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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로 서울] '멍 때리기' 대회


[헬로 서울] '멍 때리기' 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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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하는 한국의 모습을 살펴보는 ‘헬로서울’, 오늘은 3년 만에 서울 한강에서 열린 멍때리기 대회 현장으로 안내해드립니다. 서울에서 동예원 기자입니다. 

주변을 둘러볼 틈도 없이 우리는 바쁜 일상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쉴 틈 없는 현대 사회 속에서 잠시 현실의 짐을 내려놓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대회가 열렸는데요. 변화하는 한국의 모습을 살펴보는 ‘헬로서울’, 오늘은 3년 만에 서울 한강에서 열린 멍때리기 대회 현장으로 안내해드립니다. 서울에서 동예원 기자입니다.

[녹취: 대회 시작 현장음]

지난 18일 오후 3시 서울 한강 잠수교에서 '한강 멍때리기 대회'가 시작됐습니다. '멍때리기 대회'는 2014년 10월에 처음 열린 대회로 한국 시민들에게 큰 관심을 받는 대회인데요.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대회가 참 독특합니다. 정말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앉아 있기만 하면 이길 수 있는 대회인데요.

이 행사는 시각 예술가이자 회화 작가인 웁쓰양(예명)이 만들었습니다. 자기 경험을 바탕으로 만들게 된 행사라고 말했는데요. 웁쓰양의 기획 취지부터 들어봅니다.

[녹취: 웁쓰양(예명)] “제가 회화 작가로 활동을 한창하고 있을 때 슬럼프를 겪었어요. 그러면서 작업실에 매일 가도 작업도 하나 손에 잡히지 않고, 집에 돌아오고, 아무것도 안 하고 집에 돌아오고, 그걸 계속 반복하다 보니까 불안해지기 시작하는 거죠. 죄책감도 많이 들고 죄책감이 너무 심해지고 불안해지니까 계획을 바꿔보자. 하루 계획을, 오늘부터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걸 계획으로 세우겠다고 마음먹고 열심히 아무것도 하지 않는 걸로 살았어요. 그러다 보니까 죄책감도 줄어들고 불안감도 확실히 줄어들더라고요.”

잠시 쉬어가는 시간이 도움이 됐다는 건데요. 하지만 다시 불안함을 느꼈다고 합니다. 그래서 '왜 이러지'라는 생각으로 주위를 둘러봤는데, 자신을 둘러싼 환경이 너무나 바빴던 거죠. 그래서 웁쓰양은 주변을 바꿔야겠다, 저 바쁜 사람들을 앉혀야겠다는 생각으로 멍때리기 대회를 기획했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대회 규칙은 어떤 걸까요?

[녹취: 웁쓰양] “멍때리기 대회는 일단 스포츠 대회로 이해하면 좋을 것 같은데요. 세상에서 가장 정적인 대회, 가장 정적인 스포츠라고 생각하시면 좋을 것 같아요. 모든 스포츠에는 공정한 판단 기준이 있으니까요. 우리 대회는 예술 점수 그리고 기술 점수, 이 두 가지 기준으로 우승자를 뽑는데요. 먼저 예술 점수는 관객 투표예요. 선수마다 등 번호를 부여받고 거기에 맞게 관객들이 보고 '어 저 선수 가장 멍때려 보인다' 그러면 거기에다가 스티커를 붙여서 투표할 수 있고요. 그래서 가장 많은 투표를 받은 열 명, 열 명을 일단 뽑고요.”

