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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몰수 북한선박 '와이즈 어네스트', 과거 한국업체 소유


대북제재 위반을 이유로 미국 정부가 억류해 매각 처리한 북한 선박 와이즈 어네스트 호가 지난 6월 미국령 사모아의 수도 파고파고 항구에 계류돼 있다.
대북제재 위반을 이유로 미국 정부가 억류해 매각 처리한 북한 선박 와이즈 어네스트 호가 지난 6월 미국령 사모아의 수도 파고파고 항구에 계류돼 있다.

대북제재 위반을 이유로 미국 정부가 억류해 매각 처리한 북한 선박 와이즈 어네스트 호가 북한에 소유권이 넘어가기 전까지 한국 선박이었던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어떤 과정을 거쳐 이 선박이 북한으로 팔리게 됐는지 의문으로 남아있습니다. 함지하 기자가 전해 드립니다.

북한 선박 와이즈 어네스트 호는 2015년까지 한국 깃발을 달았던 한국 선박이었습니다.

VOA가 국제해사기구(IMO)의 선박 정보 시스템과 마린트래픽(MarineTraffic) 등을 확인한 결과 와이즈 어네스트 호는 2004년부터 2015년까지 ‘애니(Eny)’ 호라는 이름으로 운영된 화물선으로, 한국의 산업은행(KDB) 캐피탈과 명산해운이 소유하던 선박으로 나타났습니다.

또 아태지역 항만국 통제위원회(도쿄 MOU) 자료에도 이 선박이 한국 선박으로 등록된 것으로 나타났는데, 이 때는 또 다른 한국업체인 J쉬핑이 소유주로 표기됐습니다.

이번 사안에 정통한 선박업계 관계자는 금융회사인 산업은행 캐피탈과 해운 업체인 명산해운이 공동으로 소유권을 가지고, 실질적인 운영을 명산해운이 맡은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또 J쉬핑은 선원 운영이나 기술부문 지원 등을 하는 회사의 역할을 했을 것이라고 덧붙였습니다.

문제는 한국 선박이었던 애니 호가 다른 나라를 거치지 않고 곧바로 북한으로 넘어갔을 개연성이 크다는 점입니다.

국제해사기구 등에 따르면 2015년 초 매각된 것으로 알려진 애니 호는 소유주가 바뀐 직후 곧바로 캄보디아 깃발을 달게 됩니다.

언뜻 보면 캄보디아 회사에 팔려간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론 북한 회사로 곧바로 넘어갔을 가능성이 제기됩니다.

애니 호가 매각된 직후 바꾼 이름은 ‘송이(Song I)’ 호였는데, ‘송이’라는 이름은 와이즈 어네스트 호를 소유했던 평양 소재 북한 회사 ‘송이 무역회사’와 이름이 동일하다는 점도 이 같은 분석을 뒷받침합니다.

북한 선박들은 일반적으로 평양에 있는 선박의 운영회사와 같은 이름을 사용합니다.

송이 호는 2015년 8월, 선박의 이름을 지금의 와이즈 어네스트 호로 변경하면서 선적을 시에라리온으로 바꿉니다. 이어 탄자니아로 선적을 한 차례 더 변경한 뒤 2016년 11월 북한 깃발을 달게 됐습니다.

와이즈 어네스트 호가 선적을 자주 바꾼 2016년은 시에라리온과 탄자니아 등 편의치적, 즉 다른 나라에서 운영되던 선박의 자국 등록을 허용하던 나라들이 북한 선박들의 등록을 취소하던 시기와 일치합니다.

이런 과정을 거쳐 북한 깃발을 달게 된 와이즈 어네스트 호는 2018년 3월 북한 남포항에서 유엔이 금지한 북한 석탄을 실은 대북제재 위반 선박이 돼 나타납니다.

이어 인도네시아에 억류된 와이즈 어네스트 호는 최근 미국 정부에 의해 압류돼 강제 매각 처리됐습니다.

