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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적대정책 철회' 요구…미국 "적대적 의도 없어, 협상에서 모든 것 논의"


30일 한국 서울역에 설치된 TV에서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 시정연설 관련 뉴스가 나오고 있다.
30일 한국 서울역에 설치된 TV에서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 시정연설 관련 뉴스가 나오고 있다.

미국과 북한의 비핵화 협상은 `대북 적대시 정책'의 철회에 대한 북한 측 주장으로 인해 장기 교착상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지난 1990년대 미국과 협상을 시작한 이래 줄기차게 계속되고 있는 북한의 이런 주장에 대해 바이든 행정부는 북한에 적대 의도가 없으며 협상을 통해 모든 현안을 논의할 수 있다는 입장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박형주 기자가 보도합니다.

지난달 30일 공개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은 바이든 행정부 대북정책에 대한 김 위원장의 직접적인 첫 반응이었습니다.

핵심은 바이든 행정부가 역대 미 행정부가 추구해온 적대시 정책을 이어가고 있으며 “오히려 더 교활해졌다”는 주장입니다. 북한 관영 `조선중앙방송'의 보도 내용입니다.

[녹취: 조선중앙방송] "새 미 행정부의 출현 이후 우리에 대한 미국의 군사적 위협과 적대시 정책은 조금도 달라진 것이 없으며 오히려 그 표현 형태와 수법은 더욱 교활해지고 있다고 하시면서…"

이는 북한이 바이든 행정부에 보내고 있는 일관된 메시지이지만, 북한의 적대정책 철회 주장은 사실상 미-북 협상의 역사와 궤를 같이합니다.

1993년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 등으로 촉발된 ‘1차 북핵 위기’에서부터 북한은 자신들이 핵을 개발하는 것은 “미국의 대조선 적대시 정책 때문”이라고 주장했습니다.

또 한국에 대해선 “미국의 적대시 정책 추종이 남북 갈등의 원인”이라고 책임을 돌렸습니다.

따라서 핵을 포기하기 위해선 미국이 먼저 적대정책을 포기해야 한다는 게 북한의 논리입니다.

‘2차 북 핵 위기’ 해결을 위해 가동된 6자회담에서도 북한의 입장은 같았습니다.

자신들은 비핵화 원칙을 견지하고 있지만 미국이 적대시 정책을 취하고 있어 “자위적인 정당방위 수단으로 핵 억제력을 갖고 있다”고 주장한 것입니다.

그러면서 미-북 불가침조약 체결과 외교관계 수립, 경제봉쇄 해제를 요구했습니다.

트럼프 행정부 시절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김정은 위원장은 2017년 7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화성-14형을 발사한 직후 “미국의 대 조선 적대시 정책과 핵 위협이 근원적으로 청산되지 않는 한 우리는 그 어떤 경우에도 핵과 탄도로케트를 협상 테이블에 올려놓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그러다 2018년 6월 ‘새로운 미-북 관계, 항구적인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 등이 포함된 미-북 싱가포르 공동선언 채택 이후부턴 ‘적대정책’이라는 말을 자제하는 듯했습니다.

하지만 2019년 하노이 미-북 2차 정상회담이 결렬된 이후 북한은 다시 미국을 향해 ‘적대정책 철회’ 공세를 강화하고 있습니다.

특히 하노이 회담 결렬 이후부터는 미국을 향해 “생존권과 발전권을 저해하는 조치”를 제거할 것을 끊임없이 요구했습니다. 2019년 10월 김명길 북한 외무성 순회대사입니다.

[녹취: 김명길 순회대사] "조선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는 우리의 안전을 위협하고 발전을 저해하는 모든 장애물들이 깨끗하고 의심할 여지 없이 제거될 때에라야 가능하다"

다만 북한은 적대정책 철회가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명확하게 밝히지 않았습니다.

당시 북한이 언급한 '생존권과 발전권’은 체제안전 보장과 대북 제재 완화를 의미하는 것으로 풀이됐습니다.

북한은 바이든 행정부에 대한 첫 공식 메시지로 평가되는 3월 18일 최선희 외무성 제1부상의 담화에서도 미-북 협상 재개 조건으로 미국이 적대정책 완화로 간주할 수 있는 구체적인 조치에 나서야 한다는 점을 거듭 강조했습니다.

