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주요 언론들은 전두환 전 한국 대통령의 별세 소식을 전하면서 그가 잔인하며, 한국에서 가장 비난 받는 군부 독재자라고 평가했습니다. 또 재임 시절 이룬 경제성장이 그의 부정적 유산으로 빛을 바랬다고 지적했습니다. 조은정 기자가 전해 드립니다.
`뉴욕타임스' 신문은 23일 전두환 전 대통령에 대해 “한국에서 가장 비난 받는 군부 독재자로, 쿠데타로 권력을 잡았고 1980년대 한국을 철권통치 했으며, 공수부대를 동원해 수 백명의 민주화 시위대를 살육했다”고 전했습니다.
이 신문은 전 전 대통령이 1979년 10월 26일 박정희 대통령 피살 사건 당시 국군보안사령관이었으며, 경남 출신의 육군 친구들과 함께 정승화 계엄사령관을 강제 연행하고 군사 반란에 성공했다고 전했습니다.
이어 계엄령을 선포했고 1980년 5월 광주에서 시위가 일어나자 군을 투입해 몽둥이와 총검을 휘두르게 하고, 발포도 했다고 전했습니다.
이 사건으로 191명이 사망했다고 공식 집계됐지만, 희생자 유가족들은 사망자 수가 훨씬 많은 것으로 보고 있다고 이 신문은 지적했습니다.
`뉴욕타임스'는 데이비드 스트로브 전 국무부 한국과장의 책 ‘반미주의로 보는 한국 현대사’(Anti-Americanism in Democratizing South Korea)를 인용해 광주의 사건은 “한국의 젊은 세대의 사고에 깊은 영향을 준 잔학 행위이자 비극이었고, 이들 대다수는 미국에 극도로 비판적이게 됐다”고 전했습니다.
스트로브 전 한국과장은 “젊은 한국인들은 미국이 ‘광주 학살’을 막지 못한 것으로 인식하면서, 배신의 증거라고 받아 들였다”고 분석했습니다.
또 “레이건 전 대통령이 전 씨의 인권 유린에 대해 ‘조용한 외교’를 펼치자 미국이 한국인들의 고통을 외면한다는 그들의 생각이 굳어졌다”고 덧붙였습니다.
`뉴욕타임스'는 미국 정부도 전 씨의 쿠데타를 예상치 못하고 당황했으며, 당시 광주에 파견된 군인들 중 미국 당국자들의 통제를 받는 이들은 없었다고 설명했습니다.
또 당시 정부의 통제를 받는 한국 언론이 전 씨가 광주에 군을 투입한 데 대해 ‘미국의 승인을 받았다’고 보도했다고 덧붙였습니다.
스트로브 전 과장은 이에 대해 전 씨가 “한국 대중뿐 아니라 미국도 조종했다”고 밝혔다고 `뉴욕타임스'는 전했습니다.
신문은 또 “전 씨가 재임 중 ‘사회정화 정책’으로 야권 인사, 학생운동가, 언론인들을 대거 고문실로 쓸어 넣었다”며 ‘잔인한 재교육’으로 수 백 명이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고 전했습니다.
“한국 역사의 가장 어두운 시대”
`월스트리트저널' 신문도 “잔인한 한국의 전 독재자가 별세하다”는 제목의 기사를 내고 전두환 전 대통령이 “한국 역사의 가장 어두운 시대에 대한 책임이 있다”고 평가했습니다.
또 그가 권력을 강화하기 위해 민주화 운동을 무자비하게 억압하고 정치활동을 규제했다는 비난을 받는다고 전했습니다.
`로스앤젤레스타임스' 신문은 “전 전 대통령의 유산은 대체로 그의 무자비한 행동으로 규정된다”며 “한국이 번영한 민주국가가 된 지 오랜 시간이 지나도록 (과거의 행위에 대해) 사과하지 않으며, 부인하고, 전혀 후회를 나타내지 않았다”고 지적했습니다.
또 그의 가장 악명높은 행동은 광주민주화운동에 대한 군부의 폭력적인 억압이었다며, 그의 지시를 받은 군인들은 학생들과 시민들을 향해 총을 쏴 수 백 명이 사망했다고 지적했습니다.
