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행자: 미국의 어제와 오늘, 그리고 건국 250주년 관련 소식을 전해 드리는 '역사 속 아메리카 250', 오늘은 이조은 기자와 함께합니다.
기자: 미국인의 생활 문화를 소개해 드리는 시간입니다. 미국에서 스포츠 경기를 보신 분이라면 반드시 겪는 순간이 있습니다. 경기 시작 직전, 모두가 일어서서 모자를 벗고 가슴에 손을 얹고 국가를 부르는 겁니다. 프로 경기만이 아니라 고등학교 경기도, 동네 아이들 시합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늘은 이 익숙한 장면이 어떻게 시작됐는지 전해드리겠습니다.
진행자: 미국을 처음 찾는 사람들이 놀라는 장면이기도 하죠.
기자: 그렇습니다. 다른 나라에서는 보통 국가대표 경기나 국제 대회에서 국가를 연주하는데요. 미국은 그냥 평일 저녁 프로야구 경기에서도 합니다. 그런데 이 관습이 생각보다 오래된 것이 아닙니다. 100년이 조금 넘었고, 시작된 계기가 아주 구체적입니다.
진행자: 언제 시작됐습니까?
기자: 1918년 9월 5일, 미국 프로야구 최강자를 가리기 위한 월드시리즈 1차전 때였습니다. 보스턴 레드삭스와 시카고 컵스의 경기였는데요. 컵스의 홈경기였지만 관중을 더 많이 받으려고 같은 시카고의 코미스키파크를 빌려 치렀습니다. 그런데 그날 경기장 분위기가 몹시 무거웠습니다. 1차 세계대전이 한창이었고, 그해 9월 그 시점까지 미군 전사자가 10만 명에 이른 상황이었습니다. 야구 선수들도 징집 대상이 되고 있었고요. 게다가 며칠 전 시카고 연방정부 청사에서 폭탄이 터져 사상자가 나온 참이었습니다.
진행자: 관중도 적었겠군요.
기자: 네, 첫날(9월 5일) 1만9천여 명이 들어왔는데, 당시 기준으로는 몇 년 사이 가장 적은 월드시리즈 관중이었습니다. 경기 내용도 조용했습니다. 보스턴의 베이브 루스가 완봉승을 거뒀는데, 점수는 1대 0이었습니다. 시카고 트리뷴은 선수 입장에서는 완벽에 가까운 훌륭한 경기였지만 관중 입장에서는 밋밋하고 단조로웠다고 적었습니다.
진행자: 그런데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기자: 7회 스트레치 때였습니다. 관중이 일어나 몸을 푸는 시간인데요. 당시에는 군악대가 경기장에 나와 연주하는 일이 흔했습니다. 이날 해군 훈련소 군악대가 '성조기여 영원하라'를 연주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보스턴의 3루수 프레드 토머스가 곧바로 국기를 향해 돌아서서 부동자세로 경례를 했습니다. 해군 복무 중이었는데 월드시리즈에 출전하려고 휴가를 받아 나온 선수였습니다.
진행자: 다른 사람들도 따라 했나 보군요.
기자: 네, 동료 선수들이 가슴에 손을 얹었고, 이미 서 있던 관중이 하나둘 노래를 따라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몇 사람이, 그러다 점점 많은 사람이 함께 불렀습니다. 노래가 끝나자, 그날 처음으로 우레 같은 박수가 터졌습니다. 뉴욕타임스는 이튿날 경기 기사를 선수들의 활약이 아니라 이 장면으로 시작했습니다. 그날 하루 중 가장 열기가 높았던 순간이라고 적었습니다.
진행자: 그 뒤로 계속 이어진 겁니까?
기자: 컵스는 남은 시카고 경기에서도 이 노래를 연주했고, 반응은 갈수록 뜨거웠습니다. 시리즈가 끝난 뒤 보스턴 구단주 해리 프레이지는 이듬해부터 홈경기마다 국가를 연주하라고 지시했습니다. 다른 구단들도 따라갔는데요. 다만 그때는 개막전이나 월드시리즈, 국경일 경기처럼 특별한 날에 주로 했습니다. 매 경기 하는 관습으로 굳어진 것은 2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입니다. 음향 설비가 좋아져 군악대 없이도 노래를 틀 수 있게 된 것도 한몫했습니다.
