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결 가능 링크

쿠데타 집권 전두환 한국 전 대통령 별세…집권 기간 남북한 체제경쟁 극심


23일 한국 서울 신촌 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에 고 전두환 전 대통련 빈소가 마련되어 있다.

1980년 군부 쿠데타로 집권했던 전두환 전 한국 대통령이 오늘(23일) 아흔살을 일기로 사망했습니다. 전 전 대통령은 집권 기간 북한과 극심한 체제경쟁을 벌이며 깊은 악연을 맺었습니다. 서울에서 김환용 기자가 보도합니다.

한국의 제11대와 12대 대통령을 지낸 전두환 씨가 23일 향년 아흔살을 일기로 사망했습니다.

지난 8월 혈액암을 진단받는 등 지병을 앓아온 전 전 대통령은 이날 오전 8시 40분쯤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 자택에서 쓰러져 경찰에 신고됐고, 경찰은 오전 9시 12분쯤 사망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지난달 26일 12·12 군사쿠데타 동지 관계인 노태우 전 대통령이 별세한 뒤 28일 만에 세상을 떠난 겁니다.

1931년 1월 23일 경남 합천군에서 태어난 전 전 대통령은 1955년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한 뒤 직업군인으로서 출세 가도를 달렸습니다.

1979년 10월 26일 박정희 대통령 피살 사건 당시 국군보안사령관이었던 전 전 대통령은 합동수사본부장을 맡아 사건 수사를 담당했습니다.

같은 해 12월 12일 군부 내 사조직 ‘하나회’를 중심으로 한 신군부 세력과 함께 정권 찬탈을 위한 군사쿠데타를 일으켰습니다.

이를 통해 정국을 장악한 그는 계엄령을 선포하고 1980년 ‘서울의 봄’으로 상징되는 국민들의 민주화 요구를 묵살하고 광주 5·18 민주화운동을 유혈진압했습니다.

같은 해 9월 1일 통일주체국민회의 간접선거를 통해 11대 대통령에 취임했고 이듬해인 1981년 대통령선거인단 간접선거를 통해 12대 대통령으로 당선됐습니다.

1983년 11월 12일 한국을 방문한 로널드 레이건 미국 대통령과 부인 낸시 레이건 여사, 전두환 한국 대통령과 부인 이순자 여사가 청와대에서 열린 환영 공연을 관람하고 있다.
1983년 11월 12일 한국을 방문한 로널드 레이건 미국 대통령과 부인 낸시 레이건 여사, 전두환 한국 대통령과 부인 이순자 여사가 청와대에서 열린 환영 공연을 관람하고 있다.

집권 기간 동안 독재정치에 대한 국민들의 저항을 받으며 대통령 직선제 개헌 등 민주화에 대한 거센 요구에 직면했지만 1987년 4·13 호헌 조치를 통해 민의를 외면했습니다.

그러나 이 조치로 한국 전역에서의 호헌 철폐 시위가 촉발돼 6월 민주항쟁으로 이어졌고, 전 전 대통령은 결국 항복 선언을 하고 당시 노태우 민정당 대통령 후보가 직선제 개헌을 명시한 6·29 선언을 발표했습니다.

전 전 대통령은 퇴임 뒤 수난의 세월을 보내야 했습니다.

광주민주화운동 유혈진압 등에 대한 비난 여론이 높아지자 1988년 재산 헌납을 선언하고 백담사에 칩거했지만 재산 헌납은 이행되지 않았습니다.

1996년엔 내란, 내란목적 살인죄, 뇌물수수 등 혐의로 1심에서 사형을 선고받은 뒤 대법원에서 무기징역으로 감형됐고 추징금 2천205억원, 미화로 약 1억8천500만 달러가 선고됐습니다.

전두환 전 한국 대통령인 1996년 2월 26일 수의 차림으로 재판에 출석하고 있다.
전두환 전 한국 대통령인 1996년 2월 26일 수의 차림으로 재판에 출석하고 있다.

수감 2년 만인 1997년 12월 22일 특별사면으로 석방됐고 추징금 완납은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전 전 대통령은 집권 기간 중 통치자금 명목으로 대기업들로부터 천문학적인 재산을 끌어모은 데 대한 국민적 비난을 지금도 받고 있습니다.

