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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미국인입니다] '남은 생은 미국을 위해' 아와드 알시리아 (2)


난민 출신으로 미국 시민이 된 아와드 알시리아 씨가 직장인 식료품점에서 상품을 진열하고 있다.

고난과 역경을 뒤로하고 이제는 미국인의 한 명으로 아메리칸 드림을 이루며 살아가는 난민들의 이야기, ‘나는 미국인입니다’. 안녕하세요? 김현숙입니다.

60살이 다되어 생애 첫 시민권을 받게 된 난민이 있습니다. 이라크에서 온 아와드 알시리아 씨인데요. 팔레스타인 난민 출신인 부모님이 이라크에서 아와드 씨를 낳았지만, 난민 출신이었기 때문에 이라크 국적을 갖지 못했고, 아와드 씨의 자녀들까지 무국적자로 살아야 했습니다. 하지만 아와드 씨는 이라크에서 사업체를 운영하며 안정적인 삶을 꾸릴 수 있었는데요. 2003년, 이라크 전쟁이 일어나면서 모든 것이 변하게 됩니다.

[녹취: 아와드 알시리아] “문만 열면 거리에 죽은 사람의 시신이 보였습니다. 일을 하기 위해 매일 아침 가게로 갈 때마다 시신이 나뒹구는 거리를 지났죠. 차를 타고 갈 수도 없었어요. 너무 위험하니까요. 사는 게 사는 게 아니었죠.”

아와드 씨와 같이 일하던 동업자가 총에 맞아 죽고 또 아내까지 어깨에 총을 맞으면서 아와드 씨는 결국 바그다드를 떠나기로 결심합니다. 12살에서 15살로 아직은 어린 네 아들 그리고 아내와 함께 난민촌에서 3년 반을 지낸 아와드 씨는 미국에 있는 친척 덕분에 미국으로 올 수 있었는데요. 아와드 씨는 지난 2010년, 미국에 첫발을 디딘 순간, 미국이 ‘내 나라’라는 확신이 들었다고 합니다.

[현장음: 푸드라이언 식료품점]

버지니아주 샬러츠빌에 있는 ‘푸드라이언’ 이라는 이름의 대형식료품 가게. 바로 아와드 씨가 일하는 직장입니다.냉장부에서 우유와 치즈 등 유제품을 정리하는 아와드 씨의 손놀림이 예사롭지 않습니다.

[녹취: 아와드 알시리아] “전 매일 출근 시간 1시간 전에 가게에 도착합니다. 매니저가 물어요. 왜 이렇게 빨리 오냐고요? 저는 대답합니다. 일이 좋아서 빨리 온다고요. 또 일이 다 끝나도 적어도 30분은 더 일하고 퇴근합니다. 매니저가 제발 정시에 와서 정시에 퇴근하라고 말할 정도죠. 하지만 전 그럴 수가 없습니다. 지금 제가 일하는 이 ‘푸드라이언’은 과거에 제가 이라크에서 운영했던 식료품점을 떠올리게 하거든요. 물론 제가 운영했던 가게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규모가 크지만, ‘푸드라이언’이 마치 제 개인 사업체 같은 생각이 들어요. 저는 가게에서 자라고 하면 잘 수도 있습니다. 이런 걸 천직이라고 하죠?”

아와드 알시리아 씨가 자택에서 VOA와 인터뷰하고 있다.
아와드 알시리아 씨가 자택에서 VOA와 인터뷰하고 있다.

미국에 왔을 때, 아와드 씨는 이미 중년의 나이에 영어도 거의 못했지만, 미국 정착 과정이 그렇게 힘들게 느껴지지 않았다고 합니다.

[녹취: 아와드 알시리아] “처음부터 식료품점에서 일하는 것이 크게 어렵지 않았습니다. 이라크에서 하던 일과 비슷했으니까요. 제가 바그다드에서 식료품 가게 두 곳을 운영했었거든요. 거기다 여기 미국 가게의 직원들이 얼마나 다 좋은지 모릅니다. 처음 저를 고용했던 매니저는 지금도 가끔 우리 집에 들러서 잘 지내는지 물어보곤 하죠. 같이 일하는 직원들 또 손님들도 모두 친절하고 좋습니다. 이젠 다들 친구 같이 지내요. 이렇게 일할 수 있다는 정말 큰 행복이지요.”

