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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다피 몰락은 리비아식 비핵화 모델 아닌 내부 독재 문제”


리비아를 42년간 철권통치했던 무아마르 가다피.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과 관련한 볼튼 보좌관의 `리비아 모델’ 언급을 그에 대한 경질 이유로 들면서 리비아식 비핵화 모델이 새삼 주목받고 있습니다. 하지만, 가다피 정권의 몰락은 독재체제에 맞선 봉기 때문이지 리비아 비핵화 모델 자체와는 거리가 멀다는 지적입니다. 김영권 기자가 보도합니다.

지난 2003년 12월. 무아마르 가다피 리비아 국가원수가 자발적으로 핵무기 등 대량살상무기(WMD) 프로그램을 포기하겠다고 국제사회에 전격 선언합니다.

워싱턴에서는 조지 W. 부시 당시 대통령이 거의 동시에 긴급 기자회견을 열어 가다피의 선언을 확인했습니다.

[녹취: 부시 대통령] “Today in Tripoli, the leader of Libya, Col. Moammar Gadhafi, publicly confirmed its commitment to disclose and dismantle all weapons of mass destruction programs in his country.”

반미 강경노선을 유지하던 가다피 정권이 비핵화 합의로 돌아선 배경에 대해 당시 전문가들은 두 가지 핵심 이유를 지적했습니다.

10년 이상 지속된 국제사회의 강력한 제재로 식량난 등 경제가 바닥을 친 것, 그리고 같은 해 이라크 후세인 정권의 몰락을 보며 체제생존이 우선이란 전략이 작용했다는 겁니다.

미국과 리비아는 ‘포괄적 합의, 단계적 보상’ 합의에 따라 서로의 약속을 착실히 이행했습니다.

비핵화 선언 두 달 뒤 리비아 수도 트리폴리에 미국 이익대표부가 설치됐고, 한 달 뒤인 2004년 3월 국제원자력기구(IAEA)가 핵 사찰을 시작했습니다.

이후 서방 기업들의 투자가 시작됐고 리비아 내 열악한 사회기반시설 재건에 대한 대규모 지원 계약이 이어졌습니다.

25t에 달하는 리비아의 핵 관련 장비와 물질, 자료들은 미 테네시주 오크리주 연구소로 옮겨졌고, 미국과 유럽은 경제 제재를 해제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듬해인 2005년 10월 부시 행정부는 리비아의 핵 폐기 완료를 선언했고, 2006년 5월 국교정상화가 이뤄져 트리폴리에 미 대사관이 문을 열었습니다.

부시 대통령은 이어 리비아를 25년 만에 테러지원국 명단에서 삭제하면서 양국의 모든 합의는 순조롭게 마무리됐습니다.

이후 양국 고위 관리들의 방문이 이어지는 가운데 리비아는 국제무대에 빠르게 편입됐고, 해외 투자는 가속도가 붙었습니다.

전문가들이 말하는 ‘리비아식 비핵화 모델’은 여기까지입니다.

가다피 원수는 이후 미국과의 국교정상화 5년여 만인 2011년 10월, 민중봉기와 내전으로 처참한 죽음을 맞으며 42년 간 지속된 그의 철권통치는 막을 내렸습니다.

바락 오바마 당시 대통령은 특별성명을 통해 “리비아 국민의 길고 고통스러운 장이 끝났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오바마 대통령] “Today, the government of Libya announced the death of Muammar Qaddafi. This marks the end of a long and painful chapter for the people of Libya, who now have the opportunity to determine their own destiny in a new and democratic Libya.”

오바마 대통령은 “리비아 국민이 독재자의 죽음으로 새롭고 민주적인 리비아에서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결정할 기회를 갖게 됐다”며, 이 날은 리비아 역사에 “중대한 날”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이런 가운데 일각에서는 가다피의 비핵화 결단이 정권 붕괴를 자초한 게 아니냐는 분석이 제기됐습니다.

하지만, 미 정부와 전문가들은 가다피 정권의 붕괴는 장기간의 독재체제에 염증을 느낀 국내 민주화 봉기 때문이지, 핵 폐기와 연관이 없다고 지적합니다.

장기간에 걸친 아랍 독재정권들의 폭정과 부패, 극심한 빈곤과 실업율, 빈부 격차 문제가 폭발해 ‘아랍의 봄’으로 불리는 아랍 민주화 혁명으로 번진 게 가다피 정권 몰락의 근본 원인이란 겁니다.

아울러, 당시 유엔 안보리와 북대서양조약기구, 나토 군이 개입해 리비아에 비행금지구역을 선포하고 정부군 공습에 나선 것은 가다피 정권이 시민들을 무력으로 학살하는 것을 막기 위한 차원에서 이뤄졌다는 지적입니다.

마크 그랜트 당시 유엔주재 영국대사는 리비아 공습 관련 안보리 회의에서, 자국민에게 반인도적 범죄를 저지르는 정권을 막기 위해 유엔이 결의한 국민보호책임(Responsibility to Protect)에 따라 국제사회의 개입이 필요하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그랜트 대사] “The central purpose of this resolution is clear. To end violence, to protect civilians, and to allow the people of Libya to determine their own future free from the tyranny of the Gaddafi regime.”

폭력을 종식하고, 민간인들을 보호하며, 리비아 국민이 가디피 정권의 폭정으로부터 자유롭게 그들의 미래를 스스로 결정하도록 하기 위해 국제사회의 개입이 필요하다는 겁니다.

마크 토너 당시 국무부 대변인은 정례브리핑에서, 리비아 사태는 핵무기 포기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토너 대변인] “where they’re at today has absolutely no connection with them renouncing their nuclear program and nuclear weapons.”

토너 대변인은 국민에게 쉽게 총부리를 돌린 리비아 정부가 대량살상무기를 포기한 건 그나마 다행이라며, 리비아 공습은 인도주의 재앙을 막기 위한 국제사회의 정당한 대응이라고 강조했습니다.

그러나 북한 정부는 이런 조치에 대해 강하게 반발했습니다.

북한 외무성 대변인은 당시 나토군의 리비아 공습이 시작되자 “리비아 핵 포기 방식이란 바로 안전담보와 관계 개선이란 사탕발림으로 상대를 얼려넘겨 무장해제를 성사시킨 다음 군사적으로 덮치는 침략 방식이란 것이 드러났다”고 주장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볼튼 보좌관의 리비아식 모델 언급을 큰 실책이라고 지적한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인 것으로 풀이됩니다.

즉 ‘포괄적 합의, 단계적 보상’이란 리비아 비핵화 모델 자체보다 북한이 이를 정권 붕괴와 연계해 느끼는 불안감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은 게 실책이란 지적입니다.

VOA 뉴스 김영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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