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결 가능 링크

한국, 김정은 방러 가능성에 "평화 해치는 군사협력 안돼"…주한미대사 "북·러 고립된 국가"


김정은(오른쪽) 북한 국무위원장과 세르게이 쇼이구(왼쪽) 러시아 국방장관이 지난 7월 평양에서 회동하고 있다. (자료사진)
김정은(오른쪽) 북한 국무위원장과 세르게이 쇼이구(왼쪽) 러시아 국방장관이 지난 7월 평양에서 회동하고 있다. (자료사진)

한국 정부는 북한과 러시아 정상이 군사 협력을 논의하는 회담에 나설 가능성이 제기되는 데 대해 국제 평화를 해치는 군사 협력이 이뤄져선 안 된다고 밝혔습니다. 필립 골드버그 한국 주재 미국대사는 북러는 고립된 국가들이라며 이들의 밀착에 대한 중국의 이해관계는 다르다고 평가했습니다. 서울에서 김환용 기자가 보도합니다.

임수석 한국 외교부 대변인은 5일 정례브리핑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이르면 다음주 러시아를 방문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군사 협력을 논의할 가능성에 대해 “한국 정부는 북러 간 인적 교류를 포함한 한반도 정세 관련 동향을 예의주시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임 대변인은 또 미한 외교 당국 간 관련 동향에 대해 긴밀히 소통하고 있다면서 북러 군사 협력에 반대하는 입장을 분명히 했습니다.

[녹취: 임수석 대변인] “그 어떤 유엔 회원국도 불법 무기 거래를 포함한 안보리 대북 제재 결의를 위반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특히 국제사회의 평화와 안정을 해하는 북한과의 군사 협력은 이루어져서는 안 될 것입니다.”

임 대변인은 이와 함께 세르게이 쇼이구 러시아 국방부 장관이 언급한 북러 연합훈련 가능성에 대해선 “러시아와 북한 간 협력은 관련 안보리 결의를 준수하는 가운데, 한반도 평화와 안정에 기여하는 방향으로 이뤄져야 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미국의 ‘뉴욕타임스’(NYT) 신문은 4일 미국 정부 관계자 등을 인용해 김정은 위원장이 이달 러시아 방문을 계획하고 있다고 보도했습니다.

특히 오는 10∼13일 러시아 극동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열리는 동방경제포럼(EEF)을 계기로 김 위원장과 푸틴 대통령 회동이 이뤄질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옵니다.

러시아 매체들은 5일 북한과의 연합훈련이 당연히 논의되고 있다는 쇼이구 국방부 장관의 발언을 전했습니다.

전문가들은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고전 중인 러시아와 국제사회의 강력한 제재를 겪고 있는 북한이 대미, 대서방 공동전선 차원에서 상호 협력이 절실해진만큼 정상회담 가능성이 커졌다고 보고 있습니다.

한국의 북한대학원대학교 김동엽 교수는 북한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사태로 봉쇄한 국경을 다시 열면서 외교 활동도 본격적으로 재개하는 양상이라며 러시아와의 밀착이 두드러지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김동엽 교수] “북한은 탄약이나 구형 미사일을 제공하고 그 대가로 러시아로부터 첨단 군사과학기술 이전 같은 것들이 필요할 것이고 또 이런 군사기술 협력뿐만 아니라 식량과 에너지 지원도 분명히 받을 수 있거든요. 이런 것들을 놓고 보면 이것은 장관 차원에서 이뤄지는 게 아니라 최고 지도자들 간 만남을 통해서 조금 더 확실해질 수 있는 부분이 있거든요.”

북러 정상회담이 성사될 경우 이는 미한일 3국 간 안보 공조를 준동맹 수준으로 격상시킨 지난달 캠프 데이비드 미한일 정상회의에 대한 맞대응 차원이라는 분석이 나옵니다.

북러 정상회담이 미한일 안보 협력 강화를 자국에 대한 포위전략으로 보고 있는 중국과 함께 미한일에 대한 북중러의 본격적인 대결구도의 신호탄이 될 가능성도 제기됩니다.

한국 정부 산하 국책연구기관인 통일연구원 홍민 박사입니다.

[녹취: 홍민 박사] “한미일 또는 한미가 동북아에서 확장억제력을 강화하고 대중국 포위, 대러시아 포위를 하고 있는 전선을 좀 더 분산시키고 거기에 대응할 수 있는 전선을 형성하는 데 있어서 외교적으로 북한과도 긴밀하게 협력하고 있다는 것을 정상급 수준에서의 외교 행보를 통해서 메시지화 하는 게 상당히 한미일을 압박하는 데 있어서 주효하다고 보는 것 같아요.”

