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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석구석 미국 이야기] 인종차별의 역사를 간직한 ‘그린북’의 장소들...여성들만을 위한 업무 공간


지난달 1월 미국 뉴멕시코주 리오 랜초에서 남성이 1954년 집필된 "그린북"을 읽고 있다.

미국 곳곳의 다양한 모습과 진솔한 미국인의 이야기를 전해드리는 구석구석 미국 이야기입니다. 세계 영화인의 축제, 제91회 아카데미 시상식이 지난달 말 열렸는데요. 최고상이라고 할 수 있는 작품상은 영화 '그린북'에 돌아갔습니다. 1960년대 초 미국을 배경으로 한 이 영화는 백인 저소득층 남성과 흑인 천재 피아니스트의 인종을 뛰어넘는 우정을 그린 작품인데요. 영화로서 재미와 감동은 물론, 과거 미국 사회에 존재했던 흑백 인종차별을 보여줬다는 점에서 좋은 반응을 얻었습니다. 미국의 역사를 담고 있는 ‘그린북’, 과연 어떤 의미가 있는 걸까요?

[구석구석 미국 이야기 오디오] 인종차별의 역사를 간직한 ‘그린북’의 장소들...여성들만을 위한 업무 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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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이야기, 과거 미국의 인종차별 역사를 간직한 ‘그린북’의 장소들”

영화 그린북은 1960년대 미국 사회상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은 풍요로움이 넘쳤습니다. 행복한 가정, 여유로운 경제, 거기다 큰 자가용 차량이 유행하면서 여행을 떠나는 사람들이 많아졌는데요. 하지만 유색인종을 차별하던 당시 법은 흑인들의 여행을 어렵게 했습니다. 흑인들이 운전해 다니는 것은 위험한 일이었고, 대부분의 호텔과 식당들은 흑인의 출입을 금지했었습니다.

그린북은 뉴욕에서 집배원으로 근무하던 흑인 직원 빅터 그린이 1936년부터 30년 동안 출간한 책자인데요. 남부 지역을 중심으로 흑인들이 갈 수 있는 호텔과 식당, 이발소 등을 소개한 책자였습니다. 그린북만 있으면 흑인들은 더 이상 자신들을 냉대하는 업소를 거치지 않고, 안전하게 다닐 수 있었죠.

미 남부 테네시주 내슈빌에는 그린북에 수록됐던 장소가 수십 곳에 이릅니다. 지역 역사학자들은 ‘테네시 그린북’이라는 이름으로 테네시주 내 그린북에 소개됐던 곳들을 기록으로 남기는 작업을 했는데요. 역사학자 티파니 모먼 씨도 그 중 한 명입니다.

[녹취: 티파니 모먼] “국내 여행을 하면서 안내 책자를 가지고 다녀야 했다고 생각해보세요. 흑인들을 받아주는 곳에만 가야 하고, 만약 그린북에 소개되지 않은 곳에 가게 된다면 모멸감을 느끼는 경우도 있었겠죠.”

그린북 내슈빌 지역에 소개됐던 곳들은 ‘제퍼슨 도로’라는 곳을 중심으로 분포돼 있었는데요. 지금도 이곳은 흑인 사회의 중심지로 남아있습니다.

하지만 1957년에 고속도로가 이 지역을 관통하면서 그린북에 소개됐던 많은 사업체가 사라졌다는데요. 당시 철거되지 않았던 곳들도 이후 시가 추진한 고급주택화 정책으로 인해 고급 주택지로 바뀌었다고 합니다.

그런가 하면 과거의 장소는 그대로지만, 새로운 업체로 탈바꿈한 경우도 있는데요. 과거 그린북에 실렸던 힌 모텔은 현재 손톱 손질을 하는 가게로 바뀌기도 했습니다.

역사학자 지나 캐넌 씨는 미 남부인 내슈빌에 그린북의 장소들이 많긴 하지만, 당시 흑인들은 미국 전역에서 차별을 받았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지나 캐넌] “보통 흑백 인종차별이라고 하면 미국 남부 지역에 국한된 문제로만 생각하지만, 사실은 전국적인 사안이었습니다. 이런 역사를 인지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더 나은 미래를 위해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테네시 그린북 학자들은 현재 테네시주 내 그린북 장소 10곳 가운데 8곳은 자취를 감췄다고 밝혔습니다. 따라서 역사학자 모먼 씨는 과거 그린북에 소개됐던 곳들을 기록으로 남기는 것은 이들 역사적인 장소를 보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보고 있었습니다.

