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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북제재 대상 떠오른 ‘암호화폐’…“‘믹서’ 집중 겨냥해야”


물에 잠긴 암호화폐를 묘사한 일러스트. (자료사진)
물에 잠긴 암호화폐를 묘사한 일러스트. (자료사진)

북한의 암호화폐 탈취가 주요 제재 회피 수단으로 부각되는 가운데 미국 정부가 이 과정에서 악용되는 ‘믹서’를 더 제재해야 한다고 제재 전문가들은 지적했습니다. 유엔 안보리 차원의 사이버 제재는 현 국제정세 속에서 쉽지 않을 것이라는 진단도 나옵니다. 박형주 기자가 보도합니다.

워싱턴의 민간연구소인 신미국안보센터(CNAS)의 제이슨 바틀렛 연구원은 17일 VOA에 북한의 암호화폐 탈취에 대한 미국의 최근 잇따른 제재와 관련해 “첨단 금융기술 남용을 겨냥한 적절한 조치”라고 평가했습니다.

그러면서 북한의 암호화폐 탈취와 돈세탁에 활용되는 더 많은 ‘믹서’를 추적해 제재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녹취: 바틀렛 연구원] "The US government is in the right track by trying to target the misuse of new financial technologies. So there needs to be more effort on that. US government can continue to do is to target any illicit actor or any actors that are using certain technologies or providing technologies that North Korean cyber criminals are exploiting and cryptocurrency mixers are one of that.”

미국 정부는 계속해서 북한의 사이버 범죄자들이 악용하는 기술을 사용하거나 이런 기술을 제공하는 행위자를 겨냥할 수 있으며 그중 하나가 ‘믹서’ 제재라는 설명입니다.

‘믹서’는 가상화폐를 쪼개고 섞어서 재분배하는 기술로 이 과정을 반복하면 자금 추적과 사용처, 현금화 여부 등 가상화폐 거래 추적이 어려워집니다.

바틀렛 연구원은 북한 해커들이 계속해서 악용하는 더 큰 규모의 ‘믹서’가 있지만 미국 정부가 아직 대응하지 않고 있다며 이에 대한 추가 제재가 이뤄지길 바란다고 말했습니다.

특히 이와 관련해 사이버 보안업체와 민간연구소 등이 제공한 풍부한 연구 자료가 있다며 정부가 이를 활용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이와 함께 암호화폐 거래소의 투명성을 강화하기 위해 전통 금융기관과 유사한 규제 방안을 도입하고 정보 수집과 교환, 법 집행 부문에서 민관 협력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암호화폐 생태계에서 제도적 정비가 이뤄지면 북한 등과 같은 악의적 행위자들의 활동 공간을 제한할 수 있다는 제안입니다.

미국과 유엔 안보리 대북제재위원회 전문가패널 등은 새로운 대북제재 회피 수단으로 북한의 암호화폐 탈취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지난 4월 공개된 전문가패널 보고서에 따르면 북한은 지난 2020년부터 2021년 중반까지 북아메리카, 유럽, 아시아 등 최소 3곳 가상화폐 거래소에서 모두 5000만 달러 이상을 훔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암호화폐 분석업체 미국 체인어낼리시스는 북한이 지난해 탈취한 암호화폐가 약 4억 달러에 달한다고 추산하기도 했습니다.

이런 가운데 미국 재무부는 지난 4월 북한 정찰총국 지휘를 받는 것으로 알려진 해킹 그룹 ‘라자루스’와 연관된 이더리움 지갑 4개를 제재 대상에 올렸습니다.

또 북한이 탈취한 암호화폐를 현금화해주는 ‘믹서’ 담당 업체 ‘블렌더’를 제재하는 등 북한의 암호화폐 탈취를 겨냥한 잇따른 조치를 내놓고 있습니다.

미국 대북제재강화법 제정에 관여했던 조슈아 스탠튼 변호사는 이와 관련해 “반길 일이지만 너무 부족하고 늦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2018년 이후 재무부는 대북제재 이행에서 최악의 모습을 보여왔으며 암호화폐 탈취와 돈세탁은 이런 문제의 일부일 뿐”이라고 비판했습니다.

[스탠튼 변호사] “Since 2018, the Treasury Department has done an abysmal job of enforcing North Korea sanctions, and cryptocurrency theft and laundering is just one part of that problem. The recent Treasury designations are welcome, but they're too little and too late. It might be effective in deterring other exchanges, mixing services, and other bad actors in dealing with North Koreans who are dealing in cryptocurrency, and might encourage them to meet their legal "know-your-customer" obligations before dealing with them.”

