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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따라잡기] 미국-이란 관계


미국의 성조기와 이란 국기. (그래픽)

뉴스의 배경과 관련 용어를 설명해드리는 ‘뉴스 따라잡기 시간’입니다. 지난 2월 11일, 이란 이슬람 혁명 40주년을 맞아 이란 전역에서 대대적인 기념행사가 벌어졌습니다. 이날 하산 로하니 이란 대통령은 대이란 제재를 부활한 미국 정부를 강하게 비난했습니다. 반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이날 인터넷 트위터에 이란 정권이 40년간 실패만 양산했다고 적었는데요. 뉴스 따라잡기 오늘 이 시간에는 40년 넘게 대립하고 있는 ‘미국과 이란 관계’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이슬람 혁명 전 미국과 이란 관계”

이란은 1979년 이슬람 혁명이 나기 전에 중동에서 미국의 최대 동맹국이었습니다. 이란이 미국의 동맹국이 되는 데는 미국의 적극적인 개입이 있었습니다.

1951년에 선출된 모함하드 모사데크 이란 총리가 석유 산업을 국유화하자 1953년 미국과 영국은 왕정 복원 쿠데타를 지원했습니다. 이 쿠데타를 통해 팔레비 왕조의 모하마드 팔레비가 국왕 자리에 복귀했고, 그는 강력한 친미 정책을 폈습니다.

팔레비 국왕은 중동과 걸프 지역의 경찰 역할을 자임하면서 미국산 무기 구매에 막대한 돈을 쓰는 등 군비확충에 노력했습니다. 그러면서 이란은 팔레비 국왕 시절 인구나 국력, 지정학적 입지에서 중동 최대 강국이자, 요충 국가 역할을 했습니다.

하지만, 이란 국민 대다수는 친미노선을 비판했고 체제 비민주성, 빈부 격차, 그리고 이슬람 전통을 무시한 서구화에 큰 불만을 가졌습니다.

“이슬람 혁명과 미국-이란 관계의 단절”

1979년 팔레비 국왕을 축출한 이슬람 혁명이 일어난 뒤 미국과 이란 관계는 파탄을 맞았습니다.

이슬람 혁명 1년 전에만 해도 팔레비 국왕이 이란 수도 테헤란을 찾은 지미 카터 미국 대통령과 건배했을 정도로 미국은 이란의 우방이었습니다. 하지만, 이슬람 혁명 뒤 미국은 이란은 적대국으로 돌아섰습니다.

이슬람 혁명이 난 그해 11월 이란 테헤란 주재 미국대사관을 대학생들이 점거했습니다. 이로 인해 대사관 직원 등 미국인 52명이 무려 444일간 인질로 억류됐습니다.

이 사건을 계기로 두 나라는 결국, 외교 관계를 끊었습니다.

“1980년대 미국과 이란 관계”

미국과 이란은 공식적으로는 외교 관계를 단절했지만, 비공식적인 접촉은 있었습니다.

80년대 중반 미국 정부는 레바논에 있는 미국인 인질들을 석방하는데, 이란의 도움을 얻으려고 비밀리에 이란에 무기를 팔았습니다. 그런데 미국은 이란에 무기를 판 돈을 니카라과 우익 반군을 지원하는 데 썼는데, 이 사건이 바로 레이건 미국 대통령을 위협한 ‘이란-콘트라 스캔들’입니다.

그런가 하면 1988년 7월 페르시아만에 있던 미국 순양함 빈센스호가 이란 여객기를 군용기로 오인해 격추했습니다. 이 사건으로 290명이 숨졌습니다.

“끝이 보이지는 않는 적대 관계”

지난 1997년 대통령에 취임한 모하마드 하타미 이란 대통령은 미국 방송과의 회견에서 미국인들과 대화할 뜻이 있다고 밝히기도 했습니다.

또 양국 관계는 2000년대 들어 9.11 테러 뒤 미국이 아프가니스탄에 있는 탈레반을 축출할 때 이란이 협력하는 등 일부 개선 조짐도 보였습니다.

하지만, 2002년 당시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이 이란을 악의 축으로 지칭함으로써 두 나라 관계는 예전으로 돌아갔습니다.

“미국-이란 관계의 새로운 변수: 이란 핵 개발”

2002년 이란 반정부 조직이 이란이 나탄즈와 아락에 핵 시설에서 핵을 개발하고 있다고 폭로했습니다.

