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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 리포트] 미 대사관의 탈북 학생 돕기 앞장서는 세거튼 씨


주한 미국대사관의 탈북 청소년 교류 프로그램 자원봉사자로 일하는 한국계 미국인 은주 세거튼 씨가 VOA와 인터뷰하고 있다.

주한 미국대사관의 탈북 청소년 교류 프로그램은 미국인들의 자원봉사로 진행되고 있습니다. 이 프로그램은 특히 한국계 미국인 은주 세거튼 씨가 지난해 책임을 맡으면서 자원봉사자도 늘고 활동도 매우 다양해지고 있습니다. 세거튼 씨가 왜 탈북 학생들에게 큰 관심을 갖고 자원봉사를 하고 있는지, 서울의 김영권 특파원이 새거튼 씨를 만나 얘기를 들어봤습니다.

기자) 반갑습니다 세거튼 선생님, 어떤 계기로 탈북 청소년들에게 관심을 갖게 되셨습니까?

세거튼 씨) “Well, there are number of reasons. One of my college friends, she mentors…

“몇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우선 제 대학 친구가 탈북 청소년들에게 개인적으로 조언과 도움을 주는 멘토링을 하고 있습니다. 탈북 청소년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 여행을 하며 여러 조언을 하고 있죠. 제가 3년 전에 이 친구와 다시 연결되면서 그 사실을 알았고 아주 훌륭하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게 좋은 동기가 됐습니다. 둘째로는, 제 아들 때문입니다. 아들은 고기능성 자폐증(High Functional Autism) 장애가 있습니다. 그래서 사회에 충분히 적응하지 못하는 측면이 있지요. 그래서 저는 개인적으로 그런 소수계층에 대해 더 공감하는 게 있는 것 같아요. 저 역시 이민자로서 전혀 다른 사회에 정착한 경험이 있습니다. 탈북 청소년들도 자신들이 자라난 곳과 많이 다른 한국사회에 적응하는 게 쉽지 않은, 큰 도전이라고 봅니다. 따라서 저도 이 친구들과 어느 정도 비슷한 점이 있다고 볼 수 있죠. 그래서 더욱 이 탈북 청소년들을 지원하고 응원하며 영감을 주는 사람이 되고 싶었습니다.

기자) 자신이 이민자라고 하셨는데, 어떻게 미국에 가게 되셨습니까?

세거튼 씨) “I grew up and went to college here…”

“저는 한국에서 태어나 자랐습니다. 그리고 미국 외교관인 남편과 결혼을 해서 필리핀에도 살았고 미국에 살았습니다. 미국에서의 삶은 저 자신을 겸허하게 돌아보는 기회가 됐습니다. 한국에서 저는 전문직에 있었고 정체성도 당당했었죠. 하지만 미국에서는 아무도 저를 몰랐습니다. 이민자로서 새로운 삶을 다시 시작했던 겁니다. 물론 남편과 시댁 식구들이 저를 잘 챙겨줬지만, 문화적으로 한국과 미국은 차이가 컸습니다. 개인적으로 많은 배움의 시간이었습니다.

기자) 한국에서는 주류층, 다수계에 계시다가 갑자기 미국에서는 소수계가 되셨는데, 그런 어려움을 잘 극복하니까 좋은 자산이 되신 게 아닌가 싶습니다. 탈북민같이 또 다른 소수계층에 관심을 두고 도움을 주시는 모습이 남다르신 것 같은데요. 지금 맡고 계신 탈북 청소년 지원 프로그램이 어떤 것인지 좀 더 자세히 설명해 주시죠.

세거튼 씨) “EEP is a very generic Embassy English Program…”

“EEP는 말 그대로 미 대사관 영어 프로그램을 총칭하는 말입니다. 10여 년 전에 시작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저의 전임자가 여성 외교관의 남편이다 보니까 아무래도 주위에 아는 사람들이 적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자원봉사자들을 모으기도 쉽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제가 2년 전에 이를 맡아 준비한 끝에 지난해 4월에 이 프로그램을 다시 개편했습니다. 당시 이 프로그램을 함께했던 (탈북청소년 특성화 학교인 한겨레고등학교의) 김가연 선생님과 진지하게 대화를 나눴습니다. 어떻게 이 프로그램을 발전시키길 원하는지, 학생들이 무엇을 원하는지에 대해 대화를 했습니다. 그리고 학생들이 우리가 가는 것보다 미 대사관 쪽을 방문하는 것을 더 선호한다는 것을 알았죠. 그 전에는 양측이 한 번씩 오갔습니다. 미 자원봉사자들이 학교를 방문해서 2시간여 동안 앉아서 게임 등을 했지만, 매우 상징적 차원의 활동이었습니다. 그렇다고 이를 폄하하는 것은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학생들이 서울에 와서 미 대사관 사람들을 만나는 것을 더 좋아했다는 겁니다. 그래서 제가 방식을 바꿨죠.

