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딸 김주애가 아버지와 함께 평양 건설 현장 행사에 참석하면서 행보를 비군사 분야로까지 넓히는 양상입니다. 권영세 한국 통일부 장관은 김주애 후계자 내정설에 대해 아직은 판단하기 이르다고 말했습니다. 서울에서 김환용 기자가 보도합니다.
북한 대외관영 ‘조선중앙통신’과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딸 김주애와 함께 평양 서포지구 새 거리 건설 착공식에 참석한 사실을 26일 보도했습니다.
‘조선중앙통신’ 등은 김 위원장이 착공식에서 김주애 등과 함께 첫 삽을 뜨고 발파 단추를 직접 눌렀다고 전하고, 김주애가 김 위원장 바로 옆에서 손뼉을 치고 삽질하는 사진도 공개했습니다.
김 위원장은 현장 연설을 통해 이 사업이 “하나의 건설사업이 아니라 정치 투쟁”이라며 "당에서 호소한 지 얼마 안돼 전국의 모든 청년동맹조직들에서 무려 10여만명의 청년들이 수도 건설에 탄원해 나섰다”고 강조했습니다.
북한은 전국의 건설 현장에 군과 청년 등 노동자를 동원하면서 이들이 자발적으로 노동력을 제공하고 있다고 선전하고 있는데 김 위원장이 직접 청년세대를 한껏 치켜세운 연설을 한 겁니다.
김 위원장은 연설에서 41차례 ‘청년’을 언급했고 이들을 “신성한 의무와 시대의 부름을 받고 모여온 전국의 청년 탄원자 동무들”이라고 지칭했습니다.
평양 북쪽에 4천100 세대 주택을 건설하는 서포지구 사업은 올해 노동당이 제시한 3개 대상 건설 중 하나로, 다른 건설 현장과는 달리 군이 아닌 10만명의 이른바 ‘청년 탄원자’들로만 사업을 진행합니다.
‘자발적 탄원’을 구실로 청년 노동력을 동원해 경제사업을 챙기면서 경험이 부족하고 자칫 동요할 수 있는 청년 세대의 사상을 통제하는 ‘일석이조’의 포석이라는 관측입니다.
한국 내 북한 전문가들은 대규모 청년 동원사업에 김 위원장의 딸이 등장한 데 대해 `백두혈통'이 지배하는 국가와 미래세대를 연결하는 고리로 김주애를 활용하고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한국 정부 산하 국책연구기관인 통일연구원 홍민 북한연구실장은 “김 위원장이 청년세대를 향한 메시지 전달에 김주애를 활용하고 있다”며 “향후 김주애의 성장 과정 전반을 지속적으로 노출하면서 김주애를 미래세대에 대한 호소력, 통합적 메시지에 활용할 것”이라고 전망했습니다.
김주애가 등장하는 공식행사의 폭이 넓어지면서 김 위원장의 후계자 내정설을 놓고도 논란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김주애가 공식석상에 등장한 것은 이번이 일곱번째로, 군 관련 행사 이외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지난 17일 내각과 국방성 직원들 간 체육경기 관람 이후 두 번째입니다. 건설 현장은 처음입니다.
권영세 한국 통일부 장관은 27일 한국의 ‘CBS’ 라디오 시사프로그램에 출연해 “김주애를 후계자로 보는 건 조금 이르다"고 신중한 입장을 보였습니다.
권 장관은 북한이 “지금부터 후계구도를 만든다고 하더라도 이 여성이 군 위주로 돼 있는 북한체제를 이끌어갈 수 있겠느냐 하는 의문도 남아 있다”며 “김정은이 이제 40살 정도 됐고 북한체제가 한국보다 훨씬 더 가부장적인 남자 위주의 사회인 측면이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홍민 실장도 북한의 후계체계의 전통을 고려할 때 김주애 후계자 내정 여부는 섣불리 판단할 문제가 아니라고 말했습니다.
