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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탈북 난민 100명 시대 특집] 미국의 탈북자 촌 (1)


미국 내 탈북 난민 100명 시대가 다가왔습니다. 지난 2004년 제정된 북한인권법에 근거해 난민 지위를 받아 제3국에서 미국에 입국한 탈북자 수는 지난 9월 말 현재 93명으로 이르면 올해 안에 1백 명을 넘어설 전망입니다. 저희 '미국의 소리' 방송에서는 탈북자 1백 명 시대를 맞아 여덟 차례에 걸쳐 특집방송을 보내드리고 있습니다. 오늘은 네 번째 순서로 미국 내 탈북자촌으로 불리는 중서부 A도시에 살고 있는 탈북자들의 살아가는 얘기를 보내드립니다. 김영권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미국 북부와 남부의 전통문화를 모두 느낄 수 있다는 중서부의 A시. 평양을 가로지르는 대동강처럼 오하이오강이 가로지르는 이 전형적인 미국 도시에 10명이 훨씬 넘는 탈북 난민들이 살고 있습니다. 수도권까지 포함하면 인구 1백만 명을 훌쩍 넘는 이 도시에 단일 규모로는 미국에서 가장 많은 탈북 난민들이 살고 있는 것입니다.

지난 2006년 7월 탈북자 3명이 중국에서 입국한 이후 부부, 모녀, 청년 등 다양한 배경의 탈북자들이 들어와 자영업과 스시맨, 슈퍼마켓 점원, 학생 등 직업을 갖고 아메리칸 드림을 이뤄가고 있습니다.

(난민기관 강의실에서 교육을 받고 있는 난민들 소리) 이 곳에 정착하는 탈북자들은 다른 난민들처럼 난민 지원기관이 제공하는 영어 강의 ESL과 사회정착 수업을 듣습니다.

지난 9일. 두 달 전 이 도시에 정착한 20대 초반의 탈북자 사이먼 씨가 통역의 도움을 받아 열심히 기본 사회 정착 관련 강의를 경청하고 있습니다.

강의 내용을 통역에게 물어보는 사이먼 씨.

이 곳 난민단체들 가운데 하나인 가톨릭계 단체는 탈북자 등 난민들에게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 나흘 동안 하루 3시간 이상 영어 수업을, 그리고 금요일에는 미국 생활에 필요한 다양한 정보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아파트 계약과 해약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 학교에 입학할 경우 재정 지원은 어떻게 받을 수 있는지, 또 취업지원서는 어떻게 쓰고 영주권은 어떻게 신청하는지 등 꼭 필요한 정보를 제공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사람들은 그룹이 다 있어요. 경찰에서 나와서 다 얘기해주고, 집 세 놓는 곳에서 나와 얘기해주고, 은행, 전기세, 뭐를 어떻게 쓰고 여기서 살 수 있는 것을 싹 다 가르쳐줘요. 직업도 알선해 주고."

미국 생활에 아직 생소한 사이먼 씨. 취업에 관심이 많아 자주 질문을 던집니다.

"나는 또 일자리를 찾았는데 거기는 한 시간에 8불이고 더 많이 받을 수도 있다. 그러나 나는 사람들이 좋기 때문에……

미국 내 난민지원 시스템은 난민기관들이 정부의 지원을 받아 각자 지역경제 상황에 맞춰 운영되기 때문에 지역에 따라 조금씩 다릅니다. 이 도시에 정착하는 탈북 난민들은 난민단체로부터 적어도 8개월 간 다양한 지원을 받고 있습니다.

"한 달에 3백 불 하고 푸드 스탬프 한 달에 2백 불 하고 의료보험도 줍니다."

난민들은 아파트 세 부담 목적 등으로 한 달에 현금 3백 달러를 받고, 식품구입비로 2백 달러, 버스 무료승차권, 그리고 무료로 의료보험 혜택을 받고 있습니다. 그러나 난민 지원 프로그램은 난민들이 하루빨리 정착할 수 있도록 유도하고 있기 때문에 2-3개월 뒤 취업하도록 권유하고 있습니다.

