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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난과 역경을 뒤로하고 이제는 아메리칸 드림을 이루며 살아가는 난민들의 이야기, ‘나는 미국인입니다’. 이라크에서 미국인 단체를 위해 일했다는 이유로 이슬람 극단주의자들로부터 살해 협박을 받았던 타밈 알말리키 씨와 동생 알리 알말리키 씨. 이들 남매가 난민신분으로 미국에 오게 된 데는 ‘이라크의 미래’라고 불렸던 남동생 하이더 씨의 죽음이 큰 역할을 했습니다. 하이더 씨는 지역 민간단체(NGO) 들이 모두 함께 일하고 싶어할 정도로 인정받던 수재였는데요. 스위스 유학을 준비하던 중 극단주의 세력에 의해 살해당했다고 합니다.


[녹취: 알리 알말리키] “이라크 사람들에게 자유는 거저 주어지는 것이 아니었어요. 우리 삼촌 두 분은 사담 후세인에 충성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살해당했고요. 대를 이어서 사촌들과 우리 동생까지 희생됐으니까요. 자유를 얻기 위해 너무 큰 희생이 따랐어요.”

2007년 요르단을 거쳐 난민 신분으로 미국에 입국한 알말리키 남매. 자유의 땅 미국에서의 지난 10년은 어떤 시간이었을까요? 미국에 오기 전 영국과 캐나다에 있는 NGO에서 잠시 일한 적이 있고, 영어도 능통했던 누나 타밈 씨의 경우 미국에서의 첫 출발이 비교적 순조로웠다고 합니다.

[녹취: 타밈 알말리키] “우리 남매가 미국에 오자마자 미국에서 경기 침체가 시작됐어요. 하지만 저는 운이 좋았습니다. 우리가 국제난민구호기구(IRC)를 통해서 미국에 왔는데 마침 IRC에서 직원을 구하고 있었던 거에요. 그런데 제가 이라크에 있을 때 NGO에서 일했었잖아요? 영어도 잘 하고 하니까 IRC가 저를 채용한 거예요.”

하지만 동생 알리 씨는 누나와 같은 행운을 누리지 못했다고 합니다.

[녹취: 알리 알말리키] “저는 힘들었어요. 미국에서 직장을 찾는 게 제일 어려웠습니다. 저는 이라크에 있을 때 NGO에서 일하긴 했지만, 영어를 그렇게 잘 하진 못했거든요. 그래서 일단 영어를 공부해야겠다고 결심하고 전문 대학에 등록했어요. 그런데 문제는 학비였습니다. 비싼 학비를 감당하기 위해서 옷 가게와 백화점에서 일했죠. 배달 일도 했고요. 다른 난민이나 이민자도 다 마찬가지겠지만, 일하면서 동시에 공부도 해야 하는 게 쉽지 않았습니다.”

알리 씨는 미국에 오자마자 직업을 갖게 된 누나 타밈 씨가 좀 부럽기도 했다는데요. 하지만, 타밈 씨에겐 또 다른 고민이 있었습니다.

[녹취: 타밈 알말리키] “직업은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월급도 괜찮게 받았고 시간이 지나면서 다른 NGO에서 연봉을 더 많이 주겠다는 제안이 들어오기도 했으니까요. 하지만 저는 미국에서 살아가기 위해선 미국 대학 학위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대학에 가려고 보니까 아무리 월급을 많이 준다고 해도 근무시간이 긴 직장에선 일할 수 없겠더라고요. 그래서 일을 줄이는 대신, 대학을 선택했죠. 사실 공학을 전공하고 싶었는데요. 시간제로 공부해서 학위를 따는 프로그램이 없어서 결국 시간제가 가능한 자연과학을 선택했고요. 올해 메릴랜드 주립대학에서 학사학위를 땄습니다.”

대학 공부를 하기 위해, NGO직장을 그만둔 타밈 씨가 선택한 직업은 바로 통역사였습니다.

[현장음: 타밈 알 말리키]

컴퓨터와 카메라 그리고 작은 조명까지 갖춰져 있는 타밈 씨의 방은 타밈 씨의 일터이기도 합니다. 약속된 시간이 되면 전화가 걸려오는데요. 타밈 씨는 컴퓨터를 통해 화상 통역을 진행합니다.