필립 골드버그 한국 주재 미국대사는 그러나 북러와 중국은 입장이 다르다고 지적했습니다.

필립 골드버그 주한 미국대사가 지난 4월 백악관에서 열린 윤석열 한국 대통령 환영 국빈 만찬에 참석하고 있다. (자료사진)
필립 골드버그 주한 미국대사가 지난 4월 백악관에서 열린 윤석열 한국 대통령 환영 국빈 만찬에 참석하고 있다. (자료사진)

골드버그대사는 5일 한국외교협회 등이 주최한 초청 연설에서 “북한과 러시아는 고립된 국가”라며 “중국은 러시아와 무한한 우호관계에 대해 말하는 것과 관계 없이 자국의 이해관계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습니다.

골드버그 대사는 “북러 관계는 중국과의 삼각관계가 아니라 북러가 고립돼 있다는 관점에서 봐야 한다”고 부연했습니다.

북러 간 밀착은 국제사회의 제재를 받는 고립된 국가들 간 행동이고, 미국 등 서방과의 관계를 무시할 수 없는 중국은 입장이 다르다는 의미로 풀이됩니다.

박원곤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는 미국과 전면적인 적대관계를 원치 않고 국제사회를 의식해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해 방관하는 태도를 보여 온 중국이 북러 군사 협력에 적극 동참하는 데에는 부담이 있을 것이라고 진단했습니다.

박 교수는 북한은 러시아와의 밀착을 통해 과도한 대중국 의존도를 탈피하는 한편 중국을 자극해 북한과의 관계에 더 적극성을 보이도록 유도하는 이른바 ‘시계추 외교’를 펴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박원곤 교수] “ “북한이 냉전 시기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고 이른바 시계추 외교를 계속 했었죠. 특히 냉전 시기엔 중국과 소련 사이에서 시계추 외교를 해서 양측을 경쟁시켜서 자신들이 원하는 최대치를 끌어 내는, 지금도 약간 그런 모습이 보이지 않나 그런 생각이 있어요.”

하지만 북중러 연합훈련이 현실화할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관측도 나옵니다.

김정은 위원장이 최근 지상 전력에 비해 존재감이 미미했던 해군 기지를 이례적으로 방문하고 해상 무력 강화를 강조한 것은 북한 특유의 ‘자주’ 노선을 수정해 중러와의 연합훈련을 준비하는 포석일 수 있다는 해석이 나옵니다.

중러 입장에선 일본에 주둔하는 미군의 존재로 자신들의 태평양 진출이 쉽지 않은 상황에서 전초기지에 해당하는 동해로 나가는 데 북한과의 연합훈련이 실효성이 있다는 분석도 나옵니다.

홍민 박사는 “지난해 9~10월 중러 연합훈련 기간에 북한이 전술핵 탑재 훈련에 나서는 등 낮은 단계의 공조를 보였고 올해 안으로 예정된 중러 등 5개국 다국적 훈련 시 북한 해군이 참가할 가능성도 있다”고 전망했습니다.

전문가들은 또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로 북한의 재래식 무기와 탄약 지원이 절실한 러시아가 북한의 핵과 미사일 고도화를 위한 첨단기술 이전 요구를 받아들일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민간 연구기관인 한국국가전략연구원 문성묵 통일전략센터장은 정상회담이 성사되면 관련 협상이 이뤄질 것이라며 일정 수준에서 기술 협력에 합의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문성묵 센터장] “러시아는 북한이 필요하고 북한도 러시아가 필요한데 협상 진행 과정에서 북한이 자기들에게 꼭 필요한 기술 협력을 전제로 해서 러시아의 필요를 채우겠다고 하면 그 과정에서 일정 수준 기술협력이 이뤄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그런 얘기죠.”

북한으로의 무기 이전은 유엔 안보리 대북 결의 위반입니다.

연합훈련과 관련해선 이를 직접 금지한 안보리 결의 조항은 없지만, 훈련 과정에서 결의에서 금지된 물자 이전이나 북한의 핵과 미사일 프로그램 고도화에 기여하는 행위가 일어날 수 있습니다.

한국 외교부 당국자는 “상황 전개 등 과정에서 안보리 제재 위반 여부에 대해서는 검토를 해봐야 할 것”이라며 “한국뿐 아니라 관련 동향을 우방국들도 주시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서울에서 VOA뉴스 김환용입니다.

XS
SM
MD
L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