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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태평양 비전’ 아베 전 총리 최대 유산…한국과의 관계는 ‘엇박자’”


지난 2017년 3월 일본 자민당 당 대회에 참석한 아베 신조 전 총리.
지난 2017년 3월 일본 자민당 당 대회에 참석한 아베 신조 전 총리.

미국의 전문가들은 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가 남긴 가장 큰 유산으로 그가 주창한 ‘자유롭고 열린 인도태평양 비전’을 꼽았습니다. 미국과 일본,호주,인도의 4자 안보협의체 ‘쿼드’ 탄생에 기여했고 일본인 납치 문제에도 많은 관심을 보였지만 한국과의 관계에는 그만큼 열정을 기울이지 않았다는 지적도 나왔습니다. 박승혁 기자가 보도합니다.

8일 총격으로 사망한 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에 대해 워싱턴에서는 미일 동맹을 한층 격상시켰다는 평가가 나옵니다.

특히 아베 전 총리가 주창한 ‘자유롭고 열린 인도태평양 비전’을 가장 큰 유산으로 꼽으면서, 미국 정부가 이를 그대로 수용하고 적극 추진했을 정도로 영향력이 컸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았습니다.

수전 손튼 전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 대행은 8일 VOA에 “자유롭고 열린 인도태평양의 비전은 긍정적이고 강렬한 포부를 담았고 광범위한 지지를 받았다”면서 “아시아에 평화롭고 생산적인 길을 제시한 그는 미-일 동맹과 우정의 강력한 지지자였다”고 말했습니다.

[손튼 전 차관보 대행] His vision of a Free and Open Indo-Pacific succeeded in setting out a positive and compelling aspiration that has attracted broad support and is likely to endure as the framing for a peaceful and productive path forward in Asia. And he was certainly a stalwart supporter of the U.S.-Japan alliance and U.S.-Japan friendship.

아베 전 총리가 제시한 자유롭고 열린 인도태평양 비전은 세계 무역의 중심인 인도양과 태평양을 연결해 법 기반 질서와 자유무역을 옹호한다는 구상으로, 기존 미국의 ‘아시아태평양’ 전략의 확장인 셈입니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이 비전을 적극 수용했고, 현 바이든 행정부도 이런 기조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바이든 대통령은 8일 아베 전 총리 사망에 깊은 애도를 표하는 성명에서 “자유롭고 개방적인 인도태평양에 대한 그의 비전은 지속될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오른쪽)이 8일 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의 빈소가 마련된 주미일본대사관저를 찾아 조문했다. 왼쪽은 도미타 코지 주미일본대사.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오른쪽)이 8일 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의 빈소가 마련된 주미일본대사관저를 찾아 조문했다. 왼쪽은 도미타 코지 주미일본대사.

미-일 관계 전문가인 제임스 쇼프 사사카와평화재단 연구원은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미국이 구상했던 ‘협력의 네트워크’를 실현한 것이 아베 전 총리라고 말했습니다.

[녹취: 쇼프 연구원] His idea of networking alliances is something that U.S. had always hoped would happen. I think he made it happen more than others, and the concept of ‘free and open Indo-Pacific’ that the U.S. certainly embraced.

전임자들이 해내지 못한 일을 아베 전 총리가 ‘자유롭고 열린 인도태평양’이란 이상을 앞세워 달성했다는 것입니다.

쇼프 연구원은 아베 전 총리가 ‘열린 바다’라는 긍정적 비전을 제시해 민주 진영 국가들이 서로 협력하고 법 기반 질서를 옹호하도록 이끌었다고 설명했습니다.

[녹취: 쇼프 연구원] The framing more as a positive vision, the openness – It’s not about teaming up to be against something. I mean there is an element of deterrence and defensiveness, but at its heart, the reason it was more broadly accepted is because it’s more positive vision for the region.

쇼프 연구원은 자유롭고 열린 인도태평양 구상은 억지력과 안보 기능도 있지만, 그보다는 긍정적인 방향성을 내포하기 때문에 역내 여러 나라의 호응을 얻었다고 말했습니다.

타츠미 유키 스팀슨센터 연구원은 아베 전 총리의 추진력이 미국, 일본, 호주, 인도의 4자 안보협의체 ‘쿼드’를 탄생시켰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타츠미 연구원] I think without his personal investment in deepening Japan’s relationship with Australia and India, we would not see the strength and resilience of the Quad partnership.

