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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추수 마무리에도 쌀값 고공행진  


북한 강원도 원산의 협동농장에서 수확기를 맞아 주민들이 소를 끌고 이동하고 있다. (자료사진)
북한 강원도 원산의 협동농장에서 수확기를 맞아 주민들이 소를 끌고 이동하고 있다. (자료사진)

북한의 벼 수확기가 마무리에 접어들었지만 식량 가격은 여전히 고공행진 중입니다. 올해 작황이 나쁜데다 주민들이 미리 쌀과 옥수수를 사놓으려는 움직임이 겹친 결과로 보이는데요. 서울에서 김환용 기자가 보도합니다.

일본의 북한 전문매체인 ‘아시아프레스’에 따르면 지난 21일 현재 북한 내 쌀의 시장가격은 1kg당 6천원, 옥수수는 2천900원을 기록했습니다.

벼 수확이 마무리에 접어든 시기에 북한의 곡물 가격이 고공행진을 지속하고 있는 겁니다.

북한은 지난 2017년 이후 국제사회의 대북제재가 강화되고 최근 3년 사이 잦은 자연재해와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로 식량난이 심화되는 양상이었습니다.

‘아시아프레스’에 따르면 10월 말을 기준으로 지난 2019년엔 kg당 쌀이 5천원대 중반, 옥수수는 1천원 대 중반, 2020년엔 쌀 4천원대 중반, 옥수수 2천원 안팎 그리고 작년엔 쌀이 5천원대 중반, 옥수수는 2천원 대 중반이었습니다.

탈북민 출신의 북한 농업 전문가인 조충희 굿파머스 연구소장은 예년 같으면 이즈음엔 식량가격이 큰 폭으로 떨어져야 하는데 올해는 식량 가격이 좀처럼 떨어지지 않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조 소장은 북한 내부 소식통들의 전언을 토대로 평안남도 지역의 경우 올해 예상 수확고가 옥수수의 경우 정보 즉 3천평 당 1.5~2t으로 예년의 절반 이하 수준을, 벼는 3~4t으로 예년의 70% 안팎의 수준에 그칠 것으로 예상했습니다.

또 북한 곡창지대인 황해도의 경우 올해 자연재해가 심했기 때문에 사정이 더 나쁠 것으로 전망했습니다.

조 소장은 북한 당국도 올해 농사가 실패했음을 인정하는 분위기라고 전했습니다.

[녹취: 조충희 소장] “지금 북한이 올해 농사 실패와 관련해서 회의 준비를 하고 있거든요. 그러니까 각 지역 농업관계자들한테 내려 보낸 게 올해 농사 실패 원인을 분석해서 준비하라고 지시가 떨어졌어요. 그래서 올해 농사는 북한 자체도 작황이 안 좋아서 실패를 인정하고 있고요.”

북한은 지난 겨울부터 올 봄까지 지속된 가뭄과 이어진 장마, 태풍 등 자연재해와 모내기철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 확산에 따른 인력 동원 차질 등이 겹치면서 농사에 큰 어려움을 겪어야 했습니다.

전문가들은 수확기 곡물가격의 고공행진은 북한 주민들이 향후 식량사정을 부정적으로 전망하면서 식량을 미리 확보하려는 수요가 커졌기 때문으로 보고 있습니다.

권태진 GS&J 인스티튜트 원장은 북한 당국의 재고 물량도 부족해 양곡 판매소를 통한 곡물 가격 조절 기능도 작동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권태진 원장] “당국이 시장을 안정시킬 만한 물량이 없고 그 다음에 현재도 식량사정이 나쁘고 앞으로 미래, 미래라는 게 내년 수확이죠. 그것도 긍정적으로 보지 않은 것이죠. 그러니까 식량가격이 버티고 있는 겁니다.”

권 원장은 신종 코로나로 인한 대중 무역 위축과 북한 외화난,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한 식량과 비료 가격 폭등, 중국 내 식량사정 악화 등 악재들 투성이라고 진단했습니다.

한국 정부 산하 국책연구기관인 통일연구원 조한범 박사는 식량난이 갈수록 심각해지면서 과거 고난의 행군 시절에 나타났던 현상들이 재현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일례로 협동농장에서 배정토록 돼 있는 군량미에 손을 대는 농장원들이 나타나면서 군인들이 협동농장 현지에서 총을 들고 감시하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는 겁니다.

[녹취: 조한범 박사] “쟤네들은 어떻게 하냐 하면 일단 군인들이 가서 군량미를 확보하고 그 다음에 평양시가 가서 평양시 공급분을 가져 가고 남는 것을 이제 협동농장이나 국영농장이 처리하거든요. 그런데 총 든다는 얘기는 뭐냐 하면 농민들이 빼돌릴까 봐 총 들고 지키면서 지들이 먼저 가져가는 거거든요.”

북한은 앞서 지난 9월 말 본격 추수기에 접어들 무렵 노동당 정치국 회의를 열고 양곡 유통 비리 단속과 척결 문제를 논의한 바 있습니다.

북한이 정치국 회의에서 농사 대책을 논의한 것은 흔하지만, 곡물 수매와 양곡 유통 비리 척결 방안을 집중적으로 다룬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었습니다.

조 박사는 이와 함께 고난의 행군 시절처럼 주민들 가운데 집을 떠나 산으로 들어가 토굴 생활과 화전을 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한편 한국 농촌경제연구원 김영훈 박사는 얼마 전 발표한 ‘이상기후와 북한농업, 그리고 협력과제’라는 제목의 보고서에서 북한의 2012∼2021년 식량생산과 소요량 추이를 분석했습니다.

김 박사는 한국 농촌진흥청과 유엔 식량농업기구(FAO) 자료를 종합한 결과 김정은 국무위원장 집권 초기인 2012∼2014년 평균 생산량은 475만t이었는데 2019∼2021년 최근 3년간 평균은 457만t에 그쳤습니다.

반면 소요량은 집권 초기 570만t 수준에서 최근 3년간 590만t대로 늘어났습니다.

김 박사는 “북한의 식량 생산은 1990년대 위기 수준에서 벗어났을 뿐 수급 균형을 이룰 만큼 뚜렷하게 향상되지 않았다”며 “김정은 집권 이후에는 오히려 더 퇴보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고 평가했습니다.

김 박사는 북한 농업의 침체가 동기 유발이 약한 집단농업 체제를 과감하게 개혁하지 못한데다, 농업 발전에 필요한 자본을 조달하고 신기술을 개발하는 데 실패한 때문이라고 진단했습니다.

김 박사는 “북한의 능동적인 개혁개방과 국제사회의 지원이 이뤄지지 않는 현 상황에서 큰 변화가 없다면 식량 생산 증대를 전망하기는 어렵다”고 지적했습니다.

서울에서 VOA 뉴스 김환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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