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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아메리카] 격변의 시대에 미국을 이끌어간 조지 H.W. 부시 전 대통령


조지 H.W. 부시 전 대통령이 지난 2008년 백악관 사우스론에 도착하고 있다.

미국을 건설한 위대한 미국인들을 만나보는 '인물 아메리카'. 오늘은 격변의 시대에 미국을 이끌어 간 조지 H.W. 부시 대통령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인물 아메리카 오디오] 격변의 시대에 미국을 이끌어간 조지 H.W. 부시 전 대통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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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1월 30일 94세를 일기로 타계한 조지 H.W. 부시 전 대통령은 동서 냉전 종식, 소련의 붕괴 등 격변하는 세계 속에 미국을 이끌어간 지도자였습니다. 부시 대통령은 2차 연임은 실패했지만 단임 대통령으로서는 가장 성공적인 대통령이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조지 허버트 워커 부시는 1924년 6월 12일 미국 동북부 매사추세츠주 밀턴에서 태어났습니다. 미국 정계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한 명문 집안이었습니다. 아버지 프레스콧 부시는 연방 상원의원, 자신은 41대 대통령, 그의 아들 조지 W. 부시는 43대 대통령, 작은 아들 젭 부시는 플로리다 주지사를 역임했습니다. 미국 역사에서 아버지와 아들이 대통령을 지낸 예는 부시 부자가 두 번째입니다.

지난 1947년 예일대학교의 야구복을 입고 포즈를 취하고 있는 조지 H.W. 부시 전 대통령.
지난 1947년 예일대학교의 야구복을 입고 포즈를 취하고 있는 조지 H.W. 부시 전 대통령.

​​H.W. 부시는 대학 예비 학교인 명문 필립스 앤도버 아카데미를 다녔습니다. 부시는 18세 되던 해에 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에 가는 대신 군에 자원 입대했습니다. 일본의 진주만 기습 후 미국이 2차 대전에 뛰어든 마당에 대학보다는 나라를 위해 군 복무가 더 시급하다는 생각에서였습니다. 입대일은 바로 그의 생일날이기도 했습니다.

부시는 해군에 들어가 조종사 훈련을 받고 19살 때 미 해군 최연소 조종사가 됐습니다. 태평양 전선에 배치된 부시는 일본군 시설을 공격하는 임무를 수행했습니다. 1944년 9월, 부시 해군 중위는 다른 동료들과 함께 일본군 시설 공격 명령을 받고 출격했습니다. 임무 수행 중 부시의 비행기는 일본의 대공포화를 맞았습니다.

부시는 비행기에 불이 붙었는데도 목표 시설을 타격하고 바다에 추락했습니다. 4시간이나 구명대를 의지해 바다에 표류하던 부시는 다행히 미군 잠수함에 의해 목숨을 건질 수 있었습니다. 그는 이때의 공훈으로 비행십자훈장을 받았습니다.

전선에서 돌아온 부시는 1945년 1월에 바버라 피어스와 결혼했습니다. 그리고 명문 예일대학에 들어가 경제학을 전공하고 1948년 졸업했습니다. 졸업 후 부시는 텍사스에서 정유 사업을 벌여 사업가로 크게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1952년 아버지 프레스콧이 코네티컷주에서 연방 상원의원으로 당선되자 부시도 공직과 정치에 관심을 갖게 됐습니다. 부시는 1966년 텍사스에서 연방 하원의원에 출마해 당선되고, 재선에도 성공했습니다. 그러나 연방 상원의원 선거에는 두 번 도전했으나 모두 낙선했습니다.

1970년, 당시 리차드 닉슨 대통령은 비록 상원의원 선거에서 패했지만 하원의원 시절 보여준 부시의 근면성, 희생 정신에 주목하고, 그를 유엔 주재 미국 대사로 지명했습니다. 이어 중화인민공화국 미국 이익대표부 대표로 일한 부시는 중국과 국교정상화에 힘쓰면서 외교의 달인이란 평을 받았습니다. 이어 공화당전국위원회 의장, 중앙정보국(CIA) 국장 등 고위 공직을 두루 거쳤습니다.

지난 1989년 조지 H.W 부시 전 대통령이 백악관 집무실에서 연설문을 읽고 있다.
지난 1989년 조지 H.W 부시 전 대통령이 백악관 집무실에서 연설문을 읽고 있다.

