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행자: 미국의 어제와 오늘, 그리고 건국 250주년 관련 소식 전해드리는 ‘역사 속 아메리카 250’, 김미옥 기자와 함께합니다.
진행자, 기자 : 안녕하세요.
기자: 무더운 여름날 에어컨 없는 하루, 상상만 해도 쉽지 않은데요. 지금은 자동차와 집, 사무실은 물론이고 지하철과 쇼핑몰까지 냉방이 너무 당연한 시대입니다.
예전에 미국에서는 여름이 되면 백화점이나 영화관이 최고의 피서지였고, 집에 에어컨이 없는 사람들이 더위를 피해 일부러 시원한 건물로 들어가곤 했는데요, 그런데 이렇게 미국인의 생활을 바꿔 놓은 에어컨이 사실은 사람을 시원하게 하려고 만들어진 발명품이 아니었습니다.
오늘은 미국의 숨은 혁신 가운데 하나, 에어컨 이야기를 준비했습니다.
진행자: 그런데, 에어컨이 원래 사람을 시원하게 하려고 만든 게 아니었다고요?
기자: 그렇습니다. 지금부터 124년 전인 1902년, 뉴욕 브루클린의 한 인쇄 공장에서 문제가 생깁니다. 여름만 되면 습도가 높아져 종이가 늘어나고, 잉크 색깔도 조금씩 달라지면서 인쇄 품질이 들쭉날쭉해졌던 겁니다.
오늘날 컴퓨터 프린터가 오작동하는 것처럼 당시 인쇄업계에는 큰 골칫거리였는데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당시 25세의 젊은 엔지니어 윌리스 캐리어(Willis Carrier)가 공기의 온도와 습도를 동시에 조절하는 장치를 개발합니다. 이것이 바로 현대 에어컨의 시작입니다.
진행자: 냉방제품으로 유명한 그 ‘캐리어’가 에어컨 발명가 이름이었군요. 그런데, 처음에 인쇄 공장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개발한 거네요?
기자: 맞습니다. 사실 캐리어가 처음 해결하려고 했던 건 더위가 아니라 습기였습니다. 공기 속 온도와 습도를 일정하게 유지해 인쇄 품질을 안정시키려 했던 건데요. 그런데 이 장치를 가동하자 공장 안이 이전보다 훨씬 시원하고 쾌적해졌습니다. 원래 의도한 건 아니었지만, 습도 조절 기술이 오늘날의 냉방 기술로 발전하게 된 겁니다.
진행자: 발명 자체는 습도를 조절하는 장치였지만, 사람들이 냉방 효과의 가치를 발견한 셈인데요. 당시에는 엄청난 혁신이었겠어요.
기자: 그렇습니다. 특히 1920년대부터 영화관들이 앞다퉈 냉방 장치를 설치하기 시작했습니다.
한여름에도 실내 영화관에서 오랜 시간을 보내게 되면서 미국인의 여가 생활과 소비 문화도 바뀌기 시작합니다.
진행자: 영화관이 발빠르게 에어컨을 설치하고 덕을 톡톡히 봤네요. '여름 블록버스터' 문화도 에어컨 덕분에 가능해졌다고 할 수 있겠는데요?
기자: 그렇습니다. 특히 1920년대 미국 영화관들은 ‘냉방 완비’를 대대적으로 광고했습니다.
당시에는 여름이면 너무 덥고 습해서 사람들이 실내 공연장이나 극장을 찾지 않는 경우가 많았는데요, 에어컨이 설치되자 상황이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에어컨 덕분에 여름에도 관객이 몰리기 시작한거죠.
심지어 일부 극장 광고에 영화 제목보다 ‘시원한 냉방 시설 완비’라는 문구가 더 크게 눈에 띄게 들어가기도 했고요. 영화보다도 시원한 곳을 가기위해 극장에 찾는 사람들도 적지 않았습니다.
진행자:백화점이나 실내 쇼핑몰도 여름에 더위를 피해서 가는 곳이죠?
기자: 그렇습니다. 에어컨은 미국의 쇼핑 문화도 바꿔놓았습니다. 1950-60년대 미국에서 대형 쇼핑몰이 빠르게 늘어났는데요, 특히 덥고 습한 남부 지역에서 큰 인기를 끌었습니다. 미국인들은 쇼핑몰에 단순히 물건만 사러 가는 게 아니라 시원한 실내에서 걷고, 쉬고, 식사하며 시간을 보내기 시작했습니다.
진행자: 에어컨이 미국 사람들이 사는 지역까지 바꿔 놓았다는 말도 있던데요?
기자: 그렇습니다. 과거에는 플로리다나 텍사스, 애리조나 같은 지역이 여름철 무더위 때문에 지금처럼 많은 인구가 살기 쉽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에어컨이 보급되면서 사람들이 남부로 대거 이주하기 시작했고, 기업들도 남부에 공장과 사무실을 세우기 시작했습니다.
미국에서는 남부와 서부 지역의 성장을 '선벨트(Sun Belt)' 성장이라고 부르는데요. 에어컨 보급이 선벨트 성장의 중요한 요인 가운데 하나로 꼽히고 있고, 또, 남부 지역 인구가 늘어나면서 이 지역의 정치적 영향력까지 커졌습니다.
진행자: 미국의 최첨단 우주산업과 AI 산업도 냉방 기술 위에 세워진 것이라고 하던데요?
기자: 네. 두 분야 모두 냉방 기술이 필수입니다. 우주선 제작 시설과 전자장비는 온도와 습도 관리가 매우 중요하고요, AI 데이터센터도 서버가 엄청난 열을 내기 때문에 냉각 시스템 없이는 운영할 수 없습니다.
그러니까, 사실 현대인들의 생활 자체가, 여름에 농구 경기 보고, 대형 공연장에 가서 즐기고, 쇼핑몰에서 시간을 보내는 모든 일상 생활이 캐리어가 발명한 에어컨, 냉방 기술 위에서 돌아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다만, 에어컨에 너무 과하게 노출되면 이른바 ‘냉방병’이 생길 수도 있으니까요, 적절한 온도와 사용시간이 중요하겠습니다.
진행자: 네, 그렇군요. 미국을 혁신적으로 바꿔 놓은 발명품 에어컨 이야기, 김미옥 기자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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