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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 참전 미군 가족 60년 넘는 기다림…“옆에 묻히는 게 마지막 소원”


1951년 한국전에서 실종된 재니스 쿠란씨의 아버지 사진. <사진 제공=재니스 쿠란씨>
1951년 한국전에서 실종된 재니스 쿠란씨의 아버지 사진. <사진 제공=재니스 쿠란씨>

싱가포르 미-북 정상회담 이후 한국전 참전 미군 유해 송환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한국전에서 포로가 되거나 실종된 미군 가운데 북한 어딘가에 묻혀 있는 장병은 약 5천300명으로 추산됩니다. 60년 넘게 이들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는 가족들의 이야기를 전해드립니다. 이조은 기자입니다.

아버지에 대한 기억은 67년 전 세 살 때 느낀 어렴풋한 모습으로 남았습니다.

[녹취: 쿠란씨] “I only have, I have one picture that I know he was taking of me when we were in California…”

세 살 터울 언니와 이제 갓 서른을 넘긴 엄마에게 손을 흔들며 곧 돌아오겠다던 아버지.

1951년, 미 해군 대위로 참전해 남북한 접경 지역에서 전투를 벌이던 중 타고 있던 전투기에 불이 붙으며 실종됐습니다.

동료 조종사들이 긴급 투입됐지만 강으로 떨어져 숨진 것인지, 아니면 포로로 잡힌 것인지, ‘전투 중 실종자’ 명단에 오른 게 마지막이었습니다.

판문점을 방문한 재니스 쿠란(왼쪽)씨와 언니 캐런.
판문점을 방문한 재니스 쿠란(왼쪽)씨와 언니 캐런.

고희를 맞은 제니스 쿠란씨에게 북한이라는 곳은 늘 아버지와 겹쳐 떠오르는 곳이 됐습니다.

[녹취: 쿠란씨] “I wish I can go back in time and see his face, but I can’t.”

최근 한국을 방문해 휴전선 인근을 돌아본 것이 평생 아버지와 가장 가까워진 순간이었습니다.

친할아버지와 친할머니는 살아있다고 믿었던 아들을 기다리다 세상을 떠났습니다. 홀로 두 자매를 키우며 꿋꿋이 버틴 어머니도 결국 남편을 보지 못한 채 14년 전, 84세의 나이로 눈을 감았습니다.

아버지의 한국전 참전 직전 촬영된 재니스 쿠란씨 가족 사진.
아버지의 한국전 참전 직전 촬영된 재니스 쿠란씨 가족 사진.

살아 생전 남편 얘기를 꺼내지 않던 어머니는 불과 몇 년 전에야 그렇게 해야만 살아갈 수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했습니다.

[녹취: 쿠란씨] “She told me just few years before she died. She said it was the only way she could survive it. It was trying not to talk about it too much and think about it constantly, and I understood that. I really do. I think it’s nice when parents can keep the other parent alive for them. I think that’s great too, but it just wasn’t the case of our mom. She just wasn’t able to do it.”

아버지 유해를 찾을 수 있다는 기대를 하지 않으려 하지만 쉽지 않습니다. 아버지를 할아버지와 할머니, 그리고 어머니 곁에 모셔야 한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기 때문입니다.

[녹취: 쿠란씨] “We are trying not to get our hopes up. But, it’s kind of hard not to. The nice thing is, anybody whose remains are identified will make us happy. Of course, we would be thrilled if it would my dad because we would like for him to be buried next to my mom and his parents…”

부모님의 고향이자 가족묘가 있는 미주리 애드리안에 아버지의 묏자리를 마련해 놓은 지 오래입니다.

쿠란씨는 다른 누군가가 실종된 가족의 유해를 돌려 받았다는 소식을 들어도 굉장히 기쁠 것이라고 합니다.

가장 불편한 것은 아버지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생각해보는 것. 포로로 잡혀 러시아나 중국에서 오랫동안 불행한 삶을 살지 않으셨기를 바랄 뿐입니다. 이것이 가장 두려운 생각입니다.

[녹취:쿠란씨] “The last thing he said in his letter was that Dad was put on a truck to be taken to Pyongyang where they are going to get him better treatment or interview him, or whatever. We hate to think about what might have happened to him. And we hate to think that he might have been taken to Russia or China. We hate to think that he might have lived long time in captivity. That’s kind of our worst hear, my sister and me. Until his remains are returned, we won’t know.

북한이 돌려줄 미군 유해에 섞여 아버지가 돌아올 것이라는 기대가 조금 높아지긴 했습니다. 하지만 아버지의 흔적을 건네 받기 전까지는 너무 들뜨고 싶지 않습니다.

한반도에서 돌아오지 못한 미군을 60년 넘게 기다려온 가족은 쿠란씨 뿐만이 아닙니다. 79세의 진 와이트씨도 68년째 큰 오빠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육군이었던 오빠는 19세의 나이로 한국전에 참전해 1950년 11월 28일 전투 중 부상을 입고 실종됐습니다.

오빠가 싸웠던 전투는 규모가 꽤 컸다고 합니다. 살아 돌아온 이는 아무도 없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 때 중국에 포로로 잡혀갔던 많은 이들 가운데 오빠가 포함됐을 수도 있습니다.

웨이트씨는 자신의 일부분을 잃은 채 68년을 살아온 것처럼 느낀다고 했습니다. 가족이 사라진 건 그런 느낌이고 마지막까지 아들을 기다리다 가신 부모님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녹취:웨이트씨] “It’s like a piece of you is missing, a piece of family is missing. It’s been that way for 68 years. I would just like to have his remains found before someone from family is here to witness it. My parents hoped till the day they died that he would be found…”

이제 남은 형제들이라도 유해로나마 오빠를 만난 뒤 생을 마감할 수 있길 바라는 마음입니다.

북한이 오빠를 비롯한 미군 유해를 돌려주는 건 마땅한 일이고, 그래야 남은 가족들이 사랑하는 가족의 생을 마무리해줄 수 있을 것이라는 겁니다.


[녹취: 웨이트씨] “I’m hopeful that it will happen. We haven’t been able to get back in there to get any remains because of the relationship between the two countries. I’m hopeful. It’s only right they will be brought home…”

‘병장 빅터 갤러라니’, 알링턴 국립묘지에 마련한 묏자리엔 오빠의 이름을 새긴 십자가를 꽂아놨습니다.

올해 84세를 맞은 아이린 맨드라씨도 오빠의 유해가 돌아올 것이라는 희망을 갖고 평생을 기다렸습니다. 오빠와 나란히 쉬게 될 묏자리를 오래 전 마련해놨습니다.

[녹취:맨드라씨] “I’m just waiting day by day hoping that they will find his remains and bring them home…”

오빠 필립은 해병대 병장으로 한국전에 참전해 1952년 전투 중 실종됐습니다.

이후 맨드라씨는 60년 넘게 한국전 참전 미군 유해 송환을 위해 일해왔습니다. 한국전,냉전 실종자 가족협회 회장으로 1993년에는 러시아까지 가서 오빠를 비롯한 실종 미군의 정보를 알아내려 했지만 별 소득이 없었습니다.

그렇게 기다리다 자신을 비롯한 실종 미군의 형제, 자매들은 생의 막바지에 들어서고 있습니다.

[녹취:맨드라씨] “Most of siblings are dying. The parents are all dead. We would like to bring all these boys home before their siblings pass away…”

오래 동안 떠났던 오빠가 돌아와 함께 묻히는 게 맨드라씨의 마지막 소원입니다.

VOA 뉴스 이조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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