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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정부, 교황 방북 의사에 북한 호응 촉구...전문가들 "2018년보다 여건 더 나빠"


프란치스코(오른쪽) 교황이 지난달 29일 바티칸을 방문한 문재인 한국 대통령과 악수하고 있다.
프란치스코(오른쪽) 교황이 지난달 29일 바티칸을 방문한 문재인 한국 대통령과 악수하고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문재인 한국 대통령과의 면담에서 북한이 초청하면 방북하겠다는 의사를 밝히면서 성사 여부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습니다. 한국 정부는 북한의 호응을 촉구하고 있지만 북한이 현 시점에서 교황 초청에 나서기엔 부정적 여건들이 많다는 분석입니다. 서울에서 김환용 기자가 보도합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지난달 29일 문재인 한국 대통령과의 단독 면담에서 문 대통령의 방북 요청에 “북한이 초청장을 보내주면 평화를 위해 기꺼이 가겠다”고 답했습니다.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참석차 이탈리아 로마를 방문했던 문 대통령은 교황 면담 등 로마 일정을 마친 지난달 31일 SNS에 올린 글을 통해 교황의 방북 의사를 재차 강조하면서 “한반도 평화의 시계가 다시 힘차게 돌아갈 것이라고 믿는다”고 말했습니다.

한국 정부는 교착상태에 놓은 한반도 정세 속에서 한반도평화프로세스의 재가동을 위해 교황 방북 카드를 적극 추진하고 있습니다.

이종주 통일부 대변인은 1일 정례브리핑에서 교황이 북한을 방문하면 한반도 평화의 큰 계기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녹취: 이종주 대변인] “지난 10월 29일 문재인 대통령과 프란치스코 교황의 면담을 통해 교황의 북한 방문 의지가 다시 한 번 확인된 만큼 북한이 이에 호응하여 한반도 평화 증진의 계기가 마련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교황청도 교황 방북을 위해 북한측과 접촉하고 있다고 시사했습니다.

교황청 성직자성 장관인 유흥식 라자로 대주교는 지난달 30일 문 대통령의 이탈리아 방문에 동행한 한국 기자들과 만나 “교황청에서 이탈리아 주재 북한 대사관에 접촉하는 사람들이 있다”며 “교황청도 여러 길을 통해 교황이 방북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유 대주교는 또 ‘북한 측 인사와 접촉한 적이 있는가’라는 물음에 자신이 직접 접한 적은 없다면서도 “기회가 되면 만났으면 좋겠다는 얘기는 이뤄졌다”고 답했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앞서 지난 2018년 문 대통령으로부터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교황 초청 의사를 전달받았습니다.

김 위원장은 2018년 9월 평양 남북정상회담에서 문 대통령의 교황 방북 초청 제안에 “교황이 오시면 열렬히 환영하겠다”고 답했고 이를 전해들은 교황은 “북한의 공식 초청장이 오면 갈 수 있다”고 화답했지만 북한은 이후 초청장을 보내지 않았습니다.

2019년 2월 하노이에서 열린 2차 미-북 정상회담이 결렬되고 미-북, 남북 대화가 크게 위축된 영향이 컸다는 관측입니다.

전문가들은 교황이 이번에도 방북 의사를 표명했지만 적극적인 방북 의지로 보기엔 여건이 좋지 않다고 보고 있습니다.

한국 정부 산하 국책연구기관인 통일연구원 조한범 박사는 무엇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사태 속에서 백신 접종이 전혀 이뤄지지 않은 북한에 교황이 간다는 게 명분이 좋더라도 현실성이 떨어진다고 진단했습니다.

[녹취: 조한범 박사] “북한이 허용한다고 하더라도 북한은 백신 미접종국가인데 여기에 연로하신 교황께서 직접 가신다는 게 무리고요, 또 북한이 고도의 방역조치를 취하고 있는 상황에서 받아들일 가능성도 희박하고요, 문재인 정부 임기가 말기로 가는 상황에서 교황 방북이 교황청 입장에선 한반도 평화의 결정적 계기가 돼야 하는데 이게 임기에 쫓기는 문재인 정부 말기에 시도한다는 게 정치적 부담이 있을 수 있거든요.”

교황청이 내놓은 교황과 문 대통령간 면담 보도자료에서 방북 관련 언급이 빠진 데 대해 조한범 박사는 교황의 방북 의사 표명이 원론적 수준에서 이뤄졌음을 내비친 것으로 해석했습니다.

김형석 전 한국 통일부 차관은 교황 방북이 국제사회에서 종교탄압국으로 인식되고 있는 북한에 자칫 정치적으로 이용될 수 있다는 점을 교황청이 우려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김형석 전 차관] “북한이라고 하는 체제 특성에 비춰보면 국제사회가 봤을 때 선뜻 가기가 어려운 측면이 많을 거란 말이죠. 종교적 차원에서 보면 종교를 부정하고 있는 국가에 가서 북한이 확실하게 변하지도 않는데 거기에 활용될 수도 있다 그런 판단이 있을 거란 말이죠.”

박원곤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는 교황 방북 자체가 한반도 평화와 함께 북한의 종교 자유, 인권문제를 제기하는 상징적 의미를 가질 수 있지만 김정은 정권의 정통성을 인정해 주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는 점 또한 교황청의 고려 사항일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북한 입장에서도 초청장을 보내기엔 안팎의 여건들이 부정적이라는 관측입니다.

3년 전 첫 미-북 정상회담과 남북정상회담이 이어지면서 북한이 어느 때보다 국제사회에서 활발하게 움직일 때도 끝내 초청이 이뤄지지 않았는데 미-북, 남북 대화가 모두 끊긴 현 상황에서 초청장을 보낼 지 낙관하기 힘들다는 겁니다.

박원곤 교수는 2018년 당시는 북한의 대외정책 기조에 ‘우호’가 강조됐었고 이에 따라 보통국가화를 추구하고 국제사회 일원으로 인정 받으려는 움직임이 있었다며 그 일환으로 교황 초청도 가능성이 높았던 시기였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미국과의 정상회담이 결렬된 이후 북한의 대외 정책 기조가 다시 기존 우방국과의 관계 강화에 집중하는 쪽으로 선회했다고 설명했습니다.

[녹취: 박원곤 교수] “지금은 상황이 많이 바뀐 게 올해 1월 8차 당대회에서 다시 ‘우호’를 빼고 ‘친선’을 앞에 내세웠어요. 친선은 기존 사회주의 또는 기존 우방국과의 관계를 우선한다는 의미거든요. 러시아 중국 쿠바 그런 곳들이 계속 얘기가 나오는 게 그런 의미에서 얘기가 나오고 있어요. 더 이상 국제사회 인정 그런 것을 북한이 얘기하지 않고 있습니다 전혀. 오히려 사상투쟁을 얘기하고 있고요.”

임재천 고려대 북한학과 교수는 경제난 심화로 김정은 위원장이외치에 신경 쓸 여력이 없는데다 대규모 미사가 수반되는 교황 방북이 북한 주민들에게 미칠 영향에 대해 체제 안보 차원에서 김정은 정권이 수용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북한이 지난 2018년처럼 초청장을 보내지도 그렇다고 교황의 방북 의사에 반감을 드러내지도 않는 어정쩡한 태도를 보일 가능성도 제기됩니다.

김형석 전 차관은 교황 방북 여부가 이슈가 되는 것은 국제사회에서 북한의 존재감을 유지시키는 효과가 있다며 북한이 초청은 하지 않더라도 현재 상황을 나쁘게만 보진 않을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서울에서 VOA뉴스 김환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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