진행자: 그런데 1918년이면 이 노래가 아직 국가도 아니었을 때 아닙니까?
기자: 정확한 지적입니다. '성조기여 영원하라'가 의회 결의로 공식 국가가 된 것은 1931년입니다. 그 전인 1916년 윌슨 대통령이 행정명령으로 군과 공식 행사에서 쓰도록 정한 상태였고요. 그러니까 순서가 반대인 셈인데요. 야구장에서 사람들이 이 노래를 부르며 보인 반응이, 이 노래가 국가가 되는 데 힘을 보탰다는 평가가 나옵니다.
진행자: 그런데 오늘 이 이야기를 전해 주시는 이유가 있을 것 같습니다.
기자: 네, 11일이 9·11 테러 25주기입니다. 그리고 미국 경기장의 의례가 한 번 더 바뀐 것이 그때였습니다. 2001년 테러 엿새 뒤인 9월 17일 프로야구가 재개됐는데요. 7회 스트레치에 새로운 노래가 들어갔습니다. 원래는 '나를 야구장으로 데려가 주오'라는 흥겨운 노래를 부르는 시간인데, 그 자리에 '갓 블레스 아메리카(God Bless America)', ‘신이여 미국을 축복하소서’ 노래가 놓였습니다. 전국의 경기장에서 관중이 함께 불렀습니다.
진행자: 그해 월드시리즈 장면도 기억되고 있죠.
기자: 네, 뉴욕 양키스와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의 시리즈였습니다. 뉴욕에서 열린 3차전에서 5만6천 명이 이 노래를 함께 불렀는데요. 중견수 뒤 전광판 위 깃대에는 무너진 세계무역센터 현장에서 수습한 찢어진 성조기가 걸려 있었습니다. 당시 버드 셀릭 커미셔너는 그 순간을 두고 소름이 돋고 눈물이 났다고, 감당하기 어려울 만큼 감정적이었다고 회고했습니다.
진행자: 25년이 지난 지금도 이어지고 있습니까?
기자: 구단마다 다릅니다. 일요일 경기에만 트는 곳도 있고, 특별한 날에만 하는 곳도 있습니다. 다만 뉴욕 양키스는 지금도 모든 홈경기 7회에 이 노래를 틉니다. 구단 측은 양키스가 존재하는 한 계속할 것이며 이것은 결코 바뀌지 않을 것이라고 밝힌 바 있습니다.
진행자: 이 관습을 두고 논란은 없습니까?
기자: 있습니다. 매 경기 반복하다 보면 의미가 옅어지고 형식만 남는다는 지적이 오래전부터 나왔습니다. 그리고 국가 제창 자체가 미국에서 논쟁의 무대가 되기도 했는데요. 2016년 미식축구 선수 콜린 캐퍼닉이 인종 문제에 항의하며 국가가 연주될 때 무릎을 꿇으면서 전국적인 논쟁이 벌어졌습니다. 국가를 언제, 어떻게 대하느냐를 두고 미국 사회의 생각이 하나로 모이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준 사건이었습니다.
진행자: 그래도 관습 자체는 여전하군요.
기자: 그렇습니다. 지금도 미국의 거의 모든 경기가 이 노래로 시작합니다. 프로 경기장뿐 아니라 금요일 저녁 고등학교 미식축구 경기장, 주말 아침 동네 아이들 야구장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서로 다른 이유로 모인 수만 명이 잠깐 같은 방향을 보고 같은 노래를 부르는 시간인데요. 1918년 침울했던 야구장에서 한 선수가 국기를 향해 돌아섰던 그 몇 초에서 시작된 관습입니다.
진행자: 미국 경기장에서 국가를 부르는 문화, 그 시작과 변화를 짚어봤습니다. 이조은 기자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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