취업에 성공한 난민의 월급이 1천 3백 달러 이상이면 재정 지원이 자동 중단되며, 기본 정착 교육을 무시하는 일부 난민들의 행태를 막기 위해 교육을 받지 않으면 일부 지원금을 제공하지 않고 있습니다.

최근 어린 딸과 함께 이 곳에 정착한 30대 후반의 탈북자 린다 씨는 난민기관의 정착 교육이 매우 유익하다고 말합니다.

"배운 게 많습니다. 문화적 차이점. 여기 적응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고 집을 살 때 등 생활에 꼭 필요한 것을 배워주더라고요."

사이먼 씨는 난민기관의 프로그램을 들을 뒤 오후 늦게부터는 시간 당 8 달러를 받고 슈퍼마켓에서 하루 6시간 정도 배달 일을 하고 있습니다.

사이먼 씨는 현재 40대 후반의 바울 씨 등 탈북 남성 2명과 함께 한 아파트에 살고 있습니다. 지난 해 먼저 정착한 바울 씨가 자신이 겪은 시행착오를 후배 탈북자들은 겪지 말라며 한 집에 살자고 제의해 같이 살고 있는 것입니다.

시내 개업을 앞 둔 식당에서 페인트 칠을 하고 있는 바울 씨. 평일에는 반도체 업체의 포장일을 하고, 쉬는 날에는 페인트 칠을 하며 돈을 벌고 있습니다. 바울 씨는 세 남자가 함께 살고 있는 이유를 이렇게 설명합니다.

"처음에 와서는 두 주일 동안 밥이랑 못 먹었어요. 미국 라면만 끊여 먹고 살았어요. 집에 TV도 없지 아무것도 없으니까 참 고달팠어요. 그래서 또 오는 탈북자들은 그렇게 하지 말자고. 또 초보자들이라 집세도 부담 가잖아요. 같이 살면 니 좋고 내 좋고죠. 그래도 내가 먼저 와서 경험적인 것이 있잖아요. 서류 수속도 그렇고 학교 다니는 것, 운전면허 시험 치는 것도 그렇고 같이 있으면서 다 해줄 수 있잖아요."

승합차를 소유하고 있는 바울 씨는 여유가 있을 때마다 탈북자 뿐 아니라 다른 난민들의 교통편까지 도와줘 칭찬이 자자합니다. 차에 시동을 켜는 순간 네팔 출신 난민 우 양이 바울 씨와 인사한 뒤 당연하다는 듯 그의 차에 올라탑니다.

우 양은 처음 이 곳에 왔을 때부터 인근에 사는 바울 씨가 가족들을 자주 차에 태워줬다며, 바울 씨가 참 친절하고 돕기를 즐겨 하는 사람이라고 손을 치켜 올립니다.

탈북자들이 점차 늘어나면서 바울 씨처럼 후배들을 남 몰래 도와주는 탈북자 선배의 선행도 늘고 있습니다.

이 도시에 처음 정착한 탈북자 브라이언 씨는 젊은 후배들에게 직업을 알선해 주는가 하면, 초기 정착에 필요한 생필품을 사주는 등 여러 도움을 주고 있습니다.

"여기 온 사람들에게 도와주는 사람이 없으면 정착하기 힘들어요. 개인적인 차이가 있지만 똑 같은 인간이에요. 인간이 인간을 생각하지 못하면 인간이 되지 말아야죠."

막 도착한 탈북자 모녀에게 옷가지와 돈이 든 봉투를 선물하며 용기를 북돋아 주는 탈북자 부부. 북한 대학에서 영문학을 공부했다는 탈북 여성 에스더 씨는 능숙한 영어 솜씨로 후배 탈북자들의 언어와 문화적인 고민을 상담해 주고 있습니다.

"내가 봤을 때 열심히 살려는 사람들하고는 연락해요. 일하면서 공부는 놓치지 말라. 10년 후에 네 모습이 그냥 이런 모습이면 공부 포기하고, 건설을 하고 싶으면 해라. 하지만 지금 기술 배우는 것도 첫째고 말 모르면 그 기술의 직위가 10년 후에도 변하지 않잖아요. 포지션이 안 변하잖아요. 그래서 학교나 공부나 학교에 대해서는 다 저한테 와요."

그러나 탈북자들 사이에 이렇게 훈훈한 일들만 일어나는 것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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