[현장음: 푸드라이언 식료품점]

요즘은 대학교에 다니는 아와드 씨의 아들도 같은 가게에서 시간제로 일하고 있습니다. 계산대에서 손님들의 물건을 척척 계산하는 아들을 흐뭇하게 바라보는 아와드 씨. 식료품점 일이 고될 법도 한데 아와드 씨의 표정에선 피로를 전혀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현장음: 저녁 식사]

직장에서의 일과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 맞이하는 저녁 식사 시간. 미국 생활이 7년이 됐지만, 여전히 저녁상엔 이라크 전통 음식이 한 상 가득 차려져 있습니다. 여섯 가족이 둘러 앉은 저녁 식사자리엔 이제 웃음과 여유가 넘쳐납니다.

[녹취: 아와드 알시리아] “저는 미국에 온 지 2년여 만에 이 집을 샀습니다. 큰아들과 함께 정말 열심히 일해서 돈을 모았죠. 사업가 출신이다 보니까 돈을 모을 줄 알았던 겁니다. 사실 저는 이라크에 있는 우리 집을 생각할 때마다 마음이 무너졌습니다. 30년을 열심히 일해서 마련한 집을 하루아침에 잃었으니까요. 그런데 미국에선 2년을 열심히 일하니까 이렇게 집을 사게 되더라고요. 거기다 몇 년 후엔 생애 첫 시민권도 땄고요.”

아와드 씨는 작년 독립기념일에 아들들과 함께 시민권 선서를 했습니다. 아와드 씨에겐 이 날이 두 번째 생일이나 다름없다고 하는데요. 시민권은 어린 나이에 미국에 온 아들들에게도 매우 특별한 선물이었습니다. 대학생인 아들 아미자드 씨는 시민권을 받았던 날을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녹취: 아미자드 알시리아] “시민권을 받고 정말 행복했습니다. 이라크에서의 나쁜 기억들이 한순간에 사라지는 것 같았어요. 제가 살면서 가장 답하기 어려운 질문이 뭐였는지 아세요? 바로 “넌 어디서 왔니?”라는 질문이었습니다. 설명하려면 너무 길었거든요. 팔레스타인 난민이셨던 조부모님이 이라크에 오셔서 부모님을 낳았고, 저도 이라크에서 태어나긴 했지만, 이라크 국적을 얻지 못했으까요. 팔레스타인 출신이라고도, 이라크인이라고도 할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한마디로 말할 수 있게 됐어요. 나는 미국인이라고요.”

사실 아와드 씨가 미국에 온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자식들 때문이었습니다. 이라크에선 네 아들의 미래를 기약할 수 없었다는데요. 이제는 네 아들의 미래를 보장받은 건 물론이고 모든 것을 이루었다며 만족스러워했습니다.

[녹취: 아와드 알시리아] “저는 정말 행복합니다. 차도 있고, 집도 있고, 직장도 있고, 돈도 있고, 모든 게 있으니까요. 무엇보다 저와 아이들에겐 이제 미래가 있어요. 아들들은 현재 대학을 다니거나 이미 졸업했죠. 저는 자식들에게 공부를 다 마치고 나면 미국 사회에 더 공헌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미국이 우리에게 많은 것은 베풀었으니 다시 또 다 갚아야죠.”

조용한 전원주택에서, 느긋한 여유를 즐기며 이젠 좀 쉴 법도 한데, 아와드 씨는 아직도 할 일이 많다고 했습니다.

[녹취: 아와드 알시리아] “저를 보세요. 지금 이렇게 집 베란다에 서 있잖아요? 이게 얼마나 큰 행복인지 모르실 겁니다. 이라크에서는 집 밖에 이렇게 서 있는 건 상상도 못 했어요. 어디선가 총알이 날아와 죽을 수도 있었으니까요. 그런데 이렇게 평화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으니, 이게 꿈인가 생신가 싶습니다. 저는 신께서 제게 살아갈 시간을 더 주실 것으로 믿습니다. 미국에 더 많은 것들을 돌려주고 싶거든요. 제 평생의 꿈을 이루어 준 미국을 위해 남은 생을 보내고 싶습니다.”

네, 미국에 정착한 난민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는 '나는 미국인입니다', 오늘은 이라크 출신 난민으로 미국에서 생애 첫 시민권을 갖게 된 아와드 알시리아 씨의 이야기와 함께했습니다. 다음 주에는 또 다른 난민의 이야기를 들어보려고 하는데요. 기대해주시기 바랍니다. 저는 김현숙이었습니다. 함께 해주신 여러분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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