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곳곳의 다양한 모습과 진솔한 미국인의 이야기를 전해드리는 구석구석 미국 이야기입니다. 미국에선 금서 읽기 주간이 진행되곤 합니다. 지역 도서관들은 이를 기념해 금지 도서가 된 책들을 소개하고 함께 책을 읽는 독서 토론회 등도 개최하는데요. 금지된 책 목록을 보면 사람들이 놀란다고 합니다. 고전문학으로 알려진 책들도 일부 학교에서는 금서로 지정돼 있기 때문이라고 하는데요. 금서 읽기 주간을 맞아 독서 토론회가 열린 미 동부 버지니아주의 한 도서관을 찾아가 보죠.
“첫 번째 이야기, 미국 금지 도서 읽기 주간”
[현장음: 금서 읽기 주간 독서 토론회]
버지니아주 알렉산드리아시의 한 도서관에서 독서토론회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경청하고 있는 소설은 리처드 라이트의 소설 ‘네이티브선(Native Son)’입니다. 한인들에겐 ‘토박이’, 또는 ‘미국의 아들’이란 제목으로 알려져 있는데요. 1930년대 시카고를 배경으로 한 소설입니다. 가난한 흑인 청년 ‘비거 토마스’가 주인공으로 당시 미국 사회 만연했던 흑백 인종 갈등을 다룬 작품입니다.
이 책은 1940년대 초에 출간됐습니다. 하지만 1970년대, 미 북동부 뉴햄프셔주에서는 이 책에 욕설이 나온다는 이유로, 매사추세츠주에선 폭력적이라는 이유로 ‘토박이’를 금지 도서로 지정했습니다.
10년 뒤에는 몇몇 공공도서관과 학교에서도 퇴출됐는데요. 저스틴 윌슨 알렉산드리아 시장은 이날 직접 이 책을 사람들 앞에서 낭독했습니다.
[녹취: 저스틴 윌슨] “미국에서 금서로 지정됐던 책 목록을 훑어봤는데 바로 이 책, ‘토박이’가 눈에 들어오더라고요. 이전에 제가 학교에 다닐 때도 금서 지정 운동이 일었습니다. 특정 책을 아이들이 읽지 못하게 했죠. 이런 조처가 수년 동안이나 계속됐던 기억이 납니다.”
미국에서 가장 초창기 금서에 지정된 책 가운데 하나가 월터 휘트먼의 소설 ‘풀잎(Leaves of Grass)’입니다. 1855년에 출간된 책으로 외설적이고 너무 성적인 내용이라는 것이 금서 지정의 이유였습니다.
또한, 미국 문학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작품인 마크 트웨인의 ‘허클베리 핀의 모험(The Adventures of Huckleberry Finn)’ 역시 내용이 인종차별적이라는 비판이 일면서 한때 금서로 지정됐다고 합니다.
[녹취: 케이티 도우] “과거에 금서로 지정된 도서 중에 지금까지도 해제되지 않은 책이 많습니다. 오늘 우리 독서 토론회에서도 바로 그런 책들을 읽고 있는데요. ‘호밀밭의 파수꾼(The Catcher in the Rye)’ 역시 1951년 출간된 이래 거의 매년 금지 도서로 지정되고 있는 책입니다. 그런가 하면 전 세계적으로 엄청난 인기를 끌었던 ‘해리포터(Harry Potter)’가 금서로 지정되기도 했는데요. 한 가톨릭 학교는 최근에서야 해리포터를 금서에서 해제했습니다.”
‘비틀리 중앙 도서관’의 케이티 도우 씨의 설명이었는데요. 케이티 씨는 많은 지역 도서관이 매년 가을 이렇게 금지 도서를 함께 읽는 독서 토론회를 진행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행사에 참석한 샐리 보컴 씨는 ‘호밀밭의 파수꾼’을 읽는 시간을 선택했다는데요. 학창 시절부터 독서를 좋아했다는 샐리 씨는 이렇게 금서 들을 읽어보면 왜 금서로 선정됐는지 이유를 알 수 있다고 했습니다.
[녹취: 샐리 보컴] “이 책은 심각한 우울증을 겪고 있는 한 젊은 남자가 동생을 잃은 후, 정신적인 충격을 극복하지 못하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사실 책 내용을 들여다보면 논란이 될 부분이 많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금지 도서로 지정돼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요. 누구나 자신이 원하는 선택을 할 권리가 있잖아요. 그 권리를 막을 사람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금서 읽기 행사에 참여한 사람들은 다들 같은 이유로 금서를 읽고 토론하며 자신의 권리를 누리고 있었는데요. 미국 법원들 역시 언론, 출판의 자유를 보장한 미국 수정헌법 1조에 의거한 판결을 내리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두 번째 이야기, 평화를 호소하는 불발탄으로 만든 장신구”
전 세계 패션의 중심지 가운데 한 곳인 미 동부의 대도시 뉴욕에선 패션쇼와 전시회 등이 끊이지 않습니다. 또 유명 디자이너들이 내놓은 최신 유행의 옷과 장신구들도 확인할 수 있죠.
