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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 리포트] 전문가들 “김정은의 신비화 삼가 발언, 달라진 주민 정보 의식 반영한 것”


지난해 9월 북한 정권 수립 기념일인 9·9절을 하루 앞두고 열린 공연 행사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얼굴이 대형 스크린에 보인다.
지난해 9월 북한 정권 수립 기념일인 9·9절을 하루 앞두고 열린 공연 행사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얼굴이 대형 스크린에 보인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최근 수령을 신비화하지 말라는 발언을 한 것으로 알려져 관심을 모으고 있습니다. 북한 주민들의 달라진 정보 의식을 반영한 것이라는 지적과, 인간적인 영도자 이미지를 강조하려는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습니다. 서울에서 김영권 특파원이 보도합니다.

국제사회에서 북한은 수령을 우상화하고 신격화하는 세습 독재정권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유엔 북한인권 조사위원회(COI)는 지난 2014년 최종보고서에서 북한은 “주민들에게 유년기부터 수령에 대한 공식적인 개인숭배와 절대적 복종을 하도록 만드는 사상교양체계를 운영하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김정은 위원장이 그런 수령 신격화를 삼가야 한다는 발언을 해 관심을 끌고 있습니다.

북한 관영 ‘조선중앙통신’에 따르면 김 위원장은 지난주 제2차 당 초급선전일꾼대회에 보낸 서한에서 “수령의 혁명 활동과 풍모를 신비화하면 진실을 가리우게 된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수령은 인민과 동떨어진 존재가 아니라 인민의 행복을 위해 헌신하는 영도자라고 강조했습니다.

한국에서는 이런 발언을 놓고 북한 선전선동 방식의 긍정적 변화라거나, 달라진 북한 인민들의 의식을 반영한 북한 정권의 고육책이 묻어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습니다.

경남대학교 극동연구소의 임을출 교수는 수령이 멀리 있는 신적 존재가 아닌 인민의 삶을 위해 부단히 노력하고 있음을 강조하는 선전선동 방식의 변화로 볼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임을출 교수] “김일성과 김정일 시대의 수령은 완전히 신적인 존재이니까 주민생활이 어떻든, 경제생활이 어떻게 되든 별로 신경을 안 쓴다는 평가가 주민들 사이에 있거든요. 그런 부분들을 불식시키기 위해 수령도 여러분과 함께 있고 경제와 주민 생활 향상을 위해 노력하는 수령! 자신도 그렇게 하고 있는 것을 강조하기 위한 선전선동의 변화라고 볼 수 있는 거죠.”

김 위원장은 2017년 신년사에서도 “능력이 따라서지 못하는 안타까움과 자책 속에 지난 한 해를 보냈다”고 말해 기존의 완벽한 수령 이미지와는 모습을 보였었습니다.

이런 발언이 나온 배경에는 달라진 북한 주민들의 정보·의식 수준이 반영됐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한국 국가정보원 북한실장을 지낸 김정봉 유원대 석좌교수입니다.

[녹취: 김정봉 교수] “전반적으로 우상화를 더이상 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정보통제가 안 되니까. 장마당, 핸드폰이 6백만 대가 되는 등 정보통제가 잘 안 되기 때문에 더이상 우민화, 우상화 정책이 통하지 않는다. 그래서 이제 할 수 없이 자기도 보통사람과 같다. 그 대신 내가 너희들을 진정으로 사랑하고 이끌어가는 인민적 지도자란 것을 부각시키려는 것인데 이게 큰 추세에서 온 것이지 갑자기 딱 온 것은 아니란 얘깁니다.”

북한 주민들은 김정은 정권이 출범하면서 인민의 허리띠를 조이지 않게 하겠다고 한 약속이 지켜지지 않고 있고, 하노이 미-북 정상회담의 대대적인 선전에도 불구하고 성과가 없었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김정은 위원장도 솔직해질 수밖에 없다는 겁니다.

이화여대 대학원 북한학과의 김석향 교수는 디지털 세대인 김정은 위원장의 의식도 변화에 반영된 것으로 풀이했습니다.

