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결 가능 링크

미 해군 “북한 정권이 한국전쟁 주문진 해전 승리 왜곡”


한국전에 참전했던 미 해군의 경순양함 주노호(USS Juneau).

북한 정권이 한국전쟁 중 대대적인 승리로 선전하는 주문진 해상전투 결과는 사실과 다르다고 미 해군 당국이 VOA에 밝혔습니다. 북한이 격침했다고 주장하는 볼티모어급 중순양함은 전투 당시 미 본토에 있었고, 해전도 북한이 대패했다는 설명입니다. 김영권 기자가 보도합니다.

미 해군 역사·문화유산 사령부(Naval History and Heritage Command)가 최근 홈페이지의 한국전쟁 코너를 새롭게 단장했습니다.

한국전쟁 중 미 해군의 역할, 주요 작전과 전술, 전투, 인물, 연대기까지 자세하게 소개하고 있어 눈길을 끕니다.

특히 북한 정권이 전쟁 중 대승을 거둔 5대 전투 가운데 하나로 선전하는 주문진 해상전투는 사실과 크게 다르다는 점을 확인하고 있습니다.

북한 정권은 북한 어뢰정 4척이 1950년 7월 2일 새벽, 주문진 앞바다에서 적의 대함선집단을 격침시켜 세계 해전사에 없는 기적을 만들었다며 대대적으로 선전해 왔습니다.

[조선중앙 TV] “결국 몇 분도 안되는 사이에 미제가 바다의 움직이는 섬이라고 자랑하던 중순양함 볼티모어호는 어뢰 세 발로 격침되었고 경순양함은 어뢰 한 발로 격화됐습니다.”

북한은 조국해방전쟁승리기념관에 어뢰정 한 척을 전시한 채 승전을 기념하고 있고, 김일성 주석이 이 전투를 직접 지시했다며 수령 우상화 사업의 일환으로 적극 활용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미 해군 역사·문화유산 사령부가 밝힌 한국전쟁 중 침몰했거나 손상된 미 전함 목록에 중순양함은 없습니다.

한국전쟁 중 총 5척의 소해정이 수중에 설치된 기뢰에 부딪혀 침몰했고 87척이 크고 작은 손상을 입었지만, 북한 정권이 주장한 1만~2만t에 달하는 중순양함은 없다는 겁니다.

미 해군 역사·문화유산 사령부 대변인실은 1일 VOA에 보낸 이메일 답변에서 북한 정권이 격침했다고 주장한 볼티모어호는 전투 당시 미국에 있었다고 밝혔습니다.

미국해군전투함사전(DANFS)에 따르면, 볼티모어호는1947년 4월 29일에 미 서부 워싱턴주 브리머톤에서 퇴역한 뒤 해군력 강화에 따라 1951년 현역에 복귀했다는 겁니다.

[미 해군 역사·문화유산 사령부 대변인실] “This means Baltimore was in a decommissioned status off the coast of Washington state on July 2, 1950 and did not enter the Korean War until the end of 1951.”

따라서 볼티모어호는 주문진 해상전투가 발생한 1950년 7월2일에 워싱턴주 해안에 퇴역 상태로 있었고 1951년 말까지 한국 전쟁에 참전하지 않았다고 사령부 대변인실은 밝혔습니다.

미 해군은 홈페이지의 ‘순양함 전투사’에서 주문진 해상전투는 미국과 영국 연합군이 북한 어뢰정 3척을 격침한, 한국전쟁 중 유일한 순양함 전투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1950년 7월 2일 주문진 앞바다에서 미 경순양함 주노호(USS Juneau, CL 119), 영국 순양함 자메이카호(HMS Jamica)와 구축함 블랙스완호(HMS Black Swan)가 북한 어뢰정의 공격을 받았지만, 어뢰를 맞지 않은 채 세 척을 격침시켰다는 겁니다.

