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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방 의원의 꿈 - 리타 핀 아렌스 (3)


지난 17일 워싱턴 DC '아시아태평양 장학금 재단(APIASF)' 사무실에서 닐 호리코시(오른쪽) 대표와 대화하고 있는 리타 핀 아렌스.

아메리칸 드림을 이루며 살아가고 있는 이들을 만나보는 '나는 미국인입니다' 시간입니다. 캄보디아 '킬링필드'를 탈출한 뒤 예일대를 졸업하고 교육자가 된 리타 핀 아렌스, 세번째 순서입니다.

고난과 역경을 뒤로하고 이제는 미국인의 한 명으로 아메리칸 드림을 이루며 살아가는 난민들의 이야기, ‘나는 미국인입니다’. 안녕하세요? 김현숙입니다.

캄보디아에서 자행된 민간인 대학살, 킬링필드를 탈출해 1981년 부모님과 함께 난민 신분으로 미국에 오게 된 리타 핀 아렌스 씨. 4살에 불과했던 난민 소녀는 이제 40살의 교육자가 되어 워싱턴 DC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리타 씨 아버지는 캄보디아 정부에서 수출입 업무를 담당했던 고위 공무원이었고, 어머니는 부유한 명문가의 딸이었지만, 난민 신분이 된 부모님은 미국에서 밑바닥부터 새롭게 시작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교육을 중요하게 생각했던 부모님은 리타 씨에게 늘 공부를 해야 하는 동기를 부여했고, 아이다호 시골 마을에서 학창시절을 보낸 리타씨는 미국 최고 명문대학 가운데 하나인 예일대학에 진학하게 됩니다.

[녹취: 리타 핀 아렌스] “예일대에서의 생활은 정말 멋졌어요. 똑똑하고 영감을 주는 친구들과 졸업생들 그리고 교수님들 사이에 둘러싸여 생활했으니까요. 한번은 친구들과 회의를 준비하는데 한 명이 “지미를 연사로 초청하는 게 어때”라고 하는 거예요. 전 속으로 ‘지미가 누구야?’라고 생각했죠. 그런데 알고 보니까 지미 카터 전 대통령을 말한 거더라고요. 이렇게 유명인사와 친분이 있는 사람들, 또 실제로 유명한 사람들을 만나다 보니까 세상을 보는 눈이 넓어질 수밖에 없었어요.”

리타 씨는 또한 친구들과 지뢰 퇴치 운동에도 참여하는 등, 다채로운 대학생활을 통해 새로운 세계를 경험하게 되는데요. 리타 씨는 또한 대학 졸업 후 가게 된 첫 직장을 통해 인생의 새로운 목표를 찾게 됩니다.

[녹취: 리타 핀 아렌스] “대학 졸업 후 처음으로 일한 곳은 예일대학교 도서관에 있던 ‘홀로코스트 비디오 보관소’였어요. 독일 나치 정권에 의해 600만 명의 유대인이 학살된 홀로코스트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의 인터뷰 내용을 글로 옮겨서 기록에 남기는 일이었는데요. 그 일을 하면서 얼마나 충격을 받았는지 모릅니다. 유대인들이 경험한 것들이 캄보디아에서 저희 부모님이 겪었던 상황과 너무 비슷한 거예요. 비극의 역사가 계속되고 있다는 사실이 너무 슬펐습니다.”

1970년대 캄보디아에서 자행된 대학살에서 살아남은 난민에게, 2차 세계 대전 당시 나치 정권이 저지른 유대인 대학살의 이야기는 그저 흘러가는 역사의 한 단편이 아니었습니다.

[녹취: 리타 핀 아렌스] “도서관에서 일한 경험은 내 인생을 바꾸어 놓았습니다. 내가 살면서 무엇을 해야 할지, 어떻게 다른 사람을 도울 수 있을지 깊이 생각하는 시간이었어요. 대학을 다닐 때 지뢰 퇴치 운동을 하면서 학생으로서 의미 있는 일을 했다는 생각에 늘 뿌듯했는데, 도서관에서 일하면서 세상을 변화시키는 일을 해야겠다는 확신을 하게 된 거죠. 특히 세상을 변화시키기 위해선 자라나는 아이들을 위해 일해야겠다고 생각했고, 결국 선생님이 되기로 결심했습니다.”

교사 시험을 통과한 리타 씨는 코네티컷 주에 있는 중학교에서 6학년과 7학년 학생들에게 수학을 가르쳤습니다. 하지만 이후 남편이 조지워싱턴대학원에 가게 되면서 워싱턴 DC로 오게 됩니다.