[녹취: 티파니 모먼] “과거 그린북에 소개됐던 장소 가운데 지금도 남아있는 흑인 사업체들은 과거 인종차별 시대의 역사를 간직하고 있습니다. 이들 업체는 어두웠던 시대 속에서도 살아남았고 지금도 명맥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이들 업체를 잘 보존하는 것이야말로 과거의 역사를 잊지 않는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현재 미국은 과거 그린북 시대의 인종차별은 찾아볼 수 없습니다. 바락 오바마 전 대통령은 흑인으로서 미국 대통령 자리에까지 올랐으니까요. 하지만 여전히 미국 사회에는 보이지 않는 인종 간의 갈등이 있는 게 사실인데요. 역사학자들은 그런 의미에서 그린북의 역사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여성들이 함께 모여 일하는 일터인 ‘리비터(The Riveter)’의 모습. (제공: The Riveter)
여성들이 함께 모여 일하는 일터인 ‘리비터(The Riveter)’의 모습. (제공: The Riveter)

“두 번째 이야기, 여성들을 위한 업무공간, ‘리비터’”

남성이 주를 이루는 과학, 기술 분야에서 일하는 여성들 가운데는 근무환경에 불만을 갖는 경우가 있습니다. 남성 중심의 환경이 일을 하는 데 있어 불편함을 주기 때문인데요. 이런 여성들을 위해 아주 특별한 근무 공간이 운영되고 있습니다.

너른 사무 공간, 바쁘게 움직이는 사람들. 언뜻 보기엔 일반 직장과 다를 게 없어 보이지만, 이곳은 여성들이 함께 모여 일하는 일터인 ‘리비터(The Riveter)’ 입니다.

[녹취: 케리 머피] “여성들에겐 그저 물리적인 공간만 필요한 게 아닙니다. 서로 돕고 협력할 수 있는 더 큰 개념의 공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됐죠. 그래서 생각해 낸 공간이 바로 리비터 입니다.”

리비터의 케리 머피 공동설립자는 시애틀에서 이런 새로운 개념의 근무 공간을 탄생시켰습니다. 리비터에선 여성이 운영하는 기업이나, 일반 개인도 공간을 빌려 쓸 수 있는데요. 너른 사무실을 대여할 수도 있고, 책상 하나만 빌리는 것도 가능하다고 합니다. 스테파니 지노스 씨도 최근에 리비터에 가입했다고 합니다.

[녹취: 스테파니 지노스] “저는 얼마 전 ‘머니뮤즈’라는 사업체를 시작했습니다. 여성들을 대상으로 금융에 대해 교육하고 자산 관리를 돕는 회사에요. 전 사업을 시작하면서 바로 이곳 리비터의 공간을 대여했습니다.”

스테파니 씨는 원래 남성이 주를 이루는 분야에서 일하다 독립하면서 이렇게 여성들을 위한 업무 공간을 선택했다고 했습니다.

[녹취: 스테파니 지노스] “저는 우주산업 분야에서 일했었습니다. 대부분 동료가 남성이었고요. 사무실에서 여자는 항상 저 혼자였어요. 전 이런 근무 환경에서 벗어나고 싶었습니다. 똑똑하고 강인한 여성들에 둘러싸여 일해보고 싶었죠. 어떤 느낌일지 궁금했어요.”

이런 호기심으로 시작한 회원은 지노스 씨뿐 만이 아닙니다.

국제 보건기구를 위해 그래픽 디자인을 하는 여성부터, 의상 대여 사업을 하는 여성까지, 다양한 분야에 종사하는 여성들이 리비터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국제 업무공간 협회’의 제이미 루소 씨는 여성들을 위한 이런 공간은 자연스러운 변화라고 지적했습니다.

[녹취: 제이미 루소] “업무 공간의 변화와 시장의 발전에 대해 연구하다 보면, 사람들이 점점 자신들의 필요에 딱 맞는 공간을 원한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그 좋은 예가 이렇게 여성들의 필요를 충족시키는 여성만의 업무 공간이라고 할 수 있어요.”

스테파니 지노스 씨는 여성들이 연대를 강화하고 힘을 결속함으로써 미투(MeToo) 운동과 같은 세계적인 사회 운동을 이끌어 갈 수 있다고 했습니다.

[녹취: 스테파니 지노스] “사회 많은 분야에서 여성들을 대상으로 한 성적 괴롭힘이나 희롱이 자행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희생자인 여성들이 주위의 지지나 도움을 얻지 못하는 경우도 많죠. 하지만 이렇게 여성들이 함께 모여 일함으로써 서로에게 힘을 실어주고 자신들의 목소리도 더 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런 여성들만의 공간이 오히려 남성에 대한 역차별이 아니냐는 비판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는데요. 리비터 측은 여성들을 위해 업무 공간을 대여하지만, 남성들도 환영한다며 현재 리비터 회원의 약 ¼은 남성이라고 설명했습니다.

네, '구석구석 미국 이야기' 다음 주에는 미국의 또 다른 곳에 숨어 있는 이야기와 함께 다시 찾아오겠습니다. 함께 해주신 여러분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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