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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아메리카] 유일한 4선 대통령 프랭클린 루즈벨트 (1)


제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지난 1943년 11월 이란 수도 테헤란에서 회담하고 있는 프랭클린 루즈벨트(가운데) 미국 대통령과 윈스턴 처칠(오른쪽) 영국 총리, 이오시프 스탈린 소련 공산당 서기장.

오늘의 미국이 있기까지 각 분야에서 뛰어난 업적을 남긴 사람들을 소개해드리는 '인물 아메리카'입니다. 유일한 4선 대통령, 프랭클린 루즈벨트를 만나보시겠습니다.


미국의 32번째 대통령으로 대공황을 극복하고, 2차 세계 대전을 승리로 이끌었던 프랭클린 델러노 루스벨트(Franklin Delano Roosevelt) 대통령, 약칭 FDR은 1882년 1월 30일에 뉴욕 주 북부의 하이드파크라는 곳에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는 철도회사의 부사장을 지낸 부유한 집안이었습니다.

제26대 대통령 시어도어 루스벨트와는 6대조 할아버지 때 갈려 나온 친척이었습니다. FDR은 어렸을 때는 집에서 가정 교사를 고용해 공부했고, 중등학교는 사립명문 그로턴 기숙학교, 대학은 하버드를 나왔습니다. 하버드 졸업 후 컬럼비아 로스쿨에 들어갔습니다. 재학 중이던 1907년 뉴욕 주 변호사 시험에 합격해 미국 금융업계의 중심지, 월스트리트에 있는 법률회사에서 일했습니다.

프랭클린은 23살 때 시어도어 루스벨트 대통령의 조카 엘리너와 결혼했습니다. 그러나 결혼 생활은 평탄치 못했습니다. 프랭클린이 엘리너 여사의 비서인 루씨 머서 씨와 가까워지면서 생긴 일이라고 합니다.

FDR은 1910년 28살의 나이로 뉴욕 주 상원의원에 출마해 공화당의 아성이었던 지역에서 승리했습니다. 그 뒤 위드로우 윌슨 대통령 정부에서 해군성 차관보로 일했습니다.

1920년 대통령 선거에서는 민주당 부통령 후보로 지명됐지만, 본선에서 공화당의 워런 하딩에 패배했습니다. 선거 다음 해인 1921년, FDR은 여름 별장에서 찬물에 빠졌다가 나온 뒤 걸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 후 다시는 혼자서 걷지를 못하고 남은 일생 동안 계속 휠체어 신세를 졌습니다.

많은 사람은 다리의 마비로 프랭클린 루스벨트의 정치적 꿈은 사라졌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런 생각은 잘못됐다는 것이 바로 나타났습니다. FDR은 불구의 몸인데도 1928년 뉴욕 주지사 선거에 출마해 당당히 승리합니다.

프랭클린 주지사는 수력 회사의 설립, 양로 연금 연제도의 확립, 농민·실업 구제 등 혁신적인 여러 개혁을 실행했습니다. 이어 2년 후 재임에도 성공합니다. 두 번에 걸친 임기 중 '최고의 지사'라는 칭송을 받았습니다.

FDR은 휠체어를 타고 다니는 신세가 됐지만, 대중 앞에 나타날 때는 언제나 강건하고 친근한 모습이었고 농담도 잘했습니다. 1932년에는 민주당 대통령 후보로 지명됐습니다. 당시 미국은 대공황의 시련을 겪고 있었습니다. 국민 네 명 중 한 명은 일자리를 잃었고, 농산물 가격 폭락으로 농민들은 극도의 곤경에 빠졌습니다. 산업생산은 공황 전보다 절반으로 줄어들었습니다.

잠 잘 데도 없는 사람이 200만 명이나 됐고, 32개 주에서 은행이 문을 닫아 수백만 명이 은행에 넣어둔 돈을 날려야 했습니다.

FDR은 시카고에서 열린 민주당 전당대회 대선 후보 수락 연설에서 처음으로 경제에 대한 정부의 적극적인 개입정책인 ‘뉴딜’(New Deal) 정책을 내세웠습니다. FDR은 공화당의 허버트 후버 대통령을 압도적으로 물리치고 1933년 3월 4일 제32대 대통령에 취임합니다.

루스벨트는 취임 연설에서 그 유명한 ‘우리가 두려워해야 할 것은 두려움 그 자체이다’라고 역설했습니다. FDR은 국민에게 용기를 잃지 말고 함께 난관을 타개해 나가자고 호소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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