그리고 기술 점수도 있는데요. 대회가 90분 동안 진행되는데 15분 간격으로 심박수를 잽니다. 그래서 예술 점수에서 뽑힌 열 명 가운데 심박수 그래프가 가장 낮은 곡선을 그리거나 안정적인 선수 중에서 1, 2, 3등을 가리게 되고요. 대회 중간중간에는 컬러 카드를 통해 참가자들에게 여러 서비스를 제공한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웁쓰양] “선수분들이 멍때리다 보니까 아무래도 말씀을 할 수 없잖아요. 그래서 저희가 컬러 카드를 나눠드려요. 총 4가지 색깔이 있는데 빨간 카드를 들면 마사지 서비스를 받을 수 있고 파란색 카드를 들면 물을 마실 수 있고 그다음에 노란색 카드를 들면 부채질 서비스 그리고 검은색 카드를 들면 화장실에 가고 싶다든가 이런 불편을 해소할 수 있고 아. 난 더 이상 못하겠어. 기권하고 싶어. 이런 분들도 검정 카드를 들고 스태프에게 말씀드리면 그러니까 그런 식으로 소통할 수 있습니다. 카드를 가지고...”

올해로 5회째를 맞이하는 '멍때리기 대회' 시작에 앞서 웁쓰양은 이번에는 어떤 선수가 우승할까 기대된다고 말했는데요. 그동안 참가했던 참여자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사람으로 1회 우승자를 꼽았습니다.

[녹취: 웁쓰양] “그때 첫 대회인데 9살 어린이가 우승했는데 정말 돌부처처럼 앉아서, 웬만한 어른들보다도 자세도 흐트러지지 않고 대회 내내 앉아있었는데 심지어 심박 그래프도 정말 뛰어나서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그래서 그 친구가 아마 학원을 되게 많이 다녔었던 친구로 알고 있는데, 대회 이후에 학원을 어머니가 줄여주셨다고...”

그리고 웁쓰양은 대회가 해를 거듭할수록 가족 단위 참여자가 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과거에는 멍때리기가 마냥 부정적으로 받아들여졌다면 이제는 대회에 대한 긍정적인 분위기도 많이 생긴 것 같다는 건데요. 현장에서 보니 다양한 연령대와 직군의 참여자들이 대회 준비를 위해 모여 있었습니다. 먼저 참여자 최여정 씨와 응원하러 온 친구, 강연후 씨의 이야기부터 들어봅니다.

[녹취: 최여정 씨] “직장에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서 머리를 비우고자 그렇게 지원하게 됐습니다. 다양한 직군, 연령대 분들 오시니까 사연들도 보면서... 저기 적는 칸이 있어서 저것도 보면서 어떤 분이 오셨나 그런 것도 보고 오기 전에 긴장 풀려고 청심환도 먹고 집에서 멍때리는 연습 하고 아무 생각 없이 있는 연습을 했습니다.”

[녹취: 강연후 씨] “아무래도 직장은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없기 때문에 여러 스트레스를 받는 것 같습니다. 여정아. 할 수 있다!”

또한 참여자 박지훈 씨는 영업직 일을 하며 그동안 자신을 돌아볼 시간이 없었다고 했는데요. 이번 기회를 통해 생각을 정리하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박지훈 씨] “제가 영업직이라 차량 운행으로 업무 진행을 하는데 잠수교나 한강을 차로 돌아다니면서 항상 보는데 이번에 멍때릴 기회가 있다고 해서 바쁜 서울 삶 속에 한량을 느껴보고자 지원하게 됐습니다. 이제 거의 4분기쯤 됐는데 올 한 해 안 좋았던 거나 내년 상반기를 준비하는 그런 걸 간단하게라도 정리해보는 게 어떨까, 그럼 좋을 것 같습니다.”

멍때리기 대회가 중반부를 향할 때쯤 의외로 빠른 탈락자가 발생했습니다. 더위를 이기지 못하고 기권을 한 1번 선수였는데요.

