시 보기’, 다음 주 이 시간에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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