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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아메리카] 19세기 가장 위대한 여류 시인, 에밀리 디킨슨


[인물 아메리카] 19세기 가장 위대한 여류 시인, 에밀리 디킨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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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간에는 지난 4세기 동안 미국의 가장 독창적이며 위대한 시인으로 평가받는 에밀리 디킨슨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이 시간에는 지난 4세기 동안 미국의 가장 독창적이며 위대한 시인으로 평가받는 에밀리 디킨슨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BECAUSE I COULD NOT STOP FOR DEATH--
HE KINDLY STOPPED FOR ME--
THE CARRIAGE HELD BUT JUST OURSELVES-
AND IMMORTALITY.

죽음을 위해 내가 멈출수 없기에
그가 나를 위해 친절히 멈추어 주었다
마차에는 우리들과
불멸 영원 만이 남아 있었다

이 시는 1886년에 세상을 떠난 에밀리 디킨슨의 시 일부입니다. 디킨슨이 살아 있는 동안 발간된 시는 10편 정도뿐이었습니다. 결코 많은 수가 아니었습니다. 그것도 익명으로 발표됐습니다. 그녀가 타계한지 4년 후 몇편의 시가 더 출간됐습니다. 그러다 1955년이 돼서야 디킨슨의 모든 시를 담은 시집이 나왔습니다. 에밀리 디킨슨(Emily Dickinson)은 모두 1,775편이나 되는 많은 시를 남겼습니다.

I'M NOBODY! WHO ARE YOU?
ARE YOU -- NOBODY -- TOO?

나는 아무도 아니야, 넌 누구야?
너도 아무도 아니야?
그렇다면 우리는 단짝!
얘기하지마, 개네들이 떠벌릴꺼야
너도 알잖아!

어떤 사람들은 그녀가 아메리카 초기의 전통을 간직한 마지막 시인이었다고 보고 있습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그녀가 최초의 현대 미국 시인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사람마다 각기 다른 디킨슨을 봅니다. 디킨슨은 신비로운 존재였습니다. 진짜 에밀리 디킨슨을 안다는 것은 어려웠습니다. 당시대 그가 무엇을 하는지를 아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녀에 대해 확실히 알려진 것은 다음과 같은 내용들 뿐입니다.

에밀리 디킨슨은 1830년 12월 10일 미국 동부 매사추세츠 애머스트에서 태어났습니다. 에밀리는 태어난 집에서 죽을 때까지 살았습니다. 에밀리는 좋은 교육을 받았습니다. 명문 마운트 홀리오크 대학을 다녔고, 철학, 라틴어, 식물과 암석 과학 등이 그녀의 전공이었습니다.

에밀리의 부모는 애머스트 지역에서는 유명인사였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부모들을 만나기 위해 에밀리의 집을 방문했습니다. 아버지는 저명한 변호사였고, 한 임기 동안 연방의원에 당선되기도 했습니다.

디킨슨씨는 여성도 교육을 받아야 한다고 믿는 분이었습니다. 그러면서도 여성은 교육을 받으러 밖으로 나가면 안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여성들의 유일한 과제는 남편을 돕고 자녀들을 양육하는 것 뿐이라고 믿었습니다. 어는 날 에밀리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버지는 여러권의 책을 사주셨다. 그러면서도 제발 읽지는 말라고 당부하셨다. 그 책들이 사람의 마음을 뒤집어 놓을 수 있는 우려가 있기 때문이라고 하셨다.”

에밀리 디킨슨이 쓴 시는 1,700편이 넘는 많은 수였고, 그녀의 문학에 관한 서적이 세권, 그외 그녀의 인생에 관한 여러 권의 책들이 나왔습니다. 그녀의 최고 작품이라고 평을 듣는 시들은 1858년부터 1862년 사이 나온 것들이었습니다.

I LIVE WITH HIM--I SEE HIS FACE--
I GO NO MORE AWAY
FOR VISITOR--OR SUNDOWN--
DEATH'S SINGLE PRIVACY

나는 그와 함께 산다. 나는 그의 얼굴을 본다.
나는 더 이상
방문자나 해지는 걸 보기 위해
떠나지 않는다.
죽음은 나의 유일한 프라이버시.

이 기간 동안 에밀리는 자신의 목소리를 시와 같다고 느끼는 듯 했습니다. 그녀에게 영향을 미친 다른 요소들은, 영국 작가 윌리암 쉐익스피어, 기독교 성경, 자연 등이었습니다.

THIS IS MY LETTER TO THE WORLD
THAT NEVER WROTE TO ME--
THE SIMPLE NEWS THAT NATURE TOLD--
WITH TENDER MAJESTY

이것은 한번도 답장하지 않은,
세상에 보내는 나의 편지이다.
자연이 온화한 장엄함으로 말해준
소박한 소식이다.

에밀리는 살아 있는 동안 내내 남자들에게 조언을 구했습니다. 그리고 나서는 그들이 하라는대로 하지를 않았습니다. 어렸을 때는 아버지가 있었습니다. 그후에는 아버지의 법률회사 동료가 있었습니다. 필라델피아에서는 교회 사람을 만났습니다.

그녀를 도와준 또 다른 남자는 작가인 토마스 웬트워스 히긴스였습니다. 히긴스는 잡지를 발행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젊고, 작품을 발표하지 못한 작가들에게 조언을 해주었습니다. 에밀리는 30대초 그에게 몇 편의 시를 포함해 편지를 썼습니다.