다만 전 전 대통령의 집권 기간 동안 물가안정 등 경제성장 기조가 유지되고 1988년 서울하계올림픽 유치에 성공하면서 국력 면에서 한국이 북한을 확실하게 앞지르게 됐다는 평가입니다.

한국 정부 산하 국책연구기관인 통일연구원 조한범 박사는 전두환 정권 시대는 동서 냉전구도 속에서 남북 간 체제경쟁이 치열했던 시기였다고 설명했습니다.

[녹취: 조한범 박사] “전두환 시대는 체제경쟁이 극심했던 박정희 시대의 연장선상이고요, 그리고 사실상 전두환 시대를 계기로 한국이 북한보다 명백하게 종합 국력이 우월을 점하는 시기가 됩니다. 그런 점에선 과도기지만 확실하게 북한에 우위를 점하는 그런 전환기로서의 의미는 지니고 있지만 정권 자체의 뚜렷한 대북정책이나 평화정책 면에서 특성은 없다고 봐야죠.”

적대적 체제경쟁이 극명하게 표출된 사건은 1983년 10월9일 미얀마 아웅산 묘소 암살 폭발 사건이었습니다.

북한이 전 전 대통령의 목숨을 노리고 저지른 이 사건으로 한국의 서석준 당시 경제부총리를 비롯한 수행 공무원 등 17명이 현장에서 사망하고 14명이 다쳤습니다.

미얀마 아웅산 묘소 암살 폭발 사건 다음날인 1983년 10월 10일 급히 귀국한 전두환 한국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비상국무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미얀마 아웅산 묘소 암살 폭발 사건 다음날인 1983년 10월 10일 급히 귀국한 전두환 한국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비상국무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그로부터 약 두 달 뒤인 12월3일에는 부산 다대포 해안에 북한 간첩이 침투하는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북한은 전 전 대통령 임기 말인 1987년 11월엔 바그다드발 서울행 대한항공 KAL858 여객기 공중폭발 사건을 일으켜 승무원과 탑승객 115명 전원이 사망했습니다.

1984년 남북경제회담과 한국전쟁 이후 첫 남북한 물자 교류, 1985년 서울과 평양에서의 사상 첫 이산가족 상봉 행사 등 일부 유화 국면도 있었지만 전 전 대통령 집권기간은 전반적으로 북한과의 적대적 긴장이 팽팽했던 시절이었습니다.

전 전 대통령은 5·18 민주화운동 유혈진압에 대한 사과를 끝내하지 않고 사망한 탓에 국민들의 비난여론이 여전히 높고 이에 따라 국가장 예우도 가능성이 크지 않다는 관측입니다.

박경미 청와대 대변인은 “전두환 전 대통령의 명복을 빌고 유가족에게 위로의 마음을 전한다”면서도 “진정성 있는 사과가 없었던 점에 대해서 유감을 표한다”고 말했습니다.

박 대변인은 “청와대 차원의 조화와 조문 계획은 없다”고 밝혔습니다.

전 전 대통령 유족들은 고인의 장례를 가족장으로 치를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민정기 전 청와대 비서관은 전 전 대통령의 서울 자택 앞에서 기자들을 만나 전 전 대통령이 2017년 출간한 회고록에 남긴 유언에 따를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녹취: 민정기 전 비서관] “유언은 북녘 땅이 보이는 전방고지에 백골로 남아있고 싶다고 하셨는데 장지가 결정될 때까지는 일단 화장한 후에 연희동에 모시다가 장지가 결정되면 그 때 그리로 모셔야죠.”

전 전 대통령은 회고록 중 ‘글을 마치며’라는 소제가 달린 대목에서 “반민족적, 반역사적, 반문명적 집단인 김일성 왕조가 무너지고 조국이 통일되는 그 날의 감격을 맞이하는 일. 그날이 가까이 왔음을 느낀다”며 “그 전에 내 생이 끝난다면 북녘땅이 보이는 전방의 어느 고지에 백골로라도 남아 있으면서 기어이 통일의 그 날을 맞고 싶다”고 밝혔습니다.

서울에서 VOA뉴스 김환용입니다.

XS
SM
MD
L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