[녹취: 리타 핀 아렌스] “교사로서 미국의 수도인 워싱턴 DC의 교육 정책을 보니까 맘에 들지 않는 부분이 사실 많았습니다. 그런데 다른 교사들이 제게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에 대해 말만 하지 말고 직접 나서서 뭔가를 해보라고 권유하는 거예요. 그래서 우선 ‘내셔널보드 프로티칭 센터(National Board-Pro Teaching Cneter)’ 라는 단체에 들어갔어요. 교사들을 교육하고 교육 정책을 짜는 곳인데 거기서 4년간 일하면서 어떻게 좋은 교육자가 될 수 있는지 배우게 됐죠. 이후, 빈곤 학생과 영어를 잘 못 하는 이민자 학생들을 위해 일하는 또 다른 교육 단체에서 일했고요. ‘동남아시아행동센터(SEARAC)’라는 민간단체와 ‘아시아태평양 미국인연합’에서 교육부를 이끌며 연방정부의 교육정책 개혁을 위해 목소리를 냈습니다. 특히 아시아계 학생들의 목소리가 전달 될 수 있도록 노력했어요.”

리타 씨는 그리고 올해 6월부터 ‘아시아태평양계 장학금재단(APIASF)’의 정책∙공보 국장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이 단체의 닐 호리코시 대표는 리타 씨를 이렇게 평가했습니다.

[녹취: 닐 호리코시] “리타 씨는 뛰어난 교육 전문가입니다. 여러 교육 관련 기관에서 일하면서 동시에 교육학 박사학위를 밟을 정도로 열정적이죠. 우리 재단의 전략∙공보 국장 자리가 나자마자 제가 제일 먼저 떠올린 사람이 바로 리타 씨입니다. 우리 재단은 이민자 자녀들이 공립 학교 교육을 통해, 성공적인 삶을 살 수 있도록 돕고 있는데, 리타 씨의 배경과 지식, 경험 그리고 전문성을 생각할 때 리타 씨보다 이 일을 더 잘할 사람은 없을 거라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호리코시 대표는 친구에서 이제는 같은 직장의 동료가 된 리타 씨에 대해, 호감과 영감을 주는 사람이라고 묘사했습니다.

[녹취: 닐 호리코시] “리타 씨의 첫인상은 ‘탁월하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미소를 띤 얼굴도 인상적이었어요. 리타 씨가 걸어온 길을 보면 정말 온갖 역경을 다 겪었을 텐데도 얼굴에 늘 평온한 미소를 띠고 있죠. 무엇보다 리타 씨는 세계 많은 난민에게 희망이 되는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캄보디아에서 행해진 ‘킬링필드’ 대학살로 수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었잖아요. 하지만 그 가운데 살아남아 이렇게 미국에서 꿈을 이뤄가고 있는 리타 씨야말로 교육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주는 본보기가 된다고 생각합니다.”

호리코시 대표의 말 대로 리타 씨의 이야기는 이제 더 많은 사람을 찾아가며 희망을 주고 있습니다.

리타 핀 아렌스(오른쪽)가 지난해 10월 26일 백악관 행사에서 발언하고 있다.
리타 핀 아렌스(오른쪽)가 지난해 10월 26일 백악관 행사에서 발언하고 있다.

[녹취: 백악관 필리핀 유산의 달 행사]

작년 10월, 백악관에서 열린 ‘필리핀계 미국인의 달’ 행사, 리타 씨는 아시아 이민자들의 교육 정책에 관한 토론의 패널로 참석해 공교육이 왜 중요한지, 또 이민자 자녀들에게 교육이 얼마나 필요한지를 설명했습니다. 리타 씨는 이제 이렇게 백악관 행사에 초청받을 정도로 교육계에서 인정받고 있습니다.

[녹취: 리타 핀 아렌스] “저는 지금 제가 하는 일이 정말 좋아요. 전 미국에서 성공의 열쇠가 바로 교육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젠 미국에서도 대학 졸업장 없이는 좋은 직업을 갖기 힘들죠. 하지만 여전히 학생들과 부모, 또 정책 입안자들이 교육의 중요성을 제대로 모르는 것 같아요. 따라서 저는 의회에 진출하고자 하는 꿈이 있습니다. 정부가 학생들이 겪는 어려움, 특히 가난한 계층 학생들과 소수계 학생들의 상황을 이해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하거든요. 언젠가 정책 전문가이자 연방 의원이 돼서 공교육 개혁을 주도하고, 또한 미국의 모든 학생이 자신의 배경에 상관없이 꿈을 이루는 것을 돕고 싶습니다.”

네, 미국에 정착한 난민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는 '나는 미국인입니다', 오늘은 캄보디아 출신의 교육자 리타 핀 아렌스 씨의 세 번째 이야기와 함께했습니다. 다음 주에는 리타 씨의 가족과 리타 씨의 뿌리 찾기 이야기를 들어보려고 하는데요. 기대해주시기 바랍니다. 저는 김현숙이었습니다. 함께 해주신 여러분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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