[녹취: '아티클22' 전시장]
그런데 뉴욕의 한 패션 전시장에 아주 특별한 장신구가 등장했습니다. 금속으로 만든 이 장신구들은 라오스 ‘비밀전쟁’의 유물인 불발탄을 재가공해 만든 것들이라고 합니다.
1960년대 베트남 전쟁 당시, 미군은 북베트남 공산당의 보급망을 차단하기 위해 라오스 상공에서 집중적인 공습을 퍼부었는데요. 미국이 공식적으로 이를 인정하지 않아 ‘비밀전쟁(Secret War)’이 라고 불렸죠.
뉴욕의 디자이너 엘리자베스 수다 씨는 10년 전 라오스를 방문했을 때 라오스 사람들이 바로 이 비밀 전쟁의 유물인 폭탄과 지뢰 파편을 녹여 철 숟가락을 만드는 것을 보게 됐는데요. 이에 영감을 받아 ‘아티클22(Article 22)’라는 장신구 회사를 세우게 됐습니다.
[녹취: 엘리자베스 수다] “뉴욕에서 갓 디자이너로 발을 들여놓았을 때 라오스를 방문하게 됐어요. 이후 저는 어떻게 패션이 단순한 소모품이 아닌, 지속성을 가질 수 있을까를 고민하기 시작했고요. 또 사람들이 멋지게 보이기 위해 많은 돈을 쓰는 것을 보면서, 패션이 멋진 일에도 활용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를 고민하게 됐습니다.”
그렇게 시작된 아티클22는 라오스에 있는 금속 공예가들과 협업해 다양한 종류의 장신구를 만들어 내기 시작했습니다. 여러 팔찌와 목걸이, 반지, 귀걸이 등은 폭탄 파편으로 만들었다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세련되고 정교한데요.
아티클22는 단순히 장신구를 만들어 파는 데 그치지 않았습니다. ‘지뢰자문그룹(Mines Advisory Group)’이라는 지뢰 퇴치 기구를 도와 라오스를 포함한 전 세계 곳곳의 지뢰 퇴치 운동에 나선 겁니다.
[녹취: 엘리자베스 수다] “더 많은 팔찌가 팔릴수록 더 많은 사람에게 전쟁의 위험을 알릴 수 있는 기회가 되고요. 또 지뢰 퇴치 그룹에도 더 많은 기부금이 전달됩니다. 베트남 전쟁 당시 라오스에 떨어진 폭탄은 수억 개에 달하는데요. 아직 터지지 않은 불발탄과 지뢰가 약 8천만 개로 추정됩니다. 그러니까 아직 수많은 주민이 폭발에 위험 속에 살아가고 있는 겁니다.”
아티클22는 각종 패션 전시 행사에도 정기적으로 참여하고 있습니다. 이번에 뉴욕에서 열린 행사는 예술과 사회 운동을 결합하는 취지로 열린 행사였는데요. 사회적으로 또는 환경적으로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가진 제품을 판매하는 행사였죠.
아티클22 는 행사를 찾은 사람들에게 자신들의 장신구에 담겨 있는 의미를 설명했습니다. 특히 사람들의 관심을 끈 제품은 “폭탄 다시 사들이기”라는 글귀가 새겨진 금속 링 팔찌였는데요. 팔찌를 구매함으로써 미국이 과거 라오스에 투하한 폭탄을 없애는 데 일조 하자는 뜻을 담았습니다.
전시장을 찾은 사람들은 이 팔찌가 불발탄으로 만들었다는 사실에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녹취: 베로니카 프란코] “제 팔을 한번 보세요! 팔찌가 정말 예쁘죠? 제 팔찌에는 ‘세계 평화’라는 말이 여러 나라 말로 새겨져 있어요.”
아티클22 측은 고객들이 자신의 몸에 걸친 장신구를 통해 전쟁의 비극에 대해 말할 수 있는 용기를 가질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한다고 했는데요. 또한, 155달러어치를 판매할 때마다 3㎡에 달하는 라오스 지역의 불발탄과 지뢰를 퇴치할 수 있는 기금을 기부한다고 합니다.
네, '구석구석 미국 이야기' 다음 주에는 미국의 또 다른 곳에 숨어 있는 이야기와 함께 다시 찾아오겠습니다. 함께 해주신 여러분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