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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아메리카] 미국 에티켓의 대모, 에밀리 포스트


[인물 아메리카] 미국 에티켓의 대모, 에밀리 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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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문화, 다양한 인종이 함께 모여사는 미국, 오늘의 미국이 있기까지 중요한 발자취를 남긴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는 인물 아메리카입니다. 오늘은 미국 에티켓의 대모로 불리우는 에밀리 포스트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다양한 문화, 다양한 인종이 함께 모여사는 미국, 오늘의 미국이 있기까지 중요한 발자취를 남긴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는 인물 아메리카입니다. 오늘은 미국 에티켓의 대모로 불리우는 에밀리 포스트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에밀리 포스트는 성공적인 작가였고, 신문 칼럼니스트였으며, 방송인이기도 했습니다. 1930년대 전성기엔 무려 200여개 일간지와 잡지에 칼럼이 실릴 정도로 그의 글은인기가 높았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에밀리 포스트는 많은 사람들에게 올바른 사회적 행동양식, 즉 예절을 제시한 가장 권위있는 여성으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1922년 베스트셀러 ‘사회와 사업과 정치와 가정에서의 에티켓’은 이 분야의 경전으로 불리우고 있습니다.

20세기 저명한 잡지 패전트는 역사상 미국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여성으로 에밀리 포스트를 프랭클린 루즈벨트 대통령 부인 엘리노어 여사 다음으로 꼽았습니다.

에밀리 포스트는1872 년 10 월 3 일 메릴랜드 주 볼티모어에서 태어났습니다.아버지 브루스 프라이스(Bruce Price)와어머니 조세핀 프라이스 (Josephine Lee Price) 사이에서 태어난 외동딸이었습니다. 아버지는뉴욕에 있는 공원 턱시도 파크, 캐나다 퀘벡 시의 유명한 호텔 샤토 프롱트낙 등을 설계한 저명한 건축가였습니다.

재정적으로 여유있고 사회적으로도 명망있는 집안의 분위기는 에밀리가 나중에 에치켓에 관한 책을 낼 수 있는 배경이 됐습니다. 에밀리가 5살때 아버지는 사업체를 발티모어에서 뉴욕으로 옮겼습니다. 에밀리는 그곳에서 개인 교사로부터 교육을 받았습니다.

나이가 들면서 에밀리는 우아함과 미모로 인기가 많았습니다. 사교계에 혜성처럼 등장한 1892년, 20살인 에밀리는 은행가이자 투자가인 에드윈 포스트(Edwin Post)와 결혼했습니다. 그리고 에드윈 쥬니어와 브루스 두 아들을 두었습니다. 모든 것이 행복해 보였습니다.

그러나 에밀리 포스트는 남편이 어떤 합창단 여성과 깊은 관계에 빠진 것을 알게 됐습니다. 거기다 남편은 재정파탄이 나 수입이 끊겼습니다.

남편에게서 아무런 재정적 도움을 받지 못하게 되자 엘밀리 포스트는 자신과 아이들을 위해 무언가 할일을 찾아야 했습니다. 에밀리는 유럽에 갔을 때 친구들에게 위트있고 좋은 정보를 담은 편지들을보낸적이 있었습니다. 자신의 여행담, 그곳 사회에서 보고 들은 것 등이었습니다.

그러던 중 한 친구가 그런 것들을 중심으로 책을 써 보라고 권고했습니다.에밀리 포스트는 그 편지들을 정리해 소설로 만들어 보았습니다. 그리고 1904년 나르는 나방이Flight of the Moth를출판했습니다.

에밀리는 1905년 정식으로 이혼했습니다. 그리고 일생동안 독신으로 살았습니다.

글 재주가 있었던 포스트는 계속 책을 썼습니다. 그가 쓴 대부분의 소설, 수필, 단편들은 유럽사회 귀족층의 이야기, 풍부함, 아름다운 인물 등을 중심으로 한 것들이었습니다.

에밀리는 유럽의 귀족에 대해 잘 알고 있었고,이들의 지위, 사랑, 돈에 대해 기술함으로써 독자들의 인기를 끌 수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1921년 펑크 앤드 왜그놀스 (Funk & Wagnalls) 출판사 대표가찾아와 에티켓에 관한 책을 써보라고 권했습니다. 에밀리는 그 제의를 거부했습니다. 출판사 사람은 최근에 나온 에티켓에 관한 저서를 한권 놓고 갔습니다. 그 책을 꼼꼼히 읽어본 에밀리는 결국 자신의 글로 에티켓 책을 쓰기로 했습니다. 따지고 보면 지금까지 자신이 써 온 글들은 대부분 좋은 예절과 관련된 것들이 많았습니다.

