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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독립투쟁사 현장- 서대문형무소역사관


한국 독립투쟁사 현장- 서대문형무소역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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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하는 한국의 모습을 살펴보는 '헬로서울', 오늘은 한국의 광복절을 맞아 한민족 독립을 향한 투쟁의 역사가 남아 있는 '서대문형무소역사관' 현장으로 안내해드립니다. 서울에서 동예원 기자입니다.

8월 15일은 한국의 광복절입니다. 1945년 한국이 일본으로부터 해방된 것을 기념하고, 임시정부 법통을 계승한 대한민국 정부수립을 축하하는 날인데요. 변화하는 한국의 모습을 살펴보는 ‘헬로서울’, 오늘은 한국의 광복절을 맞아 한민족 독립을 향한 투쟁의 역사가 남아 있는 ‘서대문형무소역사관’ 현장으로 안내해드립니다. 서울에서 동예원 기자입니다.

[녹취: 벽관 고문 체험음]

서울시 서대문구에 있는 서대문형무소역사관, 전시관 지하에 마련된 벽관 고문 체험실에서 한 교사가 어린이들에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녹취: 벽관 고문 체험음]

서대문형무소역사관은 한국 독립운동가들의 정신을 배울 수 있는 역사관으로 지난 1998년 11월에 개관했습니다. 일제강점기에는 식민 지배에 맞섰던 많은 독립운동가가 갇혔던 곳이고요. 해방 후에는 독재 정권과 군사 정권에 저항했던 민주화 운동가들이 갇혔던 역사의 현장인데요. 1908년 경성감옥으로 문을 열어 1987년 11월에 폐쇄될 때까지 80년 동안 감옥으로 사용된 곳입니다. \

이지은 학예연구사는 역사관에 들어오자마자 보이는 전시관부터 관람하기를 추천했는데요. 그 이야기부터 들어봅니다.

[녹취: 이지은 학예연구사] “전시실 둘러보시고 전시실은 총 지상으로 2층으로 구성되고 지하1층으로 구성되어 있어서요. 지상 1층, 2층 관람하시고 지하공간 관람하신 다음에 바로 뒤쪽으로 나오시면 중앙사로 가는 동선이 됩니다. 그래서 중앙사 관람하시고 옥사 관람하는 동선으로 그렇게 됩니다."

첫번째로 둘러보게 되는 역사전시관은 관사와 고문실로 쓰였습니다. 그래서 전시장은 영상자료실과 매직비전(Magic Vision), 그리고 형무소 역사실로 구성돼 있는데요. ‘매직 비전’실은 독립운동가 강우규 씨가 일본 총독의 마차에 폭탄을 던진 행위를 3차원 입체영상으로 재현해 보여줍니다. 또 지하 전시장으로 가면 관람객이 직접 체험할 수 있는 벽관과 독방과 같은 옥중생활실이 있는데요. 전시관 구성에 관한 이야기 다시 이지은 학예연구사입니다.

[녹취: 이 학예연구사] “저희가 1층 공간은 서대문형무소의 역사를 다루고 있고요. 2층에서는 독립운동과 관련된 내용을 주로 다루고 있습니다. 그리고 지하공간 같은 경우에는 취조실이 실제로 있었던 곳이기 때문에 취조실에서 행해졌던 고문에 대한 얘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서대문형무소의 연혁을 전시하는 1층의 공간을 지나 2층으로 올라서니 민족저항실이 나왔습니다. 이곳은 서대문형무소 소장실로 쓰였던 공간인데요. 현재는 대한제국 말기 의병부터 1919년 3.1운동까지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된 항일 독립운동가와 관련된 유물들이 전시돼 있고요. 다른 공간에서는 1920년대부터 1945년 해방까지 서대문형무소와 관련된 항일 독립운동과 사형장 지하에 있었던 시신 수습실 모형이 전시돼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지은 학예연구사는 2층의 전시공간 중 ‘메모리얼홀’이라는 전시를 소개했는데요.

[녹취: 이 학예연구사] “수형기록카드를 붙여놓은 곳입니다. 이 수형기록카드는 2018년에 ‘일제감시대상 등록카드’라는 이름으로 국가등록문화재로 등록이 되기도 했어요. 잘 보시면 수많은 얼굴이 있는데 독립운동을 하신 분들의 얼굴입니다. 카드가 작성되는 유형이 굉장히 다양한데 그중에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되셨던 분들의 기록입니다. 보면 카드에 번호가 다 적혀져 있는데요. 마지막 번호가 65139번이라고 적혀 있습니다. 번호가 하나도 중복되는 게 없어서 일렬번호라고 알 수 있는데 그중에 10%만 남아있어요. 10% 남아있는 것 중에 중복되는 인물제외하고 4천800명 정도의 분들을 모두다 붙여놓은 것입니다.”

메모리얼 홀을 가득 채운 수형기록카드. 카드 한 장 한 장을 자세히 들여다보니 독립운동가들의 얼굴과 이름, 나이를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많은 얼굴가운데 이지은 학예연구사는 독립운동가 한용운 시인의 카드를 가리켰는데요.

[녹취: 이 학예연구사] “한용운 선생님 카드가 있는데요. 여기 이 줄에서 위에서 4번째 줄 저게 아마 민족대표 33인 선언서 발표하고 나서 잡혀 오셨을 때의 사진이거든요. 잘 보시면 눈빛이 굉장히 노려보는 눈빛입니다. ‘너희가 나를 구속하더라도 나는 굴하지 않는다’는 강렬한 눈빛을 보여주는데요. 이분들 표정을 보면 겁에 질려있거나 공포스럽기보다는 굉장히 담담하고 의지가 있어 보이는 눈빛들이잖아요. 이분들의 정신력, 의지를 보면서 대단하신 분들이라는 걸 느꼈던 것 같아요.”

