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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중 갈등 격화로 종전선언 추진 타격...한국 정부 돌파구 찾기 고심


이인영 한국 통일부 장관이 지난해 11월 판문점 견학지원센터 개소식에서 연설하고 있다. (자료사진)
이인영 한국 통일부 장관이 지난해 11월 판문점 견학지원센터 개소식에서 연설하고 있다. (자료사진)

베이징 동계 올림픽 외교적 보이콧을 둘러싼 미국과 중국 간 갈등 격화로 종전선언을 추진하고 있는 한국 정부의 고심이 깊어지고 있습니다. 한국 정부는 연일 북한을 향해 종전선언에 호응할 것을 촉구하고 있지만 이렇다 할 반응을 이끌어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서울에서 김환용 기자가 보도합니다.

이인영 한국 통일부 장관은 9일 서울에서 열린 통일연구원 개원 30주년 기념 국제학술회의 축사를 통해 북한이 종전선언에 호응할 것을 재차 촉구했습니다.

이 장관은 “올해 말과 내년 초, 중대한 갈림길을 무의미하게 보낸다면 대화 의지와 동력은 약화하기 쉬운 만큼 북측이 전향적인 자세로 늦지 않게 호응해 남-북-미가 공존과 상생의 결과를 만들어나갈 수 있기를 희망한다”고 말했습니다.

[녹취:이인영 장관] “종전선언이 성사된다면 새로운 평화 국면을 열 수 있는 확실한 터닝포인트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저는 확신합니다. 이후 비핵화와 평화체제를 위한 실질적 논의를 진전시켜 나가면서 적대 정책의 철회 등의 선결 조건과 제재 완화 등의 북측의 관심사항에 대해서도 얼마든지 우리는 해법을 찾아 나갈 수 있는 그런 계기가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북한은 종전선언에 대한 반응을 보이지 않으면서 외무성 홈페이지나 선전매체를 통해 중국과 전략 경쟁을 벌이고 있는 미국에 대한 비난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김형석 전 한국 통일부 차관은 올림픽을 통해 종전선언 유관국 정상들이 자연스럽게 만날 수 있기를 기대했던 한국 정부로선 북한의 냉담한 태도가 이어지는 가운데 미-중 갈등 격화까지 겹치면서 종전선언 성사를 위한 돌파구 찾기가 쉽지 않게 됐다고 진단했습니다.

[녹취: 김형석 전 차관] “미국과 중국간 갈등 상황도 되고 있고 그리고 코로나 상황이라는 게 더 더욱 중요하고 현 정부가 임기를 얼마 남겨두고 있지 않은 상황에서 그런 인위적 계기를 마련한다고 했을 때 국내에서 거기에 대한 부정적 여론 형성도 있을 것 같아서 여러가지 측면이 대한민국 정부에게 많은 부담과 고심을 주고 있는 상황인 것 같습니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앞서 8일 베이징 올림픽과 종전선언은 직접 관계가 없다고 선을 그으면서 “미-한 간에 주축이 돼서 종전선언의 문안이나 시기, 참석자 등을 여러 가지로 조율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또 “북한 측이 어떻게 호응할 지가 관건”이라고 말했습니다.

한국 정부 산하 국책연구기관인 통일연구원 홍민 박사는 종전선언 성사의 관건은 북한 설득에 있다며 한국 정부가 북한과의 소통 채널을 통해 이 문제에 대한 의미 있는 접촉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진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홍 박사는 한국 정부가 현 시점에서 종전선언 성사를 위해 구체 계획을 갖고 접근하기 보다는 북한의 호응을 끌어내기 위한 분위기 조성 차원의 메시지 띄우기에 집중하는 양상이라고 분석했습니다.

[녹취: 홍민 박사] “북한에게 접촉해서 종전선언에 대한 설득을 해낼 수 있는 방법으로 한미간 조율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중국의 원칙적 지지를 얻어내고 이런 것을 통해서 북한이 수용할 수 있는 분위기를 일단 띄워놓는 것 이 정도가 지금 한국이 할 수 있는 최고의 상황이지 그 이상으로 뭔가 구체적 계획과 세부적 내용을 갖고 뭔가 진행되는 것은 아닌 것으로 보여집니다.”

외교가에서는 정상 간 선언 대신 장관급에서 실무적으로 문서에 사인하는 방식 또는 정상 간 대면 회동이 아닌 화상회의 방식이 대안으로 거론되고 있지만 현실성이나 실효성 측면에서 회의적인 평가들이 많습니다.

통일연구원 조한범 박사는 합의문도 아닌 정치적 선언을 정상이 아닌 장관 차원에서 할 경우 종전선언의 의미가 퇴색될 수 밖에 없다고 지적했습니다.

조 박사는 종전선언을 한다면 정상 간 회동이 불가피하다며 화상 회의 가능성은 남아 있다는 견해를 내놨습니다.

미국의 동맹국들이 중국의 인권문제를 고리로 한 베이징 동계 올림픽 외교적 보이콧에 동참하면서 곤경에 처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반전 카드로 종전선언에 적극적일 수 있다는 겁니다.

박원곤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는 그러나 미국이 배제될 가능성이 큰 이같은 방식은 한국에게 적지 않은 부담이라고 말했습니다.

박 교수는 또 미-북 대화 재개를 통한 남북 관계 복원이라는 한국 정부의 한반도 평화프로세스 목표에도 부합하지 않는다며 실현 가능성을 낮게 봤습니다.

전문가들은 한국 정부가 북한의 태도 변화에 기대하고 있는 양상이지만 이달 하순 노동당 중앙위원회 8기 4차 전원회의를 예고한 북한이 그런 한국 정부의 바람에 응할 가능성이 크지 않다고 보고 있습니다.

박원곤 교수는 오는 당 전원회의에서 북한이 핵 실험과 대륙간 탄도미사일시험 발사 유예와 같은 기존 태도를 바꾸는 새로운 대미 전략을 내놓을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박원곤 교수] “8기 4차 전원회의가 저는 주목되는데 내년엔 북한이 완전히 정책을 바꿀 가능성이 있다고 보거든요. 중대결심을 발표할 가능성이 있어요. 북한이 정말 본격적으로 시동을 건다면 종전선언 같은 게 중요한 게 아니겠죠. 아예 미국과의 일대일 담판으로 나갈 가능성이 매우 높아요.”

종전선언 이슈가 미-중 갈등 구도에 묻힐 수 있다는 우려와 함께 미국 의회 내에서도 종전선언 반대 움직임이 일고 있어 문재인 대통령 임기 내 종전선언 성사 전망은 한층 어두워지고 있다는 관측입니다.

조한범 박사는 한국 대통령 선거와 중국의 양회가 내년 3월 초에 있기 때문에 문재인 정부에게 주어진 한반도 평화프로세스 재개의 시한을 내년 2월말로 본다며 불과 두달 여 남은 셈이라고 말했습니다.

서울에서 VOA뉴스 김환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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