인도태평양 내 미국의 주요 동맹 및 파트너국 모임인 쿼드는 곧 중국의 ‘일대일로’에 대응하는 견제망 성격을 갖고 있습니다.

타츠미 연구원은 아베 전 총리의 그러한 노력이 일본을 오늘날 국제사회에서 자유 민주 질서의 강력한 옹호자의 지위에 올렸다고 평가했습니다.

[녹취: 타츠미 연구원] He really put Japan on the international map as the incredibly strong advocate for liberal international order.

지난 2016년 5월 바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오른쪽)과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함께 히로시마 원폭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평화 공원을 방문했다.
지난 2016년 5월 바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오른쪽)과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함께 히로시마 원폭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평화 공원을 방문했다.

제임스 줌월트 미국일본협회 이사장은 아베 전 총리가 “미국과 일본 간 화해의 정점을 찍은 인물”이라고 말했습니다.

2차 세계대전의 적성국이었던 양국이 과거를 완전히 뒤로 하고 세계 최강 동맹 중 하나로 거듭나게 하는 데 일조했다는 겁니다.

[녹취: 줌월트 이사장] Under PM Abe’s leadership we kind of completed that process when President Obama went to Hiroshima and participated in ceremonies memorializing all the civilians who were killed, and then he came to Pearl Harbor and participated in ceremonies honoring the Americans. The two events really completed the reconciliation.

아베 총리 재임기간 바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일본 히로시마에서 민간인 원폭 희생자들을 추도했고, 아베 총리는 미국 하와이 진주만에서 전사한 미국 수병들을 애도함으로써 양국이 수십 년에 걸친 화해의 노력을 마무리했다는 설명입니다.

또 총리 시절 일본인 납북자들의 문제를 계속 이슈화해서 북한의 인권 탄압을 지속적으로 제기했다는 점도 업적으로 꼽았습니다.

[녹취: 줌월트 이사장] In Japanese domestic politics he took up the cause of the Japanese families who were abducted by North Koreans in the 1970’s and the 80’s. That became one of his signature issue which was very popular in Japan.

1970-80년대 북한에 의해 납치된 일본인들의 문제를 주요 국내 현안으로 재조명하면서 일본에서 큰 인기를 모았다는 것입니다.

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왼쪽 3번째)는 지난 2002년 9월 고이즈미 준이치로 당시 일본 총리(왼쪽 4번째)의 북한 방문을 수행하고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과의 회담에도 배석했다.
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왼쪽 3번째)는 지난 2002년 9월 고이즈미 준이치로 당시 일본 총리(왼쪽 4번째)의 북한 방문을 수행하고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과의 회담에도 배석했다.

아베 전 총리는 2002년 고이즈미 준이치로 당시 일본 총리의 수행단으로 방북해 납북자 귀환 문제를 제기했고, 이를 바탕으로 정치인으로서 도약했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실제로 아베 총리 시절 고조된 관심으로 일본인 납북자의 가족들은 미국 백악관에 초청받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재임 기간 내내 한국과의 관계는 좋지 않았습니다.

아베 전 총리는 일본 우익의 대표 정치인으로서 평화헌법 개정, 군대 보유 등 한국이 민감해 하는 이슈들을 꾸준히 추진했습니다.

또 종군 위안부 문제 해결 등 과거사 문제를 놓고 한국의 문재인 정권과 연달아 엇박자를 냈습니다.

[녹취: 쇼프 연구원] The relationship with South Korea really suffered during that time. It’s not just because of him, but he did not put the same kind of energy into that relationship as he did to Australia, India, SE Asia, the U.S.

쇼프 연구원은 당시 한일 관계가 악화된 것이 단지 아베 총리 탓은 아니라며, 하지만 그가 미국, 호주, 인도에 쏟은 만큼의 열정을 할애하지는 않았다고 말했습니다.

타츠미 연구원은 아베 전 총리가 갑자기 세상을 떠난 것에 아쉬움을 나타냈습니다.

[녹취: 타츠미 연구원] It’s really regretful he wouldn’t be able to see how under new admin of Korea, Japan and Korea can almost have a reset – not just bilateral relationship, but the trilateral relationship with the U.S. to counter the threat from North Korea.

타츠미 연구원은 한국 새 정부 아래 단지 양자 관계 뿐 아니라 북한의 위협에 대응하는 미국과의 삼자 관계가 어떻게 재정립될 수 있는지 아베 전 총리가 볼 수 없는 것이 유감이라고 말했습니다.

VOA 뉴스 박승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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