[녹취: 탈락 현장음]

이렇게 대회가 중반부로 접어들면서 '멍때리기 대회'를 함께 즐기는 관객도 더욱 늘어났습니다. 누가 더 멍을 잘 때리는지 흥미롭게 지켜보기도 하고 관객 투표로 예술 점수가 정해지기 때문에 자신이 생각한 멍때리기의 달인에게 스티커를 붙이기도 했는데요. 한국 시민 박윤국 씨는 행사 취지가 마음에 든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박윤국 씨] “되게 멍때릴 기회가 없는데 다 같이 나와서 멍때리는 거 보니까 되게 신기하다, 바깥에 있는 분들은 평소의 삶을 살고 있는데 이쪽만 뭔가 다른 세상이 펼쳐진 것 같다? 여기는 시간이 약간 멈춰 있는 그런 느낌이에요. 멍때릴 수 있는 시간이 마련되는 게 힘들잖아요. 멍때리는 거에 대한 그런 생각을 다시 한번 할 수 있게 돼서 그게 좋다고 생각해요.”

또 다른 한국 시민은 기사에서만 접하던 행사를 우연히 보게 됐다면서 자신도 다음번에는 참가하고 싶다는 뜻을 밝혔습니다.

[녹취: 시민] “TV에서 뉴스로 많이 봤는데 실제로 보니까 너무 신기한 거 있죠. 사람들 표정이 너무 신기해요. 그 연예인이 나와서 대회에서 우승인가 준우승한 걸 봤었는데 그때 찍힌 표정이 너무 재밌었거든요? 다들 표정이... 독특하게 저렇게 진지한 표정을 짓고 있는 게 너무 신기했어요. 저쪽에 오른쪽 중간에 여자분 계시는데 약간 조선시대 왕비나 그런 분들이 앉아 있을법한 자세로 있는데 저분은 왠지 오래 버티지 않을까... 좋은 거 같아요. 저도 가끔 명상하는 프로그램 한 번 참석해 본 적 있었는데 마음이 금방 편해지더라고요. 그래서 아마 미리 알았으면 참석하지 않았을까...”

이날 참여자들의 가장 큰 적은 내리쬐는 햇볕이었습니다. 관객들도 부채질을 연신 하며 대회를 지켜볼 만큼 정말 무더운 날 진행됐는데요. 대회 중후반부쯤 팀으로 참여한 한 부부가 또 탈락했습니다. 어주호 씨와 이탈리아에서 온 루치아 씨였습니다.

[녹취: 어주호 씨] “사실 멍때리기는 자신 있어서 같이 참여했는데 생각보다 날씨가 너무 더워서 앉아있는 게 멍때리기가 아니라 버티는 느낌이더라고요."

[녹취: 루치아 씨] “멍때리기 못 하겠어요. 더위 때문에 힘든 상황에서 끝까지 못 했습니다."

[녹취: 어주호 씨] “그래도 3년만에 열린 '멍때리기 대회' 참여해서 끝까지 함께하지 못해서 아쉽지만 그래도 참여만으로도 의의를 두고 기회가 된다면 또 한번 참여해보고 싶습니다."

이날 대회의 우승자는 김명엽 씨에게 돌아갔습니다. 참가 이유도 눈에 띄었는데요. '한화 이글스' 야구팬이라는 김명엽 씨는 한화 경기를 본다는 생각으로 멍때렸다고 하고요. 한화 팬들에게 멍때리기는 그저 일상이라며 대회가 어렵지 않았다는 소감을 밝혔습니다.

끝으로 대회를 만든 웁쓰양은 바쁜 일상에 멍때리기로 잠시 쉼표를 찍어 쉬어가도 괜찮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웁쓰양] “여러분이 열심히 일하면 돈을 벌고 그 돈으로 나에게 맛있는 음식을 사주기도 하고 평상시 눈여겨보던 옷을 사기도 하고 아니면 좀 더 가볍게는 커피 한 잔을 좀 더 마신다거나 이런 사치를 부릴 수 있잖아요. 저는 멍때리는 것도 커피 한 잔 정도의 작은 사치라고 생각이 들어요. 우리가 멍때리는 것에 대해서 과거의 저처럼 너무 불안해하지 마시고 여러분이 멍때리고 있다거나 멍때리고 싶다고 생각이 들면 스트레스받지 마시고 커피 한 잔 마시는 정도의 사치라고 가볍게 생각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서울에서 VOA 동예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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