`LA타임스'는 미국이 당시에 개입하지 않고 전 씨의 통치를 암묵적으로 용인하면서 반미주의 정서와 시위가 퍼졌고, 아직까지도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고 평가했습니다.
이 신문은 전 씨의 재임 중 그의 억압에도 불구하고 거리시위와 학생들의 민주화 운동이 열기를 더해 갔다고 평가했습니다. 결국 전 씨는 국민들의 대통령 직선제 요구를 따랐고, 한국의 민주화가 분수령을 맞았다고 덧붙였습니다.
한국의 대통령리더십연구소의 최진 소장은 `LA타임스'에 “그는 어떤 대통령보다도 불법과 폭력으로 통치했다”며 “마지막까지 정치적 혹은 사적인 사죄를 하지 않았다. 수많은 사상자가 났지만 후회도 하지 않았다”고 밝혔습니다.
`AP' 통신은 전 전 대통령이 군부 독재자로 1979년 쿠데타로 정권을 잡고 민주화 운동가들을 잔인하게 탄압했으며, 재임 중 비위로 수감됐었다고 전했습니다.
또 1980년대 그의 재임 기간 수 백 명의 민주화 운동가들이 목숨을 잃고, 수 만 명이 수감됐다고 전했습니다.
하지만 수 년간의 권위주의적 통치 뒤 일부 자유화를 허락했고, 한국 역사상 첫 대통령 직선제를 허용했다고 보도했습니다.
“한국을 아시아 호랑이로...부정적 유산으로 빛 바래”
미국 언론은 전두환 전 대통령의 재임 기간 한국이 이룬 경제성장도 비중 있게 전했습니다.
`뉴욕타임스' 신문은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등 “3명의 장성들이 32년간 통치하는 동안 한국은 경쟁국인 북한을 제치고 아시아의 호랑이가 됐다”고 평가했습니다.
특히 전 전 대통령 당시에는 한국이 만성적인 인플레이션을 안정시키고, 경제는 세계에서 가장 높은 10%대 성장률을 기록했다고 전했습니다.
`뉴욕타임스'는 그럼에도 전 전 대통령은 독재자로 기억된다며 “그의 긍정적인 성과는 부정적 유산에 훨씬 못 미친다”는 최진 소장의 말을 전했습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정치적 억압에도 불구하고 그의 통치는 경제적 번영으로 특징지어진다”고 평가했습니다. 1986년 서울아시안게임을 개최하고 1988년 서울올림픽 개최권을 땄다는 것입니다.
이 신문은 특히 올림픽은 한국 역사상 가장 중요한 국제 행사로 여겨지며, 한국의 사기를 높이고 경제성장에 기여했다고 평가했습니다.
또 한국이 1980년대 연간 평균 경제성장률 10%를 기록했다고 전했습니다.
`LA타임스'는 박정희와 전두환 시대에 “눈부신 경제성장과 산업화를 이뤘으며, 수출이 증대됐다”고 평가했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권위주의적 통치 아래 야권 인사들과 학생 민주화 운동가들이 납치되고 고문 받았으며 실종됐다”고 지적했습니다.
`AP' 통신은 전 전 대통령이 “북한과 화해를 추구하기도 했다”며 “김일성 주석과 정상회담을 추진했다”고 전했습니다. 또 남북 이산가족 상봉을 허용하고, 한국의 수해에 대한 북한의 지원도 받았다고 덧붙였습니다.
하지만 북한은 전 대통령 재임 기간 한국에 거듭 도전을 제기했으며, 1983년에는 북한이 그의 미얀마 방문 중 폭탄 공격을 시도했다고 지적했습니다. 전 전 대통령은 가까스로 공격을 피했지만 그의 각료 등 21명이 사망했습니다.
또 1987년에는 북한이 대한항공기를 폭파해 한국인 115명이 사망했다고 전했습니다.
한편 `월스트리트저널'은 전 전 대통령을 둘러싼 한국 내 논란도 전했습니다.
그의 별세가 알려진 23일 한국 언론 중 일부는 ‘전 전 대통령’이라고 보도했지만 나머지는 단지 ‘전 씨’로 지칭했다고 전했습니다.
VOA 뉴스 조은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