이에 미국은 이란이 핵무기를 비밀리에 개발한다고 비난하면서 두 나라 관계는 더 악화했고, 미국은 유엔, 그리고 유럽연합(EU)과 더불어 이란에 대한 제재를 한층 강화했습니다.

이런 가운데 2005년 강경 보수파인 마무드 아마디네자드 이란 대통령이 취임한 이후 핵 문제를 둘러싼 미국과 이란 관계는 더욱 냉각됐습니다.

“오바마 미국 행정부와 대이란 관계”

2009년에 출범한 바락 오바마 미국 행정부는 대이란 관계 변화를 모색합니다. 2013년 오바마 대통령이 하산 로하니 당시 이란 대통령과 전화 통화를 하고 이란 핵 문제 해결 방안을 논의했습니다. 미국과 이란 정상이 통화한 것은 30년 만에 처음이었습니다.

이후 두 나라는 핵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양자 회담, 그리고 다른 나라들도 참여하는 회담을 진행했습니다. 결국, 2015년 들어 양국 이해관계에 따라 화해 분위기가 급물살을 타면서 마침내 이해 7월 14일 이란 핵 개발 동결을 핵심으로 하는 이란 핵 협상이 타결됐습니다.

이에 따라 미국 정부는 2016년 1월 대이란 경제제재를 일부 해제했습니다.

“대이란 제재의 전면 부활”

하지만, 2016년 대통령 선거에서 당선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오바마 행정부의 중동 정책을 완전하게 뒤집었습니다. 바로 이란과의 대결 정책으로 돌아선 것입니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2018년 5월 `이란 핵 합의`를 파기한다고 선언하고 이해 7월부터는 이란에 다시 경제 제재를 가하기 시작했습니다.

바락 오바마 전 대통령이 핵 합의를 통해 이란 제재를 완화·중단한 지 2년 7개월 만이었습니다. 여기서 더 나아가 미국 정부는 지난해 11월 5일 이란 제재를 전면적으로 복원했습니다.

미국은 최근 이란에 대한 압박 수위를 높이고 있고, 이란은 이에 정면 돌파하겠다며 맞서고 있습니다. 그래서 두 나라 관계 개선 전망은 그다지 밝지 않습니다.

하지만, 몇몇 전문가는 역내 문제와 관련된 이해관계 때문에 두 나라가 다시 접근할 여지도 있다고 지적합니다.

다시 악화한 두 나라 관계가 앞으로 어떤 식으로 전개돼 나갈지 주목됩니다.

뉴스 속 인물: 할릴자드 미국 아프간 특사

지난 1월 잘메이 할릴자드 아프가니스탄 주재 미국 특사가 카불 주재 미 대사관에서 현지 취재진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지난 1월 잘메이 할릴자드 아프가니스탄 주재 미국 특사가 카불 주재 미 대사관에서 현지 취재진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최근 뉴스에서 화제가 됐던 인물을 소개하는 ‘뉴스 속 인물’ 시간입니다. 오늘 이 시간 주인공은 잘메이 할릴자드 미국 아프간 특사입니다.

미국이 아프가니스탄 무장반군 탈레반과 진행하고 있는 평화협상에 진전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탈레반과 협상에 나선 미국 대표는 국무부 소속인 잘메이 할릴자드 아프간 특사입니다.

할릴자드 특사는 지난 1951년 아프가니스탄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래서 그는 현지 말인 파슈토어와 다리어에 능숙합니다.

할릴자드 특사는 레바논의 아메리칸대학교에서 공부했습니다. 이후 미국으로 이주해 시카고대학에서 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았고, 이후 미국 시민이 됐습니다.

아프가니스탄 문제 전문가인 할릴자드 특사는 2003년부터 2005년까지 아프간 주재 미국 대사, 2005년부터 2007년 사이에는 이라크 주재 미국 대사, 그리고 2007년부터 2009년까지는 유엔 주재 미국 대사를 지냈습니다.

할릴자드 특사는 아프가니스탄뿐 아니라, 이라크 평화 과정에도 기여했습니다. 조지 W. 부시 행정부 당시 독일 언론은 미국 정부가 할릴자드 특사를 ‘무슬림 비밀병기’로 본다고 표현하기도 했습니다.

아프간 출신인 할릴자드 특사가 과연 탈레반과의 평화협상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할 수 있을지 주목됩니다.

네. 뉴스 따라잡기, 오늘은 ‘미국과 이란 관계’, 그리고 뉴스 속 인물로는 탈레반과의 평화협상에 참여하고 있는 잘메이 할릴자드 미 아프간 특사에 대해서 알아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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