[미국 해군 홈페이지] “The only pure naval action in which an American warship was involved in during the Korean War was fought off Chumunkin, on the east coast, when four North Korean torpedo boats attacked the cruisers USS Juneau (CL 119) and HMS Jamaica and the frigate HMS Black Swan. Three of the torpedo boats were destroyed; none of the allied ships were hit.”

미 해군 역사·문화유산 사령부 대변인실은 VOA에, 미 해군이 펴낸 ‘한국전쟁: 미 해군작전역사’의 3장이 당시 상황을 자세히 소개하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1950년 7월 2일 새벽 6시 15분에 북한 어뢰정 4척과 포선 2척이 탄약을 실은 수송선 10척을 호위하며 주문진 북부에서 남하하는 모습이 포착돼 요격을 위해 순양함들이 속도를 내자 북측이 먼저 공격을 시도했다는 겁니다.

하지만 연합군의 공격으로 북한군 어뢰정 3척과 포선 두 척이 모두 격침되고 자메이카호가 북측 승무원 2명을 생포했다고 밝혔습니다.

[미 해군 역사·문화유산 사령부 대변인실] “The final score of the engagement was three torpedo boats and both gunboats destroyed, and two prisoners taken by Jamaica. Following this first engagement with the North Korean Navy, also in effect the last, the cruisers bombarded shore batteries at Kangnung, and late in the day Jamaica was sailed for Sasebo to fuel.”

전쟁 역사가 마이클 히키 씨도 저서 ‘한국전쟁’에서 주문진 해전 당시 자메이카호에 승선했던 장교 후보생 마이클 머스캠프의 증언을 통해 당시 상황을 자세히 설명하고 있습니다.

북한 선박이 모두 격침되고 어뢰정(21번) 한 척만 도주했으며, 생포된 북한 해군 요원들은 심문 과정에서 소련군으로부터 공격일 다음 주에 어뢰 공격 방법에 대해 배울 예정이었다고 말했다는 겁니다.

북한 군인들이 소련으로부터 받은 어뢰정의 어뢰를 어떻게 발사하는지조차 제대로 모른 채 공격에 투입됐다는 설명입니다.

미 안보·군사 관련 저술가인 세바스천 로블린 씨는 지난달 안보전문매체 ‘내셔널 인터레스트’ 기고에서 주문진 해상전투는 모든 상황이 10분 안에 끝났을 정도로 유엔군 전력이 우수했다고 밝혔습니다.

영국의 자메이카호와 2천t급 블랙스완호는 2차 세계대전에서 독일군 잠수함과 전함 격침을 지원했을 정도로 전력이 우수했고 6천 8백t급 주노호는 진수된 지 4년 밖에 안된 대공 순양함으로, 47t급 목선인 북한 포선 등은 상대가 되지 않았다는 겁니다.

미군의 한국전쟁 기록에 따르면, 해군력이 빈약했던 북한은 이 전투를 끝으로 전투력이 막강한 유엔군과의 해상 교전을 피한 채 기뢰 설치와 해안 포격, 보급선 기습에 주력했습니다.

하지만 북한 정권은 한국전쟁은 북침으로 시작됐고, 전쟁은 북한의 승리로 끝났으며, 주문진 해상전투는 세계 해전 역사에 유례가 없는 승리라는 왜곡된 주장을 북한 주민들에게 반복해 선전하고 있습니다.

워싱턴 DC에 본부를 둔 미 해군 역사·문화유산 사령부는 미 해군의 정확한 역사를 보존하고 해군 요원들의 희생을 기념하기 위해 1794년에 창설된 뒤 2008년 현재의 이름으로 변경했습니다.

또한, 미국 내 13개 장소에 해군 도서관과 박물관 등 40여개 기관을 관장하고 있습니다.

VOA 뉴스 김영권입니다.

독자 제보: VOA는 독자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기사화를 원하는 내용을 연락처와 함께 Koreanewsdesk@voanews.com 이메일로 보내주시면 뉴스 제작에 적극 반영하겠습니다. 제공하신 정보는 취재를 위해서만 사용되며, 제보자의 신분은 철저히 보호됩니다.
XS
SM
MD
L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