스탠튼 변호사는 ‘믹서’ 등을 겨냥한 조치와 관련해 암호화폐 시장에서 거래소나 믹서 업체, 다른 행위자들이 북한과 거래하는 것을 억제하고 거래에 앞서 ‘고객이 누구인지’ 확인하는 의무 이행을 독려하는 데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또 “암호화폐 탈취와 돈세탁이 평양의 제재 회피 전술에 핵심 역할을 했지만 이런 전술의 결과가 북한 정권에는 그리 좋게 끝나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는데, 제재 효과보다는 최근 암호화폐의 가치 폭락을 주요 요인으로 지적했습니다.

“이번 암호화폐 붕괴는 아마도 지난 4년 동안 재무부가 한 어떤 것보다 김정은의 재정에 더 많은 피해를 입혔을 것”이라는 진단입니다.

일부 전문가들은 유엔 안보리 전문가패널 보고서에 북한의 암호화폐 탈취 활동이 여러 차례 등장했음에도 안보리 차원의 조치가 없는 상황도 문제로 지적했습니다.

유엔 대북제재위원회 전문가패널로 활동한 닐 와츠 전 위원은 북한의 대표적인 해킹조직인 ‘라자루스’의 경우 미국의 독자제재 대상으로 일찌감치 지정됐지만 안보리 제재 대상에는 아직 오르지 않은 점을 꼬집었습니다.

그러면서 미국은 모든 유엔 회원국에 구속력이 있는 결의안에 사이버 관련 조항이 담기는 것을 선호하겠지만 현 정세에선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녹취: 워츠 전 위원] “Clearly, you would prefer to be contained in the resolution so that it would apply to all U.N. member states, but that that route right now is facing a lot of difficulties because of the political problems. I would say there's a there's a problem with cooperation at the geopolitical level between the members of the U.N. Security Council.”

미중, 미러 갈등이 심화하는 등 국제 정세가 악화되는 가운데 안보리 이사국 간 협력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설명입니다.

실제로 미국은 지난달 사이버 관련 제재가 포함된 신규 대북 제재 결의안 채택을 시도했지만 중국과 러시아의 거부권 행사로 무산된 바 있습니다.

결의안 채택이 어려울 경우 ‘이행 안내서’ (Implementation Assistance Notice) 발간을 통해 북한의 사이버 활동이 제재 회피 활동으로 간주된다는 점을 명시하고 제재의 적법성을 제공하는 방안이 있지만, 이마저도 쉽지 않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유엔 안보리 대북제재위원회 전문가패널에서 미국 대표로 활동했던 애런 아놀드 전 위원은 앞서 VOA에 북한의 사이버 활동이 기존 대북 결의에 구체적으로 명시되지 않아 과거 1718 위원회에서 “정치적으로 민감한 쟁점”이었다고 설명했습니다.

특히 중국과 러시아는 사이버 영역에 대한 전문가패널의 조사가 소관 사안이 아니라고 주장하며 거듭 제동을 걸 것이라고 아놀드 전 위원은 말했습니다.

바틀렛 연구원은 이런 정치적 상황에 더해 암호화폐가 다른 불법 확산금융과 비교해 성격 규정이 쉽지 않다는 점도 한계로 지적했습니다.

[녹취: 바틀렛 연구원] “But when it comes to cryptocurrency and cyber, it's much more difficult to actually track these crypto funds or what exactly the crypto funds are being used for and I think that could be one thing that can delay the process is that it's not as clear as other forms of illicit financial activity….I think imposing sanctions on Chinese entities and Chinese individuals as well as Russian entities and Russian individuals is probably more effective than putting sanctions on North Korean individuals.”

암호화폐의 특성상 추적 자체가 쉽지 않고 암호화폐로 인한 수익이 어떤 용도로 사용되는지 규정하기 쉽지 않다는 점 역시 유엔 차원의 규제 절차를 더디게 하는 요인이라는 설명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이 북한의 불법 사이버 활동을 지원하는 중국과 러시아 기관과 개인 등을 제재하기 시작한 게 좋은 대안이라고 바틀렛 연구원은 말했습니다.

특히 미국과 사실상 거래하지 않는 북한 측을 제재하는 것보다 중국과 러시아를 겨냥하는 것이 더욱 효과적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그런가 하면 스탠튼 변호사는 “북한의 암호화폐 탈취와 돈세탁을 겨냥한 유엔 제재가 반드시 필요한 것은 아니다”고 말했습니다.

북한 정부 등에 ‘경제적 재원’을 제공하는 행위가 지난 10여 년 전부터 금지되고 있는 만큼 불법 사이버 활동을 규제하기 위해 반드시 별도의 근거가 필요한 것은 아니라는 해석입니다.

스탠튼 변호사는 “러시아와 중국에 또다른 유엔 결의안 승인을 요청하는 것은 이제 무의미하다”면서 “이들 나라는 유엔 결의안의 (해외노동자) 본국 송환 요구에도 불구하고 북한 해커들과 돈세탁 조직이 계속 자신들의 영토에서 일하도록 놔둘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VOA 뉴스 박형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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