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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미국인입니다] '생의 첫 시민권을 갖게 된 난민' 아와드 알시리아 (1)


아와드 알시리아 씨가 자택에서 VOA와 인터뷰하고 있다.

고난과 역경을 뒤로하고 이제는 미국인의 한 명으로 아메리칸 드림을 이루며 살아가는 난민들의 이야기, ‘나는 미국인입니다’. 오늘은 60살이 다 되어 처음으로 시민권을, 그것도 미국 시민권을 갖게 된 난민, 아와드 알시리아 씨의 이야기입니다.


전 세계 난민의 숫자는 4천500만 명에 달합니다. 이들 중 대부분은 전쟁과 박해, 빈곤 등 피치 못할 사정으로 모국을 떠나 새로운 삶의 터전을 찾아 떠돌고 있죠. 그런데 오늘 만나볼 주인공은 평생을 난민으로 살아온 사람입니다. 단 한 번도 한 나라의 국민으로 인정받지 못해 모국이라고 부를 나라가 없는데요. 하지만 이제는 당당히 ‘나의 나라’라고 부를 곳이 생겼습니다. 60살이 다 되어 처음으로 시민권을, 그것도 미국 시민권을 갖게 된 난민, 아와드 알시리아 씨의 이야기입니다.

[현장음: 독립기념일 시민권 선서식]

지난해 독립기념일, 미국의 제3대 토머스 제퍼슨 대통령 생가인 몬티첼로에서 시민권 선서식이 열렸습니다. 이날 선서식에선 출신 나라도, 배경도 다른 80명이 미국인으로 인정받았는데요. 오늘의 주인공 아와드 씨도 두 아들과 함께 이날 시민권 선서를 했습니다.

[녹취: 아와드 알시리아] “저는 생일이 두 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첫 번째 생일은 제가 세상에 태어난 날이고요. 두 번째 생일은 작년 7월 4일 미국 독립기념일, 바로 제가 미국 시민권을 받은 날입니다.”

아와드 알시리아 씨(가운데)가 미국 시민권 시험을 통과한 날 아내와 네 아들들과 함께 기념 사진을 촬영했다.
아와드 알시리아 씨(가운데)가 미국 시민권 시험을 통과한 날 아내와 네 아들들과 함께 기념 사진을 촬영했다.

아와드 씨에겐 이날이 인생에서 있어 가장 감격스러운 순간이었다고 했습니다.

[녹취: 아와드 알시리아] “시민권 시험을 통과했을 때 울었습니다. 59년간 꿈꾸어왔던 바가 이루어졌으니까요. 한 나라의 국민으로 인정받기까지 평생이 걸렸어요. 정말 오랜 시간을 기다리고, 기다리고 또 기다렸지요. 그런데 드디어 미국 시민이 된 겁니다.”

아와드 씨가 60살이 거의 다 되어, 생애 첫 시민권을 갖게 된 데는 특별한 사연이 있었습니다.

[녹취: 아와드 알시리아] “팔레스타인 난민이셨던 저희 부모님은 75년 전에 이라크에 정착하셨습니다. 저는 이라크에서 태어났고요. 하지만 이라크 시민권을 딸 수는 없었어요. 저희 부모님이 이라크 시민권이 없는 팔레스타인 난민이었으니까요. 제가 시민권이 없으니 저희 자녀들 역시 시민권을 받을 수 없었습니다. 우리 가족뿐 아니라 많은 팔레스타인 난민이 겪는 어려움이었습니다.”

시민권도 없이, 외부인이라는 차별 속에서도 아와드 씨는 사업수완을 발휘해 제법 성공한 사업가가 됐습니다. 이라크 수도 바그다드에서 식료품 가게를 두 곳이나 운영했으니까요. 하지만 아와드 씨의 성공은 그렇게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녹취: 아와드 알시리아] “2003년에 이라크 전쟁이 발발한 후 모든 것이 변했습니다. 당시 이라크 정부는 아무 역할도 하지 못했죠. 미군이 떠나면서 반군과 무장단체가 거리를 장악했고요. 혼란스러운 도시로 바뀌어 버렸습니다.”

그때부터 아와드 씨와 가족들에겐 지옥과 같은 고통의 시간이 시작됐습니다.

[녹취: 아와드 알시리아] “문만 열면 거리에 죽은 사람의 시신이 보였습니다. 일을 하기 위해 매일 아침 가게로 갈 때마다 시신이 나뒹구는 거리를 지났죠. 차를 타고 갈 수도 없었어요. 너무 위험하니까요. 하루는 아들과 같이 걸어서 가게로 가는데 길거리에 이웃 사람의 시신이 보였습니다. 아는 사람들이 거리에 숨져 누워있는 모습은 제 아들에게도, 저에게도 큰 충격이었습니다. 사는 게 사는 게 아니었어요.”

