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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북 협상 열기 식은 미 의회…‘대화·압박 병행’ 속 관망 추세


미국 워싱턴의 연방 의회.
미국 워싱턴의 연방 의회.

2차 미-북 정상회담 이후 북한과의 비핵화 협상에 대한 미 정치권의 열기가 점점 식고 있는 징후가 나타나고 있습니다. 의회는 트럼프 행정부에 북한과 대화의 끈은 놓지 않되 압박을 병행할 것을 촉구하면서도, 당분간 협상 관망 자세를 유지할 것으로 전망됩니다. 이조은 기자가 보도합니다.

하노이 회담 이후 미 의원들의 북한 관련 발언은 눈에 띄게 줄었습니다.

한 때 북한 관련 사안이 떠오를 때마다 가장 먼저 성명과 트위터 발언을 내놨던 상원 외교위 동아태소위 민주당 간사인 에드워드 마키 의원의 북한 관련 발언 마저도 크게 줄었습니다.

하노이 회담 전까지만 해도 많은 의원들이 북한에 관한 각종 발언을 내놨던 것과는 대조적입니다.

이런 현상은 최근 로버트 뮬러 특검의 ‘러시아 스캔들’에 관심이 집중됐던 국내 정치상황과도 무관하지 않습니다.

또 최근 상하원 외교,군사위가 집중적으로 주최하고 있는 청문회 주제에서도 드러나듯이, 의회가 내년 대선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대외 현안인 중국과의 무역 분쟁, 이란과의 긴장 고조, 베네수엘라 사태를 북한 문제보다 우선순위에 놓았기 때문이라는 해석도 가능합니다.

하노이 회담 이후 미국의 대북 정책 점검을 목적으로 하는 의회 청문회는 지난 3월 말 상하원에서 각각 열린 이후 약 두 달간 한 번도 열리지 않았습니다.

지난 7일 북한이 단거리 미사일 도발을 감행했을 때도 일부 의원들이 트위터를 통해 비난 발언을 내놓긴 했지만, 과거 북한의 미사일 도발 시 의원들이 일제히 비난을 쏟아냈던 것에 비하면 눈에 띄게 줄었습니다.

교착 상태가 지속되고 있는 북한과의 비핵화 협상 자체에 대한 의회 내 피로감이 쌓인 것도 한 요인입니다.

지난해 6월 싱가포르 회담 이후 약 1년이 지난 지금까지 이렇다 할 진전이 없는 데다, 비핵화에 대한 미-북 양측의 입장이 간극을 좁히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상원 외교위 소속 크리스 쿤스 민주당 의원은 지난 23일 VOA에, 협상 철수 가능성까지 거론하며 장기화 조짐을 보이는 협상 교착 상태에 대한 인내가 한계에 도달하고 있다는 입장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녹취:쿤스 의원] “In the month sense, all we've seen is missile test by North Korea. And it's gotten to the point where President Trump needs to call Chairman Kim's bluff, and say, put up or shut up...”

“최근 몇 달간 목격한 건 북한의 미사일 시험 뿐”이라며 “트럼프 대통령은 김정은 위원장에게 ‘북한이 비핵화 행동을 보이지 않는다면 미국은 (협상의) 모든 것을 철수하고, 제재를 통한 압박 캠페인을 다시 전면 가동할 것’이라고 경고해야 한다”는 겁니다.

다만 최근 트럼프 대통령이 존 볼튼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의 평가와 달리 북한의 미사일 도발 의미를 축소하는 발언을 하자, 일부 의원들은 트위터와 주요 언론 방송 출연을 통해 이에 대해 논평하며 미 정치권에서 다시 북한 문제를 주목하는 듯한 모습이 관측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의원들의 발언은 북한을 비롯한 대외 정책에서 트럼프 대통령과 볼튼 보좌관 간 ‘입장 차이’에 주목하는 경향을 보였을 뿐, 비핵화 협상 자체에 대한 논의에는 미치지 못했습니다.

게다가 북한이 내년 대선 민주당 유력 대선 주자인 조 바이든 전 부통령을 “멍청이”이라고 비난 한 것을 계기로, 트럼프 대통령이 트위터에서 북한에 동조하는 듯한 발언을 하자 민주당 의원들의 역풍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미 정치권에서 북한 문제는 비핵화 협상 자체보다는 트럼프 대통령과 민주당 간 정치공방 소재로서 거론되는 상황이 한 동안 지속될 가능성이 큽니다.

북한이 미 국내 정치상황을 이용하고 있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녹취: 가드너 의원] “They understand the US elections cycle. And I think that's exactly what they're doing, which is they're waiting out this President…”

상원 외교위 동아태소위원장인 코리 가드너 공화당 의원은 최근 VOA에 “북한은 미국의 대선 주기를 이해하고,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트럼프 대통령이 입장을 굽힐 때까지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하노이 회담 이후 뚜렷해진 의회의 초당적 대북 기조는 ‘대화와 압박 병행’입니다.

밥 메넨데즈 상원 외교위 민주당 간사는 하노이 회담 직후 VOA에 “싱가포르 회담 이후부터 미국의 제재 정책이 무너지고 있다는 점이 가장 우려된다”며 “이제 미국이 해야 할 일은 중국과 러시아, 그리고 한국 등 여러 나라들에 의해 느슨해지고 있는 국제사회의 대북 압박 캠페인을 복원시키는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녹취:메넨데즈 의원] “I am seriously concerned that the President has not only given international recognition to Kim Jong Un from international pariah to someone who's accepted on the global stage, but also the consequences of sanctions at the end of the day…”

의원들은 트럼프 대통령의 대북 관여를 초당적으로 환영하면서도, 관여 방식에선 민주, 공화당 간 미묘한 차이를 보이고 있습니다.

주로 민주당 의원들은 미-북 정상급 외교, 즉 ‘톱다운’ 방식은 효과적이지 않다는 입장입니다.

상원 정보위 민주당 간사인 마크 워너 의원은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 독재자와의 유대관계를 매우 과시해왔는데, 현재로선 그로 인한 이점이 없다”고 지적했습니다.

[녹취:워너 의원] “President Trump much vaunted relationship with the North Korean dictator. It isn't exactly paying benefits at this point...”

공화당 의원들은 모든 옵션을 테이블 위에 놓고 강경 입장을 유지해야 한다는 데 무게를 두고 있습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측근인 린지 그레이엄 공화당 상원의원은 최근 북한의 첫 번째 단거리 미사일 도발 직후 VOA에 “미국은 한치도 양보하지 않고, 꿈쩍도 해선 안 된다”며 “검증가능하고 불가역적인 비핵화라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최선의 방법은 평화 과정을 통한 것이지만, 모든 옵션을 테이블 위에 놓아야 한다”고 밝혔습니다.

[녹취: 그레이엄 의원] “It is disturbing. It seems to be a going in the wrong direction. It seems to be inconsistent with the spirit of the negotiations for the missile testing…”

의원들은 대체로 단계적 비핵화 해법에 열려 있는 입장을 보이고 있는데, 북한이 주장하는 단계적 방식과는 차이가 있습니다.

북한이 의미 있는 비핵화 조치를 취한 뒤에야 일부 제재 완화와 같은 상응 조치가 가능하다는 ‘선 비핵화, 후 보상’ 방식에 초당적 공감대가 형성돼 있는 겁니다.

최근 한국을 방문해 정부 당국자들과 북한 문제 등을 논의했던 쿤스 의원은 지난 23일 VOA에 “단계적 해법이 무엇이냐에 달려있다”며 “제재 완화 등 미국이 어떤 행동을 취하기 위해서는 북한이 중대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입장”이라고 밝혔습니다.

[녹취: 쿤스 의원] “But there has been no substantial and reversible steps in denuclearization. It's time for North Korea to take a significant step in order for there to be any action by the Americans…”

의회가 북한 문제에 소극적 자세를 취하고 있는 것만은 아닙니다.

최근 하원 세출위는 북한에 불법 억류된 미국인 관련 비용을 미 정부가 지불하지 못하도록 하는 조치를 2020회계연도 국무 지출예산안에 포함시켰습니다.

지난 2017년 미국인 대학생 오토 웜비어 석방 당시 북한 측이 요구한 의료비 청구서에 미국 측이 서명한 것으로 알려지며, 트럼프 행정부의 소위 ‘웜비어 몸값’ 지불 가능성을 차단하는 조치를 추진하고 있는 겁니다.

최근 상원 군사위는 주한미군을 현 수준인 2만8천500명 이하로 감축하지 못하도록 하는 조항을 2020회계연도 국방수권법안에 포함시키기도 했습니다.

사실상 주한미군 감축 가능성을 차단하는 적극적 조치입니다.

하노이 회담 전부터 예고됐던 대북제재 강화 조치도 추진되고 있습니다.

하노이 회담 결렬 직후 5일만에 상원 은행위에서 대북 금융거래 차단에 초점을 맞춘 초당적 법안인 ‘오토 웜비어 대북 은행업무 제한’ 법안이 상정됐고, 하원 은행위에서도 유사 법안이 곧 상정될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VOA 뉴스 이조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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