[녹취: 타밈 알말리키] “저의 현재 직업은 통역사인데요. ‘랭귀지라인 솔루션(Language Line Solutions)’이라는 회사의 아랍어 통역사로 소속돼서 일하고 있어요. 이 직장은 시간이 자유롭고 또 집에서 일할 수 있다는 게 장점인예요. 덕분에 대학 공부도 마칠 수 있었죠. 우리 회사는 모든 종류의 통역을 제공하는데 저는 법원 통역을 맡고 있어요. 주로 의뢰인을 위해 컴퓨터 화상으로 통역해 주고요. 가끔 전화로 판사의 말을 통역하기도 해요. 법적 용어가 처음에 생소해도 계속 반복되기 때문에 지금은 통역하는 데 큰 어려움이 없습니다.”

옷 가게에서 일하며 영어 공부를 했던 동생 알리 씨도 지금은 누나와 같은 회사에 소속돼 통역 일을 하고 있습니다.

[녹취: 알리 알말리키] “저는 주로 의료 통역을 합니다. 이 일을 하기 위해서 의학용어 관련 수업을 따로 들었어요. 사실 회사에 취직하기 전부터 난민 통역을 도왔고 병원에서 통역을 하기도 했지만, 정식 의료 통역을 하기 위해선 공부를 해야 했거든요. 의학용어 관련 수업을 듣고 시험을 통과한 후에 지금 이 회사에서 일할 수 있었습니다.”

알리 씨는 과거에 영어도 잘 못 하고 직장을 구하느라 고생했던 때를 생각하면 지금 생활에 만족하지 않을 수 없다고 했습니다. 거기다 틈틈이 공부한 끝에 알리 씨 역시 이제 한 과목만 수료하면 대학 졸업장을 받을 수 있다는데요. 알리 씨는 고생을 하면서도 공부를 하는 이유가 있다고 했습니다.

[녹취: 알리 알말리키] “미국에서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이 바로 교육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른 미국인들과 경쟁하려면 미국 대학의 학위가 있어야겠더라고요. 만약 제가 미국 시골 지역에 정착했다면 대학 학위가 필요 없었을 수도 있었을 거에요. 하지만 이렇게 메릴랜드주 도심지역에서 살려면 학위도 필요하고, 돈도 많이 들고, 삶의 기준이 올라갈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물론 고생도 따르지만, 그만큼 보람도 더 큰 것 같습니다. ”

타밈 씨와 알리 씨는 무엇보다 혼자가 아니기에 이렇게 미국에 잘 정착할 수 있었다고 고백합니다.

[녹취: 타밈 알말리키] “혼자라는 것 때문에 고통받는 난민들이 많아요. 많은 사람이 절 부러워한답니다. 동생과 같이 산다고요. 전 동생이 없었으면 공부를 마칠 수도 없었고, 이 아파트에서 살 수도 없었을거예요. 아니 어쩌면 이라크를 떠날 수도, 요르단에서 살 수도 없었을 것 같아요. 이 모든 게 다 알리 덕분입니다.”

알말리키 씨 남매는 지난 2013년에 미국 시민권을 땄고, 이후 타밈 씨는 이라크 고향 마을을 방문해 가족도 잠시 만나고 돌아왔다고 하는데요. 이제는 미국에서 이라크계 미국인으로 살아가는 이들 남매는 소박한 아메리칸 드림을 이루기 위해 오늘도 달려갑니다.

[녹취: 알리 알말리키] “저는 지금 대학에서 정치학을 공부하고 있는데요. 빨리 학위를 받고, 좀 더 좋은 직업을 갖고 싶습니다. 사실, 제일 큰 꿈은 미국에서 내 집을 갖는 건데요. 열심히 돈을 모아야겠죠? 저는 다른 미국인들의 꿈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녹취: 타밈 알말리키] “저는 관리직 일을 하고 싶습니다. 미국에 와서 여러 단체에서 일했지만 관리직은 한 번도 못했거든요. 사실 저의 이때까지의 경험과 나이를 고려하면 관리직이나 감독직도 충분히 감당할 수 있다고 봐요. 이라크에서도 관리직 경험이 있으니까요. 또 저는 대학 학자금 융자가 많은데요. 학비를 갚는 게 또 다른 꿈이고요. 마지막으로 저와 동생이 결혼해서 가정을 꾸리는 거예요. 이라크에서의 힘들었던 기억은 이제 뒤로 하고, 미국에서 우리 자녀들이 자유롭게 뛰어노는 모습이 너무나 보고 싶습니다.”

네, 미국에 정착한 난민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는 '나는 미국인입니다', 오늘은 이라크 출신 타밈 알말리키 씨와 알리 알말리키 씨 남매 이야기와 함께했습니다. 다음 주에는 또 다른 난민의 이야기를 들어보려고 하는데요. 기대해주시기 바랍니다. 저는 김현숙이었습니다. 함께 해주신 여러분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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