히긴스는 답장을 써주었고, 나중에는 앰허스트로 그녀를 찾아왔습니다. 그후 약 2년 동안 에밀리는 더 많은 시를 써 보냈습니다. 그러나 히긴스는 그녀의 시를 실어주지 않았습니다. 그는 에밀리의 시를 이해할 수 없었다고 털어놓았습니다.

'TIS NOT THAT DYING HURTS US SO--
'TIS LIVING HURTS US MORE;
BUT DYING IS A DIFFERENT WAY,
A KIND BEHIND THE DOOR--

일부 역사가들은 에밀리의 시가 랄프 왈도 에머슨,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 월트 위트맨 등, 그 시대 미국 최고 문학가 대열에 도달해 있었다고 보고 있습니다. 역사가들은 이런 작가들이 에머슨의 기이한 생활방식 때문에 그녀의 가치를 인식하지 못한 것으로 보기도 합니다. 역사가들은 또한 에밀리가 알려지는 것을 원치 않아 히긴스 같은 인사들에게만 글을 쓴 것일 수도 있다고 말합니다.

TO HEAR AN ORIOLE SING
MAY BE A COMMON THING
OR ONLY A DIVINE
IT IS NOT THE BIRD
WHO SINGS THE SAME UNHEARD,
AS UNTO CROWD.

에밀리의 삶이 거의 알려지지 않았기 때문에 많은 작가들은 그들 나름대로 그녀의 삶을 창작해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흥미 있어 하는 것들을 에밀리도 그랬으리라 짐작하고 이야기들을 만들어 냈습니다.

그러나 어떤 작가는 에밀리를 연구하는데 흥미로운 부분은 우리가 그를 너무 모른다는 사실이라고 말했습니다.

I CANNOT LIVE WITH YOU,
IT WOULD BE LIFE,
AND LIFE IS OVER THERE
BEHIND THE SHELF
SO WE MUST KEEP APART,
YOU THERE, I HERE,

당신과 함께 살아서는 안 됩니다
그것은 반드시 인생이란 것이겠지요
그렇지만 인생은 저쪽
선반 뒤에 있습니다.

WITH JUST THE DOOR AJAR
THAT OCEANS ARE,
AND PRAYER,
AND THAT PALE SUSTENANCE,

에밀리 디킨슨은 자신의 시를 베를 짜듯 모아서 한쪽으로 치워 놓았습니다. 에밀리는 자신의 삶도 그렇게 꿰매고 짜서 한쪽에 놓아두었습니다. 에밀리는 한 걸음 한 걸음 세상으로부터 멀어졌습니다. 그녀가 연로해지자 찾아오는 사람도 드물어졌습니다. 자신도 집을 나서는 일이 거의 없었습니다.

에밀리가 물러난 때는 남북전쟁이 일어난 시기이기도 했습니다. 그 전쟁은 미국의 역사를 바꾼 사건이었습니다. 그러나 에밀리에게 타격을 주지는 않았습니다. 에밀리는 1886년 55세로 숨졌습니다. 그녀의 죽음은 세상에 전혀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에밀리가 살아 있는 동안 그녀의 시에 관한 글을 쓴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에밀리가 타계한지 백년이 지난 뒤, 그녀는 미국의 가장 위대한 시인 중 한명으로 떠 올랐습니다.

THE BRAIN IS WIDER THAN THE SKY,
FOR, PUT THEM SIDE BY SIDE,
THE ONE THE OTHER WILL CONTAIN
WITH EASE--AND YOU BESIDE.

내 마음은 하늘보다 더 넓어
나란히 높으면
마음이 하늘을 담으니까.

에밀리가 타계한 뒤 그녀의 동생 라비니아는 잠궈진 방에서 40여개에 달하는 언니의 시 뭉치를 발견했습니다. 라비니아는 히긴스에게 그 시를 출판하자고 제의했습니다. 히긴스도 그에 동의했습니다.

그리고 천천히 시집이 출판되기 시작했습니다. 머지 않아 독자들은 에밀리가 그져 단순한 자연 시인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SURGEONS MUST BE VERY CAREFUL
WHEN THEY TAKE THE KNIFE!
UNDERNEATH THEIR FINE INCISIONS
STIRS THE CULPRIT—LIFE

외과의는 매우
신중해야 합니다.
그가 칼을 들때는
그들의 섬세한 절개아래 죄인은 휘젓네-목숨을

에밀리는 생전에 기존의 기독교에 반기를 든 인물이었습니다. 그러면서도 신앙에 관한 시를 자주 썼습니다. 에밀리는 집을 떠난 일이 거의 없었습니다. 그러면서도 아주 먼곳의 이야기를 시로 썼습니다. 에밀리는 조용히 살았습니다. 그러면서도 인생은 빨리 지나간다, 그래서 삶을 알차게 살아야 한다고 썼습니다.

만약 내가 한 애타는 마음 멈출 수 있다면,
나 헛되이 사는 것 아니리.
만약 내가 한 생명의 아픔을 덜고,
한 괴로움을 달래주고,
기진맥진해서 떨어지는 울새 한 마리를
다시 둥지에 돌아가게 할 수 있다면,
나 헛되이 사는 것 아니리.

이 시간에는 19세기 미국 시 문학의 중심적 인물로 평가되는 에밀리 디킨슨에 대해 알아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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