[녹취: 홍민 실장] “북한은 무장투쟁을 전통으로 두고 있고 그것은 곧 게릴라전에서 정규군 형식으로 전환하는 일종의 군사중심적 남성지배문화입니다. 때문에 군을 통솔해야 하고 특히 최근엔 핵무기를 고도화하면서 핵무기를 통제하고 그것을 결정하는 권한까지 주어지는 최고사령관의 지위 이것이 굉장히 중요하게 부각되는 위상입니다.”
권영세 장관은 다만 북한이 “어쨌든 4대 세습은 확실하게 하겠다는 모습을 보이는 것은 분명하다”며 “4대 세습의 당사자가 김주애인지는 계속해서 지켜보는 게 옳겠다는 생각을 한다”고 말했습니다.
권 장관은 김 위원장에게 첫째 아들이 있는지에 대해서는 “존재에 대해 추측할 만한 정황들은 있었지만 첩보 수준 정도일 뿐 확실하게 확인할 수 있는 정도의 내용은 없다”며 “공식적으로 얘기를 할 수 있는 것은 딸이 하나 있고 그 밑에 한 명이 더 있지만 성별은 잘 모르겠다는 것과 그 위에 아들이 있는지 여부는 지금 확인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는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김형석 전 한국 통일부 차관은 김 위원장의 후계자가 누가 될진 모르지만 김주애의 잦은 등장을 통해 `백두혈통'이 국가를 다스린다는 이미지를 주민들에게 각인하는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녹취: 김형석 전 차관] “인민들과는 다른 특별한 통치집단이라는 그런 이미지를 김주애가 등장하면서 김주애만이 아니라 김정은의 자녀들에게 다 그런 이미지가 들어가는 거죠. 그렇게 백두혈통의 특수성을 이미지화하는 데 있어서 도움이 되겠죠.”
임을출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김주애를 후계자 내정 단계라고 규정하는 것은 아직 근거가 부족하다”며 “후계자를 내정하려면 자질과 역량 평가 등이 이뤄져야 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임 교수는 또 “북한이 내부적으로 극심한 식량난과 대외적으로 핵무력 고도화를 통한 강대강 정면승부 기조 아래 핵전쟁을 운운하고 엄혹한 상황에서 어린 김주애를 후계자로 내정하고 후계자 수업을 쌓게 하는 것이 우선순위가 될 지 의문”이라고 밝혔습니다.
[녹취: 임을출 교수] “가장 중요한 것은 민심을 얻을 수 있을만한 충분한 자질과 능력을 갖추고 있느냐 그게 가장 중요한 건데 아직은 김주애와 관련된 절차적 정당성도 전혀 확보를 안 한 상태이고 그렇다고 민심을 얻을만한 성과나 능력을 보여준 것도 아니고 그런 상황에서 김정은 위원장은 김주애를 자신의 정치 핵심 코드라고 할 수 있는 후세대, 미래세대 그 다음에 청년중시사상 이런 것을 구현하는 과정에서 김주애를 지금 적절하게 활용하고 있다.”
반면 민간 연구기관인 세종연구소 정성장 통일전략연구실장은 “북한이 단순히 핵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개발을 통해 ‘미래세대’ 안전을 담보한다는 것을 은유적으로, 상징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김주애를 활용하는 것이라면 경제건설 현장까지 데리고 간 것을 설명하기 어렵다”고 말했습니다.
정 실장은 “김주애가 아직 10대이기 때문에 그를 후계자로 ‘지명’했다기보다는 후계자로 ‘내정’했다고 보는 것이 적절하다”며 내정설에 힘을 실었습니다.
[녹취: 정성장 실장] “원래 김정은 옆자리는 보통 서열 2위나 3위가 서는 자리죠. 그런 자리에서 김주애가 단순히 참석한 게 아니라 착공식에서 같이 삽을 떴다는 것은 그의 위상이 한 단계 더 높아졌다는 그런 의미로 해석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정 실장은 북한 매체들이 아직 김 위원장의 딸 이름을 직접 거론하지 않고 있는 데 대해 향후 김주애의 실명을 공개할 것이라며 김 위원장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의 북중 정상회담 등을 위해 중국을 방문할 때 김주애를 데리고 갈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습니다.
서울에서 VOA 뉴스 김환용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