독립운동가들의 사진은 수배대상이 될 수 있기 때문에 보통 남겨놓지 않는다고 하는데요. 훗날, 이 수형기록카드가 발견되면서 사람들이 몰랐던 독립운동가들의 얼굴과 이름이 알려지게 됐습니다.

그리고 전시관을 다 둘러본 뒤 출구로 나오면 바로 앞쪽에 중앙사 건물이 보이는데요. 이곳은 간수들이 수감자를 감시하고 통제하기 위해 근무했던 공간이라고 합니다.

[녹취: 이 학예연구사] “여기는 서대문형무소에서 가장 유명한 공간인데요. 10,11,12 옥사를 연결하는 파놉티콘(panopticon) 구조의 중앙사입니다. 이것은 ‘모두다 본다’라는 파놉티콘(panopticon)이라는 표현인데요. 사람의 시야 각이 120도 정도 된다고 해요. 120도 안에다가 건물을 배치함으로써 간수가 크게 고개를 돌리거나 시선을 돌리지 않아도 한 눈 안에 무슨 상황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다 볼 수 있도록 만들어진 구조입니다.”

옥사는 수감자들이 실제 투옥되었던 건물로 1922년에 건축되었습니다. 길게 늘어진 옥사를 바라보며 이지은 학예연구사는 감옥에 대한 오해가 있다고 말했는데요. 많은 사람이 감옥은 어둡다고 생각하는데 이곳은 언제나 불이 켜져 있었다고 합니다. 천장에는 커다란 풍창이 있고요. 감방 안에도 전구가 켜져 있었죠. 밤새도록 불을 켜놓고 무슨 일을 하는지 확인했기 때문에 수감자들은 밤에도 켜져 있는 전구 불빛 때문에 괴로워했다고 하고요. 또 한 방에 수용할 수 있는 인원보다 더 많은 사람이 생활했기 때문에 그 당시 상황은 더욱 열악했다고 합니다.

[녹취: 이 학예연구사] “백범 김구선생님의 회고에 따르면 가장 힘이 좋은 사람이 일어나서 그 전에 앞에 사람들은 머리와 다리를 교차시켜서 내가 누우면 상대방은 내 머리 쪽에다 발을 대고요. 그것도 정자세로 눕는 게 아니라 옆으로 모로 누운 상태에서 가장 힘이 좋은 사람이 일어나서 벽에다 등을 대고 쭉 밀어버립니다. 그러면 사람이 밀리잖아요. 근데 그렇게 되면 우두득 소리가 나면 이게 감방 동료의 갈비뼈가 부러지는 소리인지 방이 터져나가는 소리인지 분간이 안돼서 소름이 돋았다는 회고가 있습니다. 그 정도로 감방 상황이 굉장히 열악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관람객들은 옥사를 돌아보며 체험했는데요. 독방에 들어가보기도 하고 가족단위의 관람객들은 어린 자녀에게 이곳이 어떤 곳인지 설명해주기도 합니다. 현장에는 여름방학을 맞아 각 지역에서 찾아온 관람객들을 쉽게 만날 수 있었는데요. 옥사를 둘러본 관람객들의 소감 들어봅니다.

[녹취: 김지은 씨] “이게 그냥 감옥이 아니고 독립운동가들이 갇혀 있었던 정말 아픈 기억의 역사잖아요. 가슴 아프고 울컥한 것 같아요.”

[녹취: 김주진 씨] “안동이 원래 독립운동으로 유명한 곳이거든요. 기념관도 있고 평소에 자주 갔었는데 거기 갔다가 독립투사들 투옥되고 했던 데 보여주려고 왔어요. 마음이 아프죠. 수감자분들 사진 보면서도 마음이 그렇고 이런 일이 없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녹취: 박소영 씨] “독립운동을 위해서 애썼던 선조들이 여기서 수감돼서 생활했다고 생각하니까 되게 아픈 마음이고 그분들께 감사하며 살아야겠다고 생각하고…”

[녹취: 김다현 학생] “여러분 덕분에 지금처럼 평화를 찾았어요. 그래서 너무 감사해요.”

또한 이지은 학예연구사는 독립운동에 대해 불가능을 가능하다고 믿고, 가능하게 한 것이라고 설명했는데요. 서대문형무소역사관을 찾아온 관람객들이 이런 점만큼은 얻어갔으면 좋겠다고 전했습니다.

[녹취: 이 학예연구사] “독립운동이 계란으로 바위치기와 같다고 할 수 있는데 계란이 바위를 깰 수는 없지만, 바위를 더럽힐 수 있고 결국에는 독립운동은 바위를 깨부숴서 독립을 성취하게 되는데요. 독립정신이 어떤 것 일까. 추상적일 수 있겠지만 이곳 서대문형무소에 오시면 어떤 정신이 있을까 이런 현장감도 느낄 수 있고 또 여기서 우리가 무엇을 배우고 깨달아야 할까하는 것도 배워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오늘의 내 삶을 누리는데 있어서 독립운동이 얼마나 영향을 끼쳤는지 얼마나 소중한 것들인지에 대해서 기억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서울에서 VOA 동예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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