특히 최선희 제1부상은 미국이 “강압적 자세를 유지하고 있다”면서 ‘추가 제재 검토, 정찰자산 동원, 침략적인 합동군사연습’을 거론했습니다.

북한은 지난달 27일 김성 유엔대사의 유엔총회 기조연설에서는 적대정책과 관련해 ‘합동군사연습과 전략무기 투입 영구 중지’라는 구체적인 요구를 내놨습니다.

[녹취: 김성 대사] “진정으로 조선반도의 평화와 화해를 바란다면 조선반도와 그 주변에서 우리를 겨냥한 합동군사연습과 각종 전략무기 투입을 영구 중지하는 것으로부터 대조선 적대시 정책 포기의 첫걸음을 떼야 할 것입니다.”

북한에 ‘조건 없는 대화’를 줄곧 제안하고 있는 바이든 행정부는 북한이 이런 주장을 펼 때마다 “미국은 북한에 적대 의도를 품고 있지 않다”고 확인하고 있습니다.

특히 성 김 국무부 대북특별대표는 지난 8월 한국 ‘KBS’ 방송과 인터뷰에서 북한의 주장에 대한 바이든 행정부의 입장을 상세히 설명했습니다.

[녹취: 성 김 대표] “The United States does not have hostile intent towards the DPRK. The ongoing U.S.-ROK combined military exercises are longstanding, routine, and purely defensive in nature…”

먼저 “미국은 북한을 향한 그 어떤 적대적 의도도 갖고 있지 않음을 명확히 하고 싶다”며 북한 측을 향해 “친구”라는 표현을 사용했습니다.

또 북한이 적대정책의 일환으로 꼽고 있는 미-한 연합훈련은 “오랫동안 지속돼 왔고 정례적이며, 사실상 순수하게 방어적인 훈련”이라고 말했습니다.

아울러 “북한에 중요한 것들을 포함해 온갖 종류의 문제들과 관심사들을 기꺼이 다룰 것”이며 “매우 전향적(forward-leaning)이고 창의적이며 유연하고 열린 자세”를 마다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한마디로 북한이 ‘대화의 선제조건’으로 내세우는 사안은 협상장에서 논의해야 할 문제라는 것입니다.

바이든 행정부는 아울러 기회 있을 때마다 ‘미-한 방위태세 유지, 유엔 안보리 대북 제재 이행’ 등에 대해 기존 원칙을 확인하고 있습니다.

한국 정부는 북한의 적대정책 철회 주장에 대해서는 미국과 같은 원칙을 확인하면서도 제재 완화 등 세부적인 사안에 대해서는 유화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습니다.

정의용 한국 외교부 장관은 1일 국회 국정감사에서 '북측의 적대시 정책 철회나 이중잣대 철회 요구를 한국이나 미국이 받아들일 수 있느냐'는 질문에 "그렇지 않다"고 답했습니다.

정의용 장관은 "이중기준 적용을 중단하라는 김여정 담화는 북측의 일방적 주장으로 바람직하지 않다고 보고 있다"며 "우리나 미국은 누누이 북한에 대해 적대적 정책을 갖고 있지 않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대북 제재 완화에 대해선 “검토할 때가 됐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녹취: 정의용 한국 외교장관] “북한이 미국과의 대화에 나올 수 있도록 하나의 인센티브로 이러한 협의를 해 보자는 거죠”

정의용 장관은 30일 미국 ‘워싱턴 포스트’ 신문과의 인터뷰에서도 “현재 상태가 계속되도록 내버려 둔다면 북한의 미사일 능력 강화로 이어질 것”이라며 미국이 북한에 제공할 좀 더 구체적인 유인책을 제시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워싱턴 포스트'는 정 장관의 이런 견해에 대해 미국의 고위 당국자는 바이든 행정부가 북한에 구체적인 안을 제시하지 않은게 아니라 북한의 반응이 부족한 탓에 협상이 교착됐다고 말했다고 보도했습니다.

VOA 뉴스 박형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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