그렇게 해서 나온 것이 1922년의 ‘사회와 사업, 정치, 가정에서의 에티켓 (Etiquette in Society, in Business, in Politics, and at Home) 약칭 에티켓이었습니다. 이 책은 손님초대, 식탁 예절, 결혼식, 장례식, 공공장소에서의 대화, 서신 보내기, 사업과 정치의 에티켓까지 광범위한 분야를 위트있고 명쾌하게 제시했습니다.

호텔 도어맨이 문을 열어주면 미소를 지으며 “고마워요”라고 말하라. 가방을 날라다주면 1-4 달러 정도의 팁을 주라, 비가 오는 날 택시를 타도록 도와주면 1-2 달러를 더 주라, 이런 내용도 있습니다.

포스트는 예의 바르다는 것이 어떤 것인가를 구체적으로 설명하면서 좋은 매너란 다른 사람의 기분을 배려하는 데서부터 시작된다고 강조했습니다. 또 배려란 단순히 공공장소에서의 행동 규범일 뿐 아니라 사회적인 삶을 구축하고 있는 기반이다’라고도 지적했습니다. 또한 좋은 에티켓을 위한 최선의 길은 가능한한 많은 사람을 기분 좋게 하고기분 나빠하는 사람을 최소로 줄이는 것이라고 조언했습니다.

비록 일각에서 1차 세계 대전후 사회적 규범이 빠르게 변하고 있다는 점이 지적되기도 했으나 에밀리 포스트의 책은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습니다. 이 책이 쓰일 당시 미국에서는 여러나라로부터 온 이민자들 중 신흥 부자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었습니다. 상류사회로 올라서고 싶은 이들에게는 가장 필요한 것이 바로 이런 책이었습니다.

오랫 동안 미국 에티켓의 교과서 처럼 인식된 이 책은 1941년까지 약 50만권이나 팔렸습니다. 또한 포스트 생전에 10차례나 개정판이 나왔습니다. 도서관에서 성경 다음으로 많이 도난당한 책이 바로 이 책이라는 보도가 나올 정도로 에밀리 포스트의 저서 에티켓은 인기였습니다.

여러차례 개정판을 내면서 포스트는 기존의 장을 수정하고 텔레비젼과 전화 사용 에티켓 등 새로운 시대에 맞춘 장을 추가하기도 했습니다.

1927년 불행히도 둘째 아들이 죽고 난 후 에밀리 포스트는 주택 개량사업을 시작했습니다. 사업은 성공적이었습니다. 포스트는 1930년 주택의 개성이라는 책을 펴냈습니다. 이 책은 대학교에서 교재로 자주 사용될정도로 양서로 꼽혔습니다.

1931년부터 포스트는 정규 라디오 방송에서 에티켓에 관한 프로그램을 진행했습니다. 다음해 포스트는 ‘좋은 취향’이라는 제목의 신문 칼럼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이 글은 신디케이트 방식을 통해 전국 160여개 신문에 연재될 만큼 인기가 높았습니다.

그 외에도 포스트는 하퍼스, 스크리브너스 등 여러 잡지에 가정의 장식과 건축에 관한 글을 썼습니다. 소설도 계속 쓰던 그는 1946년에 에밀리 포스트 인스티튜트를 설립했습니다. 우아한 삶을 추구하는 연구소임을 설립 정신으로 내세웠습니다.

포스트는 꾸준히 전통적이며, 정식의 행동양식을 주장했지만, 시대에 따라 변화를 보이기도 했습니다. 1945년판 에티켓에서는, 여성이 남성에게 밖에서 식사를 하자고 초대했을 경우,여성이 식사비를 내는 것이 잘못된 예절은 아니라고 보았습니다.

포스트는 자신의 저서 에티켓 10판이 발행되던 1960년 9월 15일 뉴욕시에서 타계했습니다. 그후 후손들이 이어받은 에밀리 포스트 인스티튜트는 각 분야의 예절에 관한 새로운 저서들을 연달아 내놓고 있습니다.2017년에는 에티켓 19판이 나왔습니다. 인스티튜트는 코로나 바이러스로 늘어난 재택근무 중의 에티켓에 이르기까지, 변화하는 시대에 맞는 예절도 제시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시대가 바뀌어도 “에티켓이란 삶의 과학이다. 그것은 모든 것을 포용한다. 그것은 영예이고 윤리다”라고 한 에밀리 포스트의 정신은 여전히 살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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