매일 총알이 날아드는 와중에서도 아와드 씨는 어떻게든 살아보려고 가게를 운영했습니다. 가족들을 생각하면 포기할 수 없었죠. 하지만 어린 자녀들에게 이라크는 더이상 미래를 꿈꿀 수 있는 나라가 아니었습니다. 당시 15살이었던 아들 아흐메드 씨는 자신의 경험을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녹취: 아흐메드 알시리아] “하루는 친구와 공터에서 축구를 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갑자기 총알이 날아들었고요. 제일 친했던 친구가 죽는 걸 눈앞에서 보게 됐습니다. 이후 저는 매일 공포 속에서 살아야만 했어요. 학교에 갈 수 없었고, 친구들과 축구도 할 수 없었고, 집 밖에도 나갈 수 없었죠. 전쟁이 시작되기 전까지만 해도 저는 다른 청소년들처럼 학교를 졸업하면, 직장도 가고, 멋진 사람이 되겠다고 상상했어요. 하지만 전쟁이 시작되면서 그런 미래를 꿈꿀 수 없었습니다.”

게다가 아와드 씨와 같이 일하던 동업자가 총에 맞아 죽고 또 아내까지 총을 맞으면서 아와드 씨는 결국 큰 결단을 내리게 됩니다.

[녹취: 아와드 알시리아] “제 아내가 어깨에 총을 맞은 순간 결심했습니다. 이라크를 떠나겠다고요. 모든 걸 다 포기했습니다. 돈도 다 잃고 사업체도 잃겠지만, 그것들을 지키고 싶은 생각도 없었어요. 제가 지키고 싶었던 건 단 하나 바로 우리 가족이었습니다. 아내와 아들들을 살려야 할 것 같았어요. 한 달 뒤, 일주일 뒤, 아니 당장 내일이라도 아들들이 죽을 수 있는 상황이었으니까요. 그래서 짐을 싸서 바그다드를 떠났습니다.”

​아와드 씨는 아내와 네 아들을 데리고 탈출 길에 올랐습니다. 당시 아이들의 나이는 12살에서 15살로 아직 어렸지만, 힘든 여정을 이겨냈습니다. 그리고 이들이 정착한 곳은 시리아와 가까운 사막의 한 난민보호소였습니다.

[녹취: 아와드 알시리아] “미국에 오기 전 3년 반 동안 난민촌에서 지냈습니다. 사막에서 고생도 많이 했죠. 하지만 다행히 미국에 있는 친척 덕분에 미국에 난민신청을 할 수 있었고요. 난민 단체의 도움을 받아 미국에 올 수 있었습니다.”

[현장음: 워싱턴 공항]

7년 전, 워싱턴 인근 공항에서 친척들을 만난 아와드 씨는 감격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자유의 땅 미국에 오기까지, 너무 멀고도 힘든 길을 걸어왔으니까요. 특히 아와드 씨는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미국에 대한 확신이 들었다고 합니다.

[녹취: 아와드 알시리아] “믿기 힘드시겠지만, 저는 미국에 도착한 순간 알았습니다. 여기가 ‘내 나라’인 것을요. 무슨 이유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런 확신이 들었습니다.”

​미국엔 온 순간, 뼈를 묻을 곳이라는 걸 알게 된 아와드 씨는 버지니아 주 샬러츠빌에 정착하게 됐는데요. 이후 이라크에서 했던 일과 비슷한 직장도 찾게 됐습니다.

[녹취: 아와드 알시리아] “전 미국에서 대형 식료품 가게에서 일하게 됐는데 지난 7년을 한결같이 일했습니다. 저는 제 일이 정말 좋아요. 그리고 저는 미국 사회에 많은 것을 돌려주고 싶습니다. 미국은 제게 시민권을 줬잖아요? 내 나라 미국에 더 많은 것으로 보답하고 싶습니다. 미국에 와서 6년 동안 전 단 한 번도 휴가를 간 적이 없어요. 정말 감사한 마음으로 열정적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네, 미국에 정착한 난민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는 '나는 미국인입니다', 오늘은 이라크 출신 난민으로 미국에서 생애 첫 시민권을 갖게 된 아와드 알시리아 씨의 이야기와 함께했습니다. 다음 주에는 알시리아 씨의 행복한 직장생활 비결과 함께 가족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려고 하는데요. 기대해주시기 바랍니다. 저는 김현숙이었습니다. 함께 해주신 여러분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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