[녹취: 김석향 교수] “과거의 방식으로는 안 되는 거죠. 어쩔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는 겁니다. 디지털 기기를 갖고 많이 놀아봤던 이 젊은 지도자는 아는 거죠. 나이 든 70~80대의 보좌진보다 훨씬 더 이런 디지털 기기를 활용해 봐서 자기도 아는데 이것을 아무리 막으려 해도 못 막는다는 속성을 이해하는 겁니다. 지금의 젊은 세대가 디지털의 속성을 훨씬 잘 이해하는 것처럼.”

김 교수는 그러나 이런 시도가 진정성 있는 선의의 변화라기보다 주민들의 눈과 귀를 더 이상 막을 수 없는 현실 인식에서 나온 고육책으로 풀이했습니다.

국책연구기관인 통일연구원의 박형중 선임연구위원은 수령을 너무 과장해 숭배하도록 했던 거품을 현실에 맞게 걷어내는 과정으로 진단했습니다.

[녹취: 박형중 위원] “더 이상 대중에게 통하지 않는 시대가 된 것이고 수령 형상을 좀 더 현실적으로 만드는 것인데, 어떻게 보면 거품을 제거해야 설득력도 높아지니까 너무 황당하면 사람들이 안 믿으니까. 하지만 수령 형상이 현대화된다고 해도 기본적인 메시지, 수령을 절대화하고 절대복종하고 수령이 결정하는 것은 모두 옳고 수령이 하라는 대로하면 승리한다는 식의 핵심 메시지는 변할 것 같지 않아요.”

실제로 북한의 주요 매체들과 직장 단위와 인민반, 학교에서는 모두 김 씨 일가에 대한 위대성 찬양과 인민교양사상 교육을 지속적으로 강조하고 있습니다.

북한에서 오랫동안 인도적 지원 활동을 하는 중국 내 복수의 소식통은 최근 ‘VOA’에 지난해부터 직장 단위로 사상교육 시간을 크게 늘리고 시도때도 없이 외우는 것을 강조해 인민들의 불만이 많다고 말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인간적으로 다가서려는 김 위원장의 시도는 주민들에게 강압적인 관리들과는 다른 신선한 인상도 줄 수 있다고 김석향 교수는 지적합니다.

[녹취: 김석향 교수] “학교 교수나 간부들이 하는 얘기는 정말 고리타분한 얘기만 하고 있는데, 그 와중에 원수님은 가끔가다 그렇게 현실적인 얘기를 하니까 풍모가 돋보일 수 있죠. 북한 주민들이 훈련돼온 방식이 있잖아요. 또 당연히 무오류의 수령님으로 칭찬을 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저런 인간적인 풍모를 보여주는 거예요. 역시 희망을 걸어볼 만 해 조금 기다려볼까 하는 생각이 들 수 있죠.”

일각에서는 교과서에서도 김정은 정권 출범 초기까지 유지됐던 우상화 내용이 줄고 실용적으로 지도자의 능력을 강조하는 내용이 느는 추세라고 지적합니다.

임을출 교수입니다.

[녹취: 임을출 교수] “과학교육, 실용교육이 강조되다 보니까 수령을 자꾸 우상화하는 내용과 충돌하는 부분들이 나타나거든요. 그러다 보니까 북한도 최소한의 우상화는 유지하면서도 점점 실용을 강조하는 과학기술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사상교육이 바뀌고 있죠.”

하지만 기존 김 씨 일가에 대한 숭배 교양이 남아있는 한 수령 신격화 사업이 없어지지는 않을 것이란 전망도 나옵니다.

태영호 전 북한주재 영국공사는 10일 자신의 인터넷 블로그에 김 위원장의 서한은 수령의 신비화에 반대하면서도 선전선동 교양의 핵심은 김 씨 일가에 대한 위대성 교양임을 강조하는 모순된 대목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태 전 공사는 ‘위대성 교양’은 결국 수령을 신비화하라는 것이라며, 이런 모순된 지시가 선전선동 분야 일군들에게 혼란을 줄 것으로 전망했습니다.

그러면서 수령을 신비화하지 말라는 것은 긍정적이지만, 김 씨 일가에 대한 위대성 교양이 당의 기본과업으로 있는 한 김 씨 일가에 대한 신격화와 우상화 사업은 없어지지 않을 것으로 전망했습니다.

서울에서 VOA 뉴스 김영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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