1980년에는 공화당 대선 후보 경선에 나섰지만 지명 받는 데 실패했습니다. 그러나 로널드 레이건의 러닝메이트로 발탁돼 부통령이 됐습니다. 레이건의 당선으로 부통령직을 연임한 부시는 1988년에 공화당 대선 후보로 지명됐습니다. 조지 H.W. 부시는 드디어 제41대 대통령에 당선됐습니다.

부시 대통령은 1989년 1월 취임사에서 미래에 대한 희망으로 충만한 이때 미국의 국력을 ‘선을 위한 힘’으로 사용하겠다”고 선언했습니다. 이때 세계는 40여 년에 걸친 냉전이 종식되고, 공산주의 정권이 와해되며, 베를린 장벽이 붕괴하는 대변화를 겪고 있었습니다. 부시 대통령은 재임 기간, 소련의 미하일 고르바초프 대통령과 함께 40여 년에 걸친 냉전을 순조롭게 종식하고 동서화합을 추진하는데 전력을 기울였습니다.

재임 중 부시 대통령에게 가장 큰 도전은 1990년 사담 후세인 이라크 대통령의 쿠웨이트 침공과 연이은 사우디 침공 위협이었습니다. 부시 대통령은 쿠웨이트 해방을 선언하고 42만5천 명 규모의 병력을 파병했습니다. 이 작전에는 미군 외에 여러 나라에서 온 11만여 명의 연합군도 합세했습니다.

‘사막의 폭풍 작전(Operation Desert Storm)’으로 불린 이 공격의 총사령관은 노먼 슈워츠코프 대장이었습니다. 미군은 먼저 이라크 군에 빗발치듯 폭격과 미사일 공격을 퍼부었습니다. 공습에 이어 지상전이 벌어졌습니다. 결국 이라크군은 쿠웨이트에서 쫓겨났습니다.

부시 대통령은 이와 같은 군사·외교적 승리로 89%라는 사상 유례가 없는 지지도를 기록했습니다. 그러나 17개월 만에 지지율이 29%까지 곤두박질치면서 1992년 재선에는 실패했습니다. 경제침체, 도심에서의 폭동, 만성적인 재정적자 등 국내의 악재들 때문이었습니다.

부시 전 대통령은 백악관을 떠나면서 집무실 책상 위에 후임자에게 지지를 표명하는 서한을 남겨놓는 전통을 확고히 했습니다.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이 처음 시작한 전통이지만 H.W. 부시 대통령의 지지 서한은 후임자가 불과 몇 개월 전까지 자신과 치열하게 경쟁했던 반대당 후보였다는 점에서 특히 큰 의미를 띄고 있습니다.

1988년 플로리다 조지 H.W. 부시 전 미국 대통령과 바버라 여사가 플로리다주 걸프 스트림의 한 해변에서 휴가를 보내고 있다.
1988년 플로리다 조지 H.W. 부시 전 미국 대통령과 바버라 여사가 플로리다주 걸프 스트림의 한 해변에서 휴가를 보내고 있다.

부시 대통령은 1993년 텍사스주로 돌아와 조용히 노후를 보냈습니다. 그러나 7년 후인 2000년 장남인 조지 W. 부시가 대선에서 승리해 부시 가문의 백악관 입성은 계속 이어졌습니다. “나는 아마 세계에서 가장 높은 산을 올랐지만, 그것 역시 바버라의 남편이 되는 것보다는 못한 일이었다,” 이처럼 부부 금슬이 좋기로 소문난 부시 대통령은 올해 4월, 아내 바버라 여사를 잃었습니다. 92세로 사망한 바버라 여사와의 결혼생활은 73년간으로 이는 역대 미국 대통령 커플 중 가장 오래된 기록이었습니다. 부시 전 대통령은 미 역사상 가장 장수한 대통령이기도 했습니다.

H.W. 부시 대통령은 그 뒤 입원을 반복하며 치료를 받아왔습니다. 휴스턴 자택에서 타계할 당시에는 파킨슨병으로 가료를 받고 있었습니다. 부시 전 대통령의 장례식은 국장으로 치러졌습니다. 시신은 12월 3일 휴스턴의 자택을 떠나 대통령 전용기편으로 워싱턴으로 향했습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비롯한 정부 요인들은 물론, 수많은 미국인은 국회의사당에 안치된 부시 대통령을 조문하고 명복을 빌었습니다. 이어 5일, 워싱턴내셔널대성당에서 장례식이 올려졌습니다. 부시 대통령의 시신은 다시 텍사스로 돌아가 텍사스 A&M 대학에 있는 조지 부시 도서관 구내에 안장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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