기자) 그래서 어떤 방식으로 탈북 청소년을 위한 프로그램을 바꾸셨습니까?

세거튼 씨) “I changed the formatting. Once every two or three months…”

“2~3달마다 항상 학생들이 서울을 찾도록 했습니다. 저희가 안성에 내려가려면 버스를 빌려야 했습니다. 반면 학교는 전세버스 예산이 있었죠. 우리는 전세버스를 빌리는 예산을 절약해 학생들을 위해 다른 용도로 사용할 수 있었습니다. 함께 바비큐 파티를 하거나 소풍을 가고 볼링도 칩니다. 또 주말에 미국인 가정에서 학생들이 하룻밤을 묵는 프로그램도 진행합니다.

기자) 새거튼 선생님에게 북한은 어떤 의미인가요?

세거튼 씨) “Well, my mother was born in Kaesung…”

“제 어머니가 개성 출신이십니다. 수원 출신 아버지와 결혼을 하셔서 내려오셨죠. 어머니는 전쟁 때문에 어린 두 동생과 생이별을 하셨습니다. 그 후 동생들의 생사를 알지 못하셨어요. 그렇기 때문에 저는 가족과 이별한 채 북한을 탈출한 탈북민들과 비슷한 감정이 좀 있습니다.”

기자) 그런 특별한 가족 배경이 있으시군요. 이 프로그램을 하시면서 어떤 기분이 드시나요?

세거튼 씨) “I feel it’s a rewarding in many ways…..

“많은 측면에서 보람이 있습니다. 저는 어렸을 때 학교에서 북한의 독재정권에 대해 배웠습니다. 그래서 북한 사람들에 관해 오해가 있었습니다. 모두가 악하고 나쁘다는 생각을 했었죠. 하지만 북한 정권은 나쁘지만, 거기서 고통받는 주민들은 아니죠. 그 분들은 피해자들입니다. 제가 어릴 때 잘못 배우고 생각한 거죠. 북한 주민들은 평범한 우리 같은 사람들입니다. 제가 프로그램을 하면서 그런 것들을 배웁니다. 마찬가지로 탈북 학생들도 프로그램을 통해 미국인들에 관한 생각이 바뀝니다. 그래서 더욱 보람이 있습니다.

기자) 한겨레 중고교 선생님과 학생들의 얘기를 들어 보니까 프로그램에 매우 만족스러워합니다. 크게 영어 실력이 느는 것은 아니지만, 영어와 외국인에 대한 두려움이 없어지고 자신감도 크게 늘었다고 하던데요. 끝으로 이 프로그램을 통해 어떤 것을 바라고 소망하십니까?

세거튼 씨) “First of All, when I first met Americans, it was very intimidating…”

“글쎄요. 제가 미국인들을 처음으로 만났을 때 겁을 많이 먹었었습니다. 저는 영어를 잘 할 줄 몰랐고 그들의 외모가 너무 달랐기 때문입니다. 저는 탈북 학생들이 이 프로그램을 통해 미국인들을 만나면서 ‘아 미국인들이 친절한 사람들이구나, 선한 의도와 생각을 하고 있구나’하고 느꼈으면 좋겠습니다. 미국인에 관해 긍정적으로 생각하길 바랍니다. 또 자원봉사하는 미국인 청소년들도 탈북 학생들과 어느 정도 교감하며 서로에게 배우고 생각을 나누길 원합니다. 생김새는 다르지만, 공통점도 있다는 것을 서로 찾았으면 좋겠습니다. 결국 자원봉사를 하는 미국 청소년들은 민간 대사인 셈이죠. 그래서 남북한이 통일될 때 이 탈북 학생들이 이런 경험을 통해 미국에 관해 더 긍정적인 목소리를 낸다면 더 보람되겠죠”

한국 내 탈북 학생들과 주한 미국대사관의 자원봉사 프로그램을 책임지고 있는 은주 세거튼 씨로부터 프로그램에 관해 자세히 들어봤습니다. 인터뷰에 김영권 서울 특파원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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