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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 전 미 외교문서, '중국, 북한 ICBM 위협 일축...푸틴은 북한의 국가적 마약 생산 우려'


지난 1997년 11월 베이징을 방문한 스트로프 탈보트(왼쪽) 당시 미국 국무부장관이 첸지천 중국 외교부장과 만났다.
지난 1997년 11월 베이징을 방문한 스트로프 탈보트(왼쪽) 당시 미국 국무부장관이 첸지천 중국 외교부장과 만났다.

중국 고위 당국자가 지난 2000년 미국 측에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역량을 과소평가하며 미국의 우려를 일축하는 내용이 담긴 외교 문서가 최근 공개됐습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북한의 마약 생산을 핵 문제와 함께 ‘나쁜 일’로 묘사했던 일화도 소개됐습니다. 함지하 기자가 지난해 기밀 해제된 국무부 문건에서 한반도 관련 내용을 추렸습니다.

지난해 미국 국무부가 기밀 해제해 공개한 외교 문건에는 2000년 2월 18일 베이징에서 이뤄진 양제츠 당시 중국 외교부 부부장과 스트로브 탈보트 당시 국무부 부장관의 회동이 자세히 묘사돼 있습니다.

양측은 대화 초반부터 미국의 국가미사일방어망(NMD) 문제를 놓고 팽팽하게 맞섰는데, 이때 북한이 화두로 등장합니다.

탈보트 부장관이 점증하는 북한과 이란, 이라크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위협에 따라 미사일 방어망 구축이 불가피하다는 논리로 NMD에 반대하는 중국을 설득한 것입니다.

외교 문건에 따르면 탈보트 부장관은 “(냉전 때와 달리) 우리는 외교와 억제력만으로 미국 본토에 대한 위협을 안정적으로 다룰 수 없는 시대에 있다”며 “이것이 우리가 탄도미사일 방어를 생각하게 된 계기”라고 설명했습니다.

이어 동석한 미 해군 제독이 새롭게 제기되는 탄도미사일 위협을 주제로 브리핑했는데, “향후 15년에 걸친 북한, 아마도(probably) 이란, 어쩌면(possibly) 이라크의 점증하는 ICBM 위협”을 특정했습니다.

[기밀 해제 외교문서] “TALBOTT TURNED TO REAR ADMIRAL ENRIGHT WHO PRESENTED A BRIEFING ON THE EMERGING BALLISTIC MISSILE THREAT, WHICH LAID OUT THE DEVELOPING ICBM THREATS OVER THE NEXT 15 YEARS FROM NORTH KOREA, PROBABLY FROM IRAN, AND POSSIBLY FROM IRAQ.”

그러나 양제츠 당시 부부장은 미국의 미사일 방어망이 중국과 러시아를 겨냥한 것이라고 반박하면서, 북한의 ICBM 위협을 비현실적인 주장으로 일축했습니다.

외교 문건은 양제츠 부부장이 꼭 대답을 듣자고 묻는 게 아닌 수사적 질문을 했다며 “미국은 정말로 북한이 앞으로 몇 년 안에 핵탄두를 장착한 ICBM을 미국에 발사할 것으로 믿는 것이냐’”고 반문했다는 당시 상황을 소개했습니다.

특히 양제츠 당시 부부장은 “미국은 북한이 핵을 갖지 않도록 확실히 하기 위해 많은 돈을 썼고, 지금까지 성공을 거뒀다”면서 “핵탄두가 어디에서 날라오겠느냐”며 북한의 ICBM 개발 가능성을 낮게 봤습니다.

더 나아가 “국가미사일방어망(NMD)이 북한을 향한다는 건 도저히 이해 불가능한(mind-boggling) 일”이라고 양제츠 당시 부부장은 지적했습니다.

‘향후 15년’이라는 구체적인 시간표를 제시하며 일찌감치 북한의 ICBM 개발을 우려한 미국의 전망을 중국이 받아들이지 않았다는 사실이 이번 문서를 통해 드러났는데, 이후 북한의 미사일 개발 방향과 속도에 대해선 미국이 옳았고 중국은 틀린 것으로 판명됐습니다.

현재 북한은 대기권 재진입이 가능한 핵탄두 탑재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기술을 완성했다고 평가받고 있기 때문입니다.

북한이 2015년을 전후해 미국 타격 능력을 갖출 것이라는 미국의 예측은 이후 국방 당국자의 공개 발언을 통해 구체화됐습니다.

로버트 게이츠 전 국방장관은 지난 2011년 1월 베이징에서 북한이 적어도 5년 안에 ICBM 개발에 성공할 것이며, 이것이 미국에 직접적인 위협이 될 것이라고 밝혀 큰 파장을 일으켰습니다.

국무부가 지난해 공개한 또다른 기밀 해제 문건에도 북한 미사일 문제에 대한 미국과 중국의 극명한 시각차가 담겼습니다.

탈보트 부장관은 양제츠 부부장과의 회동 약 4개월 뒤 캐나다 외교 차관과 만나 “중국은 북한이 무일푼(broke)이고 특별히 어떤 능력도 없는 것으로 규정하면서 북한의 미사일 위협을 부인하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이어 “하지만 미국의 관점에선 북한이 그런 상황에도 한국을 공격할 수 있는 군사 역량을 증가시켰고, 그들은 미사일 프로그램을 여전히 보유하고 있다”고 탈보트 부장관은 지적했습니다.

국무부는 일정 시한이 지난 외교 문서와 국무부 내 이메일 교신 등을 ‘정보공개’ 형식으로 자체 웹사이트에 게시하고 있습니다.

지난해에는 2000년에 생산된 문건이 대거 비밀 해제됐는데, 이에 따라 ‘2차 북핵 위기’ 직전 상황이 20여년 만에 생생하게 공개됐습니다.

지난 2000년 2월 모스크바를 방문한 매들린 올브라이트 당시 미국 국무장관이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 권한대행과 만났다.
지난 2000년 2월 모스크바를 방문한 매들린 올브라이트 당시 미국 국무장관이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 권한대행과 만났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2000년 미국 측에 북한 문제에 대해 우려한 일화도 이번 기밀 해제 문건을 통해 확인됐습니다.

2000년 2월 2일 당시 대통령 권한대행이던 푸틴 대통령은 크렘린궁에서 지금은 고인이 된 매들린 올브라이트 당시 국무장관을 면담했습니다.

올브라이트 장관은 푸틴 권한대행에게 미국과 러시아의 ‘탄도탄요격미사일제한(ABM)조약’을 최소 범위에서 수정할 것을 제안했고 북한과 이란에 대한 방어 장비 배치 필요성을 그 이유로 제기했습니다.

그러자 푸틴 대통령은 “우리는 이란, 북한과 같은 나라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다 알진 못한다”며 “하지만 우리는 최근 소식통을 통해 북한의 최고위급에 있는 사람들이 마약 제조와 판매에 관여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고, 이는 대량생산 방식으로 이뤄지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푸틴 대통령은 “이건 나쁜 일”이라면서 “그러나 핵 분야에서 일어나는 일만큼은 나쁘지 않고, 따라서 우리도 당신 못지않게 걱정해야 한다”고 답했습니다.

이에 대해 올브라이트 장관은 “위협과 관련해 우리는 북한, 이란에 대한 정보를 공유할 용의가 있고 준비도 돼 있다”며 “북한은 매우 특이한 나라이고, 그곳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아무도 몰라 우리는 불안하다”고 말했습니다.

VOA 뉴스 함지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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