한 때 한국 깃발을 달거나 한국 해운업체가 소유한 선박이 북한 깃발을 달고 나타난 사례는 와이즈 어네스트 호 외에도 더 있습니다.

현재 미 재무부와 유엔 안보리의 제재 대상에 오른 북한 유조선 백마 호는 2016년까지 파나마 선적의 ‘로얄 미라클’이라는 이름으로 운영됐는데, 실제 소유와 운영은 2011년부터 한국 업체가 맡았던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또 2003년부터 2010년까지 대신쉬핑이라는 한국 업체가 운영했던 ‘한국 호’는 현재 미 재무부의 제재 대상인 북한의 ‘금빛 1호’가 돼 있습니다.

또 신성하이 혹은 탤런트 에이스 호라는 이름으로 한국에 석탄을 밀반입했다가 억류된 선박도 2008년부터 2017년까진 한국의 ‘동친해운’이 소유했던 ‘동친 상하이’였습니다.

이처럼 VOA 확인 결과 보천 호와 동산 2호 등 북한 선박 여러 척이 최근까지 한국 깃발을 달았지만, 이후 대북제재 위반 선박으로 다시 태어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들 선박들은 한국에서 매각된 직후 편의치적으로 잘 알려진 나라의 깃발을 달았다가 이후 북한 선적을 취득하는 양상을 보였습니다.

다만 유엔 안보리 대북제재위원회 전문가 패널에서 해상 전문가로 활동한 닐 와츠 전 위원은 와이즈 어네스트 호가 최초 한국에서 북한으로 매각됐다고 해도 유엔 안보리 결의 위반은 아닐 수 있다고 해석했습니다.

와츠 전 위원은 8일 VOA에 보낸 이메일에서 유엔 안보리는 결의 2321호를 통해 북한에 선박을 판매하지 못하도록 했지만, 이 결의 채택 시점은 2016년으로 선박의 매각 이전이었다고 설명했습니다.

2015년 당시 유엔 안보리가 제재 중이었던 북한의 원양해운관리회사(OMM)나 그 외 다른 제재 개인 혹은 기관과 이 선박이 연계돼 있다면, 이는 제재 위반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유엔 안보리 결의 위반과는 별개로 한국과 미국 등 각국의 독자 제재를 위반했을 가능성은 열려 있습니다.

한국 정부는 2010년 5.24 조치 등을 통해 북한과의 무역을 전면 금지했고, 미국도 선박 등을 거래할 때 미리 재무부와 상무부 등의 허가를 받도록 하고 있습니다.

또 다른 제재 전문가는 한국의 업체들이 당시 이 선박이 북한으로 팔려갔는지 여부를 알았느냐가 관건이라고 말했습니다.

VOA는 산업은행 캐피탈과 명산해운 등에 문의를 한 상태로 답변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선박 업계 관계자는 한국 선박이 북한에 판매될 가능성은 여전히 열려 있는 상태라고 주장했습니다.

북한이 캄보디아 등 다른 아시아 내 국가에 선적을 두고 한국 등 다른 나라의 선박을 구입할 수 있다는 겁니다.

또 북한이 중국 다롄이나 칭다오 등지에 차려진 위장회사를 통해 선박을 구매하고 관리한다면 외부에선 이를 알아차리기 어렵다고 지적했습니다.

한편 미국 정부에 의해 지난 5월 미국령 사모아 파고파고 항으로 이동했던 와이즈 어네스트 호는 5개월여 만에 이곳을 떠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앞서 VOA는 위성사진을 통해 와이즈 어네스트 호에서 7일 작은 선박이 접선하는 등 움직임이 포착됐다고 보도했는데, ‘AP’ 통신을 포함한 현지 언론들은 와이즈 어네스트 호가 이날 예인선에 이끌려 파고파고 항을 떠났다고 밝혔습니다.

경매로 매각 처리된 와이즈 어네스트 호는 폐선될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VOA 뉴스 함지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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