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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1988년 외교문서 공개… KAL기 폭파범 압송·88올림픽 분산개최 제안 비화


한국외교부 산하 외교사료관. 공개된 외교문서의 원문은 외교사료관 내 『외교문서열람실』에서 누구나 열람이 가능하다.

1987년 대한항공 858기 폭파 사건의 범인을 한국으로 데려오는 과정이 담긴 한국 정부의 외교문서가 공개됐습니다. 1988년 서울올림픽 당시 제기된 남북 분산개최 제안은 사회주의 국가들에게 참가 명분을 주기 위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서울에서 이연철 특파원이 보도합니다.

한국 정부가 1987년 대한항공 858기 폭파 사건을 정략적으로 이용하려 했던 정황이 다시 한 번 확인됐습니다.

한국 외교부는 최근 이런 내용이 포함된 약 25만 페이지에 달하는 1천600여 건의 외교문서를 원문해제와 함께 공개했습니다.

한국 외교부는 특히 대통령선거 전날까지 범인을 한국으로 데려오기 위해 총력을 기울였습니다.

당시 범인이 붙잡혀있던 바레인에 특사로 파견된 박수길 외교부 차관보는 바레인 측과의 면담 뒤에 “늦어도 15일까지 도착하기 위해서는 12일까지는 바레인 측으로부터 인도 통보를 받아야 한다”고 보고했습니다.

박 차관보는 막판에 인도가 늦어지자 바레인 측을 압박하고 사우디아라비아에 도움을 요청하는 방안도 검토했습니다.

KAL기 폭파범 김현희 씨가 1987년 12월 15일 김포공항으로 압송된 후 비행기에서 내리고 있다.
KAL기 폭파범 김현희 씨가 1987년 12월 15일 김포공항으로 압송된 후 비행기에서 내리고 있다.

결국 범인은 대통령선거 하루 전날인 1987년 12월15일 김포공항을 통해 한국으로 송환됐습니다.

박 차관보의 전문에는 또 범인의 인도가 지연되는데 미국이 개입했을 수도 있다고 의심하는 내용도 담겼습니다. 그러면서, 범인 인도 문제와 관련해 미국 측에 너무 소상한 정보를 주지 않는 것이 좋을 것으로 생각된다고 보고했습니다.

한국 정부는 이듬해 1월 조사 결과가 발표되자 국제사회의 대북 규탄 여론을 형성하기 위해 전방위적인 외교전을 펼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또한, 이번에 공개된 외교문서에는 88서울올림픽과 관련된 비화도 담겼습니다.

당시 국제올림픽위원회(IOC)의 후안 안토니오 사마란치 위원장은 북한이 수용하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하면서도, 사회주의 국가들에게 서울올림픽 참가 명분을 주기 위해 남북 분산 개최를 제안했던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1984년 9월 한국을 방문한 사마란치 위원장은 한국이 분산 개최에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자, 북한이 결코 이 제안을 수락하지 못할 것이라며, 한국은 제안을 적극적으로 검토해 볼 용의가 있다는 정도로 답하면 된다고 조언했습니다.

그러면서, 사회주의 국가들이 서울올림픽에 참가하고 싶지만 북한이 장애물이 되고 있다며, 북한이 분산 개최를 수락하지 않을 경우 사회주의 국가들이 올림픽에 참가할 수 있는 명분이 생길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지난 1988년 서울올림픽 개막식에서 성화가 불타오르고 있다.
지난 1988년 서울올림픽 개막식에서 성화가 불타오르고 있다.

​결국 사마란치 위원장의 예측대로 북한은 중재안을 받아들이지 않았고, 서울올림픽은 소련을 포함한 160개 국가의 참여로 올림픽 사상 최대 규모로 진행됐습니다.

당시 노태우 한국 대통령은 올림픽 폐막 성명에서 그같은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녹취:노태우 대통령] “서울올림픽은 12년 만에 동서의 세계가 함께 모인 사상 최대의 대회였을 뿐 아니라 어느 선진국에 이어온 역대 어느 대회보다 가장 훌륭한 대회로 기록될 것이라고 확신을 합니다.”

중국이 서울올림픽 당시 선수단을 철도를 통해 북한과 판문점을 거쳐 서울로 보내려했다는 사실도 이번에 공개됐습니다.

파키스탄주재 한국대사 보고에 따르면, 중국은 철도편으로 북한과 판문점을 경유해 올림픽 선수단을 서울로 보내려 했지만 북한의 단호한 거부로 결국 실현되지 못했습니다.

또한, 중국 지도자 덩샤오핑은 1988년 6월에 북한에 직접 메시지를 보내 88서울올림픽의 평화적 개최에 동조해달라고 부탁한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한국 정부는 올림픽 취지에 대한 전반적 이해 부족으로 패럴림픽 개최를 호주에 넘기려다가 뒤늦게 바로잡았던 사실도 밝혀졌습니다.

당시 한국 정부는 시설 미비와 국내 여론을 이유로 개최권을 호주에 넘기려다가 국제조정위원회 공식 통보 하루 전에야 패럴림픽을 올림픽과 함께 개최하기로 최종 결정했습니다.

한편, 북한은 서울올림픽의 한국 개최를 저지하고 남북 공동개최를 시도하기 위해 다각적인 움직임을 보였습니다.

1985년 6월 북한은 황장엽 당시 노동당 중앙위원회 비서 명의로 세계 각국 공산당 중앙위에 올림픽 남북 공동개최 지지를 요청하는 서한을 보냈습니다.

그러면서, 서울과 평양에서 경기를 똑같이 나눠 개최하고 남북 단일팀을 구성해야 한다며, 한국이 이런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사회주의 국가들은 LA올림픽 때와 같이 집단적으로 강력 대처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북한은 1985년 7월30일에도 정준기 부총리 명의로 발표한 담화를 통해 서울올림픽 남북 공동개최를 주장